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10화(564화)-마신(魔神)(4)
벤하르트는 크로세트와 함께 사진 속의 소녀를 만나러 갔다. 신전은 굉장히 넓었고 소녀에게 가는 길은 굉장히 멀고 경비도 삼엄했다.
"자 이곳이다."
크로세트의 안내로 그는 방에 들어갔다. 소녀는 귀엽게 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완전히 죽어 있었다.
"혹시라도 허튼 짓을 할 생각이라면 그만 두는게 좋다."
"무슨 짓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마신님.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만,"
"부탁? 무엇이지?"
"이 아이의 피를 얻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피 라고?"
"네 제물이 될 제 검에 이 '모태의 피'만 있다면 완벽한 제물이 탄생할테지요."
벤하르트는 마른 미소를 입에 머금으며 소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 눈에 정이라고는 일절 보이지 않았는데, 그 눈빛이 마음에 들었는지 크로세트는 웃으며 말했다.
"좋다. 하지만 그 소녀는 죽여선 안돼. 어디까지나 내 모태가 되어 줄 보물이니 말이다."
"피는 매번 검을 완성 시키면서 뽑아야 합니다. 피를 뽑을때 마다 이곳에 들를수 있도록 손을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으음. 좋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때는 각오하는게 좋을 것이다."
"물론이지요."
벤하르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것으로 부활을 했을때 만족스러우시다면 교주 보다 저에게 몫을 더 돌려 주실수 있습니까?"
"후후 그거야 어렵지 않지. 물론 내가 만족 했을 경우의 일이지만,"
"약속 하신 겁니다."
벤하르트는 답지 않은 비열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저는 첫 피를 뽑아 갈까 하는데 혹시 지켜 보시겠습니까?"
"아니 사양하도록 하지."
크로세트는 조용히 문을 열고 그 자리를 뒤로 했다.
벤하르트는 방 문을 닫고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이."
"....."
아이의 눈은 촛점을 잃고 있었고, 벤하르트의 말에도 한마디도 대답 하지 않았다.
"흐음 거 참 문제로군."
벤하르트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너 말야 이름이 어떻게 되지?"
"....."
벤하르트는 눈을 감고 기를 내보내 사방을 둘렀다. 주변에 무엇인가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좋아 아무것도 없는 것 같군.'
"나는 네 편이다."
벤하르트는 소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 말에도 소녀는 전혀 미동 조차 하지 않았다.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감정이 없는 것인지 벤하르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긴 이런 곳에 갇혀서 제 정신으로 있다면 그것도 소름 끼치는 일이겠군.'
"믿기지 않겠지만, 일단은 네 편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
"필요 없어요."
"말 할 수 있었던 건가? 그나저나 필요 없다니?"
"당신이 정말로 제 편이라고 해도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저를 도울 수 있는 방법 따윈 없어요. 거기에 진짜 아군이라는 보장 따위도 없죠."
"확실히 그렇군. 네 입장에서 보면 나라는 존재는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일테니까, 하지만 나는 네 편이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아."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벤하르트를 흘끗 보고 말했다.
"제 편이면 어쩔건데요? 저에게 뭘 해줄 수가 있죠?"
"이곳에서 나간다거나?"
벤하르트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건 원하지 않아요. 어차피 저는 이곳에서 죽을때까지 나갈 수 없으니까,"
어차피라는 말에 벤하르트는 살짝 몸을 떨었다.
"그러니까 도와준다고 하는 거다."
"그 도움도 필요 없어요. 제가 여기 있는 것은 제 의지로 있는 것이니까,"
"그런 얼굴로 그런 이야기를 해봐야 별로 믿기지도 않아. 아니면 무슨 이유라도 있는 모양이지?"
"이유 따윈.."
소녀는 약간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들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기회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얻을 수 있어. 하지만 원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없다.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래..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교단은 제물로 삼을때까지 너를 죽이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무슨 짓을' 해도 지금은 상관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거냐? 네가 나에게 어떤 어려운 일에 대해 부탁을 하더라도 그건 '죄'가 아니고 '무의미한 일'또한 아니라는 거다. 그게 설사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그 뿐인 것이다. 불가능하다면 지금까지처럼 살다가 제물이 되어 죽으면 되는 거다. 하지만 가능 하다면 '그 기회'는 네가 네 손으로 잡아야 하는 거야."
소녀는 벤하르트의 말에 살짝 반응했다.
"내가 적이든 아군이든 네 입장에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네가 제물이 되는 그 순간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긴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손 놓고 기다릴 경우 제물이 되어 절대로 죽게 되는 것 또한 불변의 사실이다. 그 사실을 토대로 '기회를 만들어 볼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무력하게 제물이 되어 버릴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네가 선택할 문제인 거야."
"저는..."
"잠깐 말을 멈춰."
벤하르트의 말에 소녀는 다시 입을 싹 닫았다. 간수는 소녀를 감금하고 있는 방을 열고 들어와서는 식사를 주고 다시 방문을 나섰다. 벤하르트는 간수가 나간 곳을 한참 쳐다보고 있다가 손짓으로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신호를 주었다.
"지금 어떻게 안거에요?"
"굳이 따지자면 '소리'로 알았으려나.."
'말을 하지 않아서 잘 몰랐지만, 이런 것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 역시 아직은 어린애인건가?'
"지금 당장 믿어 달라고 해도 무리겠지만,"
"아직도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저씨의 말 대로네요."
'아저씨 인가..'
사실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딱히 할말은 없는 벤하르트였고, 실제로 그는 그런 호칭에 신경을 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역시 젊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있다 보니 약간은 그런 말에 의식을 하게 되기도 했다.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
"말할게요. 적이든 적이 아니든 어차피 기다리고 있는건 죽음 뿐이니 제가 선택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테니까요."
"훌륭하군. 일단 이름이나 말해주지 않을래?"
"제 이름은 티온 엔스 에요."
"내 이름은 벤하르트 하르크라고 한다."
"저는 이곳이 정말로 싫어요. 도시 사람도 교단의 사람들도 전부 이곳 도시의 모든 것이 싫어요. 하지만 그렇게 싫으면서도 저는 여기를 나갈 수가 없어요."
"왜지?"
벤하르트의 물음에 소녀는 왠지 감추어 뒀던 감정이 복받쳤는지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
"어머니가... 있어요."
벤하르트는 훌쩍이는 티온을 보며 측은한 심정이 들었다. 아직 응석 부리고 재롱을 부리며 아무것도 모를 아이임에도 감정을 닫고 생활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나날. 끝까지 숨기려했던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폭발하면서도 끝내 참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니 더할나위 없이 가엽게 느껴진 것이다. 그는 조용히 티온을 끌어 안아 주었다.
"힘들었겠구나."
한참을 울고 나자 티온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을 억지로 만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 어머니는 이곳의 광신도중에 하나에요. 이 교단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딸일지라도 바칠 수 있는 사람이죠."
티온의 말에는 약간 가시가 느껴졌다.
"그렇게 너를 판 어머니가 밉지는 않은거냐?"
"밉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어머니 이니까, 버릴 수 없어요. 제가 이곳을 달아나게 되면 어머니는 스스로가 자결을 하든 살해를 당하든 죽을거라고 저를 협박했어요. 저는.. 갈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스스로도 제물이 되겠다고 하셨어요."
감성에 약간 젖은 벤하르트를 보며 티온은 팔짱을 낀채 말했다.
"봐요. 이제 방법 따윈 생각 나지 않지요?"
"음? 뭘 착각 하고 있나본데 내가 지금 고민하는건 어떤 식으로 이 사건을 해결할 지에 대한 것이었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건 아니야. 이 교단을 무너뜨리면 해결이 되는건가? 같은걸 고민하고 있었지."
"헛소리 하지 마세요. 아직 모르고 있는가 본데, 방금 같이 들어온 사람이 뭔 줄 아세요?"
"마신? 아니면 마왕?"
티온은 딸꾹질을 하며 당황해 했다.
"알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 뭐 내 진짜 목표는 너를 죽이는 거였지만,"
벤하르트의 무신경한 말에 티온은 화들짝 놀라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
"죽이려 한다면 이런 말 따윈 하지 않고 진작에 죽였겠지? 나는 그런건 싫으니까 말야. 너를 죽이느니 마신 크로세트를 죽이고 교단을 무너 뜨리는 쪽을 선택해주겠다. 이거다. 그거면 되겠지?"
"말도 안돼. 상대는 마신이라구요? 신이에요 신. 무슨 엄청난 신성력을 가진 무기라도 있는거에요? 옛부터 전해 내려 오는 마를 소멸 시키는 전설의 무기라던가?"
"어째서 꼬맹이인 네가 그런 사실 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 무기라고는 허리에 찬 검과 뒷 허리에 메고 있는 소도 몇자루 뿐이야."
"그럼 어디선가 엄청난 실력을 가진 일행들이 있어서 단체로 공격한다거나"
"한명 엄청 아름다운 여자가 있긴 하군."
왠지 티온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귀여워 보인 벤하르트는 살짝 그녀를 놀려 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자신감이 나오는 거에요! 그냥 절 놀리면서 감정을 죽이려 하는거죠?"
"감정을 죽여? 크로세트는 그런걸 하고 있었던 건가?"
티온은 이성을 되찾고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지만 내가 말한건 전부 사실이야. 믿던 믿지 않던 그건 네 자유지. 정신 건강상 믿는게 좋을거라고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기도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기대를 하지 않고 기대를 하는 것도 괜찮겠지. 되든지 말든지 되면 좋고 안되어도 지금처럼 생활하면 그뿐인 이야기라는 것으로.."
"믿으라는 거에요? 믿지 말라는 거에요?"
"자 그러면,"
벤하르트는 번개같이 검을 휘둘렀다. 평범한 사람이자 어린아이인 티온은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을 느낄 뿐 벤하르트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볼수조차 없었다. 순간 뜨끔한 기분만이 오른쪽 팔에 느껴질 뿐이었다.
"피는 이걸로 채취했고,"
벤하르트는 검에 묻은 피를 보며 말했다.
"아!"
그제야 당황하며 티온은 자신의 팔을 보았는데, 분명 뜨끔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같았던 오른쪽 팔은 아무런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뭘 하신거에요?"
"미끼를 만들어야 하거든. 어쨋든 마신은 부활 하기 위해 '모태'는 무조건 적으로 필요하니까 네 대용품을 만들지 않으면 곤란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티온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물었지만 벤하르트는 별로 대답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꼬마는 몰라도 되는 이야기란다. 여기서 잠자코 내가 마왕을 처단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기대하도록 하라고,"
"마왕인지 마신인지 둘중 하나로 해주시면 안되요?"
"그럼 마왕으로 해둘까? 그나저나 생각한 것보다는 말을 잘하는구나? 그런 말재간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 말 안하고 있는게 답답했겠는데?"
티온은 무표정한 얼굴에서 약간 당황해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놀리면서도 벤하르트는 측은한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마도 '이 모습'이 티온의 본래 모습이었을 것이다. 종교에 빠진 어머니 때문에 종교에 의해서 마왕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세계'가 아니었다면 마왕이 부활하기 위한 제물인 모태가 아닌 평범하고 멋진 언변을 구사 할 수 있는 귀여운 소녀에 불과했을 것이다.
'가지가지 하는구만 에시오르. 이런 어린 아이를 '죽이라니,,' 그래 원하는데로 놀아나 주지. '죽이지 않고' 수행하는 쪽으로 말야.'
"그 그런건.."
"어쨋든 너무 생기가 돌아도 곤란하니까, 내가 없을때는 이전의 상태를 연습해 두는 것도 좋을거라고 본다. 마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웃음은 네가 진정한 자유를 찾았을때 마음껏 하는 쪽으로 가자고,"
티온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다시 오도록 할게.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 작가의말
지적해주신 부분은 내일 낮에 한담에 올려두고 고치려 합니다.
연참대전에는 날짜가 지나면 고치기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약간 까다로움)
그나저나 오늘 한동안 흐뭇했었던 10점이 무너졌네요.
뭐 언젠가 이런 날이 올줄은 알았지만요.
곧 시험기간이라 조금 비축분을 쌓아두고 연참대전을 마무리 지어야 겠습니다.
잘 생각해보니 연참대전도 그렇게 길게 남지 않았군요.
여러가지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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