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74화-시공(時空)(3)(632화)
"시공을 여행할때에는 기억해두어야 할 것들이 몇가지 존재하네."
"기억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이곳이 존재하는 이유는 두가지 첫째는 일그러지는 시공에 대한 조율이고 남은 하나는 자네 같은 첫 시공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시공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네."
노인은 허리춤에 달고 있는 가방으로부터 책을 꺼내들었다.
"읽도록 하게나."
"꼭 읽어야 합니까?"
"꼭 읽어야 하네. 이것을 읽지 않는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자네가 될테니까 말이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시공을 조율해 수호하는 자들. 그것은 언제나 일어나는 시간의 왜곡을 막는 것이네. 그 왜곡을 일으키는 것은 다름아닌 시공에 대해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서 비롯되지."
"그렇군요."
"뭐 그렇게 길지는 않으니 읽어보도록 하게. 다 읽으면 찾아오도록 하게나."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지팡이를 짚고 원래 있었던 장소로 돌아갔다.
"내가 할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 책만큼은 확실하게 읽어두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케이슨 씨.. 가 아니라 아저씨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읽지 않을수가 없겠군요."
벤하르트는 책을 열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의는 보통 4가지로 구분된다. 1차적인 시공은 개인이 속한 시간대에 속하는 변화. 흔히 말하는 시간마법을 의미한다. 이는 신체의 시간을 변화시킨다거나 사물의 시간을 변화시키는 현 시점에서 발현 할 수 있는 1차적인 것을 의미한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에 대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차적인 시공은 개인의 세계를 경계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A라는 시간대와 그 과거에 해당하는 A-1의 시간대 그 둘의 시공은 분명히 다르다. 그 시점에서 A의 인격이 A-1 지점으로 회귀하는 변화. 즉 현재의 자신이 과거에 존재했던 시간대로 돌아가는 것을 2차적인 시공의 예라고 할 수 있다.
3차적인 시공은 세계와 세계를 경계로 두고 각자의 세계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A라는 시간대와 A-1이라는 시간대에서 A의 사람이 시공이동을 통해 A-1로 이동했을 경우가 그 예에 속한다. 이 경우 A-1의 세계에는 A에 존재했던 자신과 A-1에 존재했던 자신이 존재하게 되어 버리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특수한 의미에서 4차원의 시공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3차적인 의미에서 시간을 이동함에 따라 생겨버리게 되는 세계나 혹은 합쳐져서 사라져 버리는 세계가 이 예에 속한다. 가령 3차적인 의미의 시공에서 A의 사람이 A-1로 시공이동을 했을때, 동시대에 같은 사람이 존재하면 안되는 이유에 기인하여, 둘이 만나게 되어 버릴 경우 시공이동을 한 쪽은 세계에 의해 제거되어져 버린다. 그 경우 A의 시공은 A자신의 이동에 의해 A-1의 시간대에 연결되어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중략)
벤하르트는 독서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책의 내용은 굉장히 신비스럽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벤하르트 다 읽은거냐?"
"네."
"어때? 읽기를 잘했지?"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 책을 돌려주고 오겠습니다."
벤하르트는 광장을 돌며 노인을 찾았다. 노인은 지팡이에 자신을 의지한채 공중을 보고 있었다. 초점이 흐린 노인에게 벤하르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벤하르트의 부름에도 노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기.."
조금 큰 소리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자 벤하르트는 노인을 살짝 건드렸다.
"저기요.."
"음? 아.. 자넨가. 미안하네. 잠시 일을 하느라."
"예?"
"자네가 보기에는 하늘을 보는 것으로 보였겠구만, 이곳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다만 시간의 흐름만이 존재하는 공간. 그리고 '죽은 자'에게만 허용된 시계가 존재하네. 관할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죽는 것이 첫번째라는 이야기지. 자네는 보이지 않지만, 이쪽은 운명과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이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지팡이를 들고 공중을 향해 휘둘렀다.
"이번에도 문제로구만,"
혀를 차면서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 그렇군. 그래서 그렇게 된건가.."
벤하르트는 노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후후 이쪽의 이야기이지만, 자네의 이야기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시공의 관장자로써 이 이상의 설명은 해 줄수 없네."
"저와 관계 있는 이야기 입니까."
벤하르트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오이스의 일입니까?"
노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글세 어떠려나."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은 전부 읽었습니다."
"그래 어떻던가?"
"글세요. 개인적으로는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중요함도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렇게 느꼈다면 과거에 대한 후회를 버리게."
"....."
"만에 하나 억에 하나.. 아니 무한한 확률중에 하나라고 해도 자네가 바라는 과거상에 도착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네. 그때에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4차적인 오류를 범할 것인가? 그때에는 지금의 자네가 속하고 있는 세계와 자네마저도 사라지게 되겠지. 덧붙혀서 이쪽도 수고를 해야 되겠고 말이야. 다짐해주겠나?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고,"
벤하르트는 노인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약속은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날 이후 '후회하지 않도록' 망설임을 죽이고 감정을 숨기고 전력을 다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후회는 가시질 않습니다. 이런 제가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행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가 솔직하구만,"
"이곳에서 거짓은 필요 없을테니까요."
노인은 웃으면서 가방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이것을 차게. 책을 읽었다면 알겠지? 시공을 표시해주는 시계일세."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네. 모든 것은 시공의 조율을 위한 것이니. 나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 뿐이네. 돌아갈 확률이 얼마나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쪼록 무사히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하도록 하지."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케이슨에게로 향했다. 벤하르트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노인은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쓸쓸해 지겠군."
"케이슨 아저씨 끝났습니다."
"그래?"
케이슨은 팔짱을 낀채 광장의 구석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저기 뭘 하고 계신겁니까?"
"아 아무래도 이곳은 너무 재미가 없어서 말야. 조금 변화를 주어 볼까 해서,,"
"그래서 꽃을 뽑고 있는 겁니까?"
"뭐 괜찮잖냐. 언젠간 '내가' 올 곳이기도 하고, 뭘 해도 관심이 없어 보이잖아?"
"관심이 없다니,, 그렇다고 해도,"
"뭐 잘 봐두라고,,"
케이슨은 화단의 꽃을 모아 적당히 꾸며서 심었다. 심드렁하게 널려 있었던 꽃들은 어느샌가 상당히 아름답게 꾸며져 버렸다.
"대단한데요?"
"원래는 여자한테 듣기 위해서 익힌 기술이지만 말이지. 하아.. 내가 죽고 와야 하는 곳이 이런 곳이라니, 정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데,"
"케이슨 아저씨라면 재밌는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어디에 계신다고 해도 말이죠."
"흥. 말이라고 쉽게 하는구만, 뭐 좋아. 영감에게 시계는 받았지?"
"네."
"그럼 가볼까."
케이슨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잡아 뜯는 시늉을 했다. 케이슨의 앞에는 아지랭이처럼 피어 오르는 시공의 균열이 나타났다.
"손 잡아. 내게서 떨어지게 되면 진짜로 네 세계에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명심해라."
"예."
"으하아.. 남자와 손을 잡게 될 줄이야."
"...."
한숨을 푹푹 쉬면서 케이슨과 벤하르트는 균열을 향해 몸을 들이 밀었다.
- 작가의말
엔쿠라스의 세계관과 더불어 제 소설들에서 이후에도 등장하는 것중에 하나가 시간(+공간)의 법칙입니다. 이후 타 작품에서도 간간히 등장하게 될 겁니다 본래는 설정으로 잡아 둔게 더 있는데, 간결하게 쓰려다 보니 빼먹은 것 같은 느낌이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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