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05화-라스펠(7)
"마누어 우리의 힘으로는 지금 어떤 수를 쓴다고 해도 이 곤경에서 벗어날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수 있는것은 오직 한가지 부탁하는것 뿐이다."
"....."
그녀는 왕좌에서 내려와 벤하르트 일행의 앞에 섰다. 처음과 같이 벤하르트는 그녀의 그 행동에 압도 되었다. 본래의 그라면 말리는 시늉이라도 할 터였지만, 그런 행동조차 하지 못할정도로 그녀의 행동은 숭고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는것은 오로지 고개를 숙여서 눈앞의 대상에게 정중하게 부탁하는것 뿐이었다.
"뜻은 잘 알았어. 그런 행동을 하면서까지 우리에게 말할 정도라면 상황을 타계할 방법 정도는 있다는 뜻이겠지?"
"레니아 괜찮겠어?"
"뭘 되묻고 그래? 어차피 할 생각으로 가득할게 뻔하잖아. 이제 괜히 질질 끌면서 체력을 소모하는건 하고 싶지 않아."
"잠깐 우리는.."
트레이야는 살짝 이동해서 제네스의 입을 막았다.
"괜찮잖아 이정도는."
"귀찮아 이놈이고 저놈이고, 내가 왜 원수를 위해서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는거냐."
"난 도와줄 생각인데, 도와주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눈먼 광선에 가슴이 꿰뚫려서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거야?"
"그럼 안가면 되잖냐."
"그건 싫거든."
제네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트레이야를 당해낼 도리는 없었다. 트레이야는 제네스가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고삐를 상대에게 주어버린 시점에서 선택권은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레니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여왕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부탁을 하기는 했지만, 당신은 이미 우리가 거절 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은 알고 있었지?"
그에 여왕은 아무 말 없이 미소로 대답했다.
"그래도 한가지 약속은 해줘야 겠어. 무엇이든이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도와주는 대가로 우리가 원하는것 한가지 정도는 들어줘."
레니아는 사실 그런 조건이 있던 없던 라스펠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제네스는 내키지 않은듯 했지만, 이미 벤하르트 트레이야 레니아는 이곳을 그냥 둘 생각 따위는 추호도 하지 않고 있었다. 벤하르트를 따라서 억지로 도와주는게 아닌, 도착 했을때 부터 그녀는 라스펠의 문제를 해결 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었다. 도와 준다는 사실은 불변이었지만, 그 기정사실로 얻을수 있는게 있다면 무엇이든지 얻는게 바로 레니아의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레니아의 생각을 잘 알고 있는 여왕도 순순히 그녀의 의견에 넘어가 주었다.
"물론. 공짜로 도와 달라고 할수는 없겠지."
"좋아. 이편이 깔끔하고 좋지. 그럼 이야기를 들려줘.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넘길수 있는지."
"저 멀리서 온 이물(異物)은 이전에는 무엇인지 전혀 알수 없었지만, 지금은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있지. 어떤 구조로 어떤 방식으로 이곳 라스펠을 점령 했는가에 대한 정보는 얻을수 있었다."
한번 심호흡을 하고 여왕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물(異物)은 처음 둥지를 튼 곳에서 벗어날수가 없다."
"벗어날수가 없다고? 하지만 밖에는 그 기계병들 투성이잖아."
"그것은 본체가 아닌 부수적인 물건이지. 병기이면서 감정이 없는 인형들로 본체인 이물의 명령을 이행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야. 그것들은 아무리 부수어도 다시 제조 되는데, 사실 주된 목적은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래. 나는 그 이물(異物)과 아직까지도 정보전을 펼치고 있다. 나는 이물(異物)을 이기기 위한 방법을 필요하다면 어떤 것이든지 얻어내기 위해 애를 쓰고, 이물(異物)은 그 반대로 이쪽을 말살하기 위해서 모든 정보를 얻어내고자 기계병을 사용하고 있지."
"그렇다면 말야. 그것을 만들어낸것도 다름 아닌 당신이겠군?"
레니아의 말에 여왕은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는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레니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기생해서 기생한 사람의 장점을 뛰어넘어 스스로가 주인이 되고자 하는 죽어있으면서도 살아있는 이물(異物)은 자신의 그 '정보'를 원하는 것에 반응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저 기생하는 특성과 자신의 정보에 대한 수집이 같은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은 일이었을까. 지금에 와서 중요한것은 아니었지만, 레니아의 말은 그녀에게 꽤나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저 괴물은 스스로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만들어지는것에 일조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혹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으.."
"왜 그래?"
"조금 어지러워서.. 이야기를 계속 하지. 나는 정보전의 결과 이물(異物)의 본체를 파괴하면 지금의 현상이 사라질것이라는것을 알아 냈다. 왜냐하면 지금 그 모든 기계병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 모두는 일정한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생포'든 '순찰'이든 '섬멸'이든 그런 명령을 내리는것은 다름아닌 그 이물(異物)로 부터이지. 그리고 그 이물은 처음 떨어진 장소에 둥지를 틀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일은 그 둥지를 공격해 그 본체라는 녀석을 제거 하는 일이겠군."
"레니아 당신은 눈치가 빨라서 좋아. 그렇다면 내가 다음에 말할것도 알고 있을까?"
"주의사항이라는 녀석이 아닐까."
레니아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 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한번의 공격에서 우위를 점한것을 이용해내지 못한점. 그 한번의 실수가 라스펠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그때의 선택지는 단 하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실수는 실수인것. 라스펠을 살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햇던 것이다."
후회는 언제나 늦다. 하지만 그때 그 상황. 기억이 없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녀는 언제고 같은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것이 실수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채,,
"이번에는 그래서는 안돼. 적은 무한히 성장하는 괴물이다. 강하면 강한만큼 성장하게 되지. 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기회로도 볼수 있는것이다."
"기회?"
벤하르트가 물었다.
"이 이물은 결국은 상대방의 힘에 맞추어 나갈수 밖에 없다는 단점을 가지게 되어 버린다. 만약 이녀석이 노리는게 라스펠이 아닌 한 곤충의 동굴이었다면, 곤충을 이기기 위한 힘 밖에는 가지지 않았겠지. 이건 그런 녀석이다. 즉 정보를 얻지 못하도록 실력을 숨기고 모든 실력을 내보일때의 그 상회하는 힘으로 '본체'를 제거 할수 있다면 라스펠은 구원 받을수 있게 되는 것이지."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 그 이물(異物)이 따라갈수 없을 정도의 힘이 될수 있을까?"
"일전에는 하지 못했던 전력을 이번에 집중 할 생각이야. 그래서 이야기 하는건데, 이번에 도와 준다고는 했지만, 혹시라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달아나도 좋다. 라스펠의 일에 타인이 죽는것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너희는?"
"두번은 없어. 우리는 과오를 저질렀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오처럼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정보를 다루면서 스스로에게 안주하고 도취되어서 '주관적이게' 바뀌어 버린것은 잘못이야. '내'가 잘못했든 '라스펠을 포함한 우리'가 잘못했든 이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여도 적어도 우리 라스펠은 그 과오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작전을 결행하면 나는 물론이고 라스펠의 전 시민들은 목숨을 포기하기로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다."
그녀는 힘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소홀히 여기도록 한것은 역시 자신의 탓이며 라스펠의 탓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게 진심이라면 칭찬해 주고 싶고 계략이라면 약간은 혐오 스럽게 느껴지겠는걸.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도 쉽게 물러설수 없단 말이지. 이쪽에는 바보가 한명 섞여 있어서 말야."
"양쪽 다 라고 해두지만, 이 말에 거짓은 없다."
여왕의 눈은 단호한 결의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너희라면 할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군. 마치 옛전에 경험했던 것처럼 느껴지는것 같다."
"구성은 어떻게 되지?"
"나는 이곳에 남는다. 남은 시민들을 최대한으로 지켜 보일거야. 동행하는것은 여기 있는 자고왕 마누어 그리츠가 동행할것이다. 지도를 한장 그려줄테니 그것을 따라 뷩기르에 마을에 가서 이물의 본체를 부수는 것이다."
여왕은 이곳에 남는다고 했지만, 아무도 불만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제네스 조차도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왕이 이곳에 남는 다는것은 이곳이 안전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곳에 남지 않으면 사람들은 전부 죽게 되어 버리게 되고 설사 작전이 성공했다고 해도 라스펠은 유령도시가 되어 버릴것은 자명한 일. 그녀는 필요한 위치가 필요한 사람을 놓은 것이다. 필시 이 작전이 실패하면 모두와 함께 죽어 버릴 각오를 가슴에 묻어 둔것이 틀림 없었다.
그녀의 비장한 각오는 입밖으로 내지 않았을뿐 그자리에 있는 전원이 느끼고 있었다.
"그럼 이야기도 들었겠다 조금만 쉬었다가 출발해도 될까?"
"물론. 준비가 다 되면 마누어나 그리츠를 통해서 말을 하도록."
"알았어."
"그럼 방으로 안내하도록 하지요."
왕은 손짓으로 하녀를 불러 그들을 방으로 안내했다.
- 작가의말
58분이므로 사족은 짧게 가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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