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누구도 믿지 않는다
“미래 그룹에는 커다란 두 다리가 있습니다. 미래IT와 미래펀드죠.”
12월 31일일.
타우바트섬 리조트 연회홀에서 송년회를 열었다.
“사람들이 미래IT에만 열광하는데 지난해 미래IT의 전체 매출은 940조에 영업이익은 19조였습니다. 한편 미래펀드는 지난해 자금 270조를 레버리지 2배, 550조로 운용해 37%의 운용수익을 거뒀습니다. 대출이자와 고객에게 안겨준 돈을 제외하면 영업이익 122조군요. 미래IT보다 6배 많이 벌었습니다.”
와아아아아~
미래펀드를 위한 송년회.
그러므로 미래펀드를 칭찬한다.
첫해 수익률 477%에 크게 부족하지만, 전체적으로 소강상태였던 장과 너무 큰 운용자금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익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미래IT만 알아도 미래그룹의 진정한 캐쉬카우는 여러분입니다.”
와아아~
“진정한 금융맨들은 모두 미래펀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젠 여러 기관에서 자산을 뭉텅이로 맡기는 형편이고요.”
와아아~
“자 보세요. 오늘 나온 찌라시입니다.”
뉴욕시장에서 돌고 있는 아날로그 찌라시를 복사해 전달했다.
미래펀드 투자내역.
“오늘자 미래펀드 투자내역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어제자도 있고, 그제자도 있습니다. 매일 정확히 업데이트 되더군요.”
미래펀드가 어디에 투자하던 하루가 지나면 바로 취합해 찌라시를 돌린다.
미래펀드의 미친듯한 수익률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
덕분에 주식을 운용하기 힘들어졌다.
우리가 몰래 사들이면 바로 다음날 잡것들이 붙어 가격을 올려버린다.
우리가 몰래 팔려고 해도 다음날 마구 던져서 제 가격에 팔지 못한다.
자산운용사의 포지션이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건 큰일이다.
“이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대로는 액티브펀드를 운용하기 힘듭니다.”
미래펀드는 전 세계 모든 증권시장에 진출했다.
거기서도 하나의 증권사와 거래하는 게 아니라 해당국의 모든 증권사에 계좌를 만들어 자금을 분산시켰다.
독점 계약으로 수수료 혜택을 받는 대신 매매흔적을 감추기 위함인데 소용없다.
“우리의 투자가 너무도 완벽해서 모두가 우리의 투자방향을 눈에 불을 키고 주시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증권사 직원을 매수해 우리 계좌에서 투자한 자금을 추적하고 있겠죠. 세계 모든 계좌를 통합해 이런 찌라시를 만들어 팔고 있고요.”
찌라시를 펄럭이며 말하자 지사장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신년의 목표는 투자내역을 감추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협조 부탁드립니다. 우선 각자의 폰에 해킹프로그램이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동의하시면 보안업체 직원이 확인합니다. 내용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지사장님들 모르게 깔려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찾는 것입니다.
둘째는 정보의 분산입니다. 투자정보를 단 한 명의 직원에게 넘기는 식으로 누구에게서 정보가 나가는 지 확인할 겁니다. 직원 각자가 서로 어디에 투자했는지 묻거나 검색하는 것도 금지합니다. 셋째는 각국 증권사에 협박할 건데, 이미 하고 있습니다. 우리 계좌 정보가 유출되면 그 증권사를 박살내고 법적조치하겠다는 공문을 이미 보냈습니다.
목표는 3개월. 3개월 동안 우리의 투자내역이 찌라시로 떠돌지 않게 만드는 일. 각국 지사별로 이 미션을 해내신다면 여기 모인 팀장님들, 지사장님들께 2억의 보너스를 드리겠습니다. 모두 협조해서 완벽한 정보통제를 이뤄주십시오.”
돈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미래펀드 지사장과 팀장급 전원 기쁘게 미션을 허락했다.
정보통제.
이제부터 유동성이 극에 달하는데 지금까지처럼 정보가 새어나가선 안 된다.
술 마시고 파티하고, 각국의 말도 안 통하는 팀장들이 요상한 댄스를 췄다.
금융계아저씨들이 잘 논단 말이야.
다들 대머리지만......
파티장을 뒤에 두고 권순진과 단 둘이 이동했다.
“미래펀드의 자금 현황은 920조야. 대출이 230조고, 레버리지 2, 3배 자금이 90조 들어가 있어. 인덱스 자금이 95조, 액티브 자금이 134조 들어왔어.”
나머지는.
“그럼 내 돈은...”
“371조.”
엄청나네. ㅅㅂ 말로 들으니 더 엄청나다.
“여기서 광산 등에 대한 대출을 받으면 총액 1300조 넘길 수 있어.”
세상 모든 것은 담보가 될 수 있다.
그간 구매한 광산에 대한 권리로 대출을 당겨올 수 있다.
“음...... 일단 레버리지 상품을 정리해주세요.”
“횡보 예상하는 거지?”
“예.”
우한폐렴으로 폭락한다는 말은 할 수 없다.
횡보라고 해서 위험투자를 줄이고 나중에 포지션을 바꾸자.
코스피*2 같은 레버리지 상품은 가격이 오르면 돈을 번다. 가격이 떨어지면 두 배로 돈을 잃는다.
문제는 횡보. 가격이 제자리에서 흔들흔들 거리며 옆으로 기면 돈을 잃는다.
그래서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잃을 확률이 더 높은 도박이다.
물론 야수의 심장을 갖고 2배 상품에 투자하는 이는 성공만을 바라보니 신경 쓰지 않지.
“인덱스는 냅두고요... 음... 액티브 자금도 그냥 두고... 유가 하락 배팅해주세요.”
“원유 가격 떨어질 거라는 거야? 사우디 러시아 마찰?”
“네.”
12월, 사우디와 러시아가 자존심을 건 원유 증산경쟁에 돌입했다.
‘쫄리면 니가 감산해라, 난 증산할 테다.’
이런 류의 치킨 싸움.
지난 해 유전테러 등으로 가격도 최고가 근처까지 올라 있다.
가격하락을 예측할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9개월 후까지 유가 하락 상품 쓸어주세요.”
“음... 유가가 큰 시장이긴 해도... 최대한 넣으면 400조까지 가능해. 대신 현물은 처리 할 수 없고.”
“좋네요. 최대한 넣어요. 주가는 횡보할 것 같으니 모자란 건 액티브에서 빼 줘요.”
“그래 알았다.”
“들키지 말고요.”
“그래. 보안. 방안은 몇 가지 생각해 뒀어.”
이마가 더 후퇴한 권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천재 같았는데 같이 일하다보니 기대보다 훨씬 일을 잘한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알아.
원유 투자.
여기서 떼돈을 벌 생각은 없다.
우한폐렴으로 하락하기 전 미리 주식자금을 뺄 핑계가 필요했을 뿐.
신년 휴일이 지난 후 미래펀드 각국 지사장은 메타버스 안에서 회의하며 투자방안을 지시했다.
정보의 통제와 한정적 정보제공.
지시를 받은 직원은 일부 주식을 매도하고 자금을 해외로 보내는 등 복잡한 일을 하지만, 절대 전체 투자방향은 알 수 없다.
메타버스 안에서도 말하지 못하도록 지사장을 조였다.
그렇게 빠져나온 자금이 원유 리버스에 투입된다.
매일 뉴욕시장에 도는 찌라시, 미래펀드 투자내역을 사보니 혼란에 빠진 듯 하다.
일부 정확한 정보도 있고, 일부는 자금행방을 찾지 못해 공백으로 두고 있다.
그렇게 비교하며 정보 출처를 캐내고 있다.
“아이고 동욱아, 손님왔다.”
펀드팀 뒤에서 팔짱끼고 하는 걸 보고 있는데 미래경호 사장 구형재가 불렀다.
“제가 만나봐야 해요?”
“글쎄. 일단 한국 국정원이야.”
“...... 썅놈들이 왜.”
일단 만나는 봐야하는구나.
경호원 벽에 둘러싸여 만나러 갔다.
관광객 꽃무늬 티와 반바지를 입은 젊은 남녀 한쌍이 섬 북쪽 항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위장한건가.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국정원 소속 노민우.”
“추상희입니다.”
벌떡 일어나 90도 인사를 하는 국정원 직원.
“예. 그런데 무슨 일로.”
“이번에 국가에서 윤 회장님에 대해 국가보호인재 특급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앞으로 국가에서는 윤 회장님과 가족, 친척에 대한 비밀 경호와 혹시 모를 위협에 대한 정보제공을 하게 됩니다.”
“엄청 빠르네요.”
“아. 감사합니다.”
비꼰건데.
“그런데 필요 없어요.”
“예? 네? 왜요?”
뭐지 이새끼?
거절은 상상도 못했다는 표정으로 보는데 어이가 없다.
니들 국정원 4과 부장이 뭘 하려 했는지 아냐?
“필요 없으니까요. 잘 가세요.”
“헉. 절대 회장님께 해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국정원에선 오직 회장님의 안위를 위해서만 움직입니다. 회장님께 해가 되는 정보를 미리 제공하고 은신처와 방호무기를 지원합니다. 절대 손해가 없을 것입니다.”
이론은 그렇지.
세상이 이론대로 되는 게 아니란 게 문제지만.
FBI의 경호를 받던 증인이 FBI의 총에 죽은 게 수십 번이고, 로버트 케네디도 등 뒤의 총알로 죽었는데.
“그럼 들어봅시다. 내게 해가 되는 정보가 뭐가 있나요?”
“예... 그것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보냈구나.
“여기 CIA 직원 있는 거 알아요?”
한국에서 도움을 준 이후 CIA에서 국정원처럼 전담직원을 파견했다.
본국에서 받은 정보를 취합해 내게 넘겨주고 지부티의 미군기지 안에서 생활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이정도 해줘야 지원이지.
“헉, 정말이십니까?”
“두 달 전 중국의 킬러가 한국에 잠입했고, 목표는 나였다는 걸 알려준 것도 미국입니다. 한국은 뭐했죠? 그 정보 자체를 몰랐습니까? 아니면 알면서 숨겼습니까?”
그제야 노민우의 표정이 굳는다.
“확인했고,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리지 않았네요. 지금도 알릴 생각 없었고.”
“국정원에서 처리할 수 있기에 큰일 하시는 분께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지랄.
국정원 4과에 대해 물어볼까?
너희 4과 부장이 날 납치하려 했는데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볼까?
아니, 얜 딱 봐도 신입 같은데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거야.
사실 그 정보의 진위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CIA의 거짓 이간질인지 국정원 개인의 일탈인지 아니면 국가적 약탈계획인지 몰라서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제발 CIA의 거짓말이면 좋겠지만......
“이 섬에 CIA가 머무르면서 미국측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필리핀 정부에서 이 섬에 대한 레이더 정찰을 꾸준히 해주고 있습니다. 잠수함의 침입도 막을 특급 경호죠. 한국은 무얼 하려고 여기 왔습니까?”
내가 이정도야 임마.
어? CIA가 보호하고 필리핀 정부가 보호해. 중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날려도 1분 안에 바다로 뛰어들어 살 수 있다고!
그런데 한국은 뭔 콩고물을 핥아먹겠다고 뒤늦게 기어와.
외국을 떠도는 걸 보니 한국을 떠날까봐 불안한가봐.
“헛. 예. 본사에 연락해서 지원방안을 받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여기에 머무를 수 있는...지요.”
“그러세요. 여기 항구 건물에만 계세요. 나오지 마시고. 허가 없이 건물 밖에 나오면 적으로 간주하고 쫓아냅니다.”
“예. 알겠습니다.”
딱 봐도 신입사원 같은 노민우가 이등병처럼 대답했다.
본부와의 연락병 용도밖에 되지 않겠네.
“그래도...... 한국 국정원이 한국인을 보호하려 하는 건데 조금 믿어 주시는 게......”
지랄 마세요.
“전 아무도 안 믿어요. CIA 필리핀도.”
아무도 안 믿으니 되려 여러 집단을 끌어들였다.
지부티처럼.
“예. 입장은 잘 알았고 전달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영양가 없는 대면이 끝났다.
자금 재배치를 통해 원유 하락에 320조를 배팅하는데 2주가 걸렸다.
2주란 시간동안 원유는 꾸준히 하락했고, 미래펀드가 원유하락 포지션에 들어간 게 찌라시로 퍼졌다.
그래도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완벽한 정보통제는 불가능하다.
고객계좌 정보를 팔아먹은 증권사 열세 곳을 고소했고 직원 수십명이 자료유출로 짤렸다.
푼돈 받으려고 펀드 투자내역 팔아먹던 직원들 굿바이.
일단은 정보 유출될 때마다 고소하는 방법밖에 없다.
치우고 치우다 보면 깨끗한 사람만 남겠지.
날짜가 지나는 동안 독버섯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중국 교통의 중심지 우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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