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야구단인수2
미래펀딩 로보츠.
새롭게 바뀐 야구단의 이름이다.
인수팀 전원은 원주 구단사무실로 가서 인수를 시작했다.
구단소속 기획팀, 운영팀, 스카우트팀, 회계팀, 홍보팀 등 직원 30여명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구단주 닥똥이 인사를 올렸다.
“아... 안녕.. 하 세 요. 저.. 는... ㄱ...”
에휴 저 병신.
무대공포증의 극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선 말을 못한다.
얼굴이 빨개져 말을 못 잇는 닥똥을 보다가 나이 지긋한 어른이 나섰다.
황영석 회계사가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미래그룹에 속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쪽은 미래펀딩 로보츠의 새 구단주인......”
짝짝짝짝짝.
열화와 같은 박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전임구단주가 똥을 싸질러서 구단 직원들 월급마저 밀린 상황.
여러 기업이 군침을 흘리며 인수전에 끼어들었지만, 다들 최대한 값을 후려치는 중이었다.
싸게 살 수 있는 데 굳이 비싸게 사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고무줄 같은 협회 가입비를 깎고 깎아 5억까지 줄였고, 구단이 휘청인데는 직원 책임도 있으니 못 받은 월급은 포기하라는 식으로 인수금액을 줄이던 중이었다.
거기 가장 앞서가던 것이 백제통신이었고.
그러던 와중에 뜬금없이 나타난 미래펀딩은 모든 부채를 떠안아 주겠다 했으니 환영받을 수밖에.
나이 어린 닥똥이 구단주가 된 데에 반발도 없다.
본래 야구단 구단주는 모기업의 친족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자리고 실권은 거의 없다.
“약속대로 모든 직원 분들의 밀린 월급과 각 은행 등의 부채 모두 곧장 청산할 것입니다. 그룹 회계 팀에 자료를 넘겨주세요.”
나이 지긋한 황형이 말하니 무게감이 있다.
나나 숫기 없는 닥똥이 나서면 가오도 안 살고, 말도 안 들었겠지.
“올해 인원감축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훌륭히 구단을 지탱했다 믿고, 모든 직원의 임금을 10% 상향해 드리겠습니다.”
와아아아.
짝작짝짝.
사기를 올리려면 돈이 최고다.
“대신 저희 그룹에서 원하는 구단의 운영방침에 최대한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짝짝짝짝.
다들 좋아한다.
저 기쁨이 언제까지 갈지.
곧 밤샘 야근을 해야 할 텐데.
황형의 회계팀과 채형의 법무팀이 구단 회계팀을 만나 회계자료를 살피고, 미래 기업조사팀의 김하나 팀장은 구단 홍보팀을 만나 유니폼과 구장 등에 미래펀딩를 광고할 전략을 세웠다.
나는 예하 닥똥과 함께 스카우트 팀을 만났다.
“이들을 트레이드 해 주세요.”
“...... 예?”
처음 인수를 결심한 후 집에서 한가할 때 빈둥대며 검색했다.
MFC 로봇.
원주에 연고지를 둔 야구구단.
인기는 하위권.
성적은 중하위권.
“어? 류원상이 있어? 2군이네?”
야구는 거의 보지 않지만 적당히 안다.
노가다 아저씨들은 모두 야구광이며, 가끔 일 끝나고 아저씨들한테 고기를 얻어먹을 땐 항상 야구를 보곤 했다.
지역감정을 대놓고 분출하는 스포츠.
아재들은 서로 자기네 팀이 잘한다며 소리치고, 자기네 선수를 자랑했다.
류원상을 자랑하는 걸 하도 들었으니 기억이 날 수 밖에.
“류원상. 얘가 메이저 갈 때 1500억을 구단에 안겨줬다는 거 같은데.”
언제 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기사가 떠들썩하게 났고, 강원도 아재들이 하도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애가 2군이라니... 작년 고졸 신인이구나.”
아하.
난 이쪽에도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구나.
미래의 주식차트만이 나의 힘이 아니었어.
별 관심 없는 나조차 어디선가 들어본 선수 이름이라면 지금보단 가치가 높아지겠지?
그때부터 국내 10개 구단을 돌아다니며 2군, 육성군 선수의 이름을 살폈다.
“이아름. 이아름.... 음. 모르겠어.”
탈락.
“하정신. 하정신. 들어봤어.”
2군 성적 0.255 1루수인데 내가 들어봤으면 나중에 주전 이상의 활약을 했다는 거겠지.
“좋아 느낌 왔어. 얘 데려오고. 조형찬.. 조형찬. 느낌 있어. 얘도 콜. 김가영. 김가영... 느낌이 안 오네 탈락.”
선수 이름을 여러 번 부르다보면 느낌이 오는 이름이 있고, 아닌 이름이 있다.
느낌 오는 선수를 싹 다 모으면 어벤져스가 되겠지?
완벽해.
이왕 사는 거 최강팀을 만들자.
야구 최강팀이 미래펀딩을 광고하면 투자한 돈의 수백 배 효과를 낼 수 있을 거야.
“천재. 역시 난 똑똑해. 이지운, 지운.... 지우니. 이지운... 느낌이 애매하네.”
“오빠 저녁밥......”
저 오빠 또 이상한 짓한다.
예하는 끝없이 혼잣말하는 동욱이 살짝 무서웠다.
“이 30여명을 전부 말입니까?”
“예.”
“그... 트레이드라는 게 서로간의 카드가 맞아야 하는데. 그리고 이들은 전부 2군 유망주 같은데요...”
“우리 구단의 보호명단입니다. 이들만 보호하면 되요. 나머지 선수들 전부 트레이드 카드로 써도 됩니다. 제가 드린 명단을 트레이드 해 주세요.”
“안 됩니다. 그러면 당장 팀이 무너집니다. 올해 사기만 잘 추스르면 충분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공석인 단장 대신에 팀 구성을 책임지는 스카우트팀장이 간곡히 말했지만 동욱은 고개를 저었다.
미래를 아는 현자와 일반인이 보는 시야는 다를 수밖에.
그를 이해하지만, 따라줄 수 없다.
이것은 현자가 보는 눈높이.
미래를 아는 이와의 격의 차이를 느껴라.
“전 그룹의 방침을 전해드리는 것입니다. 명단의 선수를 최대한 잡음 없게 조용히 모두 트레이드 해 주십시오. 다른 팀에서 탐내는 선수를 줘도 되는데 너무 저자세로 하진 마시고, 최대한 손해안보는 선에서 트레이드 해 주십시오.”
“하아.. 그래도.”
“앞서 말했듯이 그룹의 방침입니다. 따르세요. 참고로 한건 성공할 때마다 1000만원의 포상금이 스카우트 팀에 지급될 것입니다. 30명 전원 데려오면 3억이네요. 추가로 혹시 카드가 안 맞으면 현금 트레이드도 가능합니다.”
“현금트레이드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코인으로 결제하세요. 비트코인으로 사면 됩니다. 협상 결과만 위에 올리면 코인 결제는 그룹에서 해 드립니다. 추적 안 당하니 이건 문제없겠죠?”
뒷거래까지 허용한다.
“허... 알겠습니다. 전원 데려오겠습니다.”
스카우트 팀장은 끝까지 이해 못 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갔다.
조용히 있던 닥똥이 물었다.
“걔들 잘해?”
“야. 내가 투자의 신 아니냐? 코인 종목들도 딱 보면 느낌이 와. 얼마나 오를지. 내가 불러준 저 명단이 나중에 다 폭발해서 최강팀을 만들 거다.”
“흠. 하긴. 너라도 뭔가 능력이 있으니 돈을 벌었겠지.”
“이 자식이. 암튼 기다려라. 곧 최강팀이 등장할 테니. 그때 되면 아, 내가 현자의 시야를 감히 의심했구나 하며 울며 뉘우칠 지어다.”
동욱은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
‘후후후. 그러고 보니 나중에 바르샤에서 뛰는 유정이가 아직 고딩이지? 나중에 발롱드로 받는 크리스 가비아디니는 어느 팀에 있을까?’
축구팀도 하나 사야지.
이름 기억나는 어린 녀석들만 모아도 세계 최강팀 만들 수 있겠다.
우후훗.
스카우트 팀 전원은 머리를 싸매며 건네받은 유망주를 분석했다.
현재 가치와 구단의 기대감 등을 계산하고 어느 정도의 트레이드 카드를 내밀어야 데려올 수 있을 지 가격책정을 해야 한다.
원래 이런 건 먼저 말하는 쪽이 손해다.
서로 구멍 난 포지션을 바꾸는 게 아니라, 아직 안 터진 유망주를 바꾸는 건 웬만해선 서로 꺼린다.
보냈다가 포텐셜 터지면 탈쥐 효과니 어쩌니 하며 보낸 구단이 욕을 무진장 먹기에 유망주 트레이드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팀장님. 쉽지 않겠는데요.”
“어쩌겠냐. 구단 방침이라는데.”
“얘는 저쪽에서도 기대하는 애에요. 최소한 주전 한명 보내야 해요.”
“달라면 줘야지 뭐. 무조건 데려오라는데.”
“얘는 진짜 안 보낼걸요?”
“조용히 만나서 비트코인 말해봐. 얼마든지 지원한단다.”
“모기업에서 관심 갖고 있긴 하나보네. 그런데 이렇게 포지션 무시하고 데려오면 망할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에휴 모르겠다. 시키는 대로 하면 자르진 않겠지. 일단 다 데려오는 것만 신경 쓰자.”
“네에...”
며칠간 밤샘작업을 한 스카우트 팀은 트레이드 전략을 세웠고, 각 구단과 접촉해 하나씩 성사 시켰다.
[미래펀딩 로보츠, 충격의 트레이드. 주전 4번 타자를 내주고 유망주 셋과 트레이드]
ㄴ 뭐야? 뒷돈 받은 거 아니냐?
ㄴ 로보츠의 레전드를 이렇게 보낸다고?
ㄴ 솔까 이건 계좌 털어야 한다 최소 30억 받았을 듯
안 받았다.
[미래, 지붕 기둥 주춧돌 다 팔아먹는다, 팀의 2선발과 클로저를 내주고 유망주 넷을 얻어온 로보츠]
ㄴ 미친. 이건 진짜 미친 트레이드다
ㄴ 구단 망치려고 지랄하네
ㄴ 올해 꼴찌 예약이네
ㄴㄴ 그래도 꼴찌는 환하 치킨스...
오히려 뒷돈 주고 사왔다.
[이런 트레이드는 국내 야구계를 망가뜨리는 행위다. 즉각 퇴출해야 한다]
ㄴ 전문가가 옳은 소리를 해?
ㄴㄴ 전문가가 아니잖아 블로거자나
ㄴㄴㄴ 아핳
충격적인 트레이드 발표가 연이어 이어졌다.
상대가 튕길수록 카드를 높이다보니 주전들 반 이상이 트레이드 되어 나갔고, 유망주만 잔뜩 받아오게 되었다.
구단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연임한 감독과, 스카우트 팀, 미래라는 요상한 기업이 욕을 무진장 먹게 되었다.
1000만원 주고 제작한 미래그룹의 홈페이지 또한 당연히 마비되었다.
“광고효과 확실하구만.”
원래 사이다가 시원하려면 맛없는 고구마를 먼저 먹어야 한다.
지금 저렇게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해 하다가 유망주들이 미친 듯이 터지면 다들 환호하겠지.
그때 되면 더 큰 광고효과를 얻을 것이다.
동욱은 빙그레 웃었다.
감독실.
지난해 월급을 받지 못해 무너지는 팀을 수습해 7위의 성적을 거둔 지장 박철수.
그는 연일 터져 나오는 트레이드 소식을 듣다듣다 끝내 참지 못하고 스카우트 팀장을 불렀다.
“이게 뭐야? 미쳤어?”
“그게... 그룹 본사의 지시라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발 빠른 테이블세터 1,2번을 다 팔고 4번 타자만 데려왔네? 1루수만 열 명이야. 수비 아홉명 다 1루에 모아둘까?”
동욱이 어렴풋이 주워들은 이름은 대부분 홈런타자이며 대부분 뚱뚱하고 느린 거포에 1루 수비가 한계다.
대개 홈런 친 선수 이름이 자주 불리는 법이니까.
“아니... 그게......”
“불펜, 클로저 다 팔아먹고, 경험 없는 선발감만 열 명 데려왔네.”
자주 듣는 투수 이름은 대개 선발투수다.
물론 잘하는 선수지만, 야구는 선발감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포수유망주는? 우리 포수 유망주는 다 내보내고, 왜 안 데려와? 1루수에게 포수 시킬까?”
“아니... 그게... 그룹의 지침이라...... 저도 말렸는데 바뀌지 않습니다. 올해 성적에 대한 책임은 절대 묻지 않겠다 합니다. 감독님도... 포기하시죠.”
“에휴. 재계약은 생각해 봐야겠는데.”
선발감과 1루수 유망주만 잔뜩 모은 팀.
과연 이 팀의 운명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닥똥이 야구단을 사 달라고 한 이유는 거대한 폭탄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됐어? 이제 해도 돼?”
닥똥이 말했다.
“어. 이제 데려올 선수 다 데려왔으니 니 마음대로 해도 돼.”
“그래.”
닥똥이 구단을 사달라고 했던 목표. 그걸 던진다.
“프로야구 계약은 불공정하며 개똥같습니다. 이건 북한의 강제노동보다도 더럽습니다.”
숫기 없는 구단주 닥똥은 미리 녹화한 영상을 구단 홈페이지와 유투브 채널에 올렸다.
그 날 야구협회와 프로야구 10개 구단과 600만 야구팬 전원이 방구탄 맞은 개미굴처럼 난리가 났다.
이건 3주후 2월 21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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