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역지사지
사람들은 역지사지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줄까?
남녀 명예훼손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테고.
남녀 전체 욕하는 건 안 된다고 인정하되 중국 욕하는 건 괜찮다고 하는 이들이 있겠지.
남녀 욕설, 지역 욕설, 중국 욕설 모두 잘못된 일반화라 인정하는 이도 있을 거고.
비율은...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세 번째가 압도적으로 많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것을 벌주지 않으면 잘못이 부풀어간다.
부풀고 부푼 잘못된 것은 언젠가 크게 터진다.
‘착한 짱깨는 죽은 짱깨뿐.’
세상에서 가장 소름 돋는 문장.
미친 것 같은 세상.
그게 뭐가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세상.
미친 짓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미친 소리를 하면 벌을 준다.
그러면 세상이 깨끗해지겠지.
무작위 중국인 수십 명을 죽이는 장난같은 테러.
몇 년 후 벌어질 일.
그런 일이 세계 곳곳에서 수십 차례 벌어진 후에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리 막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인수형 되겠어요?”
방송 중에 그냥 인수형을 불러서 물어봤다.
“법리적으로? 돈을 받진 못해도 법정출두는 하게 만들 수 있겠지. 벌금 약간 내게 만들 수 있어.”
“그거면 됐어요.”
어차피 손해배상이 인정 되기도 어렵고 분배도 불가능하다.
다만 잘못된 거라는 걸 알 수 있으면 된다.
또 두서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난 중국 공산당이 싫어. 걔들 때문에 피해도 많이 봤고. 하지만 사람은 각자 독립된 개체야. 난 사람이 싫지 않아. 중국인 누군가가 미친짓을 했다 해서 중국인 전체가 싫지 않아. 중국공산당이 날 싫어해서 싸우고 있지만, 중국인에 대한 차별은 전혀 없어.
같은 식으로 일본은 싫지만 일본인도 싫지 않아. 일본 역사를 싫어하고 일본정부의 극우정치가 싫고, 일본에서 반한연설로 돈 벌어 먹고 사는 인간들은 싫지만, 50% 일반 일본인이 싫지 않아. 나쁜 인간만 미워하자. 개개인을 전체와 엮지 마.
한국에 고유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본, 중국인들이 한국인 전체를 욕하더라. 그런 댓글해석도 유머사이트에 많이 돌았고. 그걸 보면서 반성했어? 고유정 하나의 미친 짓에 한국인 전체가 욕먹는 게 어이없지 않았어? 아니면, 그게 억울한데 오히려 그런 말을 한 한두 명에게 화가 나서 중국인 전체를 욕하거나 일본인 전체를 욕했어? 이거 되게 웃기지 않아?
뭐가 잘못된 건지 이해한다면 너희부터 개인을 전체와 엮는 짓을 하지 마. 개인의 죄는 개인을 욕하는 데서 끝내. 젠더로 묶어 싸잡아 욕하거나 출신지역 범행지역으로 묶어 싸잡아 욕하는 건 범죄야.”
속에 쌓은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진짜 쏟아내고 싶은 말은 하지도 못한다.
두뇌가 이중으로 따로 논다.
구형재는... 그 개인의 죄다.
시발 내가 시키지 않았어.
구형재가 미친 짓 한 거야 시발.
난...... 도의적 책임이 약간 있지만 시발 뭐!
나는 전혀 원하지 않았어.
진짜야.
최선을 다해 구출했다고.
앞으로도 재건을 도울 거고.
시발 그거면 됐지.
구형재 개인의 죄를 미래그룹 전체와 엮지마.
하지만 밝혀지면 미래그룹 전체와 엮을게 분명하니 밝히지 못하지만 시발. 어쩔!
개시발.
하아...
한 잔 더 마시고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마법의 문장을 알려줄게. ‘모든 사람은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 이게... 노벨상 탄 게임이론에 나온 문장인가. 모르겠다. 암튼. 이 문장 하나면 세상 모든 수상한 현상을 전부 설명할 수 있어. 대단해.
이 문장을 관련자 각자에게 대입하면 어떻게 이런 미친세상이 왔는지 설명이 가능해. 그리고 미친 정부제도가...“
말하는데 채인수가 달려와 마이크를 뺏었다.
“어?”
“정치권을 건드리면 안 돼. 말 하려면 술 깨고 깊게 생각하고 준비하고 건드려야 해. 취해서 질러버리면 안 돼 동욱아.”
“아...... 미안해요. 많이 취했네요.”
“그래.”
채인수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흠흠.
“어쨌든 각자 생각해봐.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을 지. 나의 고소는 내 돈만 잔뜩 쓰고 키보드여포들을 귀찮게 하는 수준에서 끝나게 될 테지만 내겐 이게 최선의 선택이야. 전 재산 생각하면 티끌 만큼이고 내가 쓰는 돈만큼 미친새끼들이 닥치게 될 테니 좋네. 어. 끝까지 할 거야.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말을 마치니 어지럽다.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예하야. 교대하자. 수습해줘.”
“크크크. 미친새끼.”
“수습해달래. 크크”
“어? 어. 알았어.”
예하와 자리를 바꿨다.
화면이 화사하고 밝고 아름답게 바뀌었다.
“죄송해요. 여러분. 울 오빠 취했어요. 며칠 잠도 못자고 중국 지원하고. 뭐 그랬어요. 죄송해요. 음... 진짜 고소하냐고요? 모르겠어요. 할 거 같긴 해요. 에... 죄송해요. 아. 내가 사과해서 오빠가 화난 건데. 사과하지 않을게요. 에... 노래나 할까요? 음... 핑계. 뜬금없이 핑계.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예하가 카메라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자리를 옮겨 닥똥 가오리 옆에 앉았다.
예하에게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자리.
“넌 졸라 미친 새끼다. 크크크.”
“수천억 쓰겠네?”
“어. 시발 써. 돈 날려. 시발.”
“크크. 세상을 정화하라. 크. 뭐 맞는 말이긴 하네. 어차피 평생 다 쓰지도 못할 거 니 좆대로 써라.”
“크. 마셔 시발.”
잔을 부딪치는 데 채인수가 함께 짠을 한다.
“괜찮겠죠?”
“큰 문제는 없어. 정치권에서 더 싫어하겠지만 우리가 호락호락하지도 않을 테고. 건드리면 물리는 거 아니까 함부로 비비진 못할 거야.”
“그럼 됐어요.”
마셨다.
취할 때까지 마시고, 방송을 정리한 예하와 기억이 끊길 때까지 마셨다.
세상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그래도...
공감이 더 많다.
세상은 미치지 않았다.
대단한 투사가 된 것 마냥 떠들던 명예훼손 죄인, 살인교사 죄인, 살인공모 죄인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실제로 찾아보면 죄인을 욕한 사람이 대다수다.
극히 일부만 치우면 된다.
쓰레기를 치우면 세상이 맑고 밝고 깨끗해진다.
<오늘자 윤회장님 레게노방송 요약>
술 취하심.
기분이 우울하심.
광역딜 날리심.
최소 300만명 고소장 날아갈 예정
-ㅋㅋㅋㅋㅁㅊ
-ㄹㅇ전설의레전드다
-존나 쿨해
-ㅇㅇ 레알 돈지랄 간지나게 하네
-형들 나 디지털장의사 썼는데 확실히 지워져?
ㄴ너 세계1위보다 쎄냐? 장의사보다 윤형이 더 쎌듯
ㄴㄴ ㅋㅋㅋㅋ조땠다 왜 형을 건드렸어?
ㄴㄴㄴ 아니 그냥 여자들만 욕했는데
ㄴㄴㄴㄴ 제시가 상처받아서 윤회장님 빡치심
-ㅋㅋㅋㅋ
<현시점 브라질 커뮤니티 상황>
아 우리도 해조요
-ㅋㅋㅋ
-전세계에 다 지사 있잖아 전세계 다 해야 하나?
-브라질은 또 왜저래?
ㄴ젠더갈등 지역갈등이 한국만 있겠냐
ㄴㄴ 외국도 있어?
ㄴㄴㄴ ㅇㅇ 전세계 다 저래
-한국의 지역갈등이 제일 약하지. 외국은 총쏘고 죽이고 테러하고 독립운동하는데
-전세계 다 고소고발 하려면 100조 넘겠네
ㄴ ㅁㅊㅋㅋㅋㅋ
술 마시고 취해서 자고 있는 동안 기획팀이 내 즉흥적 선언을 다듬었다.
이 아저씨들 퇴근은 했나 모르겠네.
“회장님의 뜻에 따라 1조원을 따로 뺐습니다. 주변에 명예훼손 죄인, 살인교사 죄인, 살인공모 죄인이 있다면 증거와 함께 신고해주십시오. 비밀유지를 보장하며 건당 100만원에서 1천만원 사이 포상금을 드리겠습니다. 하드 복원이나 인터넷 글 복원 등을 해서 가져와도 됩니다. 방법은 개의치 않습니다. 죄인에게 벌을 줘서 젠더갈등, 지역갈등, 국가갈등을 없애겠습니다.”
채인수가 공식발표를 통해 쐐기를 박았다.
인터넷 댓글창이 맑고 깨끗해졌다.
죄가 엮인 교수, 젠더 단체장 등이 지랄지랄 하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일부러 정부정책은 건드리지 않았다.
젠더갈등, 지역갈등을 자기 표밭으로 이용하던 북당, 남당은 서로 눈치보며 침묵하고 있다.
한쪽 젠더에 예산을 몰아주고, 한쪽 지역에 예산을 몰아주던 정책들은 자료조사만 하고 있다.
권총을 뺄지 말지, 총을 쏠지 말지 서로 주시하고 있다.
우리의 운동에 협조하거나.
사생결단을 하거나.
서로 입장표명 없이 지켜보고만 있다.
오후에 일어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순정라면으로 달랜 후 경호팀장 도윤정을 불렀다.
“구형은 연락 없죠?”
“예. 아마도 비밀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네요. 맡긴 돈도 900억인데 어디 썼는지 모르겠고요.”
“절대 빼돌리지 않았을 겁니다. 구형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사고가 났을 수도 있죠. 일단 도팀장님이 사장 하세요. 구형도 도팀장님한테 맡기고 갔잖아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분명 금방 돌아올 겁니다.”
“그럼 그때 다시 교체하죠. 도팀장님이 사장 해 주세요. 일 진행하는 데 임시사장 직분이면 힘든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정식 사장 취임해요.”
“아... 알겠습니다. 구형이 돌아오면 내주는 걸로 하겠습니다.”
미래경호.
전 세계 190여개 지사 전체를 경호하는 회사다보니 인원이 2만 명에 CCTV, 드론 등 보안장비가 4조 원가량 들어가 있다.
이미 세계 최대의 경호회사가 되었다.
구형재는 형식적으로 물러나고 도윤정을 사장으로 올렸다.
“그러고 보니... 구형한테 가족 있나요?”
“사별한 아내 분 사이에 아들 둘 있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시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사별한 아내의 부모를 챙기고 있었구나. 아들이 둘 있고.
욱씬.
구형재는 죽었겠지.
흐름을 보아하니 거기서 탈출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구형재는 미래그룹의 핵심인사로 전세계 정보부에 알려졌다.
거기서 탈출하다가 사진 한 장이라도 찍히면 미래그룹 전체가 소멸한다.
구형재라면...
그 성실한 형이라면...
욱씬.
“일단 퇴직금을 가족한테 주고요. 아직 정식 퇴사가 아니니 연봉 10억 전부 가족에게 매년 줘요.”
“예. 알겠습니다.”
도윤정이 활짝 웃었다.
내가 구형재를 버리지 않았다고 믿겠지.
구형재는... 아마도 계속 실종상태로 남을 거다.
그래도 살아 돌아오면 좋겠다.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다면 ‘왜 그런 짓을 했냐고.’ 욕하고, 때리고 발로 밟을 거다.
그래도 살아 돌아오면 좋겠다.
“하아...”
“은폐루트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아프리카 해적에게 잡혀 있을 수도 있겠죠. 저희도 열심히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예. 그래도 은폐루트는 도팀장님이 따로 만들어 주세요. 토끼는 굴을 여러 개 파잖아요.”
“예. 새로운 루트를 만들겠습니다. 은밀하게.”
“부탁해요.”
39세 도윤정이 경호인력 2만명의 수장이 되었다.
- 작가의말
힘든 챕터네요
불쾌하실거 아니까 조절하기가 힘드네요
쓰고지우고붙여넣고하다보면 글전개도 이상해지고... 비축분똥망 ㅜㅜ
4챕터가 끝난게 아니라는게 더 슬프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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