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사람은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3
세월호.
오래 전 침몰한 세월호 사건을 봤을 때 솔직히 정치적 공세는 관심 없었고, 대신 안내방송에 극도로 화가 났다.
배가 기울어진 순간 선장은 이렇게 생각했겠지.
‘좆됐다.’
일단은 어떻게든 균형을 잡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수습후의 책임 생각이 났겠지.
‘균형만 잡으면 아무문제도 없다. 그런데 승객이 다치면 내 책임이고 실수가 알려진다. 선실에 안전하게 대기하게 만들자.’
모두 선실에 들어가 기다리게 안내방송을 했다.
이게 그 순간 책임자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기울어진 배가 점점 더 누우며 침몰이 확정된 순간에는.
‘탈출해야 한다.’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선실의 승객들은?
‘그들이 다 뛰어나오면 길이 막혀 나까지 죽을 수 있으니 가만히 있게 하자.’
이게 선장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천사가 될 수 있고, 악마가 될 수 있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탈출하라는 안내방송 없이 자기들만 배를 빠져나왔다.
그리하여 여객선의 승객들은 안내방송을 성실히 따라 선실에 갇힌 채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개인에게 최선의 선택은 때때로 수천 수만 명을 죽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매순간 각자 최선의 선택을 한다.
지금 공산당처럼.
나부터 살자.
내가 살고 내 가족을 살리고, 내 친척과 내 친구들을 살리고, 그 후에 알려서 책임 문제를 벗자.
이랬겠지.
사이렌을 울리면 도시가 마비되니 사태파악을 위해서라면서 잠시 늦추고 내가 가진 패물을 차에 싣고 전부 옮긴 후 다시 집으로 가 못 가져온 귀중품을 전부 실어 뻥 뚫린 도로로 옮긴 후 그 다음에 사이렌을 울리자.
이랬겠지.
인간이니까.
이들이 딱히 간악한 것도 아니다.
자기 최대이득이 먼저인 보편적인 사람이다.
천만명이 TV로 날 지켜보고 있는데 허리깊이 강물에 아이가 허우적대고 있다면?
모든 이가 그 아이를 구하려 뛰어들 것이다.
세월호 선장조차 뛰어들겠지.
이게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이니까.
반면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선실의 사람들이 자신의 탈출을 막지 않게 하기 위해 상황을 전달하지 않는 것은?
모두가 그러진 않아도 꽤 많은 이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당으로부터 소식을 받은 각 지역의 공산당은 이런 기분으로 자기들 먼저 도주하는 걸 택한 거겠지.
이해한다.
보편적 행동원리.
다만.
화가 난다.
게다가 나 또한 같다.
사건원인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욕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난다.
“으아아아아아!”
동이 터올랐을 때 징저우의 제방이 넘쳤다.
그제야 도시에 사이렌이 울리고 탈출하라고 알려왔다.
핏발 선 눈으로 CCTV를 노려봤다.
누런 흙탕물이 도로에 퍼지고 차에 탔다가 차를 버린 사람들이 달린다.
달리는 그들의 등을 불어나는 강물이 덮쳤다.
1층 판자집은 순식간에 휩쓸리고, 나무기둥과 벽돌과 쓰레기가 누런 강물과 함께 사람을 때렸다.
집 째로 가라앉고. 집과 함께 떠내려가고.
이창에 이어 징저우도 예보 없이 휩쓸렸다.
“오빠... 좀 자.”
“아니. 잠 안 와.”
날이 밝았고, 강물은 계속 내려간다.
거대한 호수 둥탕호에 도착한 후에야 물살이 조금 느려졌다.
평소 수위였다면 몇 시간 버텨줬겠지만, 지금은 만수위다.
한 잔의 커피만으로 호수가 넘친다.
둥탕호 주변 수천만의 인구가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물살이 느려서 어선에 타 탈출하는 이가 많았다.
그렇다고 죽은 이가 없는 건 아니다.
우한의 제방은 열 시간 만에 넘쳤다.
해뜰 무렵부터 사이렌이 울린 우한은 아비귀환이었다.
도로엔 차가 가득하고,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짐을 포기하고 달려간 이는 살고, 도로가 열리길 기다리는 이는 죽는다.
오토바이에 위태로울 정도로 가재도구를 싣고 그 틈새를 빠져나가다 사고가 나서 또 도로를 마비시킨다.
이불과 옷가지를 산더미처럼 짊어진 사람들이 고지대로, 야산으로 탈출한다.
마비된 도시를 느릿느릿 탈출하던 사람들이 물에 젖는다.
이창만큼 미친 물쌀은 아니지만 충분히 빠르고 강하다.
10분당 1m씩 차올라 거진 10m 이상 물에 잠겼다.
도시의 1/10이 물에 잠겼다.
10시간이면 탈출에 충분하리라 믿을 수 있지만, 도시민 전원이 걸어서 이동하기엔 너무도 촉박한 시간이다.
마비된 도로에서 온갖 이기주의가 난무하고, 가재도구를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사람들이 끝내 탈출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도 상점을 터는 도둑들은 상점과 함께 수몰되었다.
한번 발목이 물에 잠기면 보이는 모든 곳이 동시에 물에 잠긴다.
그리고 강물은 계속 불어난다.
쓰레기와 벽돌이 흐르는 강물은 인간의 몸을 강하게 타격하고 쉽사리 마비시킨다.
죽는다.
사람이 죽는다.
인명피해를 추산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인수형 위그선은?”
쉰 목소리로 물어봤다.
-공해 상에 모여서 대기하고 있어. 협의중이야. 배는 받되 조종사는 들어올 수 없대. 무기가 될 수 있으니.
채인수도 목이 쉰 걸 보면 밤새 전화하며 일했겠지.
“빌려줘요.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줘요. 최대한 사람만 살려요. 1분이라도 빨리 가면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 테니.”
-그런데 조종법은?
맥이 탁 풀린다.
CCTV 여기저기 물에 둥둥 뜬 사람이 보인다.
등만 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나무토막이나 스티로폴을 잡고 떠내려가고 있다.
저런 이들을 살릴 수 있다.
위그선이야말로 이런 구조에 최적이다.
빨리 가면 저런 이들을.
살릴 수 있는데.
“시발! 개새끼들! 사람이 죽는데!”
체면이 그렇게 중요하냐.
“인수형. 모든 증거, 모든 대처 모아놔요. 우리 제의를 거절한 것도.”
-어. 그래.
“중국의 상황 알리고 모든 기업에 요청해요. 3분요리든 전투식량이든, 고체연료든, 침낭, 이불이든 몽땅 최대한 생산해서 중국에 보내자고. 24시간 생산하라고 해요. 우리가 전부 사서 보낼 거니까 최대한 만들라고. 물에 잠긴 채 수십일 버텨야 할 거에요. 예약 물량 급한 거 아니면 구호물자로 돌려달라고 해요.”
-그래 최대한. 해운 예약사에도 말해서 중국으로 돌려달라고 양해를 받고 있다. 네 착한 성정 아니까 다들 노력하고 있어.
“네.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자기혐오가 들끓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 탓이다.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건 평생 묻고 가야 한다.
이기적이지만 나도 쓰레기니까, 내게 최선의 선택을 할 거다.
나와 상관없이 중공도 쓰레기다.
세월호 안내방송처럼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쓰레기다.
그 벌을 준다.
이기적이네.
너무 이기적이다.
내 죄는 구조활동과 기부로 갚고, 미래펀드는 알아서 돈을 벌고 공산당은 벌을 받고.
“우웨에에에엑.”
토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위장에서 올라온다.
“오빠!”
“웨에엑.”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침과 위액과 썩는 냄새만 난다.
“웨엑!”
“오빠! 당직실! 주치의님 좀. 빨리요!”
“우웨에에에엑!”
끔찍하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끔찍하다.
세월호 선장도 나와 같을까.
골든타임에 탈출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면 탈출하지 못하고 함께 죽을까봐 탈출하라는 안내방송을 하지 않은 세월호의 선원들은......
그 순간 자기 목숨만 보면 최선의 선택을 한 최악의 인물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
어쩔 수 없었다며 술을 먹을까?
잊었을까?
현명했다며 낄낄대고 있을까?
나도 그들처럼 될까?
우웨에에에엑!
오빠~
예하의 목소리가 아스라히 멀어진다.
“깼네.”
엄마 목소리다.
엄마가 내 손을 문지르고 있다.
눈을 뜨니 엄마, 아빠가 보이고 예하가 발을 주무르고 있다.
가장 먼저 한 말은.
“...무ㄹ.”
“오빠. 여기. 여기.”
물 한 모금 마시니 메말라 달라붙은 목이 트인다.
“어디?”
“본관. 비상용 병실.”
이런데도 있었나.
한 번도 안 와봤네.
“피로래. 잠깐 쉬면 괜찮을 거래.”
예하가 애써 쾌활하게 말했다.
“상황은?”
“일단 쉬어. 잊고. 오빠가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몸을 일으키는데 엄마와 예하가 동시에 어깨를 눕힌다.
몸 여기저기에 수액줄이 달려있는 게 거슬린다.
“움직이지 않을게. 뉴스 볼 수 있게 해줘.”
비서실이 움직이는 동안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배 위에 노트북이 올라왔다.
오후 5시.
붕괴 후 14시간.
일곱 시간 가까이 의식을 잃었다.
그 사이 전 세계 모든 뉴스가 싼샤댐 붕괴소식으로 채워졌다.
붕괴된 싼샤댐은 거친 물쌀에 계속 금이 가고 조금씩 깎여나가 유출부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워낙 거대한 댐이기에 아직도 물을 쏟아내고 있다.
내일까지 쏟아내야 멈출 거라 한다.
그 말은 내일까지 수위가 계속 오를 거란 소리.
[우한시 평균 4m 수몰. 구조요자 300만 명.]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고. 사망자 최대 1억 명에 이재민만 6억 명 예측]
중국인구가 많다 해도 6억 명이 가능할까 싶지만, 기사에 딸린 항공사진을 보니 이해가 간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축복받은 평야를 가진 나라다.
아르헨 팜파스만큼이나 넓고 평평한 평야에서 14억 인구를 먹여 살릴 농작물을 생산한다.
징저우와 우한주변에도 거대한 평야가 있는데 거진 남한 넓이의 평야가 쌀을 생산한다.
그 넓은 평야가 전부 잠겼다.
어제 찍은 위성사진은 땅인데 오늘 찍은 위성사진은 전체가 흙탕물이다.
그 넓은 땅에 사는 농부들이 전부 물에 잠겼다.
기사에 따르면 우한인근 평야 전체가 3m 깊이로 잠겼고, 앞으로 수위는 두 배 더 올라갈 거란다.
인근 야산에 피한 이는 살고, 남은 이는 지붕에서 버티다가 구조 받지 못하면 떠내려간다.
소가 둥둥 떠 있고, 돼지가 둥둥 떠 있고, 사람이 둥둥 떠 있다.
“하아......”
“오빠. 그만 봐. 몸조리부터.”
“그래. 그냥... 아니다.”
말할 수 없다.
말하면......
[난징 홍수까지 7시간. 상하이가 물에 잠길 때까지 13시간.]
기사에 붙은 사진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다.
도로를 가득 메우고 멈춰선 차량.
곳곳에서 사고가 나고 무리하게 쌓은 짐이 무너져 차량통행을 막는다.
그 옆으로 달구지에 짐을 쌓은 이들이 밀며 지나가고, 6.25피난민을 찍은 것 같은 사진이 줄을 잇는다.
[중국. 10년 후퇴할 것]
[중국의 재산피해는 5경 9000조원 추산]
[마비된 중국, 한국이 입을 피해는?]
[중국의 테크기업이 몰린 상하이. 7m까지 수몰된다.]
알고도 막을 수 없는 게 있다.
상하이가 물에 잠기는 건 확정이고 인간은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은 가장 보편적인 선택을 했다.
[싼샤댐 붕괴의 배후는 위구르 테러단체. 석기시대로 돌려보낼 것]
기사를 보는 순간 손을 멈췄다.
세상은 이렇다.
모두가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
비록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이 전체적으로 최선은 아닐지라도.
미국은 이라크에서 끝내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라크 타격은 미국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여러모로 이득이 가장 많은 선택.
모든 인간, 모든 기업, 모든 단체, 모든 국가는 각자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
중국은 인민의 분노를 타인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하루가 되기도 전에 배후를 발표했다.
증거 없이.
맥이 탁 풀린다.
저 기사를 본 순간 안도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만 든다.
채인수에게 지휘를 맡겼고, 방향만 설정해준 후 빠졌다.
- 작가의말
세월호 사건을 라이브로 봤던 기억으로 썼고요
정치적 의도 없고요 동인서인 둘다 싫고요
정치충이 오셔서 지랄 하시면... 둘아 서로 죽이세요
앗 무두키드님 후원감사합니다 후원공지글이 따로 없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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