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36화-
주마의 숲은 언제 봐도 오싹했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벤하르트가 주마의 숲을 두려워 하는 만큼 주마의 숲도 벤하르트 일행을 어떤 의미에서는 두렵게 생각할수 있는 문제였지만, 정작 프쿠타를 제외하면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자각을 못하고 있었다.
몇몇 수준 차이를 짐작하지 못하는 저급한 마수들이 달려 들기는 했지만, 족족 벤하르트는 그들을 기절시키고 나아가 별다른 무리 없이 주마의 숲을 통과할 수 있었다.
"드디어 빠져 나왔군."
위험이 없었다고 하지만, 주마의 숲은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긴장을 하게 되었기에 그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프쿠타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이제 너희들은 어디로 갈 생각이지? 그걸 찾기 위해서 라스펠에 갔었던 것이었잖아?"
"에린델의 동쪽 끝에 존재하는 하이리루라는 도시에 갈 생각이야."
"꽤나 먼 곳 까지 가는군. 그러고 보니 령을 찾는 다고 했었던가? 아마 그곳에는 주마의 숲과 비슷한 곳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흑마의 섬이라는 곳이던데,"
"그래 그랬지. 거기서도 한번 살아본적이 있었는데, 주마의숲에 버금갈만한 했었지."
"꽤나 위험한 곳이었겠군요."
"뭐 그렇지도 않아. 그녀석들도 마수니까, 나름대로 포악하기는 하지만, 지적 수준은 어느정도 되니까, 덤비게 되면 죽는다는 공포심 정도만 심어주면 그냥 저냥 친하게 지낼수 있었지."
"그런데 에린델은 무슨 마수가 이렇게 잔뜩 있는것인지."
벤하르트의 말에 레니아는 그간 얻은 지식으로 답해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프쿠타가 입을 열었다.
"그건 반대다. 사실은 그 말은 마수가 해야 될 말이지."
"무슨 뜻인지?"
레니아는 슬쩍 프쿠타를 노려 보았지만, 프쿠타는 가볍게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말했다.
"본래 에린델은 대륙을 분단해 그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에린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이 불과했다. 수십년전 정도까지만 해도, 몇몇의 부족만이 마수를 제압할수 있을 정도의 힘을 구축해 살아 나가고 있었더랬지. 그나마도 강대한 힘을 가진 인간들은 도시랍시고 만들었지만, 룬델에 비하면 일개 마을에 불과한 이름뿐인 도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으음."
"벤하르트 방금전에 너는 마수가 이렇게 잔뜩 있다고 이야기 했었지? 하지만 수십년전 아니 그 이전 아마 라스펠조차도 만들어지기 전의 시절에 에린델은 마수들의 땅이었다."
레니아는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놀라기 보다 자신이 가르쳐 주지 못한 사실에 아쉬워 했다.
"그런데 인간이 에린델에 오기 시작했지. 한없이 약하디 약한 신체와 선천적으로 가지지 못한 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 남았다. 그것 뿐이랴. 점차 강해져 갔다. 스스로의 힘도 기술도 문명도 점점 성장해 나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마수들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수십년전에 그 판도가 달라 지게 된 것이다."
"수십년전.."
"그 있잖아 덴의 일."
"아.."
"그로 인해서 이름을 날리던 힘을 과시하던 마수들은 더 이상 인간의 적이 될수 없게 되어 버렸지. 인간이란 무서운 존재다. 벤 네가 그날밤 이야기 했던 라스펠의 일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기계를 언급했었지? 라스펠은 그것을 막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건 역으로 생각해보면 마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인간들이 에린델의 땅을 밟았을때 '인간들의 잠재력'따위를 알지도 못한 무지한 마수들은 인간을 먹이로 자신들보다 아래의 먹이사슬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냐? 기회가 한번 주어 졌을뿐이고, 인간들은 지금 마수들을 지배하고 있지 않나. 마수들은 인간들을 피해 자신들만의 영역을 굳힌 것이다. 에린델의 그 광활한 영토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 그보다 더 작은 땅에서 말이지. 너희들은 기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이곳 라스펠의 마수들에게 있어 그 기계는 바로 너희들 인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인간은 마수 이상으로 잔혹하다. 마수들이 먹기 위해 살기 위해 단순한 이유로 싸울수 있다면, 인간은 2차적인 권력을 위해 명예를 위해 부를 위해 싸우고 죽일수 있었다. 그것이 생명보다 중요한가 하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한없이 어리석으며 더러운 일임에도 '그것이' 있었기에 인간은 이렇게 성장했던 것이다.
"인간은 무서운 법이지. 생각하기에 따라 아기같이 무력한 생물 같으면서도 거대한 산같이 넘을수 없는 벽이 되기도 해. 마수들은 인간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자신들의 땅을 빼앗겼다. 부르달만 해도 그렇지? 마수들은 노리개로 잡혀가거나 인간들의 욕심때문에 죽어 나가잖나. 마수들의 입장에서 볼때 너희들이 라스펠의 기계를 보는것과 무엇이 다를까, 오히려 더 잔혹한 것은 인간일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벤하르트는 그 말에 동의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것 만큼 아름다운 생물이 아니라는 것 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마수들이 에린델에 있는 것으로 화를 내면 곤란해. 나는 흑마의 섬의 마수들에게 들었었다. 인간들이 마수들에게 한 짓은 결코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정의라거나 옳은 행동이라고 볼수는 없는 것이거든. 뭐 이렇게 도시를 만들고 마을을 만들고 하는 것 자체야 어찌되든 좋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정도는 알아 두는게 낫지 않겠나 싶어서 이야기 해 봤다. 마수들이 있어서 피해를 보는것을 따지기 이전의 문제다. 피해자인것처럼 구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네가 어떻게 해볼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 자신의 종을 우선시적으로 여기는건 어디든 마찬가지니까, 그저 마수대 인간의 대결에서 마수들은 패했을 뿐이다. 이겼다면, 아마 에린델의 인간과 마수의 이야기는 반대가 되어 있었을 테니까,"
프쿠타는 그렇게 말하며 실실 웃으며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벤하르트 약속이나 조금 지켜 줬으면 좋겠는데,"
"약속이라면..."
"대결이지 대결."
"아 그것이라면야."
레니아도 나름대로 둘의 대결은 궁금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프쿠타의 집은 숲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당만은 잘 정돈 되어 있었다. 꽤나 넓은 방을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벤하르트와 프쿠타는 대치했다.
"대련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진검승부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데,"
벤하르트는 검을 꺼내 휘둘렀다. 부드럽게 넘겨지는 검의 움직임 하나만으로도 프쿠타는 고인 침을 목으로 삼켜 넘겼다. 레니아는 둘의 싸움을 흥미롭게 지켜 보기 시작했다.
"참고로 봐주고 싶다면 봐줘도 상관 없다. 하지만 이쪽은 전력으로 갈거니까, 죽기 일보직전 까지 갈 각오정도는 하고 와라."
프쿠타는 냅다 한걸음에 내달려 벤하르트의 목을 노렸다. 기본적으로 프쿠타는 무기를 쓰지 않는 권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기를 어찌나 집중했는지 한방 한방을 방비 없이 맞았다가는 그대로 어디 한군데가 부러질 판국이었다. 벤하르트는 검을 휘둘러 프쿠타의 허리를 노렸다. 하지만 프쿠타는 피하기는 커녕 배를 들이 밀어서 벤하르트의 손은 멈칫 거렸다. 그 사이를 비집고 프쿠타는 거대한 사자의 주먹으로 벤하르트의 옆구리를 한방 가격 했다. 그 한방으로 거진 이십여 기아 정도를 날아가 벤하르트는 나무에 부딪혔다.
"벤!"
"그 짧은 틈에 용케도 방어를 했군. 하지만 아직 충격은 남아 있겠지."
"프쿠타 뭘 하는거야? 이미 승부는 났잖아."
"레니아 대련이라고 해서 뭔가를 착각한 것 아닌가? 나는 벤하르트를 이기고 싶은게 아니야. 나를 떨리게 만들어줄 승부를 원할 뿐이지. 너희들을 죽일 마음은 없지만, 지금 이 시간 만큼은 양보할수 없지. 벤하르트가 반 죽음을 당한다고 해서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하면 그만 두겠지만, 저정도로는 무리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너."
"쉿."
프쿠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차례 백색의 빛이 그를 덮치고 지나갔다.
"멋진걸."
맞음과 동시에 프쿠타는 그림같이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벤. 네가 봐줄만큼 내가 만만하지는 않을거다."
"그런것 같군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혹시라도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 전력을 다해서 와라. 나는 너희들에게 어떤 것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정히 선물을 주고 싶다면 '이 순간'을 선물로 다오."
"원하시는 대로."
서로는 거의 속도도 차이 없이 맞붙었다. 검과 주먹이 교차하는가 싶더니 순간 둘은 거리를 벌렸다. 권극과 검극이 오가는 경계에서 단 한발자국도 서로는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얼핏 대충 싸우는것 같아 보이는 프쿠타의 실력은 그 기술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너무다 굉장했다. 프쿠타는 벤하르트의 유려의 움직임 같은것을 익히고 있지 않았지만, 순수한 자신의 경험 만으로 벤하르트의 유려의 움직임을 상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궤도만 잡다가 끝낼수는 없겠지."
순간 프쿠타의 손이 벤하르트가 예상하지 못하는 각도에서 그를 잡아 비틀었다. 거기서 손을 뻗는다면 당연히 잘릴수밖에 없는 그런 공격권에 벤하르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좋아. 좋아. 역시나 벤하르트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중에서도 단연 높은 수준이로군. 하지만 너무 물러."
너덜너덜한 팔은 눈 한번의 깜박 거릴 시간만에 수복되어 있었다.
"방금 자를수 있었을텐데, 왜 자르지 않았지? 팔이 걱정이라도 된건가? 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서걱 하고 살이 잘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프쿠타는 스스로의 팔을 스스로가 잘라 버린 것이다. 그랬음에도 잘라졌던 팔은 어느샌가 붙어 있었다.
"이런 거다. 너는 무의식중에 배려를 하고 있다. 아까도 오면서 마수들은 전부 기절정도에 그치도록 조절 했었지? 항상 그렇게 자신을 제어하니까, 본 실력이 나오지 않는거야."
"저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게 자잘하게 상대방을 '적'일 지라도 배려해 버리니까, 네 실력은 폄하 받고 있는것이다."
"폄하라고?"
"트레이야와 제네스를 만났을때 너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었지. 트레이야와 제네스에게 들은 네 실력과 내가 실제로 보고 느낀 네 실력은 달랐다. 아니지. 나도 7법이 아니었다면 네 그 실력이 진짜 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너는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어."
"그렇지는.."
"이전에 들었던 네 이야기. 중요할때 위기를 넘길수 있었던 것이 운만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고 생각할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다른 이유도 있을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나? 그정도의 위기가 아니면 너는 진짜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그걸 지금부터 확인해 봐야겠어."
프쿠타는 사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손을 까딱였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기가 그의 전신에 충만해 있었다.
"보여다오. 네 진정한 실력을."
"그러니까 그런건 없다고요!"
- 작가의말
연참대전도 이걸로 끝이군요. 참 길고도 짧았습니다. 이제 저는 동면(아니고 시험공부)에 들어가야 되겠군요.
라고 하지만 한 두화 정도는 더 올릴 생각입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이죠. 사실 오늘도 더 써서 올리려 했지만, 어쩔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기까지..
연참대전 함께 달려와 주신 독자님들 감사하고요. 추천해주신 꼬메내요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은하계님 betray님 Novaster님 심생종기님 아히이잇님 선생님(!?) 알테마웨폰님 uiop님 그리고 그외 많은 글을 봐주시는 님들 감사합니다.
드디어 몇번인지 모를 연참대전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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