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더 높이 뛴 덕에 입수 후 손이 흙바닥에 닿았다.
혹시나 해서 뻗은 손으로 대비하지 않았으면 크게 다칠 뻔 했다.
돌을 밀며 빠르게 헤엄쳐 물가로 나온 무케게가 호박돌을 밟고 뛰며 소리쳤다.
“고글.”
“무키, 지금 송출중이야. 인터뷰도 해야 해.”
“빨리.”
흩어진 촬영시가들이 삼각 대형을 갖추고 찍는 와중에 무케게가 고글을 썼다.
송출화면엔 고글을 쓴 채 웃고 있는 무케게가 나갔다.
방송 사고다.
와아아아!
엄청난 소음.
관중석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전 세계 언어와 인종차이 상관없이 누구나 알 수 있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무케게 선수. 연기는 만족스럽습니까?”
진행요원이 다가와 마이크를 대며 물었다.
“네. 만족합니다. 바람이 위로 끌어올려줬어요. 아, 심사위원이 말씀하시네요. 여성선수 첫 성공기술이래요.”
무케게가 활짝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메타버스 경기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상을 받으면 어디에 쓰실 겁니까?”
미리 전해들은 질문을 했다.
“옥수수! 몽땅 옥수수를 사서 나눠줄 거예요!”
무케게가 이보다 행복할 수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네? 코로나 퇴치가 아니라요?”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한 대횐데. 눈치없이.
“코로나보다 굶어죽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이 인터뷰는 레전드가 되었다.
그리고 무케게는 거짓말처럼 예선 탈락했다.
“봤냐?”
동영상이 끝나자 닥똥이 말했다.
“어.”
화면은 점수 확인 후 펑펑 우는 무케게의 얼굴에 멈춰있었다.
“그런데 왜 탈락이야? 잘한 거 같은데.”
“다이빙 기술의 경우 미리 준비한 기술을 심사위원에게 제출하고 그걸로 심사한대. 그런데 한 바퀴를 더 돌았으니 기술실패인거지. 2차 시기는 평소보다 못했고.”
“야. 더 잘했는데 감점이라고? 심하잖아.”
“어. 그래서 레전드가 된 거지. 먹을 거 사려고 참가했는데 잘했다고 탈락이라니. 그렇다고 심판 쪽 말이 틀린 것도 아니야. 안타깝다고 봐주면 규칙이 무슨 의미냐는 거지.”
“그래서 레전드인거네.”
“어. 재도 참 딱하지. 자기 랭킹대로 그냥 하던 거 했으면 간당간당했으니까 고난이도 동작을 한 건데. 덕분에 영상 다시보기 1위로도 올랐다.”
“쯧. 무케게 이름으로 천만 달러 보내. 아니다. 부패한 놈들에게 다 뜯어 먹히겠지? 천만 달러 어치 옥수수 보내줘.”
“그래.”
전인구의 70%가 영양실조인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콩고민주공화국에 옥수수폭탄이 배달된다.
하나둘 금메달 수상자가 나오면서 대회는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한반도에 7월 내내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 한국 양궁이 노메달을 거둔 것처럼 이변이 속출하고 고의로 경기장에 손을 대는 부정행위도 줄을 이었다.
운영미숙도 눈에 띄고 운 좋은 메달리스트도 여럿 생겼다.
꾸준히 이벤트 경기임을 강조했지만, 불만을 품고 미래그룹을 성토하는 일도 이어졌다.
자국 스포츠 스타의 어이없는 탈락에 각국에선 김유나의 소치올림픽 탈락급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건 대회 흥행과 연결됐다.
어그로가 끌렸다고 할까.
하도 뉴스가 터져 나오니 관심 없던 이들도 몰려오게 된 것이다.
매일 10여개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리고, 1미래블록이면 24시간 볼 수 있다.
코로나로 갇힌 사람들이 점점 많이 들어와 구경한다.
메타버스용 고글은 전부 매진이어서 예약물량이 5개월 후까지 쌓여있고, 고글이 없는 이는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접속해 티비 느낌으로 봐야 했다.
메타버스에서 보거나, 메타버스 화면을 송출하는 컴퓨터로 보거나.
점점 시청자가 늘어난다.
올림픽으로 인해 모든 글로벌 대회가 전부 공백인 틈으로 메타버스가 끼어들었다.
“너무 버는데. 이걸로 돈 벌면 욕 먹겠지?”
수익을 정리해 올라오는 보고서에 걱정이 될 정도다.
“얼마나 버는데?”
맥주를 마시던 닥똥이 물었다.
“이대로라면 8조 번대. 대회운영비가 2조였으니 6조 버는 거네.”
지금도 대회광고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최소 1억 명 이상의 리얼시청자가 들어오니 광고단가도 쎈데 서로 가격을 올려가며 광고판을 넣으려 한다.
“코로나를 이용해 돈을 번다고? 졸라 죽음의 상인이네.”
“시발. 이렇게 벌줄 누가 알았냐. 처음엔 본전만 찾자는 식이었는데.”
“그럼 그러든가.”
이 새끼 지 돈 아니라고.
“쳇. 포기해야겠지. 대회 관계자에 반 뿌리고, 나머지 반은 백신에 넣자.”
어쩌다보니 추가기부로 연결되었다.
올림픽 연기로 실망한 선수와 사람들을 위해 미래그룹이 전액 쏜다고 광고했는데 떼돈을 벌면 모양세가 너무 안 좋다.
미래그룹은 소모비용 2조원 본전만 챙기고, 선수들과 코치, 진행요원과 카메라 요원, 메타버스 개발자들이 고르게 3조원의 보너스를 받는다.
나머지 3조는 백신에 넣고.
좋네.
공짜로 광고한거네.
메타버스 개발자나 각국 지사의 진행요원들도 다 내가족이니까 만족도도 높고 충성도도 오르겠지.
애초에 모든 스포츠대회가 중지되는 올림픽 기간을 이용한 것이 생각보다 훨씬 큰 효과를 가져왔다.
뒤이은 패럴림픽도 연이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래저래 IOC와 도쿄올림픽 관계자만 울상을 지었다.
“경기도민체전을 메타버스에서 한다고요?”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던 대회를 메타버스에서 개최한다는 신청이 줄을 잇고.
“콜드플레이 공연을 메타버스에서?”
반쯤 한국화 된 콜드플레이가 메타버스에서 공연하고.
“도쿄 모터쇼를 메타버스에서 한다는 거죠?”
온갖 전시회가 메타버스로 들어왔다.
지금까지는 미래그룹의 가수만 공연했고, 미래그룹이 주도하는 미술전시회만 있었는데 거의 모든 행사가 메타버스로 들어왔다.
실제로 가서 보는 것보단 못하지만, TV나 동영상으로 보는 것보단 훨씬 실감나며 관람비용은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다.
덕분에 더욱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으니 주최측 입장에선 여러모로 이득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메타버스의 효과를 실감한 이들이 속속 가상세계로 들어오고 있다.
최소한 2년간은 모든 전시회, 대회, 공연, 축제 등 모든 행사가 미래게임즈 세컨드 어스에서 개최될 것이다.
2년간 독점하면?
그 후엔 아무것도 안 해도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너무 많은 행사가 잡히니 메타버스팀 프로그래머가 죽어난다.
공연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고, 프로그래머 몸값은 너무 올라있다.
“공연장 꾸미는 건 직접 하지 말죠. 아웃소싱. 오픈소스니까 자유롭게 만들라고 해요.”
꿈과 환상의 공연장을 만들어라.
온갖 창작자가 팀을 만들어 기적 같은 행사를 만들 수 있겠지.
이건 반독점법에 걸리지 않기 위한 일거리 나누기다.
올림픽 기간 6주 동안 세상이 바뀌었다.
지구가 어나더 어스로 들어와 버렸다.
예전에 말했던 대로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에 하나의 평행지구를 추가해버렸다.
“마지막 곡은 공식곡이 아닌데도 대회 내내 공식주제가처럼 불린 노래입니다. 제시가 부릅니다. 스탠드 투게더.”
픽.
아오.
진짜.
예하의 노래는 아직도 1위다.
제기랄.
구형재는 17살부터 유도 국가대표였지만, 19살에 부상으로 은퇴했다.
메달권에서 멀어졌을 뿐 운동능력은 그대로인지라 능력을 살려 경호업계에 들어갔다.
특유의 성실함과 의외의 똑똑함 덕에 3년 만에 청와대 경호실에 들어갔다.
경호원이 밟을 수 있는 최고의 출세테크.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경호실 생활 2년 만에 선배 하나가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한체대 출신 후배를 살리기 위해 경호원들은 한체대 출신이 아닌 막내를 찾다보니 구형재가 걸렸다.
구형재는 실수를 뒤집어쓰고 잘렸으며 선배들은 소주한잔 사주면서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체념을 강요했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며 밀어 넣어준 사기업 경호업체를 뒤로 한 채 프랑스로 가 PMC 용병생활 10년을 했다.
나름 전설적 용병이 된 후엔 10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스스로 경호업체를 차렸으며, 외국 다양한 경호업체와 연계한 덕에 사업이 제법 잘 나갔고 동생들도 많이 생겼다.
이후엔 서프 사태 때 고생하다가 윤동욱을 만나 인생이 풀렸다.
자신의 인생을 반추한 구형재.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51세.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경험했다 자부한다.
그리고 윤동욱은 자신보다 많이 어리지만, 지금껏 만난 인연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윤동욱을 중국으로부터 지킨다.
윤동욱을 위해서라면 인생을 걸어도 되겠지.
7월 초. 구형재는 중국으로 밀입국했다.
밀입국한 후 미래쇼핑에서 건설용 수중드론을 200개 구매했다.
사람 크기인 거대한 수중드론을 직접 사진 않았다.
익명 게시판에서 대리구매자를 구했고, 주문해 항구에서 받아 정해진 숲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댓가는 미래블록이다.
절반은 선급, 절반은 비밀유지를 한 달 지켜줄 때까지 매일 소액지급.
일부는 딴마음 먹은 대리인이 훔쳐가고, 일부는 수상하다며 신고해 압수당했지만, 183개를 챙길 수 있었다.
이걸 직접 받지 않는다.
익명으로 구한 배달기사가 사람만한 박스를 트럭에 싣고 이동했고, 중간중간 트럭기사를 바꿔가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했다.
충칭에 도착한 드론은 160개.
동시에 구형재는 중국 곳곳에서 폭탄을 구했다.
익명 게시판에 폭탄 팔 사람을 찾았고, 부패한 공산당 간부가 빼돌린 폭탄을 샀다.
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열 번 이상 돌렸고, 최초의 판매한 자 외엔 잘 포장된 박스일 뿐 그 정체는 알지 못했다.
일부는 들켜 신고당했지만, 신고 받고 잡혀간 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중국 공안이 수사를 시작했지만, 소량의 폭탄이 중국 서부로 흘러가는 건 흔한 일이고, 아마도 위구르 저항세력의 짓이라 판단했다.
구형재는 익명 메신저 기능을 통해 드론과 폭탄을 획득했다.
PMC 생활 10년을 통해 다양한 군사지식을 획득했고, 폭약개조 또한 가능하다.
TNT 700KG을 소분해 수중드론이 옮길 수 있는 무게로 나누고 원격폭파 장치까지 구매했다.
목표는 싼샤댐이다.
대만과 중국이 멸망전을 펼칠 경우 대만의 제 1 타격목표는 싼샤댐이다.
상해, 난징을 타격하는 것보다 싼샤댐을 무너뜨리는 게 중국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대만의 모든 장거리 미사일은 평상시에 싼샤댐을 조준하고 있다.
이건 당연히 중국도 잘 알고 있다.
각종 군사기지가 싼샤댐 주변에 있고, 미사일 요격체계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포탄 한두 발로 무너질 댐이 아니다.
싼샤댐은 설계단계부터 100만년에 한번 올 홍수나 최악의 지진에도 끄떡없게 설계됐으며 상부넓이 40m로 1차벽이 붕괴되어도 2차, 3차 안전장치가 있다.
이걸 무너뜨리려면......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도 없다.
구형재가 하는 짓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다.
오직 혼자 해야한다.
구형재는 싼샤댐 상류 충칭 인근에 자리 잡아 택배를 받으면서 싼샤댐의 물리구조를 연구했다.
“아놔... 모르겠네.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수중드론으로 화약을 옮겨가서 펑.
이런 계획을 잡고 왔는데 왠지 어려울 것 같다.
한 달 째 싼샤댐 주위를 돌며 중공군의 순찰범위를 파악해 화약을 옮길 경로까지 확보했으나 정작 터트린다 해도 붕괴될지는 미지수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기에 구형재는 집단지성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마! 내가 쌴샤댐 터트린다!>
튼트 700키로로 댐 안쪽 호수에서 터트릴 건데 근데 이걸로 붕괴 되냐?
구형재의 진지한 질문에 집단지성이 응답했다.
-착한 짱개는 죽은 짱개뿐.
-폭파성공 기원합니다
-되겠냐?
-현역 구조공학 엔지니어입니다 티엔티 1000t으로도 안 됩니다
ㄴ 내부에서 기둥 터트리면 가능할지도
ㄴㄴ 외부에서 터트린다잖아, 1차 방벽은 뚫겠네
-천톤은 평상시고 지금은 홍수잖아. 다시 계산해
ㄴ 니가해
ㄴㄴ 어 니가
-대충 될 거 같은데 그런데 폭파 포인트를 잘 잡아야 할듯 설계도 줘봐 계산해보게
ㄴ 여기 있습니다
ㄴㄴ 헐 미친새끼 진짜 갖고 있네
-지금 수위 163m니까 5톤으로 가능 하겠네 폭파위치는 동그라미
ㄴ 아니 거기보단 동쪽이 더 약해
ㄴ 부실공사 의혹이 있는 부분은 서쪽 2차 방벽인데. 서쪽을 터트리는 게
ㄴ 지금이 기회야? 100년만의 홍수라던데
ㄴㄴ 어쨌든 부족하네
ㄴㄴㄴ 5톤만 있으면 된다는 거죠?
ㄴㄴㄴㄴ 어 근데 넌 왜 존댓말 쓰냐? 기분 더럽게
-700으로 터트리려면 수위가 10m 더 올라야해 폭파위치는 세모
ㄴ 수위가 오르거나 폭약이 더 필요하거나 네요?
ㄴㄴ 어 근데 너 왜 자꾸 존댓말 쓰냐? 기분 자꾸 더럽네
역사적인 홍수로 싼샤댐의 수위가 불어나 평소보다 댐이 받는 압력이 강해졌다.
덕분에 필요한 폭약이 줄어들었다.
물렁한 풍성보다 바람 빵빵한 풍선을 터트리기 더 쉬운 법.
화약을 조금만 더 구하면 될 것 같다.
집단지성 만세.
- 작가의말
자기복제를 해버렸습니다
댐붕괴는 전작에서도 중국 때릴때 쓰던 방법인데...
자기복제는 절대 피하려고 노력해봤는데
제 빈약한 상상력으로 개인의 힘으로 중국을 무너뜨리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밖에 없네요
이번 글 끝나면 쉬어야 할거 같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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