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51화-하이리루(1)
"이겼다."
팔짝 팔짝 뛰면서 좋아라 하는 레니아를 보고 벤하르트는 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어떻게 이긴거야."
"음? 뭐가 어때서?"
"뭐가 어때서는 공간이동으로 도착해서 이겼다고 하면,"
"쯧쯧 패배자의 변명이란 이다지도 추잡한 것이었구나.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혹시나 속마음이었다면 속마음으로 생각해줘. 다 들린다고,"
"아 그래?"
레니아는 배시시 웃어 젖히고는 말했다.
"뭔가 불만이라고 해도 내 승리가 벼하는건 아냐. 나는 마법사라고? 애시당초에 평범한 달리기 승부라고 하면 내가 너를 이길수 있을리가 없잖아."
"아니 그래도,"
"네가 기를 사용해서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는거나 내가 마력을 이용해서 내 신체를 강화하는 것 둘은 별반 다르지 않잖아? 그렇다는건 내 마력을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 없는것 아냐? 뭐 그게 아니어도 말이지."
레니아는 낄낄 거리며 웃고 말했다.
"나는 분명 먼저 도착하는 쪽이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거든. 딱히 달리기 승부라고 한정 지은 적은 없어."
"그랬었나?"
"그랬어.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정도로 타락하거나 하지는 않았거든?"
"별로 타락과는 관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내가 이길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거잖아."
"그렇지도 않아. 벤 네가 있는 힘껏 달려서 2만 기아 이상의 차이를 벌리면 네 승리였지. 나도 방금전의 마법으로 더 마법을 사용할수는 없었으니까,실제로 그냥 달릴때는 점점 차이를 벌렸지? 하지만 네 어리숙함이 패배의 요인이었던 거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벤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래."
그는 퉁명스레 말했다. 승패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스스로 생각했던 것 보다 호승심은 더 큰 것이었다.
벤하르트는 달릴때 진즉에 레니아를 제칠수 있었다. 애초에 한껏 강화한 신체는 레니아의 마법으로 끌어 올린 신체능력을 상회하고 있었다. 달리기에 한정한다면 레니아가 전력을 다해도 벤하르트는 그녀를 따라오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앞지르면서도 그가 더 거리를 벌리지 않은것은 레니아를 염려한 나머지 자신의 시야에 두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벤 꽤나 빠르게 왔지?"
"그래. 나도 지칠 정도로 달렸으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손하나 까딱 하고 싶지가 않아. 거의 밤낮없이 그렇게 빠르게 달려본건 처음이거든."
"나도 심장이 쿵쾅이는것 같아. 그런데 정말 괴로우면서도 뭔가 뿌듯한게, 괜시리 기분이 좋은것 같아."
"그러냐. 나도 이해는 할수 있을것 같긴 한데, 지금은 그냥 쉬고 싶은 마음 뿐인데,"
벤하르트가 단순한 체력으로 이정도로 지친것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증상이었다.
"마수는 어떻게 됐을까."
"전력으로 우리를 향해 똑바로 노리고 왔다면 역시 제치는건 쉽지 않았겠지만, 순찰을 해서 우리를 찾아야 했을테니까, 그 조금의 시간을 벌었다면 여기까지 쫓아올 수 있을리가 없지."
"아냐 레니아. 우리는 이미 목적지를 말했잖아. 그러니 따라올수 있지 않을까?"
레니아는 턱에 손을 가져가 조금 생각했다.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건 아무래도 쫓아오지 않는 것 같아. 이건 예상이지만, 촌장의 반응을 볼때, 그 필린이라는 남자는 쉽게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벤하르트도 레니아의 말에 수긍하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말하는 것도 왠지 마을의 마수와 필린의 마수는 다르다는 것처럼 이야기 하기도 했고, 거기에 필린이라는 사람은 네가 가지고 있는 마수의 언어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런거지. 뭐 이제와 따라 붙었다고 해도 그녀석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건 또 모르지. 나는 정말 지쳤거든."
"얼마나 무식하게 뛴거야 너는. 분배정도는 해가면서 뛰어야지."
"너처럼 똑똑하지 않아서 말야."
"그럼 여기서 조금 쉬다 갈까."
레니아는 자신의 공간에 손을 집어 넣어 돗자리를 하나 들고 바닥에 깔았다.
"그거 편리한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마도구로 하나 만들어 줄게. 이용요금은 한달에 1마크닐 정도만 내줘."
"악덕이잖아. 그냥 가방을 사용하고 말지."
벤하르트의 반박에 레니아는 정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공짜잖아?"
"아 그렇군."
둘에게 있어서 금전의 개념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1마크닐이든 100마크닐이든 관계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왔다는건 슬슬 벤 너도 욕심이 생겼다는 건가?"
능글능글 웃으면서 레니아는 재밌다는듯 말했다.
"뭐?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신이었을때는 금전 감각이 전혀 없었지? 그 때는 같이 사용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상관 없었지. 내가 사용한다 해도 네가 알수 있는 범주 내였을테고, 네가 사용하는건 거의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도 알만큼 알거든. 그래서 조금 거북해진것 아냐?"
"읏.. 아니 돈은 정말 아무래도 좋아. 그건 진짜야. 지금이라도 레니아 네가 전부 달라고 하면 내놓을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 네 말대로인것 같아. 예전에는 주도가 나였다고 생각해서인지, 어떻게 사용하든 마음 편하게 사용할수 있었지만, 지금은 너도 말했듯이 알만큼 아니까, 조금은 가리고 싶어졌을지도,"
"그렇게 순순히 시인하다니 재미없게."
볼에 바람을 집어 놓고 레니아는 괜히 불평으로 투덜거렸다. 그 모습은 벤하르트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귀엽게 느껴졌다.
"레니아 이런 말 하기는 뭣한데 말야."
"뭐?"
"너도 참 다양한 표정을 지을수 있게 됐구나 싶어서."
"무 무슨 소리야."
그제야 레니아도 무심결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떠올렸다.
"아니 아니 칭찬이야."
레니아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벤하르트마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레니아는 얼굴을 푹 숙이고 말했다.
"원래 뭐든지 바뀌기 마련이잖아. 네가 바뀐것 처럼 말야."
"그건 그렇지. 그냥 보기 좋아서 한말이었어."
레니아는 그의 말을 듣고 꽤나 고민을 하게 되었다. 본래라면 그녀는 스스로의 감정을 좀처럼 보이는 것을 그렇게 좋아라 하지 않았다. 스스로 의식해서 보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이런실수'를 하지 않았지만, 그 실수를 마음에 들어하는 벤하르트를 보니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하지만 역시 성격에 맞지 않아.'
"레니아!"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밀쳤다. 이미 한두번 겪는 일이 아니었기에 레니아도 그 밀치는 힘에 편승하여 능숙하게 한바퀴를 굴러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방금전 그녀가 있었던 곳에는 상당히 거대한 발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얕아."
벤하르트는 어느샌가 검을 뽑고 있었다.
"벤 뭐야 방금."
"공중에서 날아왔어. 추격자일까?"
"설마.. 그리고 벤, 네가 그렇게 밀어 주지 않아도 내 스스로가 충분히 피할수 있었어. 너보다 감지가 더딜 뿐이지. 나라도 어느정도 들어오게 되면 알수 있단 말야. 얼마나 깜짝깜짝 놀라는지 알아?"
"그래도 혹시라는게 있으니까,"
"그 혹시는 너나 걱정하라구."
레니아는 폴짝 뒤로 뛰었다. 레니아를 노렸던 마수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레니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레니아의 양손에서 발하는 마법은 그대로 마수를 꿰뚫었다.
"뭐 이정도지. 벤 참고로 공격을 과하게 한건 내가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라거나 그런건 아니야. 이녀석이 오늘 식사라서 이렇게 잡은거라고,"
"알고 있어. 굳이 그렇게 말해주지 않아도. 그나저나 추격자인건가?"
"아니 그렇지는 않아. 이녀석은 단순한 마수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거야?"
"이녀석이 마지막에 한 말은 '아깝다.' 였거든."
"잡지 못해서 아깝다라는것 아냐?"
레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마수의 언어는 함축적이지만 하나의 단어의 느낌이 다르거든. 방금전의 아깝다는 말이지 '먹을수 있었는데'아깝다 라는뜻이었어."
"그게 뭐야?"
"예를들자면 책에서의 괄호 정도의 의미? 그러니까 방금전 마수의 말은 아깝다 였지만, 그 함축적인 의미를 그대로 늘여 놓으면 (먹을수 있었는데)아깝다. 라고, 마수의 언어는 그런게 가능하거든. 인간과는 여러모로 다르다는 거지."
"그러니까 한마디를 해도 그 말의 함축적인 뜻도 느껴진다는 이야기?"
"그런거지. 편리하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지능이 낮은 마수들은 자기 생각을 읽혀 버리니까, 애매한 대화법이지. 인간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단어 하나에 본심이 섞여져 나오니까,"
"거 참 미묘하군."
"어쨋든 이녀석은 단순히 나를 식사용으로 하기 위해서 잡으려 한거거든. 추적자일리는 없을거야."
"그나저나 이상한걸. 그렇다고 한다면 이 결계를 어떻게 뚫은거지?"
"뚫은게 아냐 잘 봐."
마수의 다리는 불에 그을린듯한 상처가 있었다.
"아마도 이녀석은 여러번 이런 짓을 했을거야. 특유의 속도를 이용해서 마력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틈에 사람을 낚아서 먹었던 것이겠지."
"그럼 마력석도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잖아."
"뭘 새삼스레, 이미 예전부터 느꼈던 거잖아. 마력석은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해도 최대의 안전을 보장하거나 하지는 않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방금 그거 정말 위험했다고,"
"글세. 위험하기야 하지만, 에린델 사람들도 힘하면 자신있는 사람들이니까, '이정도'를 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의한다는 이야기겠지?"
레니아는 씨익 웃으면서 몇걸음 더 걸어가 나무 푯말을 지목했다. 그 푯말에는 주의문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말야. 아무래도 하이리루는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야."
"그런것 같군."
하이리루에 다가가자 마력석을 중심으로 마수의 빈도는 상당히 높아졌다. 마수들의 대다수는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구분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들이 보기에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그저 연약해 보이는 남자와 갸날퍼 보이는 여자에 불과했다. 때문에 '보통'이었다면 다소의 상처를 무릅쓰더라도 진작에 덮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벤하르트가 무시무시할 정도의 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그대로 죽어 버릴 것 같은 그 살기에 마수들은 스스로의 본능에 의지해 한발도 움직일수가 없었다.
"저기 레니아 이거 정말로 지치거든."
"맥빠지는 소리는 금지. 그런 말을 하면 기세가 누그러지잖아. 봐 벌써부터 둔한 녀석들은 으르렁 거리면서 달려 들려고 하잖아."
"하지만 이거 정말 지친단 말이지."
"쿠오오오!!"
살기가 느슨해졌는지 마수중 하나가 괴성을 내질렀지만, 이내 레니아의 차가운 시선에 낑낑대며 물러났다. 그 시선은 마수에 그치지 않고 벤하르트에게 넘어갔다.
"알겠습니다."
벤하르트는 평소에는 지어내지 않는 진중한 표정으로 오면 죽이겠다는듯 살기를 내뿜으며 한걸음씩 걸어갔다.
"그나저나 이래서야 하이리루 근처에는 마을 하나 없겠는걸."
눈에 보이는 어슬렁 거리는 마수들만 다섯 정도였고, 조금 떨어진 곳까지 합치면 상당한 수의 마수들이 존재했다. 물론 이전에 습격했던 마수들마냥 수준이 높은 편은 아니어서 보통의 에린델의 사람들이라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그만큼 저조한 눈치 때문에 살기를 내뿜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한번씩 노리고 들어왔던 것이다.
괜한 살생을 싫어하는 벤하르트에 맞추어 레니아는 살기를 내뿜으며 가기를 권유했고, 벤하르트는 당연히 그것에 동의 했지만,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노동이었던 것이다.
"레니아 조금만 교대해주면 안되겠지?"
"나는 여기 이녀석들 다 죽여도 별로 상관 없는데?"
그녀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네 네. 제가 하겠습니다."
농담이라는 것을 알아도 레니아의 본심은 아마 저것일 것이다. 그녀는 이해타산에 밝았고 또 벤하르트만큼 그정도로 나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기껏해야 벤하르트가 그런것을 싫어한다는것 하나 뿐이었다.
"벤! 저기야 저기. 하이리루가 보여!"
"오오.."
화색이 도는 벤하르트를 보고 레니아는 너그러운 자태로 벤하르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인심썼다."
몸이 들썩 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들은 하이리루의 앞에 서게 되었다.
"뭐 뭐냐 어디서 나타난거야?"
"방금 뛰어서 도착했는데요?"
레니아는 밝게 웃으면서 보초를 서고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어.. 그랬었지."
'이녀석의 마법은 점점 대단해져 가는구나.'
그나마 레니아가 도리를 지키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곳까지는 무슨 일로 온건가?"
"저희는 여행객입니다."
"두명이서 저 마수들을 넘어 온건가?"
"예. 생각보다 얌전하더군요."
"그렇지는 않았을텐데, 대단하군. 여행객이라고? 하이리루의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것이겠지?"
"물론입니다."
보초병은 방에 들어가 종이 하나를 들고 나왔다.
"별다른 신원 확인은 하지 않겠지만, 거기에 서약을 해주어야 하네."
"이게 뭡니까?"
"다른건 아니고 이 도시에서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일절 묻거나 따지지 않겠다는 이야기지."
"그건 마수에 관한 이야기겠지?"
"오 거기 이쁜 아가씨는 꽤나 눈치가 빠르군. 아니 마수뿐 아니라 우리 군에게도 복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이야기지. 이곳은 철저한 규칙 속에서 존재해야 하거든. 그렇지 않다면 저 흑마의 섬을 끼고 항구도시 같은것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을 테니까,"
"으음."
망설이는 벤하르트를 보고 보초병이 말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네. 어차피 무리하게 이것을 남용하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지.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조금 이해가 안가는 규칙 같은것은 있을지도 모르니, 그런 점만 조금 명시하면 안전하게 이곳에서 즐기다 갈수 있을 것이네."
"선택의 여지도 없잖아?"
"그렇지."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서명을 하고 난뒤 보초병의 안내에 따라 에린델의 항구도시 하이리루에 들어갔다.
- 작가의말
댓글이 풍족한 날에는 입이 귀에 걸리는 군요. 그런게 글쟁이인것 같습니다. 오늘은 축구도 못보고 열심히 소설을 쓰느라 바빴네요. 후회는 없습니다만,,
어쨋든 모두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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