171. 국정원
미래대학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미래직업연구소 책임자인 가오리는 이런저런 직업을 조사하면서 다양한 직업에 대해 묻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이번엔 국정원에 꽂힌 것 같다.
말빨 좋은 가오리가 자꾸 술을 권하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치켜세워주니 30대 국정원 직원 둘이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비슷한 한국인이었다.
“힘들죠. 특히 꼰대들 때문에 사표를 가슴에 품고 삽니다.”
“자기 신입 때는 민간인 고문해서 간첩조작 했다고 자랑하는 놈들입니다. 특히 국내4과 놈들은 안기부 시절부터 이어진 꼴통들 집합입니다. 하나회 군부와 끈이 연결된 놈들이라 그놈들이 군납비리를 빨아먹고 있어요. 썩을 놈들.”
“정치 중립이요? 사람인데 그게 되나요? 1과 부장은 남당지지자고 2과 부장은 북당지지잡니다. 지금 북당정권이라 2과 부장이 더 쎈데 정권이 바뀌면 1과가 더 쎄지겠죠. 이렇다보니 과끼리도 각당 지지자끼리 교환해서 뭉치게 됩니다. 이러니 댓글조작같은 짓도 하는 거죠.”
“북한 간첩이요? 요즘 북한은 직파를 줄이고 해킹 위주로 정보를 뺀다 합니다. 솔직히 간첩이 군대시설 조사하는 것 보다 구글어스를 확대해서 분석하는 게 나은데 간첩을 왜 보내겠습니까? 몇몇 활동하는 공작원이 사람들을 포섭하긴 하는데 북한도 쓸모없는 거 알아요.”
“북한은 아사 직전이에요. 전부 굶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이 아니에요. 2017년에 이정은이 시진핑의 싸대기를 쌔려 갈기기라도 했는지 그때부터 북한과 중국 사이가 북한과 한국사이만큼 안 좋아졌어요.”
“예? 북한은 중국 바지저고리 잡고 매달려 연명하지 않아요? 북한의 유일한 친구가 중국 아닌가?”
“북한의 수출은 거의 다 중국으로 가는데 대부분 지하자원을 헐값에 넘기는 겁니다. 그나마 그 돈으로 중국에서 석유사고 식량사서 나라꼴을 유지했죠. 그런데 2016년 대비 2018년 수출액이 10분의 1로 줄었어요. 중국이 북한의 지하자원을 아예 안 받은 거죠. 이 때문에 지금 북한 내부사정은 말도 못합니다. 300만 명이 아사한 90년대와 똑같은 상황이라고 하죠.”
“와... 무섭다. 전쟁 나는 거 아냐?”
닥똥과 가오리가 으슬으슬한지 팔뚝을 쓸었고, 국정원 형누나들은 신이 나서 직장얘기를 했다.
이러려고 부르긴 했지만 너무 쉽잖아.
아무 말도 못하고 근처에 네 달 대기만 하면서 많이 힘들었나보다.
“4과는 뭐하는 과예요?”
은근슬쩍 섞어 물어봤다.
“대북 보안 전담과입니다. 군사정권 시절 민간인 잡아다가 고문해서 간첩으로 조작하던 인간들이 최고 윗대가리들이고, 그랬던 인간들이 키운 것들이 4과에 뭉쳐있죠. 생각을 해 보세요. 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고문하던 인간들이 문민정부 생겼다고 해서 싹 갈렸겠어요?
그놈들이 이름만 바뀐 국정원을 차지했어요. 그럼 밑에 애들을 정의로운 애들로 키울까요? 정의로운 후배들이 민간인 고문한 자기들을 조질지도 모르는데. 타락하게 교육시키고, 선배 나름대로 돈 뜯어먹는 방법 가르치고, 은퇴한 안기부 선배들과 군부 장군들과 군납회사 사장들과 연결시켜줘서 끈을 유지하죠. 끝까지 타락하지 않는 정의로운 후배는 해고하고요. 그래야 자기들의 죄가 덮여지고 죽이고 뺏은 재산을 몰수당하지 않죠.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진 안기부의 유산이 국내 4과에요.
정치권에서도 청소하려고 과를 계속 나눠 새로 뽑은 팀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긴 하는데 이 과정에서 또 자기들 유리하게 이용하겠다고 자기당 지지하는 과에 돈을 퍼붓는 식으로 국정원을 정당의 칼로 쓰려해요. 정말 개판이에요.”
추상희가 씁쓸한지 소주를 혼자 쭉 마셨다.
노민우도 동의하는 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국정원은 정의롭고 애국심 넘치는 사람만 뽑아요. 하지만 정의롭고 애국심 넘치는 사람은 국정원에서 성공할 수 없어요. 정치인이 되어야 하고, 자기 라인의 의중에 맞춰 국가의 이익이 아닌 라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해요. 내가 국정원을 바꾸겠다? 라인을 타고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한 승진이 불가능하다고요. 말단사원이 어떻게 바꿔요? 여긴 통째로 아사리판이에요.”
듣기만 해도 답답하네.
이것도 채인수가 해준 말 같은데.
부패유전.
어디든 똑같구나.
이 사람들 말을 들으니 국정원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세상엔 특별한 지배자가 없고, 다들 자기 권한을 이용해 돈 벌려고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이들 말대로 국내 4과가 그런 과라면 나에 대한 납치음모도 사실일 것 같다.
CIA의 정보가 정확하다는 건데.
국정원 형 누나와 술을 마시며 국정원의 삶을 들은 다음날, CIA 한국 지부장 칼리 페르난도의 방문을 받았다.
전날 던진 노트북 때문에 류안구에게 혼나고 있다가 그를 보니 참으로 반가웠다.
그의 요청에 따라 전처럼 본관 지하실로 들어갔다.
“우선 필리핀에서 생포한 둘을 잃었습다. 사죄하온다.”
“어째서요?”
“필리핀 군 병원에서 숨을 거뒀습다. 부검결과 약물에 의한 살인이고, 사고 직후 남자 간호사 한명이 사라짐니다. 배후조직의 지시였다 분석함온다.”
아 이 어색한 한국어.
“네. 알겠어요.”
“그래서 우린 현상수배 하습니다. 시체 중 얼굴이 멀쩡한 이들의 사진을 미래 커뮤니티에 뿌렸고, 그들의 신원을 아는 자를 찾았다. 현상금을 수십만 달러씩 걸었더니 제보가 들어왔음다. 누군가 그들의 가족사진, 학교사진 등을 올려 누구인지 확인해줐고, 일부는 시신의 지문까지 확인해 동일인물임을 확인함다.”
“오오. 대단하네요.”
“중국입니다. 전원 중국의 비밀특수부대입다.”
중국.
날 죽이려 100명의 특수부대원을 파견한 것이 중국이구나.
“고맙습니다.”
“아닙다. 윤회장은 미국의 최중요 동맹이며 미국은 언제나 윤회장을 지지하며 전력을 다해 보호할 것입니다.”
대신 알게 모르게 미국의 이권을 챙겨주고 있지.
받았으면 줘야 하니까.
CIA에게 국내4과에서 여전히 날 노리는 지 지켜봐 달라는 부탁까지 하고 내보냈다.
그 후 암실에 혼자 남았다.
습격 배후를 알아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는데, 알고나니 너무 쎄다.
중국.
미래 커뮤니티로 인해 중국의 정보통제가 깨졌고, 공산당이 감추고픈 정보가 인민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이래저래 인민이 술렁이고 있다.
중국에선 어떻게든 미래메신저를 막기 위해 화웨이를 갈아 넣어 패치를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방어하며 프로그래머들의 패치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감춰진 미래메신저 아이콘이 뜨는 패치.
미래메신저의 데이터교환 흔적을 찾는 패치.
감춰진 프로그램을 찾는 프로그램.
공산당의 수많은 시도가 있고, 그때마다 서둘러 패치를 하며 막아냈다.
중국이 미래메신저를 막으면 당장 5억에 가까운 유저가 사라지고, 그들이 제공하는 서버도 사라지니 우리로서도 필사적으로 화웨이를 막아내야 한다.
안 보이는 수면 아래서 중국과 미래그룹의 해킹,보안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랬더니 날 죽이려 하네.
이걸......
어떻게......
중국이 마음먹고 날 죽이려 하면 내가 막아낼 수 있을까.
난 살아날 수 있을까.
하아......
시진핑 한명 암살한다고 중국 공산당이 바뀌는 건 아니다.
공산당 전체가 무너져야 하는데.
그러면 자유로워진 중국이 더 무서워 질 것 같기도 하고.
음......
“오빠.”
“응? 어?”
“저녁... 먹자. 오빠 여기 들어온 지 9시간 됐어.”
어제 방송 때문에 나한테 많이 혼난 예하가 걱정 되서 찾으러 왔다.
거의 10시간을 지하 암실에 박혀 있었네.
고민이 길었구나.
예하와 저녁을 먹고 잠을 자려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서울의 구석에 있는 무수골.
이곳에 중국 특수부대가 침입한다면?
집에서 북한산 정상이 보이는데 인수봉 위에서 저격수가 날 쏜다면? RPG를 날린다면?
내가 아니어도 양평의 가족들을 특수부대가 공격한다면?
가족하나하나에게 경호원 100명씩 붙여야 하나.
새벽에 구형재를 본관 지하로 불렀다.
“아이구 이런 시간에 웬일이야 동생아.”
역삼각형 근육거구 구형재가 웃으며 말했다.
“형.”
“어.”
“타우바트섬에서 우리 공격한 거 중국 특수부대였어요.”
“아......”
싱글벙글 웃던 구형재가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적이 사라지는 게 가장 좋지만...... 중국과 전쟁할 수 있는 건 미국뿐일 거야.”
“두 나라가 싸우면 세계대전 급이 되겠죠?”
“그렇지. 그게 아니면 우릴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라도 해야 하는데...... 웬만한 피해로 눈 하나 꿈뻑하지 않을 것 같고. 힘든 적이구나. 차라리 미국에서 생활하면.”
“경호팀이 2km 저격을 막을 수 있어요? 집에만 있지 않고 어딘가 나가야 한다면?”
“...... 힘들지. 거긴 총기규제가 약하니까...... 상상도 못한 무기가 등장할 수도.”
“결국 한국인데. 한국에 있더라도 중국이라면 저격총 하나쯤은 밀반입 가능하겠죠?”
“가능하지. 쉽지. 차라리 중국이 요구하는 대로 맞춰주는 건 어떠냐?”
구형재의 말은 나도 생각해봤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지금은 중국이 적대하고 있지만 제가 성장할수록 적대국이 늘 거예요. 일본 북한은 물론 나중에는 미국 또한 날 적대하게 될 거에요. 새로운 제국의 탄생은 아무도 바라지 않으니까요. 제국이 태어날 때까지 버텨내야 해요.”
“후우. 중국이 헛짓거리 하지 못하게 강력한 경고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돼죠. 우린 기업일 뿐 국가에게 이길 수 없잖아요.”
“음......”
구형재가 입을 다물었다.
씁쓸하다.
개인은 국가를 이기기 힘들다.
당연한 사실이지.
구형재를 부른 건 혹시나 방도가 있나 묻기 위해서였지만 보아하니 힘들어 보인다.
“형.”
“...... 어?”
“제가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전 세계 정보부가 나를 집중 관찰하는 와중에 저를 뿅 사라지게 만들어서 1년간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네가 가진 해외의 섬이 100개 넘겼지? 음...... 단순히 섬으로 이동하는 게 끝이 아니고 1년 이상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해야 하지?”
“네.”
“전 세계 첩보부 눈을 다 피해야겠지?”
“지금은 중국이지만 나중엔 전 세계가 다 적이 될 수도 있죠. 1년간 안전만 보장되면 날 물어뜯는 놈들 몽땅 박살낼 수 있는데.”
“그래. 그렇구나. 그러면......”
구형재가 말을 멈추고 실내를 봤다.
1m두께의 알루미늄 상자 속.
모든 전자기기로부터 자유로운 곳.
“내가 아는 해외 PMC 몇 군데를 만나고 올게. 그리고 익명계좌로 미래블록 좀 옮겨줄래?”
“네?”
“지하루트 만들고 잠수함이라도 하나 사야지. 몇 달만 휴가를 줘. 저택 지하에서 몰래 빠져나가 동해쪽에서 잠수함 타고 나가면 조용히 사라지는 게 가능할 수도 있어. 당연히 이건 비밀자금으로 해야지.”
“아하. 알겠어요. 굴 하나 더 파놓는 건 좋죠. 돈 넣어드릴게요.”
“이런 건 아는 사람이 적어야 해. 내가 직접 할 테니까 몇 달 간 휴가를 줘. 그동안 미래경호는 도윤정이한테 맡길게.”
“그러세요.”
“그리고 해외 PMC들 만나고 나면...... 중국은 걱정하지 않게 만들게. 일단 몇 달만 조심하자. 그 다음엔 중국이 침묵하게 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요.”
별로 기대 되지는 않는다.
며칠간 도팀장에게 인수인계를 한 구형재는 휴가를 받아 해외로 떠났다.
그의 익명계좌에는 미래블록 9억개, 900억원이 들어있었다.
그 후 구형재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 작가의말
농업이 절대 쉽다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ㅜㅜ
이 글의 목표대상은 15~29세 청년층입니다
대학4년을 졸업한 후 100대1취업경쟁에 패배해 3년 이상 공시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거죠.
사회에 일자리는 부족하니 취업경쟁이 앞으로 10년간 완화될 리는 없으므로 그런 이들에게 농업이라는 대안도 존재한다는 걸 말하는 글입니다
대기업, 연구원과 비교하면 농업보다 훨씬 낫죠
다만 끔찍한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300만 실업자에겐 농업도 괜찮다는 비전을 알리는 글입니다 ㅜㅜ
불편하시거나 화가난 분들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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