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28화-응보(4)
벤하르트는 궁성의 숙소로 돌아와 트레이야와 제네스를 찾았다.
"그분들이라면 방금 전 돌아오셨습니다."
시중을 드는 하녀 한명이 벤하르트를 보고 힐끔 거리더니 말했다. 벤하르트는 그녀가 조금 이상했다고 생각하고 트레이야를 만나러 방으로 향했다.
"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내가 어딜 갔다 왔는지 못 들었어?"
"우린 못들었는데? 레니아도 그렇고 너도 다른 곳에 가길래 우리도 주변을 조금 둘러 보고 오는 길이거든."
벤하르트는 허리춤에서 검 두개를 들어 트레이야의 손에 얹어 주었다.
"검이잖아? 공방에 다녀 온거야?"
"그래. 내 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어쨋든 네 것을 가져다 사용해 버렸고, 또 너희들에게는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 내가 해줄수 있는건 이런 것 뿐이거든."
"아니 뭘 이런 걸 주고 그래. 우리 둘은 기본적으로는 무투파라서 검에 구애를 받거나 하지는 않지만,, 네 검 정도가 되면 이야기는 다르지."
트레이야는 벤하르트의 표정이 살짝 바뀌는 것을 보고 말을 돌렸다. 사실 말을 돌리긴 했지만, 그녀가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구태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벤하르트의 검이라면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수 있었다.
"그런데 두자루네?"
"하나는 제네스거야."
"너는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딱 잘라서 말하면 좋아하지는 않아. 지난 날의 일도 있고,"
"그런데 이 검은 뭐지?"
"나는 제네스 너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제네스 너야말로 나를 싫어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네 목적을 방해했고, 한쪽 팔을 빼앗은 나를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한 노릇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투덜대면서도 나를 도와 주었지."
"그래서 이 검을 주겠다는 건가?"
제네스는 한손으로 능숙하게 속도차를 이용해 검을 빼어 들었다.
"내가 이 검으로 악행을 저지른다면 어쩔거지?"
"제네스 무슨 소릴 하는거야?"
"트레이야가 있으니까,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제네스 나는 까놓고 말하면 너를 신용하는게 아냐. 너를 지탱하고 있는 트레이야를 신용하는 것이지."
"트레이야가 나를 지탱 하고 있다고?"
킥킥 거리면서 그는 웃었다.
"헛소리 하지 마."
칼날 서린 말투에도 벤하르트는 한 점 물러남이 없었다.
"헛소린지 아닌지는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
"준 검은 어떻게 쓰든 마음대로 해도 좋아. 사용해도 부숴도 버려도 나는 상관 하지 않겠다. 사용하겠다면 한가지 그 검은 너만의 검이라는 것을 명심해둬."
"나만의 검이라고?"
"벤. 그게 무슨 뜻이야?"
"이 검은 지령검처럼 땅의 힘을 가진다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검은 아니야. 하지만, 내가 만드는 검은 주인의 곁에 있을때 진정으로 강해지게 되는 건데, 쉽게 말해서 너만을 위해 내가 만든 검이라고 생각하면 될거야."
"내것도 말인가?"
제네스는 정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그들은 벤하르트가 검을 만드는 것을 아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벤하르트라면 검을 찍어내듯 만들어 선물로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검이 얼마만큼이나 중요한지는 알지 못했다.
"벤 어쨋든 검은 정말 고마워. 제네스도 말은 이렇지만 사실 기뻐하고 있을거야."
"헛소리.."
제네스는 퉁명스레 말했다.
"고마워라는 말은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야. 트레이야 그리고 제네스 우리들을 도와줘서 고맙다."
벤하르트가 밖으로 나간 뒤 트레이야는 제네스에게 화를 냈다.
"왜 그렇게 말한거야. 그야 물론 벤이 네 팔을 잘라 내긴 했고, 실제로 네가 벤을 싫어한다는건 알고 있지만, 구태어 선물을 하러 온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건 실례잖아."
"징징 거리지마. 짜증난다."
제네스는 그녀의 잔소리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왜 화가 났었던 것이지.'
반문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는 그 자신에 대해서 아는 전문가중의 전문가였다. 그는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부리고 그 투정이 자신의 핵심을 지른것에 분개한 것이다. 서로간에 호의를 가지지 않는 양립속에서 서로간에 베푸는 호의는 서로간에 모른척 했으면 좋았다. 자신이 벤하르트에게 베푼 것 벤하르트가 자신에게 베푼 것 어느 것에도 서로간에 간섭하지 않고 모른척 넘어가주면 좋았다.
스스로가 벤하르트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고, 벤하르트가 먼저 굽히고 들어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스스로의 옹졸함을 보이는 것 같아 싫었다. 그러니 제네스는 서로간에 모른척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먼저 나서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졌다 라고 라도 생각했다는거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입 밖으로 낸 것은 본전도 되찾지 못하는 우문이었다. 그 우문은 자신의 한 구석에 봉인해두었던 마음을 건드렸다. 벤하르트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 자신에게 분함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벤하르트에게 살짝 경의를 표할 정도의 심정을 느꼈다는 것을 그는 시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끄러워."
무색인데도 영롱하게 일렁이는 듯한 환상을 보이는 것 같이 아름다운 검신을 보면서 그는 트레이야의 잔소리를 한동안 무시해야만 했다.
'레니아는 아직 오지 않은 건가?'
[그나저나 방금 한 말은 정말이야?]
'뭘 말야?'
[누군가를 위해서 만드는 검의 이야기.]
'그래.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지. 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누군가를 '위한' 검을 만들때 진정한 실력을 낼수 있다는 걸.'
[그럼 내 검도 그런 건가?]
'아마도...?'
리스의 말에 벤하르트는 약간 멋쩍어 하면서 말했다. 잘 생각해보니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왠지 쑥쓰러운 말이 아니라 할수 없었다.
"벤하르트님 여왕님이 부르십니다."
"지금은 레니아가 없는데,"
"듣기로는 벤하르트님을 혼자 불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볼일이지?'
하녀를 따라 그는 여왕의 방으로 불려 갔다.
"벤하르트 잘 왔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만 따로 부른 것인지."
"듣자 하니 공방에서 검을 두자루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리츠에게서 들었나?'
벤하르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둘중 하나도 우리에게 만들어 준 것은 없었다고,"
"맞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 나는 사실 예의상으로라도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줄줄 알았다."
"이유라고 물으신다면 제 마음에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누어의 일 때문인가?"
"그것도 이유중에 하나 정도는 될수 있겠지요."
"마누어라면 너희들에게 알려 줌으로써 결백을 증명했을텐데?"
벤하르트는 여왕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는 레니아처럼 생각을 통해서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은 모릅니다. 과정과 증명을 전부 무시한채 '경험'에 입각해 상대를 판단하곤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지요. 제가 그때의 여왕님에게서 느낀것은 별로 감사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야 병 주고 약 주고 정도의 개념이니 감사같은 것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그 이전에 여왕님은 저희들을 제압할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하에, 마누어의 그 생각을 이용해서 저희들에게 신임을 쌓으려는 것은 아니셨는지?"
여왕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짐짓 태연함을 가장하며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여왕님 당신은 공정합니다. 우리들에게 목숨을 걸게 한다면 스스로도 목숨을 걸게 하는 것 정도의 각오는 보이는 성군이지만, 그렇기에 나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겠지요. 라스펠에 올라온 일개 여행객에 지나지 않는 저희들을 사지로 몰아 넣어서 일말의 확률을 노리는 것도 스스로의 목숨을 건다는 자기 만족하에 가능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당연히 갈 생각이었지만, 그것과 여왕님이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에 대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요. 제가 보기에 제가 아닌 타인이라고 한다면, 저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제노스의 안에서 죽었을 거라고 봅니다."
"벤하르트 너였기에 가능했다는 건가?"
"자신하는건 아니지만, 그렇습니다. 결론적으로 생각해봤을때, '같은 조건'이라면 여왕님은 나라를 위해 타인의 목숨을 이용할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겠지요. 물론 아닐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검은 만들어 주지 않겠습니다."
여왕은 눈앞의 남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그간 보았던 남자는 결정권은 가지되 조금은 멍한 단순한 남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어찌보면 레니아보다도 더 본질을 잘 읽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망설임 없이 보여줄수 있겠군."
"무슨 뜻인지."
여왕의 손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어떤 광경을 비추어 주기 시작했다.
"부탁하지."
영상을 보는 벤하르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우리에게도 검을 만들어 주지 않겠나? 다음에는 절대로 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력이 필요해."
영상에서 비추어 지는 것은 라스펠의 경치를 감상하며 리스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 작가의말
오랜만에 소설이 잘 쓰여졌네요(개인적으로..)
그나저나 리스가 만드는 검이 피바라기라.. 그것보다는 이미 벤하르트가 만들어준 검 자체가 피바라기에 가까운 검이라고 생각하는게,,,(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피바라기에는 스택의 한계가 있지만, 벤하르트의 검에는 그런 한계 따윈 없다. 라는 설정으로 공격력이 무한으로 증가하는..
리스의 피를 매개체로 검을 통해 공격력을 증대 시키는 효과와 상대의 피를 흡수해 공격력을 증가시키는.. 잡 설정... 은 농담이고요..
여튼 저도 롤 즐겨하는 유저중 한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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