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별이 빛나는 밤에
한민선이 말했다.
“그럼요. 영광입니다. 같이 가요. 정미야 너도 스케줄 없다고 했지?”
“예... 네... 그런데 폐가 되는 건 아닌지.”
“글쎄. 내가 아는 동욱이라면 좋아할 테지만. 바꼈으려나.”
말이 길어진다.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같이 먹자. 그런데 술집으로 가면 전세내야 하거든.”
“우와. 전세! 왜? 사람 많으면 시끄럽고 짜증나서?”
“아니. 안전 때문에. 세상엔 생각보다 미친 사람이 많거든. 밖에서 먹으면 아예 룸쌀롱 같은데 밖에 못가.”
일반 식당에 가면 알아보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대화를 촬영하는 사람 때문에 제대로 대화하지 못한다.
수십 명의 경호원이 둘러싸고 있으니 주위에 민폐를 끼치고, 경호원들도 바싹 긴장해 있어야 하니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시내에서 먹어야 할 땐 룸식 식당이나 룸살롱을 잡고 먹는다.
여자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식사를 하러 룸으로 가는 것이다.
“그냥 집에서 먹자. 초대할게.”
“어? 너희 집? 아직 망월사 앞이야?”
추억의 망월사네.
“아니. 도봉동. 경호팀장님. 여기 두 명도 같이 태워줘요.”
“예.”
아니 무슨 아직도 도봉동에 살아, 돈 벌었으면서, 어머 우리집 짱 좋아요, 우리집? 동거해요? 꺄아아아 이거 비밀인데.
하며 수다 떠는 여자 3인방이 앞서 걸어갔다.
“동욱아. 우린 다른 차에 타자.”
채인수가 말했다.
맞네.
이 형도 있었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후에 퇴근을 같이 하자고 한 건 할 말이 있다는 것일 텐데 차에서 말하려나보다.
예하에게 말하고 채인수의 차에 탔다.
“마영훈하고 길훈재 기억나?”
느릿하게 움직이는 대형 밴에서 채인수가 말했다.
“전혀요. 우리 회사 사람이예요?”
“하지혜 동영상에 목소리만 나온 놈들. 조승학 친구들.”
“아...... 그놈들 아직 감옥 안 갔어요?”
치우라고 한 게 구정 때니까 반년 넘었는데.
“재판이 금방 끝나는 건 아니니까. 아직 불구속 수사 중이야. 도주할까봐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 그놈들 죄를 포함해서 그놈 아비들 회사도 아작내고 있고. 1년 정도 더 때리면 완전 도산 할 거야.”
“네. 그런데요?”
“조승학을 넘겨주겠대. 자기들 빼주면 조용히 조승학을 넘기겠대.”
조승학.
킬더조승학.
“그놈 완전 미쳤다고 했죠? 지금은 정신이 돌아왔대요?”
“아니 몰라. 위치도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어.”
후우.
돈을 아무리 많이 써도 안 되는 게 있다.
사람을 찾거나 정보를 조사할 때 이런 것도 가능해? 하는 게 있고, 이게 안 돼? 하는 게 있다.
경찰에 잡힌 조승학이 지문이나 혈액으로 본인확인 되지 않은 것처럼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작정하고 사람이 숨었을 때 핸드폰이나 카드내역 등의 흔적이 없는 사람을 찾는 건 짚풀속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그놈들끼리 대화를 전할 때 미래메신저 비밀메세지를 이용할 테니 그건 우리조차도 들여다볼 수 없다.
조승학.
처음 회귀했을 땐 그놈 때문에 회귀한 줄 알았다.
그놈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에 이를 악 물고 돈을 모았다.
예하를 구하면서, 백제그룹을 들여다보면서 화를 키웠고.
그런데 이제는?
진짜 하잘것없다.
세계의 정부들을 협박하고 구글과 협상하다가 이런 소리를 들으니 너무 티끌 같다.
“조승학. 하찮은 놈.”
한참 만에 입을 여니 채인수가 내 얼굴을 유심히 본다.
“그 따위 놈. 많겠죠. 세상엔 좋은 사람이 많고, 개새끼도 많겠죠. 미래 메신저의 비밀 기능은 그런 새끼들을 공개하라고 만든 거예요. 보이는 족족 밝히고 공론화 시켜서 잡아 처넣어요. 조승학은 그런 놈들 중 하나예요. 고작.”
이거면 됐다.
굳이 미친놈 수색해서 뭐해.
“잘 생각했다. 그래. 미래 커뮤니티가 그런 용도지.”
비밀 없는 공간. 울타리 없는 공간.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만든 신상공개 커뮤니티가 여러 개 있다.
거기엔 수많은 범죄자의 얼굴과 직업, 사는 곳 등이 적혀있다.
국회의원들의 범죄이력을 모아놓은 커뮤니티도 있고, 각 지방정부와 건설사의 유착을 폭로하는 장도 열려있다.
한국 정부는 우리보고 해당 커뮤니티를 지우라고 하는데 외국에서 만든 걸 지울 의무는 없다.
한국 정부의 지시를 따른다면 15억 이슬람의 지시를 따라 히잡쓰지 않은 모든 여자의 영상을 지워야 형평성이 맞게 된다.
절대 따를 수 없지.
한국은 범죄자를 보호하지만, 미래메신저에 범죄자의 인권은 없다.
미래메신저는 국가의 울타리너머 대기권에 존재한다.
“조승학은 튀어나오면 경찰에 넘겨요. 죗값 받게 하고... 그러다 혹시 정신이 돌아오면... 그때 조지죠.”
“알았다. 잘 생각했어.”
그 놈 조지려고 변호사까지 붙이고 정신병원으로 빼기까지 했는데 거참.
너무 하잘 것 없는 놈한테 정신을 쓴 게 아깝다.
“동생 회사는 잘 되요?”
“동생? 아아. 열세 개 째 폭로했어. 한국 4개 기업, 중국 9개 기업. 미래 커뮤니티 덕에 증거자료 모으기가 백배 쉬워졌어.”
“잘 하고 있네요. 수익은?”
“지난 분기까지 9000억 정도 벌었다더라.”
“잘 버네요. 좋네요.”
기업의 비리를 파내서 폭로하고, 미리 넣어둔 공매도로 수익을 얻는다.
주가 폭락으로 피해본 이들은 우릴 욕하지만.
이게 우리의 잘못일까?
아니면 죄 지은 기업의 잘못일까?
공매도하지 않고 폭로만 했다면 우리 수익은 없겠지만, 주가는 똑같이 떨어졌겠지.
그러면 사람들은 폭로한 우릴 욕할까? 죄지은 기업을 욕할까?
매우매우 놀랍게도 주가로 피해본 사람들은 폭로한 우리를 욕한다.
우리가 욕하지 않았다면 주가가 그대로고 자신의 피해는 없었을 테니까.
이익을 위해 기업의 부정부패를 눈 감는 것.
이것이 금융의 본질이다.
“더 조져요. 열배까지 늘려도 되겠네. 자금은 충분하니까 조져요.”
“그래. 뭔가 다크나이트가 된 것 같고. 보고서 보니까 재밌더라.”
죄지은 기업이 죗값을 치른다.
그 과정에서 해외에 설립한 펀드로 공매도 수익을 거둔다.
돈도 벌고, 죄지은 자를 단죄하고.
이거야말로 공매도의 선한 영향력이다.
세상에 우리 같은 펀드가 100배 많아져야 한다.
기업이 공매도에 공격받을 죄를 절대 짓지 않도록 강제하는, 세상을 밝게 만드는 힘.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조승학이 참 하잘것없어. 그치?”
채인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됐어요. 포기했어요. 흥도 안 나고. 그딴 새끼. 평생 감시하면서 정신 차리기만 기다릴 거야.”
“그래. 그거면 됐지.”
말하는 사이에 무수골에 도착했다.
“저녁에 같이 바베큐?”
“네 대학 친구들? 됐다. 미팅 있어.”
“수고해요.”
“어.”
본관에 내려 각자 헤어졌다.
비서에게 물으니 여자 셋이 정원을 산책하며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한다.
...... 전 여친과 현 여친의 대담.
불안하다.
옷을 갈아입고, 정원의 연못으로 갔다.
연못엔 팔뚝만한 자치 20여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생긴 게... 연어 같네. 저거 하나에 2000만원이라니......
아직 산란은 하지 않았다.
인공부화에 성공해야 진짜 양식 성공인데.
연못 앞엔 정자가 있다.
정자 주위로 벌레 쫒는 기계 10여개를 가져왔고, 찬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를 설치하고, 바베큐 통에 숯을 채워 가져왔다.
북미요리 전문가인 오늘의 요리사 아저씨가 카트를 끌고 올 때 저 쪽에서 여자들이 왔다.
“캠핑장 온 거 같다.”
“꽃으로 가득한 정원. 어마 연못 예뻐요.”
“마당에서 바베큐라니. 꿈만 같아. 어라? 동욱이 왔다.”
한민선씨. 쾌활하구나.
“야야. 너 진짜 성공했구나.”
“그걸 지금 느꼈다는 게 굉장하네.”
“뭐랄까. 이런 집에서 산다니. 집이 완전 운동장이더라. 고양이는 안 키워? 고양이 천 마리 키워도 되겠는데.”
“...... 안 키워.”
생각해보니 예전에 고양이 키우자고 했었지. 회룡에서 잠깐 동거할 때.
지금 그 얘기하면 안 될 것 같고.
정자 테이블에 반찬들이 차려지고, 아이스박스에 술과 음료가 채워져 테이블 옆에 놓여졌다.
한쪽에서 요리사 아저씨가 나에게 고기를 구울까 물었다.
“아앗. 노노노~ 저희가 구울게요.”
“맞아요. 저희가 할게요.”
한민선과 차정미가 동시에 일어섰다.
대접받기 익숙하지 않고 부담스러워 하는 마음 이해한다.
저분들이 일주일에 하루씩 일하면서 월 1억 받고, 거의 라면만 끓이기에 지금 얼마나 요리하고 싶어 하는 지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저희가 할게요. 본관에 가서 쉬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 드릴게요.”
“어려운 요리가 있습니다. 그것들만 하고 빠지겠습니다.”
“예. 그래 주세요.”
커다란 게와 랍스타가 먼저 불 위로 올려졌다.
익히는 중간에 등짝을 열고 치즈와 버터를 넣고, 칼로 쏴쏴쏴 해서 다리를 먹기 좋게 해체해 테이블로 옮겨줬다.
한쪽의 약한 열위에 새끼돼지 등갈비가 올라가고 다른 쪽엔 파프리카와 양파를 굽고 토치로 추가 파이어하고.
멋있다.
테이블로 올라오는 다채로운 구이를 한 점씩 먹고 술잔을 부딪쳤다.
복잡한 요리를 다 했는지 요리사 아저씨가 내 쪽을 봤다.
그냥 계속하라고 눈짓했는데, 바싹 긴장하고 있던 차정미가 벌떡 일어섰다.
“죄송해요. 너무 맛있어서. 저희가 할게요. 정말 맛있었어요.”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이제부터 맛은 포기한다.
하긴 내가 언제부터 맛을 즐겼다고.
탄고기가 잘 익은 고기나 배 채우는 건 똑같지.
차정미는 나와 인연이 거의 없다.
학교에서 우연히 한 번 만난 게 다다.
회귀 전엔 인연이 길었지만 그건 없던 일이고.
그러니 본인이 안절부절못하는 거겠지.
차정미가 구우러 가자 예하도 벌떡 일어섰다.
“어린 여자 둘이 구우러 갔고, 20대 중반만 남았네. 아악. 20대 중반이라니.”
한민선이 자기도 일어나야 하나 하다가 중얼거렸다.
“20대 중반이면 아직 어리지.”
40대까지 살아봤는데, 20대 중반은 아가야 아가.
“예하씨, 아니 말 놓기로 했지. 예하.. 예쁘더라.”
“어. 성격은 더 좋아.”
얼굴보고 혹했지만, 사귀게 된 이유는 성격 때문이다.
성격이 안 좋았다면 미투가 무서워서 손도 대지 않았을 거다.
“칫. 난 별로였냐?”
“너도 좋았지. 내가 여자 보는 눈이 좀 좋아.”
“후후. 얘들아~ 짠하자~ 마시면서 하자.”
“네에~”
다들 와서 한잔씩 마시고 다시 고기 뒤집으러.
“가지 말고 불을 여기로 옮기자.”
“...... 천잰데?”
커다란 숯 통은 끌고 다닐 수 있게 바퀴가 달려 있었다.
드럼통 반쪽 잘라 만든 숯통과 비교하지 마라.
불판을 옆에 두니 앉아서 마시면서 구울 수 있었다.
“후후후. 넌 안 변했네.”
한민선이 살짝 취한 듯 말했다.
“사람이 쉽게 변하냐.”
“아니. 그래도. 갑자기 군대갔다오고 연락 끊더니 어느 날 갑자기 세계 부자 1위래. 믿기지도 않고, 신기하기도 하더라고.”
“그런가.”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하겠다.
“신기하네. 세계 최고의 부자라고 하도 신문에 나오니 엄청 대단해 보였는데. 그냥 옛날 그대로네.”
“그냥 돈이 많을 뿐이지.”
“에에이. 그건 아니야. 짠.”
짠.
“사실 아까도 부를까 고민하다가 소리친 거였어. 고맙다고 해야 할 거 같은데 연락이 안 되니.”
“비서님이 전해주긴 했어.”
모든 통화는 비서가 받아서 정리해준다.
“그래도 직접 인사해야지. 그래서 어쩌다보니 내가 술 산다고 했네. 헤헤헤. 나도 내뱉어 놓고 웃겼어. 맞다. 자랑해야지. 세계 최고의 부자에게 술 사준 여자라고. 대화명도 바꾸고. 헤헤.”
“오늘 사면 되겠네.”
“여기?”
한민선이 몸을 굳히고 테이블을 둘러봤다.
불 위엔 두꺼운 토마호크 스테이크가 지글거리고 있고, 테이블엔 대게 비슷한 거랑 랍스타들이 껍데기만 남아있다.
“냉동 아니다. 비싼 고기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데굴데굴꿀꿀멍멍.”
“풉.”
“아니다. 술 산다고 했지. 술만 사도될까요?”
“술도 비쌀 텐데.”
각종 칵테일과 고급맥주와 양주들이 있다.
“소주먹자! 소주! 2만원이면 열두 병으로 되지? 이제부터 소주 통일.”
“됐어. 그냥 마셔.”
“예이.”
또 짠.
- 작가의말
조승학의 처분에 관해 여러분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지만
제가 조승학을 설계할때 정한 결말대로 가려고 해요.... 이미 여러모로 공식에서 벗어난 소설이잖아요... 봐조요 함번만 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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