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중국홍보모델
예하는 두개의 캐리어에 짐을 한가득 쑤셔 넣으며 말했다.
“홍콩~ 홍 코옹~ 신난다. 오빠 우리 언제 출발해?”
“점심에.”
“코올. 그럼 가서 저녁 먹고, 그 다음날엔...... 아차차. 우리 언제 와?”
“저녁에.”
“어. 신... 나... 어? 당일 저녁?”
“어.”
“...... 님아? 우리 홍콩 왜 가요?”
“핀빙빙하고 계약하러.”
......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예하가 자신이 싸던 짐을 멍하니 바라봤다.
“왜 말 안해줬어?”
“귀여워서.”
춤까지 추면서 짐을 쌀 줄은 몰랐지.
“미워!”
쾅!
예하가 자기 방문을 닫았다.
“안 갈 거야? 핀빙빙 좋아한다며?”
“미우어어어어어! 갈 거야!”
갈 거면서.
늦은 시간 침대에 눕고 조금 지나자 예하가 삐진 표정으로 들어와 날 안았다.
예하는 뭐든 안는 걸 좋아한다.
혼자 잘 땐 베개리던가 이불을 뭉쳐서라도 안고 잔다.
삐진 예하는 고개를 팽 돌리고 볼을 부풀리다가 날 반대쪽으로 굴리고는 등을 꽉 안았다.
프로이드의 유아심리학에 따르면... 모르겠다.
무슨 병은 아닌 거 같고, 개인성향이겠지.
이제 나도 예하를 꼭 안고 있으면 정신이 치유되는 것 같다.
“구형. 오랜만이에요.”
“아이구. 동생 사장님아. 반가워.”
넓은 어깨에 직사각형 머리를 가진 구형재가 선글라스를 올리며 인사했다.
툴툴대던 예하도 공손히 인사하고.
구형재와 미래보안에 대해 이야기 하며 공항으로 갔다.
일행은 나와 예하, 구형재와 경호원 90명.
비번을 싹 긁어모았다.
“전세기랬죠?”
“어. 채사장이 돈 생각 하지 말라 해서 전세기로 잡았어.”
“좋네요.”
일행이 100명에 가까우니 전세기를 빌려도 크게 손해 볼 건 없다.
항공 요금이 세 배 정도 올라갈 뿐이다.
예하는 분산되어 따라오는 경호팀이 전부 탑승하자 그제야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호원이 너무 많다.
“오... 빠? 전쟁하러 가는 거야? 대륙정복?”
귀여워.
“아니. 무서운데 가는 거니까 조심하는 거지. 홍콩에서 삼합회 12억명이 달려들면 지킬 수단은 있어야지.”
“그래도 과한 거 아니야?”
“전혀. 과한 건 모자란 것보다 낫다.”
중국은 너무 무시무식한 나라라서 이 정도 인원으로도 불안하다.
“그럼 가질 말든가. 칫. 이게 뭐얌. 당일치기라니.”
“바람 쐬러 마실이나 가는 거지.”
“솔직히 말하셈. 핀빙빙 언니 보러가는 거지? 원래 이런 건 아무나 가서 계약하면 되는 거잖아.”
“니가 생각하는 그 이유는 아니지만 핀빙빙 보러가는 거 맞지. 그보다 예하야. 너 핀빙빙 팬이라고 했지?”
“어.”
“그럼. 이따 만났을 때......”
예하를 데려온 용도가 따로 있지.
홍콩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한 시간 전이다.
어디 들를 새도 없이 곧장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갔다.
경호팀이 먼저 수색을 하고 넓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퓨처그룹 중국 지사장 이성인 입니다.”
30대 초로 보이는 젊은이다.
홍콩의 채권시장에서 일하던 이를 스카우트 해왔다.
“반가워요. 오늘 계약에 대해 아시죠?”
서로 할일을 되짚는 사이 약속시간이 되었고, 핀빙빙과 일행이 도착했다.
만 37세.
중국 최고의 스타.
3년 연속 중국연예인 수익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데뷔 20년이 지났지만 매년 영화나 드라마 2편 이상씩 찍고, 직접 영화 감독과 투자도 하고, 앨범도 여러 장 낸 정렬적인 여자다.
여전히 예쁘기도 하고.
예하의 절바.... 이건 실례지.
“반갑습니다. 퓨쳐그룹 본사에서 온 윤동욱입니다.”
“반가워요 핀빙빙입니다.”
생긋 웃으며 받아주는 게 성격이 나빠 보이지도 않는다.
“꺄아아. 언니 팬이예요. 신인가수 제시예요.”
예하가 호들갑을 떨며 인사했고, 핀빙빙의 표정이 풀렸다.
“어머. 너 너무 예쁘다. 어쩜 이렇게 예쁜 애가 있니. 가수라고? 연기는 안 해?”
“네. 아직은 가수만요. 제 노래 보실래요?”
통역이 바쁘게 말을 전해주는 사이 둘이 호들갑 떨며 손을 잡고 쎄쎄쎄했다.
여자들은 저렇게 친해지는 건가.
저기요.
일 얘기 좀 할까요?
예하의 데뷔곡을 유투브로 보여주고, 너무 예뻐를 열 번 반복하고, 함께 사진 찍고, 사인까지 받은 후 일 얘기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이 녹음기를 설치하고 SNS에 열 번 노출시키면 된다는 거죠?”
“네. 대놓고 광고해도 되고, 우연인 척 노출해도 되요.”
“고작 그걸로 천만 달러를 주고요?”
“네.”
“흐음......”
핀빙빙이 예하의 핸드폰에 깔린 폰로이어를 이리저리 눌러봤다.
“매니저오빠, 오빠가 깔아봐.”
통역을 하던 지사장 이성인이 끼어들었다.
“중국어판은 여기서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 것을 받아서 언어만 교체해도 되지만, 당국이 알면 막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빙빙의 매니저가 앱을 깔았고, 가입 절차 등을 유심히 봤다.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같은 조건이면 백만달러로도 계약할 텐데, 너무 비싸요. 혹시 위치추적이나, 도촬? 뭐 그런 의도가 있나요?”
이성인이 통역을 해 준 후 폰로이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했다.
“기술적인 거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블록체인 속에 그런 애드웨어를 끼워 넣을 틈이 없습니다. 이건 오직 녹음과 자동 백업의 기능밖에 없습니다. 당신 본인을 위한 알리바이죠.”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줘요?”
“그 정도 부르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 나오지 않으셨겠죠?”
“제 얼굴 보려고 많이 불렀어요?”
“저희 퓨쳐그룹은 세계 광고 모델로 핀빙빙씨를 생각하고 있어요. 일단 올해는 중국 SNS 광고로 시작하지만, 차츰 추가할 겁니다. 미래뮤직의 세계 광고도 계약하고, 그 외 여러가지 홍보방식을 추가할 생각입니다. 첫 계약이니 계약금이라 생각하세요.”
“제가... 월드스타급은 아닌데.”
“일단 한 가지 계약을 추가해보죠. 1년간 한국에서 활동하시고, 주 1회 인터넷 방송 4시간 이상 송출하기. 이 조건이면 1억 달라를 드리겠습니다.”
1년에 1억 달러.
본론이 나오자 핀빙빙은 되려 안색이 편해졌다.
“그건 고민해볼게요. 일단 녹음기를 깔고 열 번 노출하면 된다는 거죠?”
“네. 당장 계약하지 마시고, 전문가 불러다가 확인부터 해 보세요. 과연 문제가 있는지.”
“알겠어요. 확인하고 나서 계약하죠. 그보다 사장이세요?”
“네.”
“호텔에서 머무시나요? 이따 한잔 할까요?”
라며 생긋 웃는데 예하에게 적응한 내 눈에도 예쁘고 섹시하게 비춰졌다.
예하가 갑작스런 공격에 긴장해 내 팔짱을 강하게 꼈다.
“죄송해요.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래요. 그럼 뭐.”
핀빙빙은 그냥 한번 시험해 봤다는 듯 쿨하게 일어섰는데 보석함을 꺼내 앞으로 쭉 밀어줬다.
보석함엔 커다란 보석이 달린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첫 만남에 대한 선물입니다.”
“...... 화려하네요.”
“참고로 블루투스 녹음기입니다. 폰로이어의 기능만 있는 한정판입니다. 이것도 다른 기능이 있는지 확인하시고, 이상 없으면 갖고 다니시죠.”
핀빙빙은 자기 앞으로 온 목걸이를 한참 바라봤다.
“뭔가 이상한 자리네요. 후우. 제가 요즘 탈세니 뭐니 해서 좀 날카로웠네요. 일단 알겠어요. 확인부터 해 볼게요.”
핀빙빙과 그 일행이 석연찮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그들이 떠난 후 시계를 보니 귀국할 비행기 시간이 두 시간 남았다.
“식사하고 집으로 가죠. 경호팀은 자유롭게 식사하시고 저희는 여기서 먹죠.”
“오빠? 여기서 먹어? 하다못해 아래층 호텔 레스토랑이라도.”
“얘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중국이 얼마나 무서운 나라인데 막 돌아다니려고 해. 여기서 먹고 바로 공항으로 간다.”
지금도 무서워서 무릎이 벌벌 떨린다.
“그래도... 홍콩까지 왔는데.”
“안 돼. 우리가 나가서 먹으면 경호팀 전혀 못 쉬어. 그냥 룸서비스로 먹자.”
“겁쟁이!”
“떼써도 안 돼. 막말로 공안의 눈에 띄어서 잡혀가면 그걸로 끝이야. 넌 이 나라가 얼마나 무식한지 모르지.”
중국은 무서운 나라다.
그리고 무서운 것 이전에 무식한 나라다.
무식해서 더 무섭다.
바로 1년 전엔 상섬전자 시총만큼 자금을 굴리던 안방보험이 해체되었다.
3년 후에는 세계 10위 부자를 바라보던 마원의 알리바바가 해체된다.
과거 이구만대통령이 국제그룹을 해체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
게다가 중국은 군사정권보다도 훨씬 무식하다.
그냥 잡아다가 고문한 후 18년 형을 선고하고 몽땅 뺏는다.
지금 당장 공안이 날 잡아가면 그걸로 끝이다.
한국은 팔짱끼고 지켜보겠지.
국제사회의 여론도 무시하는 놈들.
조심해야 한다.
“이럴 거면 왜 왔어!”
“핀빙빙 보러 왔잖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더만! 팬이란 것도 거짓말이었지?”
예하가 떼쓰는 사이 코스요리가 올라왔다.
제비집 스프를 먹으며 말해줬다.
“1000억 원 제의는 내가 직접 해야 하니까. 내가 말해야 진실성이 있지. 받아주면 좋겠는데.”
1년 인터넷 방송 출연하고 1100억원.
한국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이겠지만......
모르겠다.
핀빙빙 폭로설에 따르면 핀빙빙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가 80억이라 한다.
년 수익은 1000억이 넘는다고 하고.
1100억을 위해 익숙한 모국을 떠날 것 같지 않다.
받아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1년에 1조원을 줄 순 없고.
너 납치 감금된다고 말해줬어야 했나?
이걸 설명할 수가 없잖아.
게다가 실종된 100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끝까지 알려지지 않았기에 막무가내로 데려올 수도 없다.
신사적으로 외출만 금지되었을 수도 있으니.
당장은 이게 한계다.
폰로이어. 니가 증거를 보관할 수 있길 바란다.
일단 인연의 끈을 만들었으니 나중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도와준다.
“난 최선을 다했어.”
“뭘? 쳇. 진짜 좋아했던 거야? 하긴 목걸이까지 특별 제작해 선물하는 걸 보니.”
예하가 왜 삐졌나 했더니 목걸이 문제도 있었군.
“한국 가면 백화점 가자. 어...... 지사장님. 비서실에 전화해서 놋네 명품관 열어두라고 해 주세요. 도착시간 계산해서 알려줘요.”
밤 12시에 명품관 열기.
돈지랄이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지.
“에? 아니야. 사달라는 게 아니었어. 오빠.”
“싫으면 집에 가시든가. 나 혼자 명품관 가서 제일 비싸지만 제일 구린걸로 고를게.”
“아아. 그러지마. 오빠. 잘못했어.”
“명품관 가자. 돈이야 뭐. 이렇게 쓰라고 버는 거지.”
“에. 헤헤. 진짜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난 홍콩까지 와서 그냥 가는 게.. 그냥. 아쉬워서.”
“앞으로 여행 많이 다니자. 중국 같은 위험국가만 아니면 돼.”
“어. 네. 사랑해 오빠.”
예하가 사랑을 가득 담아 키스를 전했다.
한 테이블에서 같이 먹던 지사장 이성인과 미래경호사장 구형재는 속이 느글느글해졌다.
후읍. 후읍.
조승학은 성수동 미래본사건물을 노려봤다.
두 달간 방황 끝에 거지가 되었지만, 여기까지 왔다.
사람들이 떼 지어 나오더니 예하가 경호원 다섯 명에 둘러싸여 나오고 그 뒤에 그 놈이 나온다.
방학동 옆집에 살던 또라이새끼.
나의 예하를 가져간 개새끼.
지금도 나의 예하와 대화하는 강간범새끼.
그놈 옆에 있던 경호원이 건물 쪽으로 돌아섰다.
죽인다.
저놈을 죽이고, 예하를 납치해 경호원을 뿌리치고 도망쳐야지.
그리고 마구 강간하고 나서 목을 졸라 죽여야지.
“으흐흐흐. 즉은드. 즉으그믄드.”
삐뚤어진 입으로 실소가 나온다.
경호원 한 둘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들은 절뚝이며 느리게 걷는 거지를 무시했다.
왼 무릎이 안으로 굽어 절뚝이며 차분히 걸었다.
절뚝. 절뚝.
그놈이 코앞에 있다.
품에서 예리한 회칼을 꺼냈다.
찌르는 연습을 천 번이나 했지.
푹.
“크헉.”
“꺄아아아.”
푹.
푹푹.
푸우우욱.
누가 달려와 어깨를 강하게 당겼다.
깊게 지른 회칼이 배를 쭉 찢으며 빠져나왔다.
“뭐야!”
“엠불런스!”
“브이아이피부터 모셔.”
“으흐흐흐.”
경호원들이 칼을 뺏고 몸을 눌러 바닥에 짓눌렸지만, 조승학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주기따. 주깄. 크흐흐흐흐. 뒤즈르아. 크흐흐흐.”
- 작가의말
지금까지 벼락부자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승전와장창
내일도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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