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불법체류자2
“로더럼 사건은 아세요? 무려 16년간 영국 미성년자 1400명 이상을 파키스탄 갱단이 강간하고 성매매한 사건인데.”
“어. 들어봤다.”
“이것도 피씨가 키웠네요. 당시 지역구 정치인이 이민족 우대와 난민우호정책으로 당선된 지역이기에 피해여성이 경찰에 알려도 경찰에서 오히려 여자를 욕했다고 하더라고요. 남자 다섯이 11살 여자아이를 강간하는 현장에 경찰이 출동한 일도 있는데 거기서도 경찰은 강간당하던 여자아이를 백인의 수치, 걸레라고 욕하고 떠났다고 하더라고요. 로더럼 가난한 지역의 소녀들은 학교와 경찰과 정치인의 묵인하에 창녀의 삶을 살게 되었대요. 무려 16년간.”
“그래도 그건 극히 일부 사례지.”
“불과 5년 전 일이예요. 현대 영국에서. 독일은 고작 2년 전이고. 피씨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이라는 프레임이 쓰여질까 두려워 사건이 커진 거예요. 그리고 한국은 더 심각해요.”
“뭐가?”
“저쪽은 등록이라도 되었잖아요. 이쪽은 다 불체자예요. 추가로......”
이래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큰마음 먹고 설득하러 온 황영석이 내내 표정을 굳히고 들었다.
“한 달만 기다려 주세요. 여론이 바뀌지 않으면 그때 피씨를 따라갈게요.
정치적 올바름.
기자회견장의 모범답안.
가장 무난하고 적을 만들지 않는 답변.
꺼져.
안 무서워.
보름간 기다렸다.
인종차별을 하는 못 된 기업으로 여론이 확산되길 기다리는 시간이다.
당장 해명하면 조용히 묻힌다.
전 국민이 다 알정도로 기다렸다가 뒤집어야 효과가 크다.
느긋하게 아이슬란드 여행을 열흘간 다녀왔다.
7월 24일.
여론이 적당히 무르익고, 경찰의 태업과 그룹의 손해를 가늠할만한 시간이 지났다.
오랜만에 옥수동 노스탤지어팰리스힐 42층 집에 갔다.
예하가 첫 방송을 했던 장소.
성수동 스튜디오에 갈 수 없기에 여기로 정했다.
전담팀이 붙어 예하의 메이크업을 할 때 마지막으로 말렸다.
“예하야. 니가 하지 마. 이거 욕 많이 먹어. 영원히 박제되어 욕먹을 거야. 채인수형 시키자.”
“그래서 내가 해야 해. 또 상철오빠처럼 엉뚱한 사람이 피해 입느니 내가 할래. 내가 해야 해.”
“아니지. 그러면 차라리 내가.”
“아냐 오빠. 오빠는 오빠의 재능이 있잖아. 내 재능은 이쪽이잖아. 내가 할게. 오빠의 회사에 내가 공헌할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 후우. 너 오래오래 후회한다.”
“그래두...... 내가 해야 해. 맡겨줘.”
“그래... 힘내.”
예하를 확 안아줬다.
“화장 망가지잖아요.”
“머리도!”
“옷 구겨진 거봐. 비켜요. 시간 없어요.”
아니 이 아줌마들이.
젊은 남녀가 애틋하게 사랑할 수도 있지.
그걸 방해해.
내 신분도 알면서 참.
쫓겨났다.
크게 심호흡을 한 예하가 카메라 앞에 섰고, 중대발표가 시작되었다.
미리 공지되었기에 시작부터 10만여 명이 들어와 있었다.
“반갑습니다. 미래그룹의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나온 홍보부의 BJ제시입니다.”
예하가 아나운서톤으로 말하곤 꾸벅 인사를 했다.
댓글창엔 온갖 욕설과 예쁘다, 힘내요 등 온갖 채팅이 빛살처럼 올라갔다.
“미래그룹이 행한 모든 일은 한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한 일입니다.”
요즘은 결말을 앞에 말해야 한다더라.
“불법체류자 분들에 대한 말을 하기 전에 우선 80년대생, 90년대생의 삶부터 말씀드릴게요.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요? 몰라요. 대본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회사에서 준비한 대본이에요.”
아무것도 몰라요 포지션.
저런다고 욕을 안 먹는 건 아니지만 덜 먹긴 하겠지.
심호흡을 한 예하가 입을 열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던 80년대. 그땐 정말 좋았대요. 90년대. 아이엠에프를 맞긴 했지만, 그 전까진 최대 호황이 이어졌대요. 아이엠에프, 아이티버블 붕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3연타가 2000년대를 강타했대요. 이 세 번의 사태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의 돌진을 서서히 멈춰 세웠대요. 에...... 성장률을 수치로 보여드릴게요.”
각종 통계자료가 인터넷 창에 올라왔다.
“사실 2000년대도 나쁘지 않았대요. 그전부터 워낙 좋았고, 반도체, 조선, 건설, 철강 등 수많은 분야가 중국의 바람을 타고 성장하면서 호황이 이어졌대요. 다만 성장률이 서서히 줄었죠. 그러다 서프 사태 때부터 완전히 반전되었어요. 중국 호황이 끝나 건설 조선 해운 등이 추락했고, 화학 철강 등 각종 기초산업이 하향세에 접어들면서 기업이 하나 둘 망했어요. 10년 전부터 힘든 시간이 왔죠. 그래서 가장 고생한 건 지금 20대, 그리고 30대예요.”
-그게 불쌍한 외노자랑 무슨 상관
-인종차별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댓글은 여전히 안 좋다.
단순한 안티가 아닌 신념을 가진 반대파.
저들을 돌려세우긴 힘든데.
“80년대생의 교육열은 하늘을 뚫었고, 대학 정원수는 계속 늘어 수능응시자수와 비슷해졌어요. 모든 사람이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20대 30대는 취직이 오히려 더 힘들어졌어요. 모두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는데 서브프라임 이후 기업이 뽑는 사원수가 줄었어요. 그래서 피 튀기는 경쟁이 일어났죠.
명문대 졸업생도 취업이 힘들고, 학점이 좋아도 취업이 힘드니 자격증 경쟁이 벌어졌어요. 중고등학교 15시간씩 일하고 대학에 간 젊은이는 대학에서도 자격증을 열개씩 따기 위해 매일 밤새 공부해야 해요. 그래도 취업이 힘들어요. 기업이 뽑는 사람보다 대학에서 배출되는 학생의 수가 훨씬 많으니까요. 요즘은 대학교 5학년이 기본이라고 하더라고요. 4학년에 이력서를 뿌리고 합격하지 못하면 한 학년 더 다니며 자격증을 보강해 취업해야 한대요. 우리세대, 제 언니오빠세대... 너무 힘들어요.”
예하의 목소리엔 호소력이 있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그의 말엔 감정이 실려 있다.
예하의 간곡한 어조엔 안타까움과 아픔에 대한 공감이 잔뜩 묻어 있다.
채팅창이 점차 느려졌다.
고용된, 혹은 막무가내로 미래그룹을 미워해서 악플을 도배하는 이들조차 손가락이 느려졌다.
“단순히 취업만 힘든 게 아닙니다. 취업 후에도 힘들어요.
회사에서, 대본을 써준 분이 말하기를 경제학에선 한 가지만 알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고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간다고. 이것만 알면 모든 경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대요.
이 법칙에 따라 저희 세대는 취업 후에도 고통 받습니다. 베이비붐의 마지막 세대로써 성인이 되는 이는 많은데 서브프라임 이후로 일자리는 줄고 있어요. 공급이 많은데 수요는 줄었어요. 그래서 가격이 내려간대요. 일하려는 이가 많고, 일시키는 이가 적으니 임금이 줄어드는 거죠.
아시다시피 저희는 백제건축사무소를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조금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가 인수전 건축사무소는 하루 평균 14시간씩 한 달에 3일 쉬고 일했어요. 업계 전체도 비슷하대요. 그리고 업계 전체의 신입사원 평균 월급은 310만원이래요. 세금을 뗀 순수익을 시급으로 따지면 6300원 정도,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아요. 건축사무소 정직원이.
여기만 그럴까요? 게임그래픽 업계는 하루 평균 14시간 일하고 평균 시급 5800을 받는대요. 코딩 노예도 비슷하고, 디자인 업계는 5000원 남짓. 방송사 막내작가는 시급 700원 남짓, 방송사 카메라맨은 3200원 남짓. 성공하지 못한 연예계 아이돌은 아시다시피 무료노동이죠.
이 모든 건 신입 기준입니다. 신입들은 이렇게 받고 이렇게 살아요. 거의 모든 일터에서 추가급료 없는 야근을 하며 여가시간 전혀 없는 삶을 살아요. 저희 2030세대의 삶이죠. 딱히 잘못한 게 없는 거 같은데 이래요. 공급이 많고 수요가 줄어서 저희의 노동가격이 내려간 거래요. 이거... 너무 슬퍼요.”
예하는 한숨을 쉬며 카메라를 보다가 그 너머 나와 눈이 마주쳤다.
슬픈 눈을 하다가 힘을 내려는지 주먹을 우끈 쥔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라래요. 3300만원이죠. 이러면 신입사원이 저렇게 받는 게 맞다고 느끼시나요? 이건 통계의 장난이죠. 전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비노동 인구예요. 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죠. 그분들을 빼면, 노동자 한 명당 7천만원정도 받아야 옳겠죠. 그렇다면 우리 젊은 세대는 너무 조금 받아요. 소비자 물가는 3만 달러에 맞춰져 있는데 받는 돈이 너무 적어요. 결혼은 꿈도 못 꾸고, 결혼해도 맞벌이는 필수예요.
네. 경력이 높은 부장님 차장님이 많이 받는 건 당연하죠. 전 재산을 넣고 도전한 사장님이 많이 버는 건 옳죠. 하지만, 저희 2030세대가 많이 못 받는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양적완화때문이래요.
양적완화. 쉽게 말하면 헬리콥터로 돈을 살포하는 거래요. 이걸 하면 국가의 빚으로 잡히지만, 단번에 거둬들일 일이 없으니 빚은 무시해도 된대요. 이걸 하는 이유는 서브프라임 이후로 미국이 5000조를 양적완화했고, 일본은 6400조를 뿌렸으니 한국도 비슷한 비율로 뿌려야 한대요. 이걸 안 하면 한국은 혼자 뒤쳐지고 망하는 거래요. 그래서 한대요.
서브프라임 이후로 전세계가 양적완화, 돈 뿌리기를 하고 있고, 한국도 똑같이 돈을 뿌리고 있대요. 그런데 어떻게 뿌릴까요? 혹시 아시는 분 있나요?”
호흡을 다듬기 위해 한번 쉰다.
예하의 질문에 온갖 답변이 쏟아졌다.
-됐고, 그래서 인종차별은?
-인권탄압을 해명하랬더니 2030 하소연은 뭐냐?
-또 감성팔이 끼얹네
딱히 답변할 만한 말은 없다.
원래 인터넷 뻘글이 영양가가 없긴 하지.
“양적완화로 뿌리는 돈은 각자가 갖고 있는 자산 비율에 맞춰 뿌려진대요. 주식이나 부동산이 많은 이는 많은 혜택을 받고 적은 이는 적은 혜택을 받는대요. 직관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뿌려진 액수만큼 집값이 오른대요. 미국의 뒤를 따라 양적완화를 시작한 후 7년 연속 집값이 올랐죠. 원래부터 부자는 그만큼 혜택을 얻었죠.
그렇다면 2030은? 네. 내 집 마련의 꿈이 그만큼 멀어졌습니다. 모두가 파이를 나눠먹을 때 2030은 사회를 떠받드는 노동을 쉬는 날 없이 매일 야근하며 했으나 오히려 더 가난해졌어요. 월급이 오르는 것보다 사회자산이 더 올라 점점 거지가 된 겁니다. 이게 2030의 슬픔입니다.
미래그룹은 이걸 바꾸려고 해요. 2030 모두를 잘 살게 할 힘은 없지만, 2030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려는 거예요. 지금까지 저희가 행한 정책들. 이상하지 않았나요? 저희가 돈 벌려고 했을까요? 아무리 봐도 이득이 없는 행위잖아요.
저희는 건축사무소 직원에게 야근비용 등을 철저히 챙겨 월 평균 500만 원 이상을 주고 있어요. 사실 잘 챙겨준 게 아닌 정상가격을 준 건데 퍼주는 것처럼 보이는 게 오히려 아이러니죠. 저희는 공급이 많기에 혹사당하는 아이돌 지망생과 각종 예술 분야에 매년 4000억을 지원해요. 저희가 돈을 벌려고 그럴까요? 젊은 재능을 위한 기부입니다. 의사협회와 싸우는 거는요? 저희는 얻는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싸울까요?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매년 1조원 이상을 기부해 젊은 의사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저희는 사업과 기부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고, 사회가 정의롭고 올바르게 분배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채팅창이 조용해졌다.
예하의 진심어린 말이 어그로들의 손가락을 마비시켰나보다.
차츰 응원의 글이 많아진다.
-응원하고 있어요
-옳은 일 한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채팅 귀찮아서 안 쳤지만, 저것들 알바라는 거 알았음
-그래서 인권탄압은?
-제시예뻐
-ㅗㅜㅑ
잠깐 채팅창을 보던 예하가 대본을 보고 다음 대사를 준비했다.
“화제를 바꿔 예정된 미래를 말씀드릴게요.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미래를 읽는 겁니다. 지금 시골엔 젊은이가 없어요. 지방 관광지나 읍내가 아닌 논밭과 고기잡이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진짜 시골을 말하는 거예요. 진짜 시골엔 70대 80대 할머니 할아버지밖에 없어요. 60대 할아버지가 청년회장을 하고 계시대요. 슬프지만, 10년 후엔 그분들 대부분이 없어질 거예요.”
세금과 죽음은 절대 피할 수 없다.
단지 말하지 않는 것뿐이다.
오래 사실 겁니다, 라고 영양가 없는 덕담을 해야지, 당신들 10년 후에 대부분 죽어라고 말하는 건 금기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수록 악화된다.
“시골엔 젊은 사람이 없대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있대요. 추가로... 인구에 잡히지 않지만... 실제 노동을 책임지는 불법체류자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10년 후, 20년 후엔 어떻게 될까요? 한국의 시골은 어떻게 되죠?”
진지한 물음이다.
뻔히 보이는데 어째서인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의문이다.
“한국인이 사라지고 인구에 잡히지 않는 외국인만 사는 시골이 되요. 한국인은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살고, 외국인이 시골을 장악해요. 그때는 시골이 외국이 되요. 한국인이 없잖아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 분들이 시골에 가득차면 쫓아낼 수도 없어요. 그때 내보내는 거야말로 진짜 인권탄압이죠. 그때는... 한국의 시골은... 외국이 되요. 지방산업을 떠받드는 분들께 부랴부랴 시민권을 주고, 그분들의 단체행동으로 자치권을 주게 된대요. 뻔히 보이는 슬픈 진실이래요.”
한국은 훗날 영토를 잃게 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외국인 2세는 정당하게 재산권을 말하고, 다양성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몰표를 던져 자치권을 얻어낸다.
한국의 시골은 중국마을 베트남마을 인니마을로 바뀌고, 거기선 한국말이 통하지 않게 된다.
고령화 사회와 불체자의 묵인이 만들어낸 환장의 콜라보다.
- 작가의말
글속의 미래이야기는 100% 상상입니다
양적완화는 최대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설명했을뿐 저 외에 천가지 이유와 효과가 있습니다
글속의 평균시급은 주워들을 이야기일뿐 절대 사실이아닙니다 관련통계가 없어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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