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77화-시공(時空)(6)(635화)
벤하르트는 곧 마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신역이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멀지 않은 마을이니만큼 상당히 폐쇄적인 마을일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마을은 밝고 강인해 보였다.
'있다고 한다면 여기에 있겠지? 어떻게 찾아봐야 되려나.'
마을을 두리번 거리던 벤하르트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가 가볍게 뛰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다지 큰 마을은 아니었음에도 꽤나 높은 건물들이 많았던 까닭에 좀 더 수월하게 찾기 위함이었다. 찾기 위해서 기를 내뿜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어이 그쪽의 청년!"
'어?'
벤하르트는 놀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다부진 체격을 가진 중년의 여성이 벤하르트를 올려다 보며 내려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벤하르트는 살짝 당황해하며 물었다.
"저를 부르셨는지?"
"당연하지 그쪽에 당신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잖아?"
"그랬죠.. 그런데 왜?"
"왜는 무슨 왜야. 도대체 그곳에는 왜 올라갔던거야?"
의심쩍은 눈초리로 벤하르트를 바라보는 여성을 보고 벤하르트는 그제서야 자신이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벤하르트가 서 있던 곳은 건물의 지붕이었기 때문에 흔한 사람들이 올라가는 곳과는 거리가 있었다. 본인은 케이슨을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지만, 마을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를 할 법 했다.
"저기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 저긴 왜 올라갔던 거였던건데?"
"아 제가 찾는 사람이 이 마을에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좀 더 한 눈에 들어오는 장소를 찾고자 하다가 그만.."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입가에 주름을 띄우며 여성은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힘에 자신이 있을지 몰라도 이 마을에서는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네?"
"경고는 했다구. 당신이 도둑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만약 도둑질을 하다가 걸렸다면 몸 성히 이 마을을 빠져 나갈수는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도둑질 같은건 할 생각도 없었다구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여하튼 위로 올라가는건 그만 두는게 좋아.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의심할지 모르는 노릇이니까. 그때는 이렇게 넘어갈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구."
중년여성은 그렇게 말하고 골목뒤로 사라졌다.
'어? 생각보다 시원하게 넘어가 주는 것 같은데?'
물론 벤하르트는 도둑이 아니었지만, 중년여성은 도둑으로 의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시원스레 넘어가 주었다.
'그러고 보니.'
설마 도둑으로 의심 받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벤하르트는 자신이 건물 위로 올라가는 것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인적 드문 장소에서 사람들이 없을때를 틈타 건물 위로 올라간 것이었다.
'분명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렇다는건 내가 올라가고 나서 들켰다는 건가? 조금 마음을 놓고 있기는 했다지만,'
벤하르트는 기척을 숨기는 것에는 상당히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리 방심을 하고 있었다지만 이렇게 일직 발각된다는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을 제지하러 온 중년 여성이 평범한 중년여성이었던 것도 이상한 것에 한 몫 하고 있었다.
'깊게 생각해봐야 의미 없지. 일단은 케이슨 아저씨를 찾아야지.'
"신역이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벤하르트가 인적이 드문 골목을 나서자 뭔가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안돼. 너희같은 풋내기로는 말야."
방금전까지 벤하르트에게 설교하던 중년여성이 험상궃게 생긴 거구의 남자에게 여유롭게 말했다.
"뭐? 지금 내가 잘못 들었던건가? 얘들아 내가 풋내기라고 하신다."
낄낄거리면서 남자의 뒤에 부하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웃어제꼈다.
"나 원 참.. 아무리 조직의 돈을 위해서라지만 신역인지 뭔지 하는 미신 따위에 변두리 마을까지 와서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어이 이 아줌마야.. 쌍칼이라고 불리우는 리시드가 바로 이몸이란 말이다."
"떠벌떠벌 말만 많은게 그럼 애송이지 뭐야?"
'아니 저거 조금 위험한거 아닌가?'
벤하르트가 보기에 눈 앞에 있는 남자는 절대 풋내기취급을 받을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은 좋은 취급을 받기 어려울지 몰라도 분명 그는 저런 행동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함은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평범한 중년여성이 당해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나도 막무가내로 검을 휘두르는 한량은 아니라고, 단장이 조심하라고 주의를 하지만 않았어도 딱히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만,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게 되면 이쪽도 곱게 나가지는 않을거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행위만으로도 겁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리시드라는 사내의 얼굴은 무서웠지만 중년여성은 코방귀를 끼고 말했다.
"그러니까 네녀석들 정도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어디가서 힘깨나 쓴 모양이다만, 그정도로는 신역에 올라가게 둘 수 없어. 너희가 우리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올라간다고 해도 이쪽에서 말려야 할 판국이라고,"
"크.. 하하하하하.. 그러니까 이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신역에 가는 것을 말릴 수 있다고 뭐 그렇게 말하고 있는거냐?"
"글세. 보고 싶다면 멋대로 올라가 보시든가. 그 전에는 딱히 무력으로 제압할 생각은 없거든."
"들었냐 얘들아? 하하.. 진짜.."
사내의 억양이 낮게 깔렸다. 그와 동시에 사내는 중년여성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중년여성은 물론이고 마을사람 어느하나도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즐거운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지켜보고 있었다.
"규율은 절대적이다. 이쪽도 안내는 받아야겠어. 안내하기 싫다면 좋다. 반쯤 죽여서라도 데려가야겠지.
'젠장.. 뭣들하고 있는거지 말리지 않고.'
벤하르트는 재빠르게 움직여 남자의 팔을 잡아챘다.
"어? 뭐야 이건?"
"너는?"
중년여성은 눈을 껌벅이며 벤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제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말이죠. 역시 폭력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 정말 이래저래 짜증나는군."
그렇게 말하며 리시드는 중년여성을 던졋다. 그 짧은 사이 중년여성은 약간 당황하며 신음소리를 내었다.
"읏!"
리시드는 벤하르트를 노려보고는 건장한 성인의 몸통 정도는 될 법한 거대한 팔로 벤하르트를 찍어 누르려 했다. 지금까지 한결같은 여유로움을 보이고 있던 중년여성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뭐하고 있어! 얼른 피하지 않고!"
그와 동시에 중년여성과 함께 마을사람들 전원이 동시에 움직였다. 리시드는 그 허둥지둥하는 모습들을 보고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생각했다.
'늦었어.'
그의 팔은 그 거대함에 걸맞지 않은 속도로 벤하르트를 향해 내리찍혔다.
'어?'
리시드는 예기치 않은 변수에 순간 당황했다. 분명 손에 느낌이 왔어야 정상인데 전혀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리시드 뿐만 아니라 방금까지 당황했던 마을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놀란 얼굴로 벤하르트를 쳐다보았다. 리시드의 거대한 팔을 벤하르트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것이었다.
"폭력은 좋지 않은데 말이죠."
여유롭게 톡 하고 땅을 차고 물러나 벤하르트는 검에 손을 가져갔다. 별 것 아닌 그 행위에 리시드는 멈칫 거리며 당황했다.
'우연? 아니면 실력?'
자신의 실력에 자신을 가지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게 자만으로 변질되어 버리면 곤란하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의 실력을 걸고 저 의문의 남자와 싸울 것인가. 아니면 싸우지 않을 것인가. 그에 대한 결정권은 분명 자신에게 있었다. 만약 우연으로 피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자신의 팔을 바늘구멍만큼의 아슬아슬함으로 피한 것이 실력이라면 지금 싸우는 것은 굉장히 문제였던 것이다.
'어느쪽이지.'
벤하르트는 그의 고민을 아는건지 모르는지 싱긋 웃으며 검을 봅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그것으로 리시드는 벤하르트가 요행으로 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물러서려는 순간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새 접근한 중년여성이 주먹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지른 것이다.
리시드는 갑작스러운 고통에 적잖히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금방이라도 고통으로 고함을 지르고 싶었지만, 뒤의 부하들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괜찮아? 청년?"
"아 네. 물론이죠."
'대단한걸.'
방금전 리시드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리시드의 일격에 예민해져 있는 벤하르트는 중년여성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벤하르트가 피했다는 것에 잠시 망설이고 리시드가 벤하르트의 검을 뽑으려드는 행위에 당황하는 그 짧은 사이 빠른 속도로 리시드의 사각쪽에서 주먹을 내리꽃은 그녀는 벤하르트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강했다.
'정식으로 붙었다면 저 리시드라는 남자도 이기지 못했겠는데'
이제야 벤하르트는 그녀의 자신감이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벤하르트정도의 실력이 된다면 상대의 강함을 어느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보통은 스스로의 강함을 어느정도는 숨겨두는게 일반적이고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의 실력을 숨기는 것에 능숙해지기는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숨긴다고 해도 무술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정도의 유무정도는 판별할 수 있는게 일반적이고 더 나아가 실력이 좋다면 숨기고 있는 힘을 파악하는 요령도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방금전까지만 해도 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중년여성까지 벤하르트는 전혀 그 강함에 대한 편린조차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본 실력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벤하르트에게 그저 평범한 마을사람에 불과했었다. 극단적인 예시로 마을사람들이 벤하르트에게 기습을 했다면 위험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도리어 이쯤되면 벤하르트쪽에서 마을 사람들을 의심해야 될 판국이었다. 짐짓 모른척 벤하르트가 물었다.
"그런데, 방금전 움직임은.."
"그러니까 아까 말했잖아? 이 마을에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이지. 이게 바로 우리의 본 실력이라는 게지."
벤하르트는 흘끗 리시드의 표정을 살펴 보았다. 리시드도 벤하르트처럼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이 특별한건가?'
"어쨋든 거기 너 이제 알겠지? 이 마을에서 그다지 강하지 않은 나만 해도 이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네깟 녀석들이 어디라고 신역을 넘본다는거야? 더 망신당하기 싫으면 적당히 해두고 돌아들 가라구. 다 너희를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라니까?"
"무슨 헛소리를! 리시드님이 방심해서 한방 먹었다고 정말 자신이 강한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지? 리시드님 본때를 보여 주시죠! 어?"
낄낄 거리면서 이야기 하는 부하중 한명의 머리를 리시드는 큰 손으로 쥐고 말했다.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지 못하는 녀석은 뭐라고 했었지?"
"그 그게... 끄으으윽."
리시드는 부하의 머리를 쥐며 말했다.
"이 마을의 말을 빌리자면 '풋내기'라고 하는거다."
"리 리시드님!! 으아아악.."
"그만둬!"
벤하르트가 소리치자 리시드는 곧장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단순한 벌이다. 봐라."
부하는 헤롱거리면서 다른 부하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벤하르트는 리시드를 노려보았지만 리시드는 벤하르트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던건가. 얼마나 나를 무시하고 우롱하려는지.. 어이 거기 여자."
"뭐?"
팔짱을 낀 채로 중년 여자는 리시드의 말을 받았다.
"이 옆구리의 한방은 기억해두지.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그렇게 말하며 그는 슬쩍 벤하르트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서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은 벤하르트 뿐이었다.
벤하르트에게 대하는 태도로 보아 중년여성은 벤하르트가 얼마나 강한지 정확하게 가늠하지 못했다. 그리고 리시드라는 남자는 벤하르트가 자신보다 그것도 상당히 위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마을사람이 대놓고 무례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시비가 걸릴 일은 어지간해서는 나오지 않을 것이나, 그들은 상대의 강함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감 있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만약 이 자리에서 마을사람과 대적하고 있는게 리시드가 아니라 벤하르트 정도의 힘을 가진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면 상황은 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점을 리시드는 비꼬아 말 한 것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리시드의 의도를 알아차린건 벤하르트 하나 뿐이었다.
"흥 흔한 풋내기의 정신승리 같은건 여러번 보아 왔어."
"흐흐.. 이번에는 이쪽의 패배로 쳐두마. 아무래도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니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할테고 말이다. 자 얘들아 가자."
"예 리시드님!"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마을 밖으로 나갔다.
"하여간 입만 산 녀석들이 정말 많다니까. 그나저나 청년 꽤나 용기있는데 그래?"
"아 아뇨 뭐. 당연한 일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쓸데 없는 행동이었나 보네요."
"하하 아냐 아냐. 행동 그 자체가 중요한 법이지. 아 그래 찾는 사람이 있다고 했었지? 내가 이 마을에서는 마당발로 통하거든. 용기에 대한 보답으로 네 일행을 찾는 것에 도움을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벤하르트는 시공을 넘나드는 사람이었기에 살짝 망설였지만, 이미 숱한 사람들과 만나버렸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저야 감사하죠."
"아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군. 내 이름은 슈바프라고 해. 네 이름은?"
"아 저는.. 베.. 아니 에르니아라고 합니다."
"베는 뭐야?"
"아 그게 성을 말하려다가 그냥 이름을 말했다 뭐 그런겁니다."
"아 그래? 여튼 에르니아로 좋다 이건가? 일행을 찾는 것 뿐이지만 잘 부탁해. 에르니아 청년"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올려 보네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1년차에는 뭐 하나 해볼틈도 없이 떨어지고 2년차인 지금도 정말 미묘한 점수에 걸쳐서.. 일단 시험은 끝났고 이제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년동안이나 준비했는데도 아직도 안전권이 아니라는게 슬플뿐이네요.
잠시 쉬어가는 시기에 찾으시는 분들도 있고 해서 한번 써봤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는 틈틈히 써볼 생각입니다.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수가 없지만,,
일단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Commen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