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냥
“제 딸의 이름은 하지혜. 이게 4살 때 사진입니다.”
중년 아저씨가 카메라 앞에서 말한다.
“참 예쁘죠? 이게 8살, 12살, 15살 사진이고요. 가출한번, 반항 한번 안 하고 한국여대에 입학한 참 착한 딸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른이 되는 예쁜 여자아이의 사진이 동영상에 비춰진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한국여대 하지혜 유출동영상. 예. 제 딸입니다. 제 딸의 영상 맞고요, 그 영상이 유출되고 4일 후 자살했습니다.”
부관참시.
아버지가 스스로 화장되어 재가 된 딸의 유골을 꺼낸다.
백제그룹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하지혜의 부친을 차에 태우고 제의했다.
복수는 돕겠다.
그런데 얼만큼 오픈할지는 스스로 정하라.
아버지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아무도 하지혜를 모른 채 죄인이 벌 받는 것이겠지만.
이슈가 되지 않으면 벌을 받지 않는다.
과거 사건들이 증명한다.
전국민이 다 알 정도로 떠들썩한 사건조차 접대 받은 판검사는 여자가 자의로 벗었다는 미명아래 무죄판결을 받았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다면? 사건취급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알려야 했다.
지혜의 아빠와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동의했다.
지혜도 분명 그걸 원하리라 믿어줬다.
두 분은 전국민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게 첫 번째다.
“작년 여름 즈음부터 제 딸이 이상했습니다. 말이 없고, 방에만 틀어박혔죠. 그러길 보름 만에 자살했습니다. 천장이 높지도 않은 집에서 어떻게 목을 맸는지. 그 전부터 딸의 행동이 수상했던 저는...... 죽은 딸의 엄지손가락을 잡아 딸의 핸드폰 잠금을 풀었습니다.”
얼마나 참담했을까.
딸의 시체에서 손을 당겨 지문 잠금을 풀 때의 심정이.
“코톡에 조승학이라는 남자의 협박이 있었습니다. 캡쳐한 화면입니다.”
동영상 한쪽에 확대한 캡쳐본이 떴다.
나쁜놈 : 나와라 안 나오면 동영상 뿌린다
나쁜놈 : 럭셔리 호텔 1101호 내일 7시
나쁜놈 : 동영상파일
나 : 제발. 제발 그만해주세요
나쁜놈 : 일단 오라고ㅋㅋ 와서 얼굴보고 합의하고 끝내자고 나도 너 관심 없어
“지시한 날 제 딸은 나간 듯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의 코톡입니다.”
나 : 제발. 지워주세요 제발. 시키는대로 했잖아요.
나쁜놈 : 병신년ㅋㅋㅋ 내일 또 같은 방에 와라 안 오면 뿌린다ㅋㅋㅋㅋ 니가 즐기는 것만 편집해서 올린다 창년아ㅋㅋㅋ
나쁜놈 : 동영상파일
나 : 돈이라면 드릴게요. 어떻게든
나쁜놈 : 나 백제 3세야 병신년아. 돈 따위 필요 없고 질리면 놔줄게. 내일 안 오면 뿌릴 거니까 와라
“이런 협박의 코톡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딸 지혜는 다음날 나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날짜는 지난 해 7월 말일. 그리고 8월 1일에 한국여대 한지혜 유출동영상이 떴습니다. 날짜는 맞을 겁니다. 사이버수사대 여경님께서 첫 공유날짜가 8월 1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전부 지우진 못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컴퓨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모두 소거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사실... 딸이 죽은 다음이어서 모두 의미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혜 아버지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담담하게 절규할 뿐이었다.
“딸이 죽은 후 그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남자는 얼굴을 모자이크로 가렸고, 제 딸은 약에 취해 눈이 뒤집혀지고, 침을 흘리며 당하고 있었죠. 제 딸의 신분증까지 가졌는지 이름과 학교, 집주소, 주민번호를 영상 위쪽에 친절하게 자막으로 적어놨죠. 아마도 많은 분들이 봤으리라 믿습니다.”
다음으로 나온 건 코톡메세지였다.
나쁜놈 : 뿌렸다
나쁜놈 : 링크
나쁜놈 : ㅋㅋㅋ 병신년. 내일은 꼭 나와라. 안 나오면 다음영상 뿌린다ㅋㅋ
그게 코톡메세지의 마지막이었다.
“코톡엔 남자가 협박하던 동영상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조작도 되지 않은 영상이죠. 다운받아서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코톡 메세지에 백제 3세라고 자기 자랑도 했죠. 찾아봤습니다.”
원본 동영상을 캡처한 사진엔 금발태닝백수가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백제 그룹3세 조승학은 흰 피부에 흑발이지만 얼굴이 같다.
“둘은 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억울한 제 딸의 한을 풀기 위해 경찰서에 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 경사 이우철. 42세. 사건 담당 경찰이었습니다. 몇 번을 찾아가도 이게 증명하기 힘든 일이니 기다리라 했습니다. 범죄자가 뻔히 웃으며 살고 있는데 저희는 경찰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5개월 후 사건은 증거불충분으로 폐기되었습니다. 당시 조승학의 알리바이가 확실하고 동기가 부족하고 자살에 인과관계가 충분치 못하다는 이윱니다. 제 딸의 죽음은 조승학과 아무런 관계없다는 게 국가의 판단입니다.”
아저씨 곁에 담당경사의 신상명세, 담당검사의 신상명세, 조승학의 신상명세가 박제되었다.
“제 딸의 한을 풀 길 없어서 백제그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좋은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여러 가지 조사를 해 주었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담당경사 이우철. 통장에 1억 입금.
담당검사 류준오. 통장에 5억 입금.
흥신소에서 불법적으로 빼온 자료다.
애석하게도 입금한 통장은 대포통장이라서 백제와의 연관점을 찾지 못했다.
“유전무죄가 뭔지 이해가 되더군요. 제 딸의 죽음이 어째서 묻혔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저 같은 가난뱅이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습니다.
아래 링크는 남자의 얼굴을 가리지 않은 영상의 링크입니다. 사이버수사대 여경님 말로는 한번 뿌려지면 절대 없앨 수 없다 하셨죠. 남자 얼굴이 나온 걸 뿌립니다.
야한 것을 찾는 놈들이 내 딸의 알몸을 보며 헉헉대는 게 죽을 만큼 괴롭지만, 그래도 올립니다. 평생, 영원히, 백제 그룹3세 조승학의 이름이 인터넷에 떠돌기를 빌면서 뿌립니다. 그리고 야한 것을 찾아간 남자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제 딸의 동영상을 보고난 후 제 딸의 인생이 안쓰럽다면 제 딸의 죽음에 조금만 관심...”
동영상이 끝나기 전에 멈췄다.
새로 고침을 누르자 삭제되어 있다.
빠르네.
백제.
빠르네.
국가권력.
비슷한 검색어를 누르자 여기저기에 영상이 떴다.
해외에서 중국인팀이 작업하고 있는데 무차별적으로 영상을 올리는 중이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해외 사이트에서 영상이 뜬다.
링크가 수십 개니 전부 삭제하는데 시간 좀 걸리겠지.
알몸의 여자가 옆으로 누워있고 눈이 뒤집혀 있고, 침을 흘리고 있다.
여자의 몸은 모자이크로 가렸지만 얼굴은 가리지 않았다.
아마도 모자이크 속 여자가 궁금한 놈들은 예전에 퍼진 영상을 찾을 테니 무의미하겠지만, 그래도 사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금발태닝백수가 여자의 한쪽다리를 들고 삽입해 헉헉대고 있다.
‘하 존나 맛있네.’ ‘ 야 내 차례 언젠데?’ ‘잠만 씹새야. 이번에 사냥한 건 나니까 세 탕까진 내거야.’ ‘호 졸라 꼴리네.’
끔찍한 대화가 오간다.
과거 유출된 것은 소리가 없고 남자 얼굴을 가린 것이었는데 여기엔 소리도 얼굴도 전부 공개되어 있다.
영상 한켠엔 조승학의 프로필이 박제되어 있다.
나이, 학교, 사는 곳, 민증번호.
마지막엔 조승학의 실제 목소리와 영상 속 목소리를 비교하고 음성일치판정까지 보여줬다.
“흑. 너무 잔인해.”
예하가 내 등에 얼굴을 묻으며 울었다.
얘는 언제 보고 있었대.
“에비. 미자는 이런 거 보면 안 돼요.”
“우흐흑. 나도 저렇게 될 뻔한 거잖아.”
“...... 아마도.”
누구보다도 예쁜데, 미래에 얠 티비에서 본 적 없다.
아마 예하의 인생도 비참하게 무너졌을 거다.
이렇게.
띠리리리.
“예 윤동욱입니다.”
-경찰이 왔어요. 저희 남편 잡아가려고. 아. 벨 한번 누르고 문 따고 들어왔어요. 열어주려고 했는데. 악! 남편 팔이 꺾였어요.
“문제없을 겁니다. 바로 변호사 보낼게요. 잠시만 고생해 주세요.”
-흐그극흑. 예. 부탁드립니다.
경찰님들 참 빠르다.
영상 올린 지 20분 지났을 뿐인데.
체포되는 건 아저씨도 각오한 바다.
숨어선 안 된다.
아마 집밖 어딘가에서 흥신소 아저씨가 동영상을 찍고 있을 거다.
꿀꿀한 기분을 환기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저쪽에 펀드팀이 거래하고 있는데 손 움직임이 느리다.
가봤다.
“문제 있어요?”
“어... 거래가 안 된다.”
권순진이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백제그룹 계열사 전체가 -30% 하한가를 맞았다.
하한가에서도 잔량이 잔뜩 쌓여있다.
권순진과 함께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하는 눈치 없이 따라왔지만, 봐준다.
“얼마나 샀어요?”
“3천억 조금 안 돼.”
“이걸로 어디까지 떨어질 것 같아요?”
“솔직히 10퍼 정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한가가 풀린다고요?”
“재벌3세의 미친 짓일 뿐이잖아. 저놈의 범죄와 상관없이 공장은 제대로 돌고 수출품은 오늘도 수출되고 있지. 배당금도 그대로일 테고. 이미지 타격으로 매출이 줄더라도 30%는 과하다고 생각하겠지. 어쩌면 이미지 회복을 위해 배당금 올릴 수도 있으니 호재로 인식될 수도 있어. 어쩌면 좀 있다 반박기사 올라오면 오늘 시작가격으로 올 거야.”
“총수 일가에서 저런 범죄를 저질렀는데도요?”
“돈은 돈이야. 검사의 눈꼽만 한 월급 10년 모아 5억을 만들든, 저런 뒷거래로 한번에 5억을 만들든, 집 살 땐 똑같은 돈이야. 그리고 주식만큼 솔직한 민심은 없어. 겉으론 저런 나쁜놈, 저런 못된 놈 하더라도 주식 가격은 정말 솔직한 진심을 반영하게 되어 있어.”
“...... 반박기사 뜨겠죠?”
“어. 원래 가격보다 오를 수도 있어.”
“그럼 기다렸다가 원 가격에 팔아요. 추가타는 아마 저녁에나 나올 거에요.”
“그러려고. 오늘 안에 1조 가능할 거야.”
팀장을 제외한 팀원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목적이 뭔지 알게 되었다.
백제그룹 공매도.
한 달 후 청산하기로 계획했다.
한 달간 백제 주가를 최대한 떨어뜨려야 한다.
긴 싸움을 직감한 팀원들은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흥분.
혹은.
불안.
그런 표정으로 유투브 동영상을 찾아보고 있다.
“반박기사 올라왔어.”
백제 그룹을 검색어로 계속 새로 고침을 누르던 예하가 말했다.
공매세력의 장난질.
새빨간 루머.
당시 조승학은 군대에 있었다.
이런 기사가 줄줄이 올라왔다.
영상이 뜨고 하한가를 찍고 반박기사가 나오기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잠깐 대기. 시작가까지 기다렸다 공매하자.”
권순진의 지휘 하에 다들 차분히 주가창만 본다.
백제 계열사 주가가 알트코인처럼 널뛰기를 한다.
폭등하다가... 폭락하다가... 다시 폭등... 또 폭락.
누군가 뭉텅이로 던지고, 누군가 뭉텅이로 긁어 올린다.
혼란 가득한 전쟁터.
기영이 머리카락처럼 삐죽삐죽한 차트를 그리며 차분히 상승한다.
그 모습을 보다가 권순진에게 조용히 물었다.
“우리가 들킬 염려는 없겠죠?”
“허리케인 펀드는 영국의 9년 된 펀드야. 5년 전에 망한 유령법인이지만, 어쨌든 자금 추적을 하려면 파나마를 털고 영국까지 털어야 해. 내부에서 말하지 않는 한 문제될 건 없어. 그리고 공매 친 게 우리뿐만 아니더라. 일부러 5분 기다렸잖아.”
“그렇긴 하죠.”
띠리리리.
“예. 윤동욱입니다.”
-백제 본사 앞입니다. 목표 출발합니다.
“네. 갈림길에서 연락 주세요. 저 말고 사장한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권순진에게 당부했다.
“채형한테 갈게요. 보안에 신경 좀 써 주세요.”
“그래. 일부러 믿을만한 후배만 모았어. 따로 계속 신경 쓸게.”
“예. 수고해 주세요.”
팀원들에 의해 소문이 빠져나갈까 걱정되긴 하지만, 말이 새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다음 수를 모르니까 알게 되더라도 대비할 수 없겠지.
- 작가의말
오늘은 씁쓸한 편이므로 두편
100% 픽션이며 재미를 위한 과장이 있고,편의를 위한 생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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