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51화-
"크으.. 하아.. 아아."
리스는 비틀 거리며 부들부들 떠는 몸으로 동굴에 들어왔다. 그녀 답지 않은 거친 호흡 소리는 조용한 동굴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하아.. 으하아.."
마른 숨소리는 누가 듣기에도 숨이 막혀 올것만 같이 괴롭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동굴의 평평한 부분에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놓고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한차이나 신음 소리를 내던 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보인건 온몸을 피로 적시고 있는 벤하르트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그녀는 혼이 빠져나간듯 넋이 나갔다. 호흡은 더할나위 없이 거칠어 지고 목이 마른 사람에게 권하는 한잔의 물처럼 배가 고파 죽을것 같은 사람에게 권하는 밥 한공기처럼 나흘을 꼬박 자지 못한 사람에게 권하는 한순간의 잠처럼 달콤한 유혹이 그녀를 엄습했다.
눈의 흰자위 부분이 붉게 되어 미친 것만 같은 눈으로 그녀는 이전보다 더욱 거칠어진 신음성을 내며 천천히 벤하르트에게 다가갔다.
"그만둬.."
그 차가운 목소리에 흠칫 하며 리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레니아.."
레니아는 곧 죽을 상을 하면서도 날카롭게 리스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 때문일까, 리스는 더 갈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리스.."
"꼴이 말이 아니네. 욕망에 져버릴뻔 했어. 고맙다고 말해둘까? 레니아."
여전히 숨은 거칠었지만, 리스의 말투는 평상시로 돌아와 있었다.
"그건... 이..쪽이 해야 할 말이야."
레니아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창백한 안색으로 그녀는 손가락을 까딱여 무언가를 손에 쥐었다.
"리스 이것을 벤에게 좀 먹여줄래?"
리스는 두말 하지 않고 레니아에게 약병을 받아 벤하르트에게 다가갔다. 침을 꼴딱 삼키면서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벤하르트의 입에 약을 흘렸지만 벤하르트는 약을 먹지 못했다.
"레니아 벤.. 약을 못삼키는데?"
"뭐!?"
리스는 벤하르트의 심장에 귀를 가져갔다. 피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저리게 만드는 와중에 그녀는 머리를 땅에 박아 유혹을 뿌리쳤다.
"살아는 있는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서 그... 약을 먹여. 살아만 있다면 충분해. 무슨 방법을 써서든. 먹이기만 하면,"
"그래 그렇다면야.."
리스는 답지 않게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심호흡을 한번 하고 약을 입에 머금었다.
"뭐.."
레니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는 벤하르트의 입을 훔쳤다.
"뭐.... 하는거야!"
젖먹던 힘까지 낸 고함이었지만, 그 말은 금새라도 끊어질듯 나약하기 그지 없었다.
"화내는 거야 이해하지만, 레니아 너에게나 나에게나 이렇게 이성을 유지할수 있는 허용된 시간은 많지 않잖아? 특히나 벤에게는 더욱 더. 너도 알고 있었겠지만, 내가 듣기로 벤은 죽기 일보 직전이었어."
레니아는 감정보다 이성쪽이 강했기 때문에 한껏 폭발했던 감정은 '현실'에 곧 누그러졌다. 벤하르트는 1분 1초가 아쉬울 정도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는 것은 바로 곁에 있었던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씩씩 거리면서도 그녀는 냉정을 기하며 물었다.
"그..거야 그렇..겠지.., 그런데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라니?"
"방금 내가 뭘 하려 했는지 너도 눈치는 챘겠지?"
리스가 방금 하려던 행동은 누가 보기에도 분명 피를 빨려고 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본래 흡혈 따위는 필요치 않고 딱히 피를 빨고자 하는 욕망도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어째서' 지금은 그렇게 피를 갈구 했는지 레니아는 알지 못했다.
"어..떻게 된건데?"
"아.. 잠깐만,, 벤에게서 조금 떨어져야 겠다. 피 냄새에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 같아."
여전히 고통스럽게 가슴을 움켜쥐고 그녀는 비틀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나의 힘은 말야. 흡혈귀의 흡혈과 관련이 깊어. 흔히 너희들이 부르는 흡혈귀라는 존재는 '우리' 원의 흡혈귀로부터 나온 족속들이지. 우리는 피를 필요 하지 않지만, '피'라는 것을 매개로 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피를 빤다고 해서 흡혈귀가 되거나 하지는 않아. 피를 빤 대상에게 자신의 피를 주었을때야 말로 진정으로 흡혈귀가 되는거지. 물론 나의 직계는 흡혈귀적인 특징 따윈 존재하지도 않지만, 그 3대 4대 5대에 이르러 점차 원의 흡혈귀의 피는 묽어지게 돼. 그런 녀석들이 피를 빠는것은 간단해. 살기 위해 먹는거야. 흡혈귀에게 있어서 피라는 것은 '생명'을 취하는 것이지. 빤 만큼 수명이 되고 자신의 힘이 되는거야. 너희들이 아는 흡혈귀라는 존재는 바로 그런 것들이지."
"그게.. 어쨌다는거야."
"'피'는 생명이지. 나에게도 비슷한게 있어. 원의 흡혈귀에게 있어서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속한 '세계'로 부터의 고리야."
"고리?"
"빨대 라고 비유 하면 되려나. 그 빨대는 세계의 중추와 연결 되어 있지. 나는 그것을 토대로 세계의 힘을 강탈해서 사용할 수 있어. 그렇기에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고 아무리 싸워도 지치지 않는거야. 나를 죽이기 위해서는 '세계'를 부수지 않으면 안된다는거지."
레니아는 흐느적 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곧 내 힘을 구속하는 끈이기도 해. 세계와의 연결은 말하자면, 나는 끊임없이 세계로 부터 힘을 강탈하는 것에 '힘'을 쏟아 부어내고 있는다는 것이니까, 필요치 않아도 나는 많은 힘을 세계의 힘을 강탈 하는 것에 사용하고 있어."
"그..렇다는건."
레니아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그렇게 혼미한 상태에서도 그녀는 바위에 머리를 기대고 생각했다.
"방금 나는 세계와의 연결을 강제로 끊었어. 그렇게 나는 영구적인 힘을 버리고 소모적인 힘을 얻었지. 세계로부터 강탈하는 힘을 주변을 강탈해버리는 것에 사용했지만, 그녀석들 대응이 굉장히 빠르더군."
리스는 다시 가슴을 움켜 쥐었다.
"내가 강탈을 하는 이유는 간단해. 본래 그렇게 태어나기도 했지만, 내 몸을 내 존재를 유지하는데에 들어가는 힘은 내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상상을 초월하거든. 세계로부터 그 힘을 강탈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힘이 모자르게 되어 버리는거야. 깨진 그릇에 물을 부어 내듯이 힘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게 되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
그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조차도 배가 고프다면 밥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하루를 이틀을 사흘을 나흘을 굶게 되면 무엇이라도 맛이 없을까, 리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 공복감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의 범주를 한참을 넘어서고 있었다.
"피는 힘.. 그러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도 흡혈귀인 거야. 흡혈을 하고자 하는 충동을 멈출수가 없는거지. 지금도 피 냄새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아. 피를 빨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리스는 한사코 벤하르트쪽을 돌아 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보게 되면 그녀 스스로 욕구를 절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스 그럼 너는 계속 그 상태인거야?"
"곧 괜찮아 지겠지. 시간이 지나면 수복시킬수 있고, 이제 곧 '밤'이니까, 하지만 괴로워.. 아니 괴롭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로는 표현할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무엇이든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것만 같은 '원하는' 것이 눈앞에 아른아른 거리는 것만 같았다. '참아야' 하기에 그 괴로움은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피에 맛을 보게 된다면 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치 멸절의 마법 같네."
"아 그런 것도 있었지. 레니아 그 마법 사실은 사용 할 수 있지?"
"아니.. 사용..할 수 없어."
"그렇겠지. 알고 있다면 지금 이곳에서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
레니아는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크윽.. 하아아..."
리스는 괴로운듯이 다시 머리를 바닥에 뉘였다.
"참..기 힘들어?"
"조금.. 괴로워. 언제 까지 계속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딴 이야기나 할..까?"
레니아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너 몸 상태가.. 좋지 않잖아."
"그..래서.. 뭐..?"
바위에 기대고 레니아는 이제 눈조차 뜨지 못하고 있었다.
"레니아.. 아까 벤에게 먹였던 약을 꺼내. 너도 먹을수만 있다면,"
"그럴.. 수는 없어. 그게.. 마지막이었..으니까."
"뭐!?"
"나는 곧 죽겠지."
똑바로 레니아는 흔들림 없이 그 말을 고했다.
"무슨 소리야?"
"두보엔이 마지막..에 먹인 마법은 그 성질이 아주 고약한 마법..이야. 마법 자체는 분명히 '인간'을 죽이는 마법이었을..텐데, 하하.. 나도 어지간히 신의 힘을 다 잃어 버린 모양..이네. 그런 마법..에 이렇게 죽어 버릴 정도..라면,"
"너..."
"아직 죽지는 않아. 이건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가는 마법..이니까, 그러니까 네 그 충동..을 억제..하도록 이야기..나 해보자..는거야. 나는 할 말이 많은데, 너는 별로 없었..던가봐?"
리스의 충동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저렇게 초연한 레니아의 모습을 보며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의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죽음' 직전에서도 이야기를 하자는 레니아의 모습에 어찌 지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 뭘 이야기 하고 싶은건데?"
"크아아아... 으으.. 어째서 수복되지 않는거냐!"
두보엔의 팔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존재 자체를 빼앗긴 모양이군요. 이거야 원.. 팔은 포기하시는게 낫겠군요."
"네놈.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거냐. 어서 그녀석들을 찾아서 내 앞으로.."
"조용히 해주십시오. 지금 남아 있는 전력이라고 해봐야. 이미 반감된 두보엔님과 저 제온과 루켈 정도 입니다. 제온이 원의 흡혈귀와 싸우게 된다면, 남은 셋으로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감당해야 겠지요."
"이미 죽기 일보 직전인 녀석들일텐데,"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발자취'를 하던 도중 레니아의 비약으로 되살아 났다는 이야기를 몇번이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비장의 한수로 그런 약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겠지요."
두보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약이 있다면 어째서 아까 먹지 않았을까."
"아까 먹였다면 틀림 없이 그대로 죽었겠지요. 이 포위에서 약을 먹여 살리지도 못하기에 낭비 할수는 없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때의 행색을 보면 일목요연 확실하겠지요. 그때 레니아는 '저희들을' 처리하고 '무언가'를 할 다짐을 한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지러스는 쓰러져 있는 두명의 대행자를 보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카이후와 편히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는 K를 보고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K 이건 너무 한것 아닌가?"
"뭐가 말이지? 분명히 경고 했을텐데, 확실히 말해주지. 내 일을 방해하는 자는 카이후 따위가 아니라 네가 그렇게도 인정하고 도는 제온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였을거다."
K는 낄낄 거리면서 말했다.
'과연.. 정상을 벗어난 광인'
"최악의 경우 벤하르트와 레니아 그리고 원의 흡혈귀는 전부 쌩쌩하다는 조건일지도 모릅니다. 그 경우 다소 지쳐있는 제온으로 리스를 막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요."
제온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품에 안고 바위를 기대고 있었다.
"그렇기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겁니다. 루나 부탁을 하지."
루나 라고 불리운 대행자는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기도했다.
"무엇을 하는거지?"
두보엔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스멀거리면서 없어진 팔에서는 검은 기운이 물씬 거리고 있었다. 마치 감정을 대변이라도 하는듯 검은 기운은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기다리시지요. 걱정 하지는 마십시오. 저희가 '힘이 닿을수 있는 범주'까지는 분명히 도와 드릴테니,"
지러스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 작가의말
곧 연참대전 입니다만, 이번에는 참가를 하게 될지 안하게 될지 모르겠군요.. 개강도 했고 물론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거의 무조건 참가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러고 보면 연참대전은 거의 무슨 일이 있어도 참가는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탈락 말고 빠진적이 있었는지..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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