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웨딩엔딩
스페엑스의 우주정거장 결혼식은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거절했지만 달나라 신혼여행이 포함된 패키지는 많은 호응을 얻었고, 스페엑스는 다른 러시아 부호의 우주정거장 결혼식을 주최하는데 성공했다.
스페엑스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케팅 이득과 이미지 이득을 얻자 온갖 기업과 단체가 달려들었다.
국군은 무려 용사회관을 이용하게 해주겠다고 허가해 주셨다.
거기에 군악대 의장대가 붙고, 사상최대규모의 에어쇼와 코로나시국으로 해외에 나가기 힘든 것을 감안해 잠수함 신혼여행을 패키지로 붙였다.
놋네월드에서 결혼식을 주최해 주겠다고 하자, 디즈니에선 세계 어느 지점이든 하루를 통째로 대절해줄 것이며 세계 모든 퍼레이드팀을 불러와 사상 최대의 퍼레이드를 열어주겠다고 선언했다.
헐리우드에선 가장 환상적인 결혼식을 만들어주겠다며 판타지, 고대, 중세 등 시대배경만 고르라고 해왔다.
결혼식으로 영화 한 편 만들 기세.
비행선 결혼식, 열기구 결혼식, 고려왕족식 결혼, 스코틀랜드 전통 결혼, 아프리카 부족식...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결혼식을 열어주겠다는 제안이 왔다.
되든 안 되든 마케팅 이득이 생기니 세계 모든 기업이 일단 던지고 보는 느낌.
결혼식 주최에서 한 발 빠진 그룹도 꽤 많다.
상섬에서는 모든 하객에게 신혼부부 패키지 전자제품을 사은품으로 제공하겠다고 했고, 골드스타 그룹은 비슷한 패키지를 내밀며 세계1위 가전제품을 뿌리겠다며 홍보했다.
환하는 어디서 결혼하듯 역사상 최대의 불꽃쇼를 선물하겠다고 했고,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웨딩드레스 100여벌을 선물이랍시고 보내왔다.
결혼은 여자를 위한 것.
제안서가 올 때마다 예하에게 보여주며 선택권을 맡겼다.
처음에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세세하게 살펴보던 예하조차 나중에는 질려버렸다.
“오... 빠. 이래도 되나 싶은데.”
SNS에 가볍게 올린 글이 이 정도로 주목받을 줄은 나조차 몰랐다.
“자기들도 이득이 있으니까 지른 거지.”
“그래도... 와... 이건.”
“우리가 잘 살았다는 반증이지.”
“우리가 아니라 오빠지. 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지.”
“나한테 잘 보이려면 예하 너한테 사랑받아야 하는 걸 아는 거지.”
“에헤헷. 그건가. 베갯머리 송사 그런건가. 으흐흐흐.”
예하 너 왜 음흉하게 웃는 건데?
예하는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어떤 결혼식을 고르던 너무 화려해서 부담스럽다는 게 이유.
수많은 웨딩드레스조차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부담스러워서 모두 거절했다.
대신 착용샷 한 장씩 찍고 돌려보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더라.
2022년 12월 31일.
임신 7개월째인 예하는 배가 뽈록 나온 정도.
복장은 임산부용 린넨원피스.
나는 면바지와 폴라티, 운동화.
이 또한 선택장애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혼식이 알려지자 주례를 서겠다는 이가 줄을 이었고, 세계적 저명한 인사들의 결혼식 참여신청이 줄을 이었다.
누구는 받고 누구는 거절하기 애매해서 모두 거절하고 그냥 무수골에서 가족 친구만 불러 조용하게 결혼하기로 했다.
그 결과 주례가 사라졌다.
모두가 지루해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 주례사 따위 버린다.
주례사를 없애니 굳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같은 거를 입을 필요 따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구두... 17세기 산업시대에나 고급품이었지 발건강이나 편안함 등에선 운동화가 훨씬 낫잖아. 구두도 버리자. 우리가 허례허식을 타파하는 거야.”
운동화 신고 결혼하기로 했다.
그 결과 예하가 원하던 가장 화려한 결혼식과 완전 정반대의 소박한 결혼식이 되었지만 예하는 만족하는 모양새다.
“이게 셀럽의 마음가짐인가. 내가 하는 것 하나하나가 유행이 될 걸 알고 나니 허례허식을 없애는 기분이 들자너. 오빠가 넥타이 싫어하는 게 이제 이해되네.”
그냥 싫어서 그런 건데.
12월 31일.
본관에 웨딩홀을 꾸몄다.
초대손님은 추리고 추려서 100명.
집들이 손님 맡는 기분으로 한명 한명 모셨다.
“어머니. 제 옆에 서요. 아버지도요.”
“일단 사진 한 장 찍어드릴게요. 팔짱 껴봐요.”
하지혜 씨의 부모님이 오늘 하루 예하의 부모 역할을 하기로 했다.
두 분은 과거에 날 대신해 조승학에게 현상금을 걸었기에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는데, 그 일이 해결되면서 한국에 들어 올 수 있었다.
조승학의 처분 소식과 중간 경과(고문내용과 영상)를 공유하다가 결혼식 때 예하의 들러리를 부탁했고, 두 분은 많은 복잡한 것이 담긴 눈물을 흘리며 승낙했다.
우리 부모님과 예하의 부모님, 친구들, 가족보다 함께한 시간이 더 긴 사장들, 예하의 매니저나 내 비서진, 경호팀 등 150여명이 모여 식사를 한다.
딱히 정해놓은 식순은 없고, 시간제한도 없으며 자리를 옮겨가며 식사하면서 덕담 듣고 축하를 듣는다.
평소 가오리닥똥과 놀 때와 비슷하다.
예하도 이런 모임이 가장 좋다고 했다.
“야. 동화가 왜 주인공들이 결혼하면서 끝나는 줄 아냐?”
닥똥놈이 철지난 개그를 친다.
“왠데?”
“에휴. 결혼 후에는 어떻게 해도 동화가 될 수 없으니까. 결혼한 순간부터 공포나 스릴러 장르로 바뀌거든.”
닥똥이 먼저 결혼했답시고 선배흉내를 냈다.
“그래? 그럼 너의 오늘은 공포가 되겠네. 뒤를 봐.”
닥똥은 뒤에서 째려보는 길영주를 보고 몽크처럼 소리없이 절규했다.
귀 잡혀 끌려가는 닥똥의 등짝에 치어스.
“축하한다.”
오랜만에 만난 채인수가 다가오며 맥주잔을 부딪쳤다.
“형 왜 이렇게 말랐어요? 죽어가는 거 같은데?”
“임시회장 자리 때문에 죽겠다. 니가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차이가 너무 커.”
“에이. 원래도 형이 다 했잖아요.”
“누군가 한마디 던져서 쉽게 정리되는 그런게 없으니 부담감이 장난 아니다.”
“어차피 이제 곧이잖아요. 그룹 해체 끝나면 메신저만 맡으면 되고.”
“모르겠다. 미국에선 그룹 재결성해서 통째로 먹을 생각인 거 같은데.”
“그럼 너무 쎈 거 같은데. 독과점도 걸릴 것 같고. 수수료도 올릴테고. 아 몰라. 형이 마음대로 해요.”
“그러니까. 아주 죽겠다고.”
“고생하세요. 너무 힘들면 사표 던지시고. 돈도 많은데 같이 놀러다닙시다요.”
“그래. 그냥 빨리 짤리게 개판 쳐놓을까?”
“그러시든가. 수고.”
채인수가 마시던 맥주잔을 들고 떠나가자 핀빙빙이 다가왔다.
여전히 중국의 척결1순위이며 공산주의 타도에 앞장서는 민주주의의 여신.
이제 마흔을 넘겼는데 여전히 예쁘다.
“영상통화로 보는 것보다 살 좀 올랐네요.”
대화는 핸드폰을 입에 대고 번역기로 대화한다.
“후후. 치료가 좀 된 거 같아.”
“잘 지내죠?”
“그럼. 아주 보람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중국공산당이 무너질수록 핀빙빙의 행복도가 커진다.
결과가 눈에 보이니 그녀를 비롯한 사람들의 활동도 더욱 활발해진다.
오프라인 기업들과 사람들에게 공산당의 통제와 감시를 피하를 방법을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전수하며 전쟁 중이다.
“이런 결혼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
핀빙빙이 연회홀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그렇죠?”
“결혼식이라는 게 정말 친한 사람들을 모으는 거잖아. 그런데 식순에 쫓겨 반가운 사람들과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헤어지는 건 좀 아쉽다고 생각했어. 식순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반가운 사람들의 진심어린 축하가 좋은 건데.”
“역시 깨우치신 분.”
“그런데 예하도 동의했어? 여자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닐 텐데.”
“예하가 제안한 거예요. 결혼식의 추억은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어요. 웨딩촬영 했고, 영상도 찍었고, 오늘 현장 영상도 남길 거예요. 이 자리는 진짜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하는 것에 바치기로 했어요.”
“훌륭하네. 정말 행복해 보인다.”
핀빙빙이 진심을 담아 축하해줬다.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
“어? 언니?”
멀리서 예하가 다가왔다.
그런데 루비와 팔짱을 끼고 다가오고 있다.
루비. 핀빙빙. 예하까지.
닥똥형, 형의 말대로 공포 스릴러 장르가 시작된 것 같아.
“무슨 말 하고 있었어요?”
“신혼집에 빈 방 있냐고 물어보고 있었어.”
“어머! 있어요. 와요. 들어와요. 루비언니도 들어오기로 했어요.”
응? 스릴러가 아닌가? 하렘물인가? 쟤 제정신인건가.
“내가 언제?”
“으이그. 들어와요. 못 본 사이에 또 삐쩍 말라가지고 진짜. 울 오빠가 못된 조승학도 무찔러 줬으니까 이제 마음껏 좀 먹고. 진짜 언니한텐 눈을 못 떼겠어. 캔트 아이즈 오프 유.”
“예하야. 내가 마른 게 아니라 니가...”
“언니 나 임신 중에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큰일 날 거 같은데?”
“에휴. 그래. 모르겠다.”
“빙빙 언니도 몇 달 쉬다 가요. 우리 애기 안아보고 가세요. 방송은 여기서 해도 되잖아요.”
예하가 원하는 세상이 뭔지 모르겠다.
무알콜 음료만 마셔서 취하지도 않았을 텐데.
평균보다 마른 루비, 핀빙빙.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의 흔적.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까지 챙겨줘야 하나 싶은데.
“오빠는 싫어? 언니들 들어오면 좋을 것 같지 않아? 이젠 맡은 회사도 없으니 상관없잖아.”
“니 언니들에게 상관이 있겠지.”
“아!”
예하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후후. 좋은 제의 감사합니다. 며칠 쉬다 가긴 할게.”
핀빙빙이 웃으면서 승낙했다.
따로 신혼여행을 잡은 것도 없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놀러 다니면 된다.
“에헤헤. 좋아. 루비언니도 같이 며칠 쉬어요. 우리 놀러 가자요.”
“어? 어. 그래. 그러고 보니 아직 말도 안했네. 결혼 축하해 예하야.”
“헤헤헷. 감사. 아. 시간됐나보다.”
저녁 6시가 되자 한강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일하는 관리팀이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불꽃쇼를 틀었다.
나와 예하는 참석 안하지만 우리 결혼을 축하하는 축포다.
저기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온갖 축하쇼가 벌어지고 있다.
마케팅이나 다른 이유로 변색되긴 했지만, 온 우주가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 주고 있다.
슥 돌아보니 사돈어른끼리 한잔하고 있고, 사촌동생들은 뛰어다니고 있고, 가오리놈은 뭘 잘 못했는지 한민선한테 혼나고 있다.
수줍음 많은 쥐며느리 커플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으니 음식이 새로 세팅된다.
예하와 둘이 안고 맡은 편에 빙빙과 루비가 앉았다.
아니 왜 이런 구도가 잡힌 거지?
“다시 한 번 결혼 축하해.”
빙빙이 칵테일 잔을 내밀었고, 다 같이 잔을 부딪쳤다.
퍼퍼펑.
불꽃이 터지고.
인류 역사상 다시없을 부자가 결혼을 했다.
“난 제대로 산 걸까?”
회귀한 인생치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으이구 젊은 놈이 뭐 그런 소리를 하냐.”
어느새 다가온 가오리가 한마디 하고는 한민선과 함께 옆에 앉았다.
루비는 가오리의 핀잔에 반박했다.
“재밌는 기사를 봤는데. 윤동욱의 5년은 인류를 10년 발전시켰다 라고 적혀있었어.”
“발전이라. 나 없어도 개발될 거였는데. 나야 그냥 투자만 한 거고.”
한민선이 끼어들었다.
“그 기사는 기술 얘기가 아니었어. 네 기부. 손댈 엄두도 못내던 소말리아나 콩고 등지에 내전이 멈췄거나 줄었잖아. 그리고 미래대학까지. 당장 모든 게 고쳐지지 않아도 10년 후, 네 영향을 받고 교육받은 세대가 자라나면 세계가 한층 더 상식적으로 변할 거래. 네가 행한 최고의 업적은 돈을 많이 번 게 아니라 돈을 많이 쓴 거야.”
“뭐... 막 퍼줬으니까.”
“그게 가장 어려운 거야.”
다들 맞아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헤헤. 내 남편 멋져. 꺄아. 남편이래. 꺄아아.”
예하가 좀 취한 것 같다.
설마 진짜 마신 건 아니겠지?
나도 좀 취하는 거 같다.
“후후후. 이만하면 잘 살았다는 소리겠지. 5년 간 진짜 열심히 달렸어.”
“어. 고생했어. 내 남편. 꺄아아아.”
기분 좋은 날이다.
정말로.
- 작가의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일단 엔딩이고... 쭉 다시 보면서 회수하지 못한 복선이 있다면 수정 혹은 외전으로 뺄 건데 한동안은 건드리지 않을 라요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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