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사냥2
조승학은 자신의 비서 겸 뒤처리담당인 허영수가 모는 벤츠를 타고 있었다.
백제건설 비서실장 배정구는 그 곁에 앉아서 정신없이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중대장 바꿔! 이 새끼 왜 전화 안 받아? 대대장은? 번호 불러봐! 언론팀은 뭐하고 있어! 국군병원 쪽에 번호 아는 거 있어?”
“아아. 마취 풀릴라한다. 아아. 시발.”
정신없는 와중에 이빨 아프다고 궁시렁 대는 철없는 새끼를 쏘아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놈이 사고 칠 때마다 입막음조의 성과급을 받아 좋아했으니 이제 돈값 해야지.
“실장님 도착했습니다.”
“안까지 못 들어가?”
“안 된답니다. 공사 중이라.”
부대병원 입구에 커다란 크레인이 서 있다.
부대에서 뛰어나온 군의관 대위가 난처한 듯 설명하고 있다.
“어쩔 수 없지. 내리자.”
허영수와 배정구가 내리고 조승학이 뒤따라 내렸다.
긴 금발에 태닝하고 환자복을 입고 있다.
그때 사람들이 뛰어왔다.
“조승학씨! 당신이 군인입니까? 그 긴 머리는 뭐죠?”
“조승학이 맞습니까?”
“국민을 위해 대답해 주십시오. 당신이 한 일입니까?”
기자들.
대포카메라.
그들을 본 순간 배실장의 뇌리에 좆 됐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일단 달려. 들어가!”
조승학을 감싸 안고 안으로 달려갔다.
총을 든 군인이 지키는 국군병원 울타리가 기자의 추격을 막아줬다.
그들이 사라지자 기자들이 부대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사진, 영상 보내고 다음 장소로 가자.”
“기자 사칭해도 되나?”
“저 꼴인데 우리한테 시비 걸 정신이나 있겠어?”
“어여 갑세다. 하루 천만 원 짜리 일이여.”
채인수가 고용한 흥신소 직원들이 다음 할일을 하러 이동했다.
“기자들이... 아뿔사!”
조승학을 강제 입원시킨 배실장은 자신이 놓친 것을 알아챘다.
“부대로 가자. 가짜가 있는 부대로.”
적의 세력이 어딘지 몰라도 조승학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조승학은 현재 군인 신분이다.
군 면제는 간단하지만, 재벌의 입대경력이 훗날 좋은 이력이 되기에 억지로 입대했다.
물론 직접 한 것은 아니다.
조승학이 절대 군 생활하기 싫다고 버텨 아바타를 만들었다.
비슷하게 생긴 젊은이를 훈련시켜 10억을 주고 입대시켰다.
신분증을 쥐어주고 부대에 적당히 돈 뿌려주면 아바타도 불만 없이 따른다.
예전에 언론에 몇 번 노출됐던 조승학은 금발로 염색하고 까맣게 태닝해 방학동 구석에 숨어 살았다.
그랬는데.
“조승학을 습격한 괴한이 뭐라 했었지?”
“그... 절대 고소할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놈들 알고 있었습니다.”
허영수도 깨달았는지 하얗게 질렸다.
“달려. 최대한 빠르게.”
부대 밖으로 나오자 그 많던 기자들이 전부 사라져 있다.
가짜 조승학이 군생활 하는 부대로 달려갔다.
원통 야산에 있는 작은 레이더 기지.
간부 두 명과 사병 열 명만 근무하는 작은 파견부대다.
여기에 가짜를 처박아놓고, 가짜 재벌3세로써 용돈 팍팍 뿌리며 살게 했다.
아바타도 만족하고 끝나면 잔금 5억을 받으니 입을 닫았을 거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
그랬는데.
잡혀갔나?
현역군인을 잡아갈 정도의 세력인가?
이런 고민을 하며 도착한 곳엔 전혀 다른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셔마셔.”
“오빠! 전역 얼마 안 남았지?”
“백제 그룹이 쏩니다. 마음껏 드십시오.”
부대 입구 앞 공터에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젊은 여자 10여명과 남자 서른 명, 그리고 부대원들이 어우러져 술잔치를 벌인다.
뭔 미친광경이지.
“이 사람이 백제 그룹 3세 조승학 맞지요?”
안 돼. 대답하지 마.
“맞아요. 처음 입대 때부터 알려졌지요.”
“허허. 기자님 저희 도련님 좀 잘 좀 써주세요.”
“대단하십니다. 재벌 3세의 현역생활. 정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입니다.”
백제 그룹 관계자를 사칭하는 놈은 분명 적 세력일 테고 기자도 한 패겠지?
“그럼 계속 여기서 군 생활 한 거 맞죠? 중간에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거 아니죠?”
안 돼~ 대답하지 마~
“허어! 무슨 그런 말씀을. 이친구가 비록 재벌이지만 모든 훈련에 열외 없이 참여하고 열심히 군생활 했습니다.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습니다.”
“맞습니다. 조병장님은 누구 괴롭히거나 자기 근무를 떠넘기지도 않는 최고의 선임입니다.”
니들이 자랑하지 마.
멍하니 사정을 보던 배실장은 얼굴이 노출되더라도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멈춰! 이들은 가짜야!”
“저놈저놈 백제건설 비서실장 배정구다!”
기자가 소리치자 모든 카메라가 배정구를 찍었다.
“모두 쫓아내! 적이다! 백제의 적! 소대장 빨리!”
꺄아아아~
고용된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가짜 조승학에게 일제히 안겼다.
다른 사병들과 소대장은 이게 뭔 소린지 이해를 못했다.
가짜 조승학은 훈련소에서 조작을 담당한 입소단장과 군의관만 아는 일이고, 나머지는 가짜를 진짜로 알고 있는 상황이다.
배정구가 설명하기 전에 가짜 기자가 소리쳤다.
“가짜 조승학! 진짜 이름 김유현. 이리와라. 저들에게 잡히면 죽는다.”
“네?”
“진짜가 사고치고 입소했다. 너 이대로 있으면 죽어! 우리한테 와야 살 수 있다!”
“네?”
배실장이 소리를 막았다.
“듣지마! 내 얼굴 알지? 따라와. 소대장 안으로! 부대 안으로!”
“네? 네.”
부대 입구 공터에 있던 부대원들이 들러붙는 여자와 기자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짜 기자들은 군부대 안까지 따라가지 못했다.
거기 들어갔다간 진짜 큰일 난다.
대신 차를 가져왔고, 차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매달려 있었다.
“검색해보십시오. 디스코드나 트위터, 폰허브 등을 검색하십시오. 진짜 조승학이 사고치고 지금 원주병원에 갔습니다. 현재 부대에 있는 건 가짜 조승학이고, 지금 들어간 사람은 백제그룹의 킬러입니다. 이대로 끌려가면 살해당합니다.”
죽일 생각까진 없겠지만, 그렇게 몰아가자.
“김유현. 이리 오면 자수하는 걸 도와주마! 그들에게 잡혀가면 너 죽는다. 진짜 조승학이 원주국군병원에 들어갔으니 널 치우러 온 사람들이야. 죽기 싫으면 우리의 보호를 받아라. 받기로 한 돈은 우리가 줄 테니 증언해라.”
스물네 살 중위도, 스물세 살 하사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데 군부대에 들어온 이방인이 소리친다.
“뭘 검색해! 당장 지원 불러! 차가 나가게 길을 열어야지! 부대 입구가 막혔잖아.”
작은 레이더기지 특성상 나갈 길은 하나뿐인데 기자들의 차가 줄줄이 막고 있다.
당장 비서실장의 차도 기자들 차 뒤쪽에 있다.
거기까지 가짜를 데려가 탈출하려면 군대의 힘이 필요하다.
“예? 예.”
멍청하게 서 있던 하사가 연락했다.
괴한들이 부대 입구를 막고 있다고.
“어? 진짜네.”
“이게 진짜 조승학이라고?”
“와. 조병장님 괜찮습니까?”
“진짜 조병장님 죽는 거 아닙니까?”
사병들이 모여서 검색하고 기사를 읽고 있다.
김유현이 사색이 되었다.
“아아악! 우린 기자야!”
“군인을 살리려고 온 거라고!”
“너희 때문에 김유현이 죽는다!”
군대에서 지원이 와 군부대 입구를 막을 사람들을 끌어냈다.
사람들을 잡아 모으고 차를 운전해 빼낸다.
신고 없이 군부대 입구를 막은 자들은 이렇게 빼내도 된다.
그게 김유현의 공포를 자아냈다.
“소대장님! 살려주십시오! 분대장님! 제발! 나 잡혀가면 죽어요! 살려주십시오. 부대 내에 들어온 킬러들을 쫒아내 주십시오.”
공포가 극에 달한 김유현이 눈물콧물 흘리며 소리쳤다.
“그... 그래! 조병장. 니가 진짜든 아니든 내 부하다!”
“맞습니다! 조병장님. 우리에게 냉동 백만 원어치 쏜 조병장님!”
“조승학 병장님을 구하자!”
사병들이 모여들고 소대장이 결심을 내렸다.
“어? 어? 나 백제그룹 비서실장이야! 뭐야? 너희들! 악!”
기자들로 가장한 세력이 쫓겨났고, 부대 내에 침입한 비서들이 쫓겨났다.
외부에서 들어온 군인에 의해 잠시 혼란이 이어지고, 백제그룹과 윗선의 연락이 닿은 후 김유현은 군헌병대에 인도되었다.
고용한 흥신소 아저씨들은 해산 당했지만 연행되지는 않았다.
길을 막은 걸로 연행할만한 죄를 짓지는 않았고, 가짜 조승학이라는 존재는 군대 입장에서도 혼란스러웠기에 그냥 풀어줬다.
“아구구구. 한 대 맞았네.”
“맞은 거 찍었지? 100만원 추가인가.”
“여긴 끝인가. 다음 조로 이동하자고. 영상 사진부터 보내고.”
“다들 수고했어. 또 보시게.”
흥신소 아저씨들은 각자 역할에 따라 배실장을 혹은 김유현을 혹은 백제그룹 본사를 찾아 흩어졌다.
채인수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모았다.
백제그룹에 원한이 깊은 사람들.
법무팀에 들어가 백제의 과거 소송행적을 살폈고, 정말 억울한 판결을 받은 이들의 연락처를 얻었다.
흥신소를 통해 연락했고, 윤동욱의 자금으로 고용했다.
그들이 미래그룹 한국지부 기획실과 경영지원팀을 구성하고 있다.
“사진 왔습니다. 영상도 도착했습니다.”
“예. 편집 시작하시고요. 스텐바이 해 주세요.”
채인수는 몇 시간 전 도착한 윤동욱을 봤다.
윤동욱은 주가차트를 보며 권순진과 통화하고 있었다.
“아직이예요? 3천억? 네. 기다릴게요.”
단순히 감옥에 보내려는 게 아니다.
돈이 많으면 감옥에서도 황제처럼 살고, 그마저도 잠깐 살다 나온다.
전 재산을 빼앗아 거지로 만들고 모든 사람의 지탄을 받아야 복수의 완성이다.
인터넷에 하지혜 동영상이 싹 사라졌다.
과거 자살로 몰고 갈 때완 차원이 다른 속도.
이슈를 퍼 나른 생각 없는 기사도 싹 사라졌고, 실시간 검색어도 지워졌다.
백제그룹의 반박기사만 남아있을 뿐이다.
돈 받은 만큼 일 하는 거지.
딱히 저들을 욕하고 싶진 않다.
돈 받고 할일 한 거니 그게 맞는 거지.
지혜아빠의 한 서린 폭로는 반나절 만에 루머 취급받고 소중한 딸의 원한은 딸쟁이들의 좋은 재료가 되었을 뿐이다.
잠깐 하한가를 찍은 백제그룹 관련주 일부는 오히려 시작가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다.
찻잔속의 태풍이 소멸되었다.
힘이 없으면 그렇다.
띠리리리.
“공매 완료요? 예 수고하셨어요. 이제부터 대출 알아봐 주세요. 예.”
전화를 끊고 보니 채인수와 예하가 빤히 바라보고 있다.
“한 대 더 때려주세요. 나쁜놈들.”
“시작해!”
“예.”
기획실 직원들이 단체메일을 보냈다.
메일 제목은 진짜 조승학의 실체와 가짜 조승학의 실체.
1년 전 방학동 원룸에서 나오는 조승학의 사진, 반 년 전 원룸에 여자와 들어가는 조승학, 친구인 듯한 남자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조승학이라 부르는 영상들.
오늘 아침 백제건설 본사에서 출발하는 비서실장의 벤츠. 원주에 도착한 비서실장의 벤츠. 거기서 나온 금발태닝백수 조승학. 급박하게 들어가는 환자 조승학.
가짜 조승학이 근무하는 기지에서의 영상. 주변 병사들이 가짜를 진짜로 알고 함께 생활했다는 증언들.
도저히 덮을 수 없는 증거들이다.
메일 하단엔 받는 이 명단이 적혀 있었다.
30여개 방송사 직원들의 노출된 메일 전부와 50여개 신문사 직원들의 노출된 메일 전부에 보냈다.
천여명에게 동시에 제보를 했다.
보낸 시간은 오후 3시.
“기다립시다.”
가장 빠른 반응은 주가에서 나타난다.
3분이 지나자 하락우위가 시작되더니 -3%였던 주가는 10분 만에 하한가로 직행했다.
모든 백제그룹 계열사와 모든 백제 관련 하청업체가 하한가를 찍었다.
3시 30분 장이 끝날 때까지 하한가를 풀리지 않았고, 장후 거래는 전부 -10%를 찍었다.
오후 5시.
그때까지 관련 기사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은 참 솔직해.”
“그러게요.”
“백제에게 돈을 받았으니 기사를 쓸 순 없겠지. 하지만 백제가 좆 됐다는 건 알았으니 가진 자는 냅다 팔았겠지. 친척이나 친구가 갖고 있다면 잽싸게 알렸을 거야.”
“시발놈들.”
“언론도 사람이고, 돈 벌려는 그 짓하는 거잖아. 메일을 보자마자 VIP들에게 중요한 정보라며 팔았을 거야. 10억? 20억? 얼마나 벌었으려나.”
“씁쓸하네요.”
정보가 불공평한 기울어진 운동장.
나처럼 미래를 알거나,
나처럼 호재나 악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사냥터.
아무 정보 없이 깜깜이 투자를 하는 야수들이 존경스럽다.
오늘 꽤 많이 죽어 은퇴하겠지만 어쨌든 존경합니다.
- 작가의말
군대는... 제가 군대가기 싫었더랬죠. 결국 끌려가서 병장만기당했지만
어쩄든 그때도 생각했습니다
훈련소에서 민증검사 한번 하고 끝이네. 만약 내가 돈이 엄청 많다면 대리 시킬 수 있겠다
물론 돈이 없어서 불가능한 상상이었죠
지금까지 대리군생활 걸린게 없으니 픽션일 겁니다. 제 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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