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타우바트섬2
예하의 손을 잡고 방송팀에서 떨어진 해변으로 갔다.
찰랑 찰랑 하는 조용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밤바다.
“가부를 말하기 전에 이유부터 물어보자. 왜?”
“어? 어.... 그... 언니가 남자 공포증이 있는데 오빠랑 있으면 공포증이 사라진대. 나도 무슨 뜻인지 이해되고. 예전에 조승학을 피해 다닐 땐 모든 남자가 무서웠었거든.”
루비야. 너... 진짜 비밀이 없구나.
“그리고?”
“그리고...... 마법 시작했어. 낮에 터져버렸어어어. 히잉. 오빠 참을 수 없잖아. 오빠가 나 때문에 억지로 참는 거 싫어. 난 괜찮으니까 루비 언니 안아줘. 루비언니도 치료해줘. 나처럼 정상으로 만들어주면 고맙겠습니다.”
일단 니가 정상에서 비정상이 되었다.
딱.
꿀밤부터 맞아라.
“아야.”
“누굴 섹스중독자로 아시나?”
“에? 오빠 못 참잖아.”
못 참는 건 아니지.
안 참은 거지.
단 둘이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코인동향, 주식동향 보는 것 외엔 하는 일이 없으니 매우 자주 하긴 했다.
이렇게 많이 한건...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때 동거할 때 이후 처음인 듯.
그땐 수업도 째고 벗고 살았었지.
최근에도 진짜 눈 마주칠 때마다 하긴 했지만, 못 참는 건 아니다.
인생 망한 후 20여 년 동안은 거의 못했으니 참는 건 자신 있다고.
“좋아하니까 한 거지. 예하 넌 싫었어?”
“조... 좋았어. 너무......”
“그거잖아. 너도 하고 싶고 나도 하고 싶어서 한 거지 섹스 중독은 아니야. 안 해도 버틸만해. 뭐 다양한 우회로가 있으니 걱정은 마.”
다양한 잡기를 가르칠 때가 왔군.
“그리고 루비. 너 생리라고 루비를 안으면 루비가 좋아하겠냐? 완전 대체제인데.”
“어... 언니는 괜찮다던데. 빌려줘서 고맙다고. 그보다 나보고 참을 수 있냐고 해서 괜찮다고 했어. 언니 너무 착해.”
딱.
“아야야. 왜 때려.”
넌 루비를 때린 거야.
“그리고 너. 너는 괜찮아? 내가 루비 속에 넣고 헉헉헉 비벼대면 좋겠어?”
“어? 우우. 끔찍하게 싫지만 참을 거야. 오빠를 위해서라면... 오빠가 좋아한다면...”
딱 콩!
머리를 쿵 때리고 마빡을 딱 때리고 양 볼을 잡아 늘였다.
“알았다.”
“에베?”
“됐다. 가서 방송이나 해라.”
“에베베?”
예하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볼을 이리저리 늘여 말을 못하게 막았다.
곧장 돌아서며 루비에게 전화 걸었다.
“어디야? 어. 글로 갈게. 예하야 방송 잘하고 우리 숙소에서 보자.”
뒤에 멍하니 남은 예하를 두고 루비가 있는 펜션으로 갔다.
2층 별채 하나를 엔터 출신 여자들이 통째로 쓰고 있다.
고급 펜션처럼 꾸며진 집 앞에 바베큐 그릴 두개가 불타오르고 안에서 따로 국물요리를 하고 있다.
펜션 앞에 상 여러 개를 이어 붙여서 떠들썩한 술자리가 만들어져 있다.
날벌레만 없으면 완벽할 텐데.
“여~ 오빠~”
루비가 손 흔들어 반긴다.
주위 여성들도.
마주 손 흔들어 주며 루비 옆에 앉았다.
“오빠는 도대체 예하를 어떻게 교육시킨 거야? 예하가 진짜 자기 생각을 말한 거야?”
“모르겠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바보가 되어가네. 암튼 미안. 안 할 거야.”
루비가 건네주는 맥주캔을 한 모금 마시고 구운 옥수수를 먹었다.
윽 설탕 너무 묻혔다. 과하게 달아.
“쳇. 못 이기는 척 받아주려고 했는데... 양주 줄까?”
“너... 취하게 해서 덮치려고? 엄청 솔직해졌다.”
“그치? 우히히. 정상인이라면 이러지 않겠어? 쟁취해서 승리하는 삶.”
꽤 벗어난 거 같은데.
예하도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가고 있고.
인생이란 참.
어딘가 망가진 루비는 젖혀두고 여자들을 돌아봤다.
비키니, 돌핀팬츠, 나시. 탱크톱.
야시꾸리한 복장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제 끝이네요.”
“그러게요. 연습생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았는데.”
열아홉 명에게 아파트 21층 한 채를 통째로 줬지만 좁았다.
최근에야 집 한 채를 더 줬지만 불편했을 거다.
백제가 해체되었으니 이제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
워낙 많은 사건이 있었으니 이들의 영상 따위 묻힐 테고, 협박해 돈을 뺏던 매니저 혹은 조폭들은 전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나중에라도 협박 받으면 우리에게 전화할 시간쯤은 있을 테고.
“다들...... 잘 사세요.”
“네. 정말 고마웠어요.”
백제 놈들 때문에 반 강제적 은둔생활을 하면서 같은 아파트 이웃들과 가끔씩 술자리를 가졌다. 주 일 회 정도.
꽤 자주 마셨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은 각자 세우라 했다.
내가 어찌 살라고 시킬 수 없는 일이다.
하나 하나 얼굴을 보고 이름을 기억하며 석별을 준비했다.
“맞다. 포상 나왔어요. 백제 해체한데 대해서 그룹 전체에게 이천만원씩 보너스. 다들 통장에 들어갔을 거예요.”
“와아아~”
“고기 사먹자~”
“언니들 우리 저걸로 전세 잡을까?”
“그리고 팀별로 따로 성과급 나와요. BJ엔터 탈주팀은 29억 나왔어요.”
우뚝.
“일인당 1억 오천씩 들어갈 거예요.”
“받을 수 없어요.”
“구해줬잖아요. 그걸로도 충분해요.”
이럴 줄 알았지.
“박탈감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주식운용팀은 성과급 210억 나왔어요. 팀마다 작전에서 차지한 비중이 달라서 받는 돈이 달라요. 이건 제가 아니라 기획팀이 평가한 거예요. 그냥 받아요.”
침묵.
우린 왜 조금 주냐고 하기도, 안 받는다고 하기도 애매하지.
“그냥 받으시고 어떻게 살 거예요? 혹시 미래 그룹 들어오려면 도와줄 순 있지만, 특별취급은 못 해줘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맡길 수 있는데 많이는 못 주고요.”
춤과 노래에 10대를 바친 여자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다.
“여기! 여기 남아서 할 수 있는 일 없을까요?”
“나도 여기! 여기 너무 좋아. 섬 안내원? 우힛.”
“안내 데스크는?”
“나 운전 잘하는데 운전기사 안 뽑아요?”
“개인방송 도전해볼래요. 가능성 있다고 여겨지면 돌아올게요.”
하고 싶은 일이 재잘재잘 쏟아지는데.
“난 그냥 오피스텔로.”
왕언니가 찬물을 끼얹었다.
이름이 공은주였나.
“언니. 지옥에 다시 가려고?”
“그러지 마. 언니.”
“그건 너무하잖아.”
왕언니는 데뷔하지 못하고 2년 전에 뜻이 꺾인 케이스.
23살까지 연습생으로 붙어 있다가 생활고에 못 이겨 스스로 그쪽 계통에 빠졌다.
그게 약점 잡혀 가족친척친구에게 알린다는 협박을 받으며 돈을 뜯겨왔고.
“글쎄. 뜯기지만 않으면 월 2000 벌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차피 많이 버는 일은 뭐든 힘들어. 쉬운데 돈 많이 주는 일이 있겠니?”
“그래도 언니이. 오빠. 좀 말려줘봐.”
루비의 청탁을 시작으로 다른 여자들이 내게 왕언니를 설득해 달라했다.
어떻게 설득하지?
“노동으로 돈 버는 건... 내 나이와 돈을 바꾸는 행위라고 생각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한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그게 아니라 돈을 위해 억지로 일해.”
조승학의 돈장난과 나의 코인 올인 덕에 집이 빚더미에 올랐다.
친척분들이 돈을 모아 빚을 갚아줬지만, 그 친척들에게 돈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엄마는 근처 펜션 청소부로 호출이 올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 펜션방을 청소하고 건당 만 오천 원을 받았다.
아빠는 노가다며 과일 따기 인부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나도 그랬다.
온갖 일을 다했다.
아빠가 쓰러지고, 엄마가 암판정을 받은 후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범죄도 마다하지 않고 온갖 일을 다 했다.
그 중 원양어선 일도 있었다.
1년 기본급 2400만원.
대신 어획량에 따라 성과급이 있다.
평균 2000에서 5000까지 벌고, 만선이면 1년에 1억 채운다고 했다.
1년 최대 1억.
대신 망망대해에서 1년 동안 그물질만 했다.
사회와, 가족과, 친구와 단절된 채.
“원양어선을 타는 남자들은 오직 돈을 위해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 바다위에 살겠지. 인생에서 1년을 삭제하고 돈과 교환한 거야.”
아빠의 젊었을 적 본직업인 불도져는 골프장 건설현장에 많이 들어간다.
주로 시골 마을 혹은 산골에서 합숙생활을 하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땅을 밀고 밀고 민다.
하루 종일 엄청난 소음과 엔진 열기에 시달리면서 45도 경사를 오르거나 내리면 안전벨트에 매달려 대롱대롱 버텨야 하니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골프장이 보통 시골에서도 한적한 곳에 만들어지기에 퇴근 후 할 일도 없고, 소주 한병 마시고 자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렇게 생활하면 한 달에 1500만원을 받고, 불도져 궤도 수리나 엔진오일 등 소모비용으로 500만원이 나가니 월 천 번다.
한 달 천만 원을 위해 사회와 가족과 단절된, 다른 모든 걸 포기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희생으로 인해 하고자 하는 이가 적어 큰 돈을 받는 것이기도 하고.
“소똥 빼는 직업도 있거든. 소축사 몰린 곳에 변비 걸린 소에 좌약 넣어주는 일이야.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소똥꼬에 좌약을 주사하고 그래도 안 나오면 항문에 손을 넣어 똥을 빼줘야 해. 막힌 게 터지면서 얼굴로 푸아악 할 때도 있고. 이 일을 하면 건당 2만원 받어.”
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길 좁은 하수도만 전문적으로 뚫는 아저씨도 있다.
대개 통아저씨라 불리는 키가 작고 깡마른 할아버지들이 한다.
지름 400mm 하수도에 방독면도 귀찮다고 안 쓰고 들어가서 몸만 뒤틀어가며 막힌 곳까지 기어가 음식물 쓰레기와 담배꽁초와 쥐시체로 뭉친 곳을 모종삽으로 퍼 자루에 담고 뒷포복으로 기어나와 자루를 밖에 빼낸다.
이 일은 하루에 40만원 넘게 받는다.
“많이 버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다른 많은 걸 포기했거나... 너무 힘들거나... 너무 위험하거나... 그걸 감내하고 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용접사는 불임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용접불꽃의 강렬한 빛이 불알을 고장 나게 한다더라.
한 여름에도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2000도 용접불꽃 앞에서 하루 종일 일하면 땀을 어마어마하게 흘린다.
노가다 할 때 용접아저씨들이 하루 50만원 받는 거 보고 배우려 했다가 너무 힘들어서 끝내 포기했다.
“그래도 너무하잖아.”
“돈은 최대한 이성적이야. 성접대 여성이 많이 받는 이유는 그만큼 힘들고 포기하는 게 많기 때문이겠지. 그걸 스스로 감내한다면, 난 존중해. 백제 같은 거머리가 달라붙어 피 빨아먹는 건 조져야겠지만, 스스로 한다면 막을 수 없어. 난 매춘 자체가 나쁘다 생각하지 않고, 예전엔 자주 이용했어.”
매춘보다 힘들고 더럽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일도 얼마든지 있지.
스스로 한다면 내가 감히 막을 권리가 없다.
나보다 한살 많은 누나를 보며 웃어줬다.
예쁘장한, 나보다 많이 어려보이는 공은지가 미소를 지었다.
“3년 일하고 악착같이 모아서 옷가게 낼 거야.”
예쁜 거 좋아하고 예쁜 옷 좋아하는 평범한 여자다.
꿈을 위해 감내하며 사는 거고.
“다 그래요. 중동에 4년 파견 가서 도로 만드는 아저씨들도 많은 걸 포기하고 일하는 거예요. 돈을 벌기 위해서. 누난 평범해요.”
매춘이 문제가 아니고,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돈을 위해 현재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 사람이 할 수 있을까 싶은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 지금 이순간도 고생하고 있다.
돈을 위해서.
“그래. 내가 번 돈 고스란히 미래펀드에 넣을게. 불려줄 거지?”
“그럼 3년 후 은퇴네요. 그때까지 스무 배 증가할 거예요.”
감히 내가 이거해라 저거해라 말할 수 없다.
난 내가 가장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을 할 따름이다.
“스무 배라... 좋다.”
왕언니가 잔을 내밀기에 마주 부딪쳤다.
필리핀의 무인도까지 와서도 안주는 삼겹살이네.
소주를 마시고 삼겹살을 먹고.
술자리가 조용해졌다.
저마다 음식을, 술잔을, 밤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괜히 분위기 깬 거 같네.
잠깐 더 마시고 일어섰다.
“전 자러 갈게요. 내일 봐요.”
“어. 그래. 내일.”
루비야 너 아쉬워하지 마라.
나와 예하 둘만의 숙소로 갔다.
후덥지근한 여름날씨에 흘린 땀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또 재수 없는 소리를 했네.
내가... 감히...
쳇.
띠리릭.
“후에엥. 오빠가. 오빠는 지금쯤 루비 언니라앙. 우우우우우.”
술 많이 자셨군.
“어라? 있었네? 마누라 챙겨요. 에휴.”
예하를 부축해온 모닥불과 민지가 예하를 내팽개치듯 침대에 던졌다.
“예하가 술 마시면 이래요. 실수한 거 있어요?”
“헤헤. 예쁘니까 괜찮아요.”
“맞아. 너무 예뻐. 그런데 귀엽기까지 해.”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둘이 웃으며 돌아선다.
“이제 쉬러 가요?”
“아뇨. 방송해야죠.”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벌어야죠.”
“예하 취해서 말실수할까봐 끊었으니 해명방송해야죠.”
“헤헤. 수고!”
민지민지의 경례를 마지막으로 두 여자가 떠나갔다.
저들도 프로다.
나보다 어리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44살까지 살다온 나보다 진지하게 인생을 보는 사람들.
그들을 보내고 침대에 엎어진 예하를 봤다.
예쁜 엉덩이에 시선이 잠깐 머물렀지만.
“에휴.”
래시가드 답답하겠지?
벗기고 티 입히고 재우자.
그런 생각으로 뒤집는데 얼굴 빨개진 예하가 눈을 질끈 감는다.
“괜찮아?”
“어? 어. 오빠. 안 갔어? 난 지금쯤 루비 언니랑 그... 럴줄 알고.”
딱. 콩.
“우힝.”
“괴로워 할 거면서 왜 시키냐? 정신 차렸으면 가서 씻고 와라.”
“네에에에에.”
예하가 비치적비치적 화장실로 들어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소주와인맥주가 들어있다.
이 집 서비스 좋네.
병맥 하나를 집었다.
- 작가의말
임금에 대해선 주워들은 이야기이며 절대 공식적 통계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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