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진로상담
예하의 방송 9일 째.
백제에 선전포고한지 일주일 째.
5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친 백제 그룹주는 작전 시작 때보다 두 배로 올랐고,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르겠다.
홍보팀의 BJ는 두 명이 되어서 모닥불PD가 두 시간 방송하고 뒤이어 예하가 두 시간 방송을 하는데 중간 한 시간은 합방이다.
저녁 먹으면서 수다 떠는 방송.
선전포고 이후 7일 연속으로 한국인 개인 방송 중에서 실시간 시청자 1위를 찍고 있고, 수많은 버전으로 편집된 유투브 채널은 구독자 60만 명을 넘겼다.
그런데도 트래픽 문제로 채팅이 불가능하다.
여러 사이트에 송출해서 트래픽을 안주는 인터넷방송국.
그들에게 압박을 넣는 건 시청자다.
시청자가 트래픽을 요구했고, 타 방송국에서 트래픽을 열면 전부 거기로 간다며 협박했다.
가장 먼저 유투브가 쿨하게 허가했다.
저게 1위의 비결이지.
이제 유투브는 채팅을 열어도 방이 터지지 않는다.
채팅이 열리자 욕설은 더 많아졌다.
절대 합의 없는 고소에 대해 수없이 고지했지만, 병신은 언제나 일정량 존재하기에 법무팀이 많이 바빠졌다.
한군데가 열었으니 다른 곳도 트래픽을 주겠지.
안 그러면 전부 유투브로 몰려올 텐데 지들이 어쩌겠어.
“방송 시작할게. 화이팅.”
“어. 고생해.”
저 앞에서 신나게 떠드는 모닥불PD를 보며 예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한상 들고 간다.
“새참 왔어요~”
“우와아아 제시님아~ 밥 가져왔다아아~”
모닥불PD가 격하게 환영하며 밥상을 받았다.
언뜻 보기에도 10인분이 상 위에 깔려있다.
이제 먹방 하면서 질의응답 하는 시간.
그걸 보고 있는데 루비가 톡톡 친다.
“오빠 면담 좀 해줄 수 있어?”
“어.”
마이크를 모닥불팀 피디에게 넘기고 따라갔다.
출연자 대기실로 쓰이는 빈방에 가니 여자들이 모여 있다.
“앉아봐.”
“어.”
바닥에 앉아 둘러봤다.
열아홉 명.
BJ엔터에서 구출한 사람들.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여자들.
요즘 개인방송, 홍보팀에 들어갈 수 있을 지 연습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어둡다.
“오빠.”
“어.”
“우리가 연습해보고 우리끼리 시험방송도 해봤는데......”
“어.”
“어렵더라.”
루비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쉬울 거라 생각했어? 단순히 연습한 춤을 4분 동안 예쁘게 추는 거랑 다르지. 진행, 순발력, 유머, 편안함을 전부 전해야 하는데.”
“...... 내가 우습게 봤나봐. 나름 아이돌 센터고, 저 100만 넘는 피디들보다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어리버리하고 어색하고 재미없어.”
“저분들은 최소 만명의 경쟁자에게 이긴 챔피언인데? 예쁜 걸로 끝이 아니지.”
내 말에 모두 시무룩해졌다.
조승학에게서 해방되고, 이제 곧 백제의 힘이 약해지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그 전에 진로를 찾고 싶었는데 가장 예뻐 보였던 길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데뷔한 연예인도 있고, 유망하던 연습생도 있다.
조승학놈은 예쁜 애들만 건드렸으니 연습생들 중에서도 상위다.
하지만 쉬운 건 없지.
“그럼 우리 어떻게 살아? 오빤 앞으로 방송국 없어진 댔잖아. 그런데 개인방송도 안 되면 우린 아예 길이 없어지잖아. 아. 뭔갈 해달라는 게 아니라 조언을 구하는 거야.”
우울함이 방 전체에 깔린다.
보라빛 조명이 짙게 비추는 느낌이다.
“하아.”
답답하다.
“개인방송이 유일한 길은 아닌데. 음. 이제 말하는 건 내 생각이야. 방송국이 곧 망할 거라는 것도 내 생각이고.”
“어.”
“앞으로 진행될 모든 것에 공통적인 방향성이 있어. 탈중앙화. 미래는 모든 것이 탈중앙화 돼.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되면 어떤 방향으로 갈지부터 보면 돼. 예를 들면 비트코인의 의미는 국가화폐로부터 탈출한단 뜻이고, 무려 10년 전부터 진행됐어.”
조용하다.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이랬었지.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쉽게 얘기해줄게. 미래는 갑자기 오는 게 아니고 과거부터 이어졌어. 신문만 봐도 다들 인터넷을 하게 되면서 포탈에서 뉴스를 읽게 됐지. 이렇게 되면서 신문사는 망했지.”
“망하... 지 않았잖아.”
“거의 망해서 인공호흡기 달고 있지. 야한 수영복 사진만 잔뜩 걸고, 한 달에 10만원 광고비 받아 비아그라 광고만 도배해놨지. 그 포르노사이트 같은 모습이야말로 신문사가 망하고 있단 증거야. 20년 째 구독을 끊지 않은 노인 분들이 돌아가시면 아예 사라져.”
“어......”
“예전 같으면 이번 백제사건 같은 건 묻혔을 거야. 티비랑 신문이 백제에 돈을 받아서 덮었으면 우리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몰랐겠지. 하지만 이제 언론채널이 많아졌잖아. 언론의 중앙권력이 사라지고, 탈중앙화에 성공했다는 의미야.”
“그게 티비도?”
“어. 개인방송의 뜻은 티비플랫폼을 뿌갠다는 뜻이야. 기고만장해서 접대 받고, 가수들 줄 세워서 인사 받는 머저리 방송피디의 권력이 사라진다는 뜻이고 예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어. 광고매출마저 역전됐으니 붕괴는 시간문제야.”
“그니까. 그래서 우리가 갈 길이 개인방송 뿐이잖아. 다른 건 다 망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어?”
“신문사가 망해도 언론은 영원해. 기사는 영원히 필요하거든. 그저 탈중앙화에 성공한 것뿐이야. 덩치 크고 둔한 신문사에는 수많은 빨대가 꽂혀 있어서 기자의 노고를 제대로 돌려받지 못해. 그러니 덩치 큰 플랫폼이 무너지고, 언론이 세상 전체로 흩어지게 되지.
SNS, 블로그, 커뮤니티, 개인방송, 모두 언론이 되는 거야. 과도기가 지나면 다양한 매체의 언론이 신문기자 때보다 더 큰 수익을 벌게 될 거야. 요즘 SNS스타가 언론의 수익을 가져가고 있잖아.”
“...... 티비도 똑같아?”
“어. 전에 말 안했나? 방송사 정직원의 똥덩어리 같은 권력은 붕괴 되도 컨텐츠는 영원히 살아남아. 영화도 살아남고, 드라마도 살아남고, 연예인은 오히려 더 큰 돈을 벌어.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MC 타입이 아니라면 저기만 볼 필요 없다는 거야. 혼자 모든 걸 진행하는 건 재능의 영역이고 못 하는 사람은 훈련해도 못해. 하지만 가수도, 연기자도, 댄서도 살아남을 수 있어. 오히려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지. 그리고 세상은 계속 바뀌어. 지금은 OTT와 개인방송이 양분하는 것 같지만 한차례 더 진화하겠지.”
“어떻게?”
“말했잖아. 미래는 탈중앙화라고. OTT는 오히려 중앙화 가속이잖아.”
“...... 모르겠어.”
이해 못하겠지.
둘러보니 다들 알쏭달쏭하다.
각자에게 맞춤형 답을 줄 순 없다.
나도 모른다.
“혼자가 안 되면 팀으로 떠들든가, 카메라 켜놓고 잘 하는 걸 해. 이제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개인방송을 하고 있어. 그냥 꿀잠자는 전문가도 있어. 어설프게 남 따라하지 말고 그저 자기 재능이 가장 훌륭한 쪽으로 파고들어봐. 그게 아니면...... 모르겠다. 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가장 좋아. 정해진 성공이란 애초에 의대 빼고 없어.”
니들이 차라리 십자수만 평생 했다면, 지금 대형스타만큼 돈을 벌 텐데.
“......”
한참 침묵이 흘렀다.
답이 되었을까?
도와줄 수 없는 문제다.
돈을 뿌려주면 편하게 먹고 살 테지만, 그건 개돼지의 삶이지.
구해줘놓고 호구짓까지 하기 싫다.
일어서니 루비가 따라 나온다.
“오빠. 언니동생들이 방송국 망한다는 말을 안 믿어서 부른 거야. 다른 기획사 들어갈 수 있나 알아보고 있었거든. 몇 명은 화류계로 돌아갈 생각중이고. 그래서 설득해달라고.”
화류계도 스스로 자원해서 하는 거라면 나쁘지 않은데.
“나도... 따로 할 말이 있는데. 오빠랑 둘 만.”
“그래......”
빈 방이 없다.
“아래층으로 가자.”
방송하는 예하를 쓱 봤는데 열심히 웃으며 수다 떨고 있다.
루비와 함께 현관을 열고 나오는데, 방송중인 예하가 우연히 그 모습을 봤다.
내 집 식탁에 마주 앉았다.
맥주캔을 하나씩 두고 한 모금 마셨다.
“오빠... 연습생 회사 만들어줘.”
“...... 사장하고 싶어?”
“아니. 어떻게 그래. 자리 달라는 게 아니라 나 말고 어린 연습생들을 도와줘. 시스템을 깨고 싶어.”
니 돈이냐?
“뻔뻔하네.”
“오빠한텐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돈을 착하게 쓴다면, 사람을 구하는 데 쓴다면 얼마가 들어도 막 뿌릴 거잖아.”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몰랐는데?
루비도 예하처럼 나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
“야구계 불평등을 막기 위해 수백억을 뿌리고 고통 받는 미술계를 살리기 위해 월급 300씩 주잖아.”
“고통 받는 미술계?”
“웹툰쟁이들은 모 아니면 도래. 자기작품을 그려 성공하면 돈방석에 앉고, 자기작품에 실패해 남의 그림 어시스트가 되면 대부분 한 달에 100도 못 받는데. 옛날 도제 시스템처럼 차비만 간신히 나오는 삶이래. 그런데 오빠네 애니 회사는 천명 넘게 뽑았는데 다들 300만 원 이상에 야근비용 빵빵. 이것도 이쪽바닥에선 되게 화제가 되던데. 오빠가 그분들 도우려고 그런 거 아니야?”
웹툰 업계에서 성공한 작품은 어시스트도 돈을 많이 받는다.
새로 진입하는 이들은 밥 굶을 각오하고 있고.
문제는 어설프게 연재되는 이들.
어시는 필요한데 돈을 챙겨줄 정도로 많이 벌지 못한다.
그런 이들은 작가 어시 포함해 다 같이 고통 받는다.
“......”
그냥 평균 기업만큼 정상적으로 준 것 뿐이다.
그걸로 칭찬하는 세상이 잘못된 거지.
“나야 뭐 끝났으니 성공 욕심 없어. 그렇지만 어리고 예쁜 연습생들이 너무 안타까워. 나처럼 될까봐. 기획사가 시키는 대로 성형하고 시키는 대로 훈련받고, 그러다 데뷔해서 특 A급이 되지 못하면 한 푼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끌려 다니는 인생이. 그렇다고 연습비 정산을 없애자요~ 해봤자 아무도 안 들을 거 아냐.”
“어. 당연하지.”
“오빠의 야구팀이 하는 걸 보고 느꼈어. 제대로 본보기를 보이는 회사가 생기면 나머지도 알아서 따르겠지?”
“생태계가 바뀌면 따를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어떻게 바꾸게?”
“거대한 연습생 하우스를 만들어. 연습생을 월급 120 준다고 하고 뽑아. 천명? 이천명? 이렇게 뽑아. 뽑아서 각자 연습하게 해. 대학처럼 댄스 선생님 수십 명 고용해서 원하는 수업 들을 수 있게 해주고, 노래 선생님 수십 명, 연기 선생님도 수십 명, 운동 선생님 수십 명... 이렇게 뽑아서 언제든 원하는 수업 들을 수 있게 해주고, 카운셀러가 각자 성장할 방향만 잡아주는 거야. 그러면 연습생들 실력이 늘겠지? 걔들을 기획사에 오디션 볼 수 있게 해줘. 이정도 규모면 기획사가 찾아와서 뽑아가려고 난리겠지. 그렇게 데뷔를 도와주는 거야.”
루비는 행복한 상상을 하는지 맥주캔을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훈련비용은?”
“안 받아. 타 기획사에서 데려갈 때 우리에게 주는 것도 없고. 대신 기획사가 뽑아 가면 연습생에게 요구할 권리금 같은 것도 없고. 이래야 중소기획사들이 부담 없이 데려가지. 정산비 없이 계약하는 것도 법적으로 도와주고.”
“천국이네.”
“어. 대신 성공해서 큰돈을 벌면 기부할 수 있게 만들 되 익명으로 처리해서 기부경쟁 없게 만들어. 이러면 정말 꿈만을 보고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천사기획사네.”
“그 말 좋다. 천사기획사. 에헤헤.”
웃으며 맥주를 원샷한다.
냉장고에서 한 캔 더 꺼내줬다.
“고인물들은 어떡할 거야?”
“어?”
“2천명 연습 생이라며. 그런데 재능 있는 순으로 데뷔해서 빠지고, 못하는 애들만 남아 석유처럼 썩을 거 아냐.”
“2년. 재능 없으면 더 해도 가망 없어. 최대 2년으로 잡고, 6개월마다 성장 없는 애들 물갈이 시켜야지. 그리고 새로운 사람 받아줘야지.”
“의외로 현실적이네. 정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데뷔 못하고 계속 매달리는 동생들... 너무 안타까워. 차라리 해보고 재능의 벽을 느끼고 접는 게 나아. 자발적으로 조승학에게 옷 벗고 복종한 애들이 되는 것보다는.”
자발적 복종.
그게 가장 더럽지.
가장 많고.
구해줄 수도 없고.
“그리고 이렇게 만들면 누구나 오고 싶은 기획사가 될 거 잖아. 지원자가 몰리는데 고인물을 영원히 안고 가면 더 어린 애들이 혜택을 못 받아 양아치회사로 갔다가 망가질 테고.”
“흠.”
맥주를 마셨다.
미지근하네.
싱크대에 버리고, 시원한 걸 꺼내 마셨다.
매년 1000억 들려나.
2000명이 쓸 제대로 된 연습실 만들려면 성수동 빌딩보다 커야 할 테고.
회수할 수 없이 버리는 돈이긴 한데.
“......”
생각에 잠겨있자 루비는 맥주를 꿀떡꿀떡 마시더니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캔 더 꺼내왔다.
“판을 키우자.”
“어?”
“연습생 돕는 것처럼, 작사가, 작곡가도 지원하자. 딱 1년씩만. 작곡수업, 작사수업도 만들고. 연습생 중에 배울 사람 배우게 하고. 어차피 가르쳐서 되는 영역이 아니니 그냥 딱 1년 돈 걱정 없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자. 작사 작곡 말고도 모든 예술 영역에 지원하자. 1년씩 걱정 없이 몰입하게 만들고, 내보내고.”
“어......”
“미래 아티스트 스쿨. 매년 2000억 버리면 되겠네.”
“진짜 해주게?”
“어. 얼마 되지도 않는 데 뭐. 그런데 준비하려면 시간 좀 걸리는 거 알지?”
“우와. 꺄아. 오빠. 너무 좋아. 너무 멋져.”
자기가 돈 버는 것도 아닌데 루비가 식탁을 뱅 돌아 달려와 폭 안았다.
“루비야. 우웁.”
이게 틈만 나면 아주.
짧은 키스 후 억지로 입을 뗐다.
“예하 올 때 됐다.”
“핫.”
루비가 자기 앉던 자리로 뛰어가는 데.
띠띠띠띠 띠리링.
빠르게 비번을 누르고 문이 벌컥 열린다. 예하도 낌새를 눈치챘나보구나.
“어. 왔어? 수고했어.”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걸 본 예하가 물었다.
“언니 오빠, 뭐했어?”
웃으며 말씀하시는데 한기가 느껴지는군요.
인사가 어색했나?
싸늘하다.
내 곁에 앉는 예하에게 지금까지 대화를 전해줬다.
예하의 눈에서 또 별이 쏟아진다.
“우와아 멋있다. 역시 천사오빠. 천사 스쿨로 하자. 천사님.”
잘 해결된 건가.
“이런 얘기를 나눴어. 나 코인 좀 볼게.”
“네. 그러세요. 어머 루비언니 어디가? 나랑 한잔 하자.”
라고 웃으면서 권하는 예하.
한기가 느껴진다.
싸늘하다.
루비는 날 보며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소시장에 팔린 송아지처럼 끌려갔다.
튀튀튀.
...... 들키지 마라.
- 작가의말
미래 이야기는 100% 픽션이며 온전히 뇌내망상입니다
루비는 싫어하도록 설계된 애예요. 싫어하셔도 되지만 욕은 살짝만 자제를...
화내실 거 같아서 3일동안 2편씩 올릴게요 그 담엔... 어떻게든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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