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60화(618화)-왜억(孬憶)(5)
"리스.."
리스는 고개를 들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벤.. 오랜만이네.."
모습은 여전히 어린아이인 상태여서 목소리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녀의 말투는 평상시로 돌아와 있었다.
"오랜만..이 아니잖아! 어째서 이런 곳에 네가 있는거야!"
"하하.. 그렇게 의외였나?"
"말 돌리지 마."
"너무한데 그래? 아무리 나에게라고 해도 이런 병자에게 추궁은 너무한 것 아냐?"
"....."
벤하르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안고 있던 손을 떼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중병에라도 걸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은 괜찮은거야?"
걱정어린 벤하르트의 눈에 리스는 자신의 몸을 만지며 말했다.
"괜찮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뭐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그럼 다시 본제로 넘어가서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거야?"
"글세.."
"리스 나는 지금 진지하다고."
벤하르트의 올곧은 눈에 리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알았어. 이야기해줄게. 하지만 이야기 한다고 해도 뭐 대단한건 아니야. 가렌더 부크에서 너와 헤어지고 난 뒤에 조금 시간이 남았었잖아?"
벤하르트는 일전에 리스와 했던 '시간 떼우기'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랬었지."
"그 시간에 나는 네 다음 임무를 하나 해결해 주려고 했던 거야."
"뭐..?"
"그 남는 시간동안 네 임무 하나를 해결해주기 위해 이곳에 왔던 거라고,"
"어째서 그런 일을.."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네게 하나 빚을 만들어 둘까 해서 말야.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 답지 않은 행동이었나?"
리스는 벤하르트에게서 한달이라는 시간을 들었을때 그 비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순간엔가 그녀는 벤하르트와 여행을 하는게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녀 혼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니 마땅히 하고 싶은게 존재 하지 않았다. 한달이라는 나름대로 긴 시간.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그 시간을 벤하르트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사실상 벤하르트의 임무를 하나 들어주는 것은 벤하르트와의 여행이 줄어 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그 선택에 대해 후회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의욕에 타올라 그녀는 에시오르를 찾았고, 바로 벤하르트의 임무를 '대신'해 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분명 내가 들어오기 전에 한번 망자들의 실력이 급격하게 강해졌다고 했었지,, 그건 리스가 들어왔기 때문이었구나,'
"이거 미안하게 되었는걸. 벤. 이렇게 될 줄이야."
"사과 하지마. 너는 그런 여자가 아니잖아? 자신이 한 일에는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든 잘못되었든 가슴을 펴라고, 그것이 바로 리스라는 원의 흡혈귀잖아? 너는 완고하게 정점에서 존재하지 않으면 이쪽도 힘이 빠진다고, 답지 않다고 한다면 그쪽이 가장 너 답지 않아."
"이런 몸이 되어 버려서 말이지."
리스는 어린 아이가 된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억에서 보았던 작은 여자아이 7살쯤 되었을까 긴 금발의 머리카락과 외모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작은 그녀는 조각같이 귀여웠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그 상태네?"
"벤. 네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나의 심장은 녀석들에게 빼앗겼겠지."
"아오이스 인가.."
"그런건 몰라. 다만, 이 결계를 만든 녀석의 목적은 이 결계에 들어온 자들의 '힘'을 얻는 것.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릇이야. 그것이 망자화되든 혹은 이 세계 자체를 '힘'의 단위로 삼던,"
"그런데 심장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지금 네가 바라보고 있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 하나를 제외하고 나의 힘은 전부 빼앗겨 버렸어."
"뭐.."
"정확하게는 나를 지키는데에 사용했다고 하는게 좋겠지. 나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서 내 외부의 힘을 전부 사용해 버린 거야.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겠지만, 지금은 이전과 같은 힘을 낼 수는 없어. 적어도 이곳에서는 말이지. 밖으로 나가면 얼마 안있어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어? 왜 웃는거야?"
"아니 너는 말야. 사실 이제까지 너를 볼때 언제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고고해서 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같이 다니면서 조커나 사기를 쓰는 것 같이 만능의 면죄부처럼 말야. 하지만 너라고 해도 이렇게 당할수는 있는 거구나."
"웃을일이야?"
"아니 전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어쩐지 반가웠을 뿐이야. 너도 한꺼풀 벗겨내면 평범한 여자구나 싶어서 말이지."
"평범.. 이라고?"
리스는 쓴웃음을 짓고 벤하르트를 바라보았다.
"그 광경을 보고도?"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벤하르트의 감정을 시리게 만들었다. 그는 처참했던 그녀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 그 광경을 보고도.."
"....."
리스는 잠시 놀란듯한 얼굴을 해 보였지만, 이내 표정을 감추었다.
"네가 잘못하지 않았다는건 아니야. 하지만, 그것을 너만의 잘못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말야. 나는 그렇게 네 잘못이었다고만 생각하지는 못하겠어. 내가 '죽이지 못하는 것'은 그저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을 뿐이야. 그저 내가 죽이지 못할 뿐이지. '네가 죽였다고'해서 멸시하거나 환멸감을 표출하는 것과는 달라. 비유하자면 조금 그렇지만 나는 레니아가 죽였을때도 딱히 레니아를 경멸하거나 한 적은 없다고,, 아 그렇다고 그 일이 잘했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지만 말이다.."
"후후.. 역시나 벤.. 정말 내 예상을 하나씩 뛰어 넘는다니까, 이런 '괴물'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글세 셀 수 있을정도로 많을지도,,"
"단 한명도 없었어."
벤하르트는 그 말에 대답하나 할 수 없었다. 그 한마디는 너무도 소름끼칠 정도로 고독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말했지? 착한 사람따위는 질릴 정도로 봤다고, 하지만 어느 하나 내 본 모습을 보고 너와 같은 행동을 한 사람은 없었어. 나는 누구라도 좋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았지. 무엇을 가져다 붙혀도 좋아. 공포든 열등감이든 혐오든 이질감이든 무엇이라도,, 결과적으로 나는 언제나 혼자였던거야."
"하지만 숨기려고 한다면 할 수 있었잖아? 네 힘이라는 것은.."
"어렸을때도? 내 힘을 조율 할 수 있게 된 것은 고작해야 수천년 전의 일이야."
'고작해야 인거냐?'
"그 전에는 내 힘을 제대로 주체할 수 없었지. 무슨 이야긴지 알겠어? 이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거야. 지나친 일들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낙인 찍혀 버린 괴물과 어울리는 것 따위는 이미 불가능하게 되어서야 나는 힘을 조율할 수 있게 되었어."
"힘이 있다고 전부 좋다고만 여길 것은 아니구만,"
"그렇지? 정말로 가지고 싶은 것은 이 제멋대로인 '힘' 때문에 얻지 못한 것이니 말야."
리스는 어린 아이답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벤하르트는 입을 열었다.
"리스."
"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마. 이건 어떤 의미로든 '내 일'이니까,"
"확실히 그렇지. 하지만 이런건 네게 있어서는 어찌되었든 상관 없는 것 아냐?"
"왜 상관이 없어!"
벤하르트는 리스에게 소리를 질렀다. 리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벤. 아까전에 말했었잖아. 옆에 있어 주겠다고, 그건 아직도 유효한건가?"
리스가 갑자기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면서 말을 돌리자 벤하르트는 의아해 했지만, 곧 흔들림 없이 말했다.
"그래. 얼마든지.."
"평생이라도?"
"가능하다면,"
"그럼 레니아는 어떻게 할 건데?"
"....."
"하여간 너란 녀석은 그런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야. 조금 딱 부러지게 되어서도 그런점만은 변하지 않는다니까, 너한테는 레니아가 있잖아? 나 따위 사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잖아.. 어차피.. 나는 너와의 이 시간을 빚을 지우고 너는 나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관계에 지나지 않는 단순하게 따지면 이쪽이 강압적으로 너와 함께 붙어 다니고 있을 뿐인 관계잖아? 내가 이렇게 당한건 내쪽에서도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지만, 이 과정 자체는 그렇게 네가 꺼려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무려 원의 흡혈귀인 이몸이 자발적으로 나서 준거라고?"
벤하르트는 손을 들었다가 리스의 얼굴앞에서 손을 그대로 내리며 말했다.
"안되겠다. 도저히 그런 얼굴은 칠 수가 없어. 잘 들어 리스. 나는 레니아를 구할 거다. 설사 누가 방해를 하든 누가 가로막든 상관 없이 절대적으로 그녀석을 구할 거야."
"....."
"하지만 너를 이용한다는건 이야기가 달라. 너를 이용해서 레니아를 구하게 된다면,, 레니아를 구하고 너를 잃는다면 그것만으로 나에게는 실패야. 그런 일 따위 용납 할 것 같아! 설사 이번에 네가 제대로 해결 했다고 해도, 네가 이런 꼴이 되어 버려서 내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냐고! 웃기지마.. 네가 내게 있어서 그정도 밖에 안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너를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는 도구로라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였던 거냐고? 나는 그런 생각이 추호도 없거든. 레니아를 구하는것에 절대적으로 네 희생이 있어야 한다면 나는 '그 방법'만은 택하지 않을거다. 나 따위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다고? 나를 누구로 보고 있는거냐? 네가 어떻게 되면 내가 괜찮을리 없잖아!"
리스는 벤하르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이나 바랐던 관계는 자신이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이루어져 있었기에, 그녀 답지 않게 왈칵 눈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지고의 시간 이 별이 있기도 전부터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랬던 것을 얻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기에, 그 기분이 행복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혼란해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벤하르트에게 보일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갈무리 한채 간신히 표정을 유지하고 말했다.
"처음 만났을때가 생각나는걸, 그때는 이런 이야기를 네 입에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도 이런 이야기를 네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부하로 삼으려고 그렇게 노력 했었는데 말이지."
'그때 강제로 내 수하로 삼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야..'
"부하는 무리겠지만, 친구라면 얼마든지 괜찮다고,"
'정말로 둔감한 녀석이라니까,'
그녀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벤하르트 그거 알아?"
"뭘 말야?"
"방금 한 말 뭔가 고백이라도 받은 줄 알았다니까,"
"그 그런 의도로 말한건 아닌데 말이지."
"알고 있다고,"
"그나저나 그러면 너는 계속 그 상태인거야?"
"아마도 한동안은, 적어도 이곳은 빠져 나가야 내 본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여기에 귀속된 한번 잃어버린 힘을 다시 빼앗는 것은 극단적인 수를 쓰지 않으면 안되거든."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잃었던 그 날 리스가 무리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너한테는 이래저래 신세만 지는구나.."
"알고 있으면 앞으로는 더 잘하라고,"
"잘 알겠습니다. 원의 흡혈귀님."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곳의 최상층에 이 공간의 핵이 있을거야. 그것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그렇지."
"그나저나 리스 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잡힌거야? 아까부터 잊고 있기는 했는데, 네가 이렇게 잡히다니 그렇게 적이 대단한 것이었어?"
"아니 별로 망자라고 불렀던가? 그것도 별것 아니었고, 이곳을 돌파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어. 하지만 이 '주술'에는 당할 수 없었지. 이 주술은 품안에 상처를 입은 자라면 누구든지 피해갈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강함과는 상관이 없지. 나는 오히려 네가 어떻게 해결한 건지 궁금한데? '그때의 일'을 떠올린 것 아냐?"
'상처.. 그러고보니 나는 어째서 레니아의 일을 떠올리지 않았던 것이지?'
이니프의 경우는 자신의 일생을, 리스의 경우도 그 긴 시간의 기억을 보여 주었다. 자연히 자신도 '그 기억' 외에도 레니아와의 기억또한 나와야 했을 것이다. 문득 그는 또하나의 자신을 떠올렸다.
'설마..'
"어쨋든 그래서 단번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거야. 나 치고는 최악의 실수라 할 수 있었지. 네가 오지 않았다면 이대로 먹혀 버렸을지도,"
"확실하게 말해두겠는데, 앞으로 이런 개인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아줘."
"알았어 알았어. 너무 그렇게 열내지 마."
리스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그 이상으로 귀여웠다. 지고의 시간을 살아온 원의 흡혈귀라고 해도 외향이 어린아이에 불과하니 이런 당연한 대화에서도 위화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게 뭐라 들으니 느낌이 묘한걸.."
"그래? 인형으로 말할때 같은 느낌 아닌가?"
"글세.."
'네 지금의 모습과 인형과 비교할 수는 없지.'
"그러면 목적지는 최상층인가? 하지만 벤 나는 지금 상당히 힘이 약해져 있는 상태야. 아마 직접적인 도움은 거의 힘들다고 봐도 무방할지 몰라."
"괜찮아."
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벤하르트의 실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럼 가자."
'읏..'
방을 나서려 할 때 벤하르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니프와 에실러를 떠올렸다.
'이거 조금 애매한 것 아닌가?'
에실러는 그렇다고 쳐도 이니프의 경우는 분명히 리스와의 상성이 좋지 못할 것을 벤하르트는 직감적으로 짐작했다.
'괜찮은거..겠지?'
- 작가의말
어제는 밤을 세고
오늘은 결혼식을 다녀오고
한숨 자고
고치고고치면서 소설을 쓰고,
눈커풀이 슬슬 감기네요. 정말 잘 쓰고 싶었는데, 쉽지 않아요.. ㅠㅠ..
잘만 하면 더 잘 쓸수도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소설이라는 것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아 결혼식장에서 댓글 보면서 어찌어찌 지친 몸을 이끌고 와서 소설을 쓸수 있었네요. 오늘은 어쩐지 더 감사스러운 날이었습니다. 하도 지쳐서 말이죠.
연참대전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소설을 쓰지 않을 그런 날이었다죠
겨우 1분 남기고 세이프 했네요.
모두들 즐거운 주말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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