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55화(612화)-마굴(16)
"으아 싫다. 이런 곳을 넘어 왔단 말야?"
빛이라고는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속 벤하르트의 검에 의지해 셋은 지하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도 상관 없는데 말이지."
"읏 그건 어쩔수 없다고 말했잖아."
에실러의 표정을 유심히 보고 있었던 이니프가 말했다.
"확실히 기분 나쁜 장소이긴 하네요. 벤하르트씨 얼마나 더 가야 되는거죠?"
"이제 얼마 안남았을거야."
"그나저나 아까 그 큰 것은 뭐였던거야?"
"이 시대의 운송기 말 같은 것이라고 해야하나.. 뭐 그런 것이지."
그들은 오면서 그 운반차량을 보았지만, 벤하르트가 극구로 말리자 어쩔수 없이 그냥 지나쳐 와야만 했다.
"그래 그 안에는 뭐가 있었는데?"
"알아 좋을 것 없어. 앞으로 가야 하는 길에 저해 요인밖에 되지 않으니까 더 묻지 마."
벤하르트의 말은 뒤를 끊어 버리는 말이어서 더 묻고자 하는 의욕이 싹 가시게 만들었다.
"왔다."
어슴푸레하게 위에서 들어오는 빛. 하지만 그 빛은 결코 따듯하다거나 반길만한 대상은 아니었다. 이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그 빛의 아래에는 수많은 망자들의 무리가 다음 먹이를 찾아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괴성이나 우는 소리가 어우러져서 요란하게 들끓고 있는 밖을 상상하니 에실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겁나나?"
"뭐 조금..? 하지만 어쩔수 없지."
"후우.. 내가 네게 해줄 조언은 단 한가지 뿐이다."
"뭔데?"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벤하르트는 기본적으로 느긋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약자들이 볼때에도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벤하르트의 표정은 마치 살얼음같은 느낌이었다. 시퍼런 칼날위에 서 있는 듯한 서늘한 감각이 느껴질 정도로 날카롭게 단련된 마음. 그것을 보는 에실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니프 너도 마찬가지야. 내게서 떨어지지 마."
"걱정 마세요."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띄우며 이니프는 벤하르트의 오른쪽 뒤에 섰다. 좌측에는 에실러를 우측에는 이니프를 두고 벤하르트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 가볼까."
망자들은 뭉치고 뭉쳐서 마치 하나의 파도나 바람을 대하는 것과 같았다. 개개인의 실력 또한 높았지만, 무엇보다도 비집고 들어갈 수도 없을 정도의 엄청난 수는 흡사 대항할 길이 없는 물결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 군집을 역행하는 무리가 하나 있었다. 이 '공간'에 있어서 명백한 이단자들은 백색의 빛이 되어 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번 휘두를때마다 거대한 백색의 빛은 망자들을 휘감았고 길이 나오고 있었다.
"대단해.."
침술사 니키레우스에게 한계의 성장을 이룬 에실러는 약하지 않았다. 망자들이라 해도 몇 정도는 상대하거나 달아날 정도의 실력은 충분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그녀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공간에서 대장으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다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그런 강함의 범주를 근본적으로 뛰어 넘어 있었다.
"으앗!"
에실러가 망자들의 습격에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망자들은 양단되어 으스러져 버렸다. 이니프는 주변에 몇개의 검은 공간을 만들어 주고 망자들의 몸을 조각조각 내버리면서 비웃고 있었다. 널부러지는 무리 이니프는 순간 빈틈을 내보이고 말았다.
그 빈틈은 망자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는 궤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망자의 이가 그곳에 닿기도 전에 그대로 망자의 머리는 동강나 버렸다.
"후후.."
"이니프 다시한번 말하지만,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마."
"벤하르트씨 너무 사람이 좋은 것 아니에요?"
이니프는 방금 일부러 자신에게 빈틈을 만들었던 것이다. 벤하르트가 '알아차리도록' 그리고 자신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자신을 미끼로 해 벤하르트의 반응을 살핀 것이다.
"이제 그만좀 하시라구요."
"웃기지 마. 나는 원래가 이런 녀석이라고,"
말하면서도 벤하르트의 검은 멈출줄 몰랐다. 유려의 움직임으로 한치의 오차도 한치의 낭비도 없는 검격은 검의 결계를 이루는 듯 했다.
"그게 싫다면, 이 일이 끝난 이후에는 서로 각자 갈길을 가도록 하자고,"
"그걸 위한 '배제'인 건가 보군요."
"그래. 읏.. 물러서!"
벤하르트는 한 팔로 이니프와 에실러를 붙잡고 물러섰다. 눈앞에는 거대한 흑창이 길을 가로 막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정신 없는 망자들의 사방에서 솟아 치는 공격들은 벤하르트의 일섬에 전부 조각나 으스러져 버렸다.
"일섬 백인."
백색의 형상이 둘 각각 이니프와 에실러에게 붙었다.
"이니프 아까와 같은 장난은 이제는 절대로 하지 마라. 부탁이어도 좋고 명령으로 알아 들어도 좋아. 이제는 너 까지 책임져 줄수는 없으니까,"
"알아 듣도록 하죠."
"저건.. 마계병.. 베일즈 대장?"
"아.."
벤하르트는 일전에 구도우와 이동할때의 일을 떠올렸다.
"마계병의 대장을 맡고 있었던 남자야."
검은 갑주의 기사는 말없이 박힌 창을 빼 들고 벤하르트에게 겨냥했다. 그의 뒤로 백은 될 법한 흑기사의 무리가 창을 겨냥하고 있었다.
"분신에게서 떨어지지 마."
벤하르트는 검을 들고 그대로 100인의 정예에게 달려들었다. 창 끝이 벤하르트를 찌르기도 전에 그는 그 장소에서 벗어나 그대로 다섯명을 베어 넘겼다. 흑기사 베일즈는 벤하르트의 다음 경로를 가로막았다. 검은 창이 벤하르트의 심장을 노리고 들어왔다.
'과연..'
벤하르트는 창끝을 피하며 그대로 잡아 당기며 몸의 균형을 흐트리며 내던졌다. 공중에서 베일즈는 창을 벤하르트에게 던졌다. 벤하르트는 그 창을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러 튕겨내 버리고는 그대로 기사대 스물 정도를 베어넘겼다. 막거나 피하거나 반격하지도 하물며 방어를 포기한채 찰과상 하나를 노려도 벤하르트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정도의 압도적인 격차로 벤하르트는 단체로 마계병을 분쇄해 나갔다.
흑기사 베일즈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벤하르트는 그 사이 백인의 마계병을 전부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이따금씩 달려드는 망자들은 접근도 못한채 양단되어 사라져 갔다.
"대단하군.."
베일즈의 입에서 감탄의 탄성이 나왔다.
"역시.. 의지가 있었나?"
"뭐! 베일즈 당신.."
"놀랄 것 없다. 에실러. 그래 나는 지금 내 자아를 가지고 있다. 육체의 조종권은 빼앗겨 있는 대로지만, 정신은 간신히 잡을 수 있었지."
"빼앗겼다? 그러하는건 이 마굴의 흑막이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인가?"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망자가.. 된 거잖아요!"
"그래. 망자라는 것은 기본 에실러 네가 말했던 '독'이라는 표현에 딱 걸맞는 말이다. 나는 지금 이녀석들의 일원이 되어 있지.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것의 이유는 나도 잘 알 수는 없어. 내가 마계병중에서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에,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런건 이제와서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다. 나는 저주 받아 망자가 되었고, 너희들은 이곳을 없애기 위해 나를 없애야 하는 이 상황은 변하지 않아."
베일즈는 창을 바닥에 박고는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한가지... 묻지. 어떻게 내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
"창 끝에 의지가 서려 있었으니까, 네 본 실력을 억누르기 위한 '억제'가 말이다."
"그렇군 잘도 알아 차렸다."
"병사들또한 양팔 양다리에 상처가 나 있었지. 아마도 네가 그랬을 것이라고 지금 싸우면서 확신했다."
"그렇군 검사여.. 이름을 물어도 되는가?"
"벤하르트 하르크."
베일즈는 창을 바로 잡고 전투자세를 바로 잡았다.
"베일즈!"
"벤하르트여.. 한가지 부탁이 있다. 내 전력 받아주지 않겠나?"
"....."
"네가 거절한다면, 나는 지금 자살하겠다. 하지만 나도 무인. 너같은 강자를 앞에 두고 최후의 순간에는 싸우면서 사그라 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죽은 목숨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도,"
"와라."
벤하르트는 검을 바로 잡고 말했다. 필시 일전에 싸웠던 것이나 방금전처럼 무른 공격은 없을 것이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그런 짓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어!"
에실러의 말에는 아랑곳 하지도 않은채 벤하르트는 일섬의 자세를 취했다.
"긴 말은 필요 없다는 건가. 그러면 벤하르트 서로간에 시간은 없는 모양이니 이쪽에서 가도록 하지. 침입자를 말살하라는 명에 따른 내 '전력'을 받아다오!"
베일즈는 높이 뛰어 창을 아래로 내리 잡고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일말의 낭비는 없는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 벤하르트는 피할 생각도 않고 검을 바로 잡았다.
"일섬 백뢰섬"
주변을 흩뿌리는 백색 검기의 궤적과 함께 베일즈와 벤하르트는 일합을 스치고 지나갔다.
"쿠흣. 역시나 대단하군.. 인검성(人劍聖).. 로지닌과 겨룬다면 어느쪽이 이기려나.."
"....."
"벤하르트. 가라.."
"베일즈.. 당신은 어쩔 생각지지?"
"글쎄 최후의 단말마로 길정도는 뚫어 주지."
그는 창에 자신의 몸을 의지한채 무릎을 꿇었다.
"....."
"가.. 너희들은.. 나처럼 실패는 하지 마라. 으어어어어아아아아아아!!!"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베일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들고 거칠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점차 거세어 지는 풍압에 벤하르트가 소리쳤다.
"이니프 에실러!"
이니프는 눈치 빠르게 에실러의 손을 붙잡고 공간을 열어 그대로 벤하르트가 있는 곳까지 단번에 접근했다. 마지막으로 벤하르트는 베일즈를 보고 그대로 내달렸다. 망자들은 벤하르트 일행을 쫓으려 했지만, 몸이 점점 베일즈가 있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건물마저도 풍압에 부서져 내려 베일즈의 중심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몰레이지!"
거풍으로 망자들을 끌어 들여 일격으로 단체를 절명시키는 비기에 도시에는 마치 큰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망자들이 쓸려 나갔다.
"후우.."
마지막 싸움의 여운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 일섬이 교차할때의 감각이 전신에 가시질 않았다. 최후의 최후에,, 이미 옛적에 죽어 멈춰버린 그의 시간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전사의 최후로써는 나쁘지 않은가.. 고맙다 벤하르트."
그 독백을 끝으로 그의 몸은 가루가 되어 부서져 흩날려졌다.
- 작가의말
기술명에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한자어가 아니라면요..
베일즈가 망자들을 없앨수 있는 것은 개연성 오류는 아닙니다...이후에 나오게 될 테지만 노파심에 일단 말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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