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21화(575화)-
"하아 어쩔수 없구만,"
벤하르트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제와서 티온을 도시로 돌려 보낼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애초에 그렇게 한다고 해도 티온이 도시에 머무를것 같지도 않았다. 벤하르트는 그녀의 고집을 꺽을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자 받아둬."
벤하르트는 티온에게 구릿빛 동화를 건네 주었다.
"이게 뭐에요?"
"일단 받기나 해라. 참고로 말해두지만 나는 여행길에 너를 데리고 다닐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그 말에 티온은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올 곳에 머무는 것 정도라면, 못 들어줄건 없겠지. 어차피 너도 갈 곳이 없을테고 말야."
벤하르트가 자신을 데리고 간다는 사실에 티온은 밝게 웃으며 동화를 받아들었다. 동화에는 쌍용의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벤하르트는 리스에게 물었다.
"리스 어쩔래?"
"이쪽으로 가볼까?"
"그럼 난 이쪽으로 가야겠군. 찾게 되면 이 자리에서 만나도록 하자고, 반나절 정도면 충분하겠지?"
"충분하고 말고,"
리스는 자세를 낮춰 땅을 박차고 그대로 다른 방향으로 내달렸다. 눈 깜박 거릴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진 리스를 보고 벤하르트는 티온에게 말했다.
"자 그럼 우리도 가자."
"네? 어디로요?"
"그 동화는 말야 내가 머무는 곳으로 가는 공간의 통행권이지. 하지만 사용하기가 워낙에 까다로워서 말야."
그는 동화의 회색용을 쓰다듬었다. 티온도 그를 따라 회색용을 쓰다듬어 보았다. 순간 한차례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살랑였다.
"저쪽 방향인가?"
바람이 날아온 방향을 가리키며 벤하르트가 말했다. 그는 힐끔 티온을 보았다.
"어쩔수 없지."
벤하르트는 검을 꺼내 들고 허공에 한번 휘둘렀다.
"일섬 백봉"
그에 거대한 백색의 새가 형체를 이루며 등장했다. 벤하르트 혼자였다면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티온이 함께였기 때문에 그는 어쩔수 없이 백봉을 만들었다.
"우와아."
백색의 새에 눈을 반짝이며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티온을 보고 그는 피식 웃고 조금 놀려주고 싶어져서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 들었다.
"꺄 뭐하는거에요?"
벤하르트는 그대로 티온을 하늘로 던졌다. 순간 티온은 하늘 높이 올라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혼비백산하며 벤하르트가 자신이 귀찮아서 죽이려고 한건가? 하는 생각을 순간 하면서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아아아아 아앗?"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어느샌가 백봉의 위에 얹혀 있었다.
"놀랐어?"
그녀는 울음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얼굴을 하다가 얼굴을 홱 돌리며 말했다.
"놀라지 않았어요."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해도 아직은 애구나.'
벤하르트는 삐친 티온의 모습을 보고 살짝 웃어 제끼고는 백봉을 타고 그대로 날아갔다.
백봉은 아주 포근했다. 한없이 포근해서 가만히 등에 얼굴을 대고 있으면 그대로 잠이라도 들어버릴것만 같은 푹신함이 느껴졌다. 티온은 조금 토라져 있었지만,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에 금새 기분이 풀어졌는지 환하게 웃었다.
"벤하르트! 저건 뭐에요?"
그녀는 바람기둥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지."
곧 백봉은 바람기둥에 도착했다. 벤하르트는 바로 몸을 날려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아직 한참은 높은 곳이었기 때문에 티온은 굉장히 놀랐지만, 벤하르트는 별 어려움도 없이 깃털처럼 쉽게 착지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녀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녀의 몸은 무엇엔가 이끌린듯 그대로 잡아 당겨져 떨어져내렸다.
"꺄아아아앗!"
벤하르트는 떨어지는 티온을 받아들고 물었다.
"엿차. 이번에는 놀랐지?"
"노 놀라지 않았어요."
혼비백산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지러움증을 느끼면서도 티온은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흠 흠.. 이제부터는 여기에 올라서서 내가 말한대로 해라."
벤하르트는 바람기둥에 올라서서 약간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찝찝한 표정으로 그는 주변을 두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스포에라를 위하여!"
쩌렁쩌렁하게 온 숲에 그의 목소리가 퍼짐과 동시에 그는 그자리에서 사라졌다.
"어? 벤하르트!"
벤하르트가 사라지자 그녀는 순간 두려웠으나 정신을 차리고 바람기둥에 서서 동화를 들고 말했다.
"아 아스포에라를 위하여."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뭔가 잘못 들었나?"
하지만 그렇게 큰소리로 외쳤던 것을 잘못 들었을리는 없었다. 그녀는 다시 조심스레 말했다.
"아스포에라를 위하여."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베 벤하르트 놀리는 거라면 그만 두는게 어때요? 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그녀는 울상지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지만, 벤하르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벤하르트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훌쩍이기 시작했다.
"아 아스포에라를 위하여."
완전히 바보놀음이나 다름 없었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서 성숙했기 때문에 더더욱 바람기둥에 서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바보스럽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자 그녀는 이윽고 울어 버리고 말았다.
"벤하르트. 나를 바리지 마요."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벤하르트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하는거냐? 너."
"베 벤하르트?"
"왜 안들어오는거야? 한참을 기다려도 안오길래 뭘 하나 했더니 왜 울고 있어?"
훌쩍거리면서 티온은 그의 얼굴을 보자 안심하고 다시 울어 제꼈다.
"어린애가 되 버린것 같아요.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그녀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벤하르트는 낄낄 거리면서 말했다.
"넌 원래부터 어린애였다고, 하지만 정말 재밌기는 했다. 그런일로 내가 너를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말야. 아스포에라를 위하여를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울다니, 하하"
"수치스러워요."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런게 당연한 거라니까, 어린애는 어린애답게 살라고, 그런 시절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니까 말야. 하기사 내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구만,"
벤하르트는 노인이 되어서 다시 젊어져 왠지 젊은 생각으로 삶을 살게 되어버린 자신을 생각하니 우습다고 생각했다.
"어른스러운것도 나쁜건 아니지만, 역시 나이답게 행동하는게 좋지."
'그러면 나도 허허 노인처럼 행동해야 하는건가?'
뭔가 스스로의 말에 모순을 느끼면서 벤하르트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 쓸데없이 성숙한 어린애가 나중에 자신의 나이를 알게 되었을 경우에 이 일을 기억하고 있지 않기를 그는 살짝 신에게 빌었다.
"그나저나 이곳이 바로 내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가렌더 부크로 향하는 배 아스포에라를 탈 수 있는 공간이지."
아까와 전혀 다를바 없었지만 온통 흑백으로 뒤바뀐 이계를 보며 티온은 다시 신비스럽다는듯 주변을 둘러 보았다.
- 작가의말
50분만에 급하게 썼더니 3천자..!! 아 죄송합니다.
연참대전은 언제나 4000자 이상을 채우려 했지만 오늘은 너무 급한 일들이 많아서 어쩔수가 없었네요.
최근에는 이런 저런 소설을 쓴답시고 엔쿠라스를 많이 적지 못했는데,
연참대전 기간에라도 열심히 써내려 가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신분... 계셨으려나요?
아무쪼록 즐거운 연참대전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에게도 독자님들에게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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