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진실의 문3
오랜만에 일찍 접속을 종료해 예하와 함께 저녁을 준비했다.
부엌에 나란히 앉아 밀푀유나베를 켜켜이 쌓으며 게임 속 이야기를 했다.
“빙빙 언니 봤다고? 잘 지내?”
“생기 있어 보이더라. 전보다 좀 더 살쪘고. 전엔 매우 마른 축이었는데 이젠 약간 마른 축.”
“그게 뭐야. 나만 뚱뚱해 진짜.”
루비도 말랐고, 핀빙빙도 말랐고.
상처가 깊으니 에너지가 빠져나가 살 찔 수 없나보다.
중국공산당의 반격과 공들이던 위령비가 무너진 걸 듣자 예하가 흥분했다.
“못됐다. 진짜. 왜 그런데? 왜 애써 만든 걸 파괴해? 진짜 나빴다.”
예하가 말하는 투가 마치 놀이터에 만든 모래성을 발로 차는 못 된 아이를 미워하는 듯 하다.
이건 많은 정치적 의미와 재산, 생명이 달린 일인데.
여자아이 같아서.
귀엽다.
게임 속에서 핀빙빙도 죽고 나도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예하가 들고 있던 배춧잎을 흔들며 화냈다.
저걸로 때리면 배추싸대기인가.
“나도 하자. 나도 할래. 복수해줄게.”
“예하야. 넌 네가 잘하는 것을.”
“작곡 선생님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좋다고 했어.”
“어... 그래.”
예하와 함께 접속했다.
내가 가진 장비들을 예하에게 주고, 뽑기 와중에 나온 두 번째로 좋은 아이템들을 착용했다.
일부는 S급, 일부는 SS급.
예하는 주로 들어가는 세컨드 어스와 다른 분위기에 긴장했는지 경직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전투하는 게 처음인지라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게임이야. 게임. 죽어도 부활해. 그냥 상대 짜증나게 하는 게 전부야.”
가상의 공간이다.
현실과 다른 세계.
긴장할 필요도 몰입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몰입이 심해져 정체가 들키는 게 문제가 된다.
“으, 응.”
함께 퀘스트 게시판으로 갔다.
<정저우 수복전. 성과에 따른 미래블록 보상>
역시 있구나.
정주시를 뺏긴 민주화세력 측은 즉각 수복 퀘스트를 발행했다.
전 세계 수백 개 단체가 돈을 모아 퀘스트 비용을 낸다.
결국 내 돈이 되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다 내꺼.
......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나쁜놈 같잖아. 젠장. 그럴 의도는 맞긴 한데.
예하와 함께 파티를 맺고 퀘스트를 승낙했다.
몸이 정주시 외각으로 이동되었다.
자동 배속된 소속 군단은 8군단.
각 군단에는 허용범위가 설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싸우면 된다.
공산당 스파이의 분탕질을 막기 위해 소속 군단을 선택할 수 없고, 군단장의 허용범위 내에서만 행동해야 하니 치명적인 배신을 할 수 없다.
내부 정보야 수많은 스파이들이 실시간으로 전송하기에 애초에 막는 걸 포기했고.
“가자, 예하야.”
“응.”
SSS급 활을 든 예하가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SS급 초대형 방패를 든 나는 슬슬 따라다니며 구경이나 할 생각이다.
“와아아!”
“애쏠! 마다빠카!”
“ㅃ#$%!”
시끄러운 전장에 도착하니 마법과 창칼, 화살이 난무한다.
거대한 탱크가 끼기긱 다가오다가 약점인 마법 한방에 침묵하고 하늘에서 불덩이를 날리던 와이번은 약점인 화살 한방에 추락한다.
데이터 전송 속도 때문에 약간씩 반응이 늦지만, 적응하고 나면 너무도 생생하고 화려한 전장이 느껴진다.
화려한 전장에 도착한 예하가 얼빠진 듯 멈춰 섰다.
“그만가도 돼. 이쯤에서 활을 날려.”
“어? 어.”
활시위를 당긴 예하가 저 멀리 적의 머리를 겨낭하고 시위를 놨다.
“야! 아. 그러면.”
팀킬하셨군요.
아군 뒤통수에 활이 박혔다.
“어떡해. 공적 마이너스 50이래.”
“열심히 싸우셔야겠네. 하늘을 보고 당겨. 아니 너무 높아. 40도. 40도 각으로.”
“꺅!”
예하를 가르치다가 날아오는 무작위 마법이나 화살을 방패로 막았다.
“내가 막을 게. 넌 공격만 해.”
“오. 멋져. 완전 듬직해.”
“반하는 건 밤에 하고 일단 싸우셈.”
“넵.”
실제 당기는 게 아니라 컨트롤러를 누르는 것이니 예하도 금방 적응했다.
2초에 한발씩 쏘고, 쏘는 족족 한 명씩 잡았다.
공산당의 숫자가 적은지 전선이 정주시쪽으로 전진하고 있다.
적을 해치우며 쭉쭉 나아갔다.
“오빠.”
활을 쏘면서 예하가 말했다.
“응.”
“그런데 이렇게 싸워봤자 금방 부활하잖아.”
“10분 걸리지.”
“그럼 의미 없는 거 아냐? 정주를 탈환해도 아까처럼 기습당해서 뺏기면 끝이고.”
“맞아.”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봤다.
공산당에서 모든 병력을 정주시에 일거에 투입해 위령비를 무너뜨렸다는 소식.
상대는 국가이기에 언제든 이럴 수 있고, 그런 기습을 당하면 질 수밖에 없다.
“그럼 무의미한 거 아닐까?”
“글쎄. 이 자체가 재미있을 수도 있지.”
전투가 재밌다.
아마 평원에 모인 이들의 절반은 생각없이 싸우려고 온 것일 것이다.
싸우는 게 재밌는데 보상까지 준다.
그래서 온 이들이 대부분.
“그래도... 핀빙빙 언니는 전 재산을 퀘스트 비용으로 냈다고 하던데.”
“바보 같아?”
“아니... 그... 안타까워서.”
“이 자체가 의미 있는 거야.”
“응?”
예하와 함께 걸어가며 화살을 날리며 대화했다.
“중국 공산당의 악행을 알리기 위해서야. 그리고 이런 전쟁을 벌이고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일. 이 자체가 화제가 되고, 기사화 되고, 입소문을 타고, 재미를 느낀 이들이 합류할수록 공산당의 악행에 대해 알려지게 되지.”
“아.”
쉭. 퍽!
날아오는 돌덩이를 방패로 막고 말했다.
“공산당은 이런 일 자체가 없길 바랬지. 그래서 처음엔 무시했잖아. 그런데 게임 속에 자기들 죄악을 박제하고 홍보하니 없애기 위해 달려들 수밖에 없었고. 무의미하게 돈을 쓰면서 성과 없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게 아니야. 공산당의 죄를 알리는 작업이야. 현실이었다면 한 번 죽으면 끝이지만, 여기서는 무한히 부활할 수 있잖아.”
“아. 그래서 싸우는 거구나. 도시를 뺏긴 게 지는 게 아니라, 게임 속 전쟁을 그만두는 게 지는 거네.”
“그렇지. 이대로 정주를 탈환하고 다시 위령비를 세우고, 또 뺏기고, 그러다가 베이징을 빼앗고 또 뺏기고, 이걸 반복할수록 공산당의 죄가 알려지는 거지.”
“응. 그래. 이해했으. 결국 열심히 싸우면 되는 거네?”
“복수도 뭐도 필요 없어. 그냥 즐겨.”
“어... 응.”
활로 적을 죽이는 희열은 없나보다.
한참 활을 쏘고 있는데 예하가 소리쳤다.
“언니다!. 빙빙언니!”
야.
우리 은신상태야.
“빙빙~!”
“오오오 여신!”
“주력이 왔다!”
다행히 우리 외에도 소리친 이들이 많았다.
저 멀리 핀빙빙과 친위대가 등장했다.
최강급 장비를 갖춘 친위대가 전열 최선두에 등장해 적을 섬멸하고 그 뒤에서 빙빙이 연설을 했다.
“공산당 여러분. 중국을 위해 무기를 내려주세요. 우리는 자유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공산당은 여러분의 가족을 죽입니다.”
핀빙빙의 말을 들으며 정주성 성벽에 도달했다.
성벽을 중심으로 격렬한 공성정이 펼쳐졌다.
성벽 위의 적이 죽고, 부활한 적이 달려와 전열과 부딪친다.
“공산당은 우리를 생체실험 했습니다. 자기 욕심에 우리의 재산을 빼앗아 나눠가졌고, 항의하자 죽였습니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몰살시켰고, 수많은 피해자를 기억 속에서 지웠습니다. 공산당은 책임지지 않기 위해 죽음 자체를 없던 일로 묻어버렸습니다.”
빙빙의 연설을 막으려 공산당의 주력이 달려들었다.
뉴스에 따르면 핀빙빙을 죽일 때마다 상금을 받는다고 한다.
성벽을 끼고 전선이 대치되자 제자리에서 화살만 날리던 예하가 말했다.
“저 사람들을 왜 저럴까?”
“응?”
“공산당. 결국 시 아저씨를 위해 충성하는 거잖아. 잘못된 게 뻔히 보이는데도. 세뇌된 걸까?”
“세뇌... 참 편한 말이네.”
“세뇌가 아니야?”
“글쎄. 세뇌라면 세뇌라고 할 수도 있겠지......”
“에.. 뭐야?”
“사람은 진실을 보지 않으니까. 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무슨 말이야?”
예하가 활을 쏘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손에 화살을 쥐어주면서 말했다.
“세상엔 이상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 일본의 마루타 부대 알아?”
“응.”
“알면 됐고. 그럼 미국의 터스키기 실험은 알아?”
“어... 몰라.”
“미국의 터스키기라는 마을에서 매독에 대한 생체실험을 했어. 1932년부터 73년까지 40년간. 미국 정부의 세금을 받아 보건국에서 의사와 일꾼을 파견해 실험을 했고, 42년에 매독 치료제인 페니실린이 발명되었지만 페니실린으로 치료하지 않고, 고의로 매독에 감염시키면서까지 실험을 지속했어.”
“거... 거짓말.”
“사실이야. 만약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지금도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어.”
“에이... 말도 안 돼.”
“사실임. 활 쏘는 거 멈추지 말고.”
“네......”
예하는 끝까지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뭐, 그때는 흑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던 시절이니까. 지금도 그런 거 같지만. 어쨌든. 일본의 마루타 부대하고 미국의 터스키기하고 뭐가 더 나쁠까?”
“마루타.”
“잔혹한 건 일본이 심했지. 그렇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자. 일본은 미친짓을 했지만 절대 비밀을 유지했고, 타국 포로나 타국 시민을 몰래 납치해서 실험했어. 지들이 미친 짓을 했다는 걸 안 거야. 미국은 미국인의 세금을 모아 자국민을 가져다가 실험했고, 매년 보고서를 정부에 올렸고, 파견된 의사와 일꾼들 또한 실험을 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어. 즉, 대놓고 자국민을 생체실험 해서 죽였다는 거야.”
“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신기하지?”
“아니... 그보다... 거짓말 같은데? 그런 일이 있으면 바로 알려지고 중지되는 거 아니야?”
“실제로는 60년대에 일하던 의사가 문제제기를 했지만, 정부에서 묵살했고, 6년 후 언론에 제보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야 실험이 끝나.”
“아... 왜... 40년이나... 치료제가 있다면서 왜......”
“잘했고 잘못했고는 당장 따지지 말자. 거기서 일하던 수많은 의사와 일꾼들은 잘못 된 걸 알면서도 왜 계속 일하고, 다른 일을 하게 된 이후로도 왜 침묵했을까?”
“어...... 몰라.”
“폭로한다고 이득 될 게 없으니까.”
“그럴리가...... 사람이 그렇게 잔인할 리 없어.”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라는 것이 있었어. 혹시 알아? 활 쏘는 거 멈추지 말고.”
“지금 활 쏘는 게 중요해?”
“핀빙빙 돕고 싶다면서요?”
“어... 쏠게. 복종... 몰라.”
“불특정 사람들을 뽑아 실험을 시켰어. 학생역을 맡은 사람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을 주게 했고 전압은 15볼트에서 시작해 450까지 올라가. 틀릴 때마다 전압이 높아지는 거야. 전기충격기 버튼 옆에는 300V 이상의 전기충격을 주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어. 불특정 다수의 실험자들 중 몇 명이나 300V 이상 전기충격을 줬을까?”
“어... 당연히 0이지.”
“그런데 복종실험이잖아. 실험자가 버튼 누르기를 망설일 때마다 ‘누르시오.’ ‘죽어도 당신 책임이 없다,’ 이걸 네 번 반복해서 말했어. 네 번 연속 거절하면 실험이 종료되는 거고. 이러면 300V 이상을 몇 명이나 눌렀을까?”
“어... 10프로?”
“100%야. 심지어 최고 전압인 450V까지 누른 비율은 65%였어.”
“아......”
“이게 세상의 이치야.”
“그......”
예하가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예하를 보다가 게임 속 성벽 위에서 시진핑을 위해 싸우고 있는 공산당을 바라봤다.
“사람은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
“......”
“모든 사람이 최선의 선택을 한다면 지배자는 선택지를 줄여주면 돼. 예하 너한테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첫째를 선택하면 너와 네 가족이 죽어. 두 번째를 선택하면 네가 모르는 100명의 사람이 죽지만, 네 책임은 전혀 없어. 심지어 넌 그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도 모르고, 그냥 ‘변화 없다.’ 라고만 알게 돼. 예하 넌 어떤 선택을 할 거야?”
- 작가의말
세상의 이치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모든 사람은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
글 속에서 열 번 이상 등장한 것 같네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첫번째?
글 속의 예하는 여러분입니다. 너무 예쁘고... 똑똑하지만, 알지 못했을 뿐인, 그런 보통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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