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미래 IT2
“녹음......기요?”
“네. 24시간 자동으로 녹음되고 그 내용이 웹에 자동으로 저장되는 기능. 블록체인으로 만들어야 해요.”
“에...... 생각해본 적 없는데.”
아직 구상하지 않았구나.
감옥 나오자마자 바로 한국을 뜬 후 출시한 거 같았는데.
감옥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만든 건가.
“들어봐요. 블록체인은 서로서로 연결하는 거잖아요. 이 기술이 코인에 적용된 이유는 위조나 변조,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이고요. 그런데 그걸 굳이 코인으로만 쓸 필요는 없죠. 핸드폰에 녹음기앱을 설치하고 그 내용을 자동으로 인터넷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거예요. 핸드폰으로도 확인 가능하고 인터넷으로도 확인 가능하게 만들면 좋겠죠.
무엇보다도 좋은 건 이게 법정 증거로도 채택될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엔 법원에서 채택하지 않더라도 전문가들이 이건 위조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리고 여러 사건이 이 녹음으로 해결된 후엔 이게 증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모든 자동차에 블랙박스가 설치되듯 훗날엔 모든 사람이 이 녹음앱을 설치하고 다니겠죠. 블록체인이니 해킹도 못하고, 변조하려 해도 흔적이 남으니 변조도 불가능하고. 좋겠죠?”
어느 암호화폐 전문가가 말하길 자기는 하루에 10개의 코인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복사-붙여넣기-제목입력.
끝.
코드는 전부 공개되어 있고, 거기서 한글자만 바꾸면 독창적인 코인이 되는 거다.
비트코인의 단점을 고친, 장점이 확실한 코인도 있지만 아직 대부분은 아무 의미 없는 프로그램 코드다.
씹스캠이라 불리는 이것들이 미래를 바꿀 알트코인이라 이름 붙여져 비트코인과 교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훗날 특출난 장점을 가진 코인은 가격이 오르고 아무 장점 없는 프로그램 코드는 휴지조각이 되지만 그때까진 멀었다.
현재까진 이 중 어느 건 비싸고 어느 건 싼 이유는 그저 사람의 관심정도에 달렸을 뿐이다.
사고 싶은 사람이 많은 코인은 오르고, 팔고 싶은 사람이 많은 코인은 떨어진다.
단지 그 뿐.
이게 코인이라는 인식을 넘어 기술 자체를 이용하는 시대가 되면 그때 진정한 블록체인 세상이 온다.
동욱은 그걸 한발 앞당길 생각이다.
김상철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다.
머릿속으로 복잡한 코드를 구성하고 있겠지.
“일단 의뢰비용으로 매달 천 드릴게요. 앱이 완성되면 1억 드리고, 이후 유지보수 비용으로 매달 천 드리고요. 그리고 앱을 이용해 영업을 할 건데 순이익의 10퍼를 드리죠.”
아이디어 제공에 방향 설정해줬고, 의뢰비용까지 준다. 여기에 월급과 지분까지.
“좋아요. 할게요. 꼭 하겠습니다.”
고작 300만원에 사기꾼 일당에게 끌려다니던 김상철의 앞머리 사이로 숨겨진 눈이 반짝인다.
이 머리카락을 치우면... 나보다 잘생겼으니 감춰둔다.
“인수형. 계약서 준비했죠?”
“어. 그래.”
채인수가 준비한 계약서에 방금 말한 조건을 적고 김상철이 사인했다.
블록체인 전문가 하나 획득.
“그리고 형, 리츠팀에 말해서 아이티 사무실도 빨리 마무리하라 하고, 내부집기까지 채워주세요. 어... 대충 3000명 들어갈 수 있게. 미래 IT는 만들었죠?”
“어. 자회사 형식으로 설립 끝났어.”
“잘 됐네요. 다음 손님 보러 가죠.”
동욱은 채변, 김상철과 함께 서울역 서쪽에 있는 만리동으로 갔다.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이상하게 낙후된 동네로 80년대에 멈춰있는 느낌이다.
낙후된 동네의 낙후된 빌딩의 사무실은 한겨울임에도 열기로 가득차 있다.
40평 쯤 되는 사무실에 100여개의 PC가 PC방처럼 줄서있는데 PC마다 좀비가 하나씩 붙어 인생을 갈아 넣고 있다.
여전히 멍하니 코드를 구상중인 김상철과 비슷한 좀비가 100명이나 있다.
‘훌륭한 사람들이군.’
역시 이과생은 인생을 갈아 넣는 모습이 아름답지.
셋의 방문에도 누구하나 고개 드는 이가 없다.
“여기 유성주 사장님 계십니까?”
좀비들이 슬쩍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본다.
그오오오.
안쪽 피씨에서 좀비 우두머리가 일어났다.
좀비를 이끄는 건 네임드 스켈레톤인가.
키 180이 넘어 보이는데 몸무게는 50대로 보인다.
뼈와 가죽만 있는 인간이다.
“누구세요?”
“전화하고 왔습니다. 투자 상담으로.”
채변이 나섰다.
“아앗. 그렇군요.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시죠.”
PC열기로 뜨거운 사무실 안쪽으로 갔다.
사장실인 듯한 공간은 휴식장소로 쓰는지 라쿠라쿠 간이침대들과 갈아입고 난 옷, 양말 따위가 산더미처럼 쌓인 지옥의 묘지 같았다.
스켈레톤 유성주는 부끄러워했다.
“... 음. 커피숍으로 갈까요?”
“그러죠.”
커피숍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투자를 하긴 할 건데 조건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부채를 떠안고 지분 100%를 갖고 싶습니다.”
“지분 전체를요?”
“예. 최근 투자받은 조건이 어떻게 되시죠?”
“...... 그게 비밀인데.”
“그럼 이만.”
일어섰다.
감히 돈 앞에서 비밀을 논하다니.
“아닙니다. 그리 중한 것도 아닌데 뭐. 지난 해 4억을 받고 지분 10퍼를 줬습니다.”
“4억에 지분 10퍼. 그럼 회사 가치는 40억 정도로 보면 되나요?”
“예. 그렇죠. 그 전에 투자한 이들은 더 적은 돈을 넣고 더 많은 지분을 받았지만요.”
“그 세 배를 넣죠. 사장님이 투자자 전원을 만나 설득하세요. 지분 10퍼 당 12억. 이걸로 회수하는 대신 누구하나 거절해 제가 지분 100퍼를 받지 못하면 투자는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회수할 수 있습니까?”
“예? 예예. 꼭 설득하겠습니다. 예. 설득해야죠. 안 되면 진짜 한강가야 합니다.”
유성주는 자금압박이 상당했던지 호랑이를 뒤에 두고 하늘에 내려온 동아줄을 잡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지분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직원 월급도 1년 이상 밀렸고, 은행 빚도 그렇고, 정부에서 기술벤처로 지원받은 것도 많습니다.”
불쌍한 좀비들.
1년 넘게 돈도 못 받고 일한건가.
하긴 직원 100명이 2000씩만 받아도 20억인데 투자금 규모를 생각하면 줄 돈이 없겠지.
그럼에도 좀비처럼 일하는 이공계들.
참 훌륭한 자세다.
“다 갚고, 추가로 투자금 무한히 넣을 겁니다. 지금 계획으로는 최소 천 억. 그리고 매출이 생기면 사장님 팀에 순수익 10퍼를 줄 겁니다.”
김상철에게 10퍼를 준 것처럼, 유성주에게도 10퍼를 준다.
해골의 입이 쩍 벌어졌다.
“좋습니다. 좋아요. 좋죠.”
“최대한 빠르게 지분회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지분회수 후에 곧장 투자금을 넣죠.”
“그런데...... 투자자가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끝. 다른 회사 많아요.”
“꼭 성공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예. 우선 간이 계약서부터.”
채인수가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꺼냈다.
이제 유성주와 그의 회사는 미래그룹 자회사 미래게임즈 소속이다.
김상철과 유성주에게 할일을 적어줬다.
각자 해야 할 일이 수백개다.
과연 다해낼 수 있을지.
만리동에서 채변은 바로 자기 일을 하러 갔다.
다섯 명의 경호팀이 그를 따라간다.
홀로 남은 기념으로 팔을 쭉 펴서 기지개를 한번 켜고 택시를 탔다.
“아직도 미행 있나요?”
“한번 떨어뜨리면 쉽게 붙지 못합니다. 사설 미행이다 보니. 그래도 몇 바퀴 돌아볼게요.”
“네... 역삼역으로 가죠.”
며칠간 몸을 웅크리고 거래만 했다.
쌓인 걸 내보내야 한다.
좋은데 가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집으로 왔다.
다음날은 하루 종일 가구가 들어왔다.
킹사이즈 침대들과 이불들, 온갖 전자제품들.
경호팀에 부탁해 종류별로 가장 비싼 거 하나씩 주문해 달라고 했다.
딱히 원하는 메이커나 기능이 필요한 게 아니니 그냥 비싼 걸로 달라고 했다.
저녁이 되자 예하가 불렀다.
“오빠. 시간 됐어.”
예하에겐 딱히 뭘 시키지 않았다.
예하는 눈치껏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 한다.
이 관계 이상하다.
“어.”
그래도 예뻐서 내보내기 싫다.
곁에만 있어도 기분 좋으니까.
청바지에 흰티, 붉은 기 도는 체크무늬 남방, 고딩교복 용 노쓰페이스 볼록볼록패딩.
“또 그 옷 입고 가려고?”
“어. 옷 따위가 무슨 의미야.”
한껏 멋 낸 예하는 괜히 민망해져서 츄리닝에 롱패딩으로 갈아입었다.
집 주인이 저 꼬라진데 괜히 멋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갔다.
한우오마카세.
인당 50만원으로 하루에 딱 한 팀만 받는 곳이다.
식당 입구엔 다른 이들이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들어가 계시지 왜......”
“에이. 물주와 함께 들어가야 물주가 기분 좋게 쏘지.”
채변, 채인수 변호사가 넉살좋게 말했다.
“그래요. 인사는 들어가서 나누시죠.”
오두막처럼 인테리어 된 식당은 테이블이 딱 하나 있었다.
상석 쪽에 주방이 연결되어 있고, 요리한 음식이 바로 테이블 위에 오르는 구조다.
주방장한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윤동욱이라고 합니다.”
불러 모은 사람이 먼저 인사했다.
오늘 모은 사람들은 내 재산을 공개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룹의 중추적 존재들.
채변호사가 나머지를 진행했다.
“저는 변호사 채인수입니다. 미래그룹 한국지사장이죠. 그리고 이쪽은......”
채인수가 말을 끌자 지목받은 이가 말을 받았다.
“회계팀을 맡을 황영석입니다. 반갑습니다.”
회계사 황영석은 5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백발에 포동포동한 몸을 갖고 있었다.
수염이 없네.
붙여줄까?
흰 콧수염 붙이면 딱 안선생님인데......
연봉 1억 올려주고 수염 붙이라고 할까?
“세무공무원으로 20년 있었고, 기업회계팀에 10년 있었습니다. 이제 은퇴하고 한가하게 지내려 했는데 이 친구가 느긋하게 일할 수 있다 설득해서 왔습니다. 경험 쪽으론 뭐 실망시키지 않겠죠.”
“예 잘 부탁해요. 그냥 가끔 부탁하는 거 설렁설렁 해 주시면 되고요, 말 편하게 해 주세요.”
“에이. 그래도 고용준데......”
황영석의 말에 채변이 귓속말을 했다.
돈 많은 티를 내서 표적이 되고 싶지 않다.
그 말을 하는 거겠지.
“어. 이해했어. 그래 아들처럼 대하면 되나?”
“네. 충분해요. 그리고......”
황영석 옆엔 탈모가 시작된 남자가 앉아있었다.
“반갑습니다. 라잉자산운용에서 팀장일을 하다가 개인 자산관리사로 넘어온 권순진이라 합니다.”
내게 인사하고 주위사람에게 다시 인사하는 권순진.
다음으로 옆에 앉은 뚱뚱한 사람이 일어섰다.
뿔테안경에 어마어마한 지방층을 가진 남자인데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힘든지 한 겨울임에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안 선생님의 1.5배 정도.
“안녕하십니까? 토지개발 전문가 정문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다들 저한테 말 편히 해주세요. 괜히 티나는 거 싫어요.”
얘기를 들었는지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구형재가 인사하고 나자 딱 한명 남았다.
예하는 자기한테 시선이 몰리자 잠시 고민하다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비서 예하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빠한테 전화하면 대부분 제가 받을 거예요.”
비서라.
나는 예하를 슬쩍 바라봤다.
자기가 말해놓고 건방진 거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보고 있다.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니 예하의 표정이 환해진다.
“자 자기소개도 끝났으니 다들 식사하면서 말하시죠.”
채변이 말하자 지켜보던 주방장이 음식을 내기 시작했다.
작은 그릇에 담긴 두숫갈 분량의 전복죽이 나오고, 달구어진 불판에 살치살이 올라간다.
치이이익.
“사장님 추천하시는 술 있나요?”
“허허. 20년 된 강씨소주 있는데 괜찮을까요?”
가격을 말하지 않고, 묻지도 않는다.
처음 듣는 이름의 소주를 각자의 잔에 따르는데 향긋한 복숭아향이 테이블을 가득 채운다.
뒤이어 완벽하게 구워진 살치살이 두 조각씩 각자 앞에 놓이고 불판에선 새로운 고기가 치이익 소리를 내며 익어간다.
한동안 별 말없이 술과 음식을 먹었고, 천천히 일 얘기가 나왔다.
“채형. 준비는 어때요?”
“노무팀 준비 끝났고, 시작하자마자 흥신소 천 명이 움직일 거야.”
“천... 명이요?
“국내 모든 흥신소 전부 동원하는 거지.”
“아. 그일 하는 사람이 천 명이나 되는구나. 황 회계사님은요?”
“황형.”
“네?”
“나도 황형이라 불러주게. 나만 늙어보이잖는가.”
늙어 보이는 거 맞는데요.
그러고 보니 안선생님의 옷차림이 힙합퍼다. 바지에 쇠사슬까지 단 무적힙합퍼.
“네. 황형. 준비는요?”
“지금까지 받은 자료는 분석 끝냈지. 함정에 빠지길 기다리는 중이야.”
“좋아요. 권형... 권형이라 불러도 되죠?”
“그래도 되죠. 아니 되지. 어 이쪽은 좀 미흡하지만 공매 치는 건 할 수 있어. 하면서 팀 충원하면 다음 작업도 가능하고.”
“공매일이 한 달 남았죠?”
“그래. 그 때까진 팀 구성 끝날 거야.”
“그럼 됐네요. 정... 형은 딱히 할 일이 없을 테고요.”
“헤헤헤. 그렇지.”
내가 살 집이나 쓸 빌딩 등 모두 미래그룹 리츠에서 빼온다.
정문우는 어쩔 수없이 내 존재를 알 수 밖에 없기에 이 자리에 불렀다.
“준비 다 끝났으면 시작해요.”
태연하게 고기를 씹으며 선언했다.
“그래. 내일부터.”
채인수의 눈이 빛났다.
내일.
백제그룹 사냥을 시작한다.
- 작가의말
글 중간에 한편씩 19금 제한 거는 방법 아시는 분 있나요? 도저히 메뉴를 찾을 수가 없네요. 집단지성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방법이 없으면 19파트만 다른 소설로 따로 올려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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