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67화-재회(2)
방금 벤하르트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검이 무엇인지 똑똑히 볼수 있었다. 치명상을 입히려고 했던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사실을 감안한다고 쳐도 나름대로 기를 실은 벤하르트의 검을 가볍게 받아낼수 있는 검은 흔하지 않았다. 거기에 막자마자 몸에 느껴지는 중압감은 분명 자신이 만들었던 영석의 검 지령검(地靈劍)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너는.."
"강해졌다고 해서인가? 아니면 내가 여자라고 해서? 너무 방심한것 아냐? 벤."
감춘 얼굴을 보이자 그 안에서는 분홍색의 긴 머리가 찰랑였다.
"트레이야!? 그렇다면 저녀석은?"
"흥."
다른 한쪽의 외팔이는 다름아닌 제네스였다. 차가운 눈으로 벤하르트를 쳐다보던 제네스는 기분나쁜 눈초리로 그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트레이야 네가 어떻게 여기에.."
벤하르트는 벙찐 얼굴로 물었지만, 마찬가지로 트레이야도 비슷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이쪽이 묻고 싶은 말인데, 우리는 방랑자거든 요즘에는 음유시인으로 살아가고 있지. 이녀석이 이렇게 보여도 입으로 할수 있는게 많아서 말야."
다른 한쪽에서는 제네스가 기분나쁘다는듯 질색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음유시인으로써 이야깃거리를 노래하고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우리야 어디에 있던지 간에, 상관 없는 일이지만, 너희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여행하고 있었잖아? 그렇다고 한다면 이번 목적은 라스펠인건가?"
트레이야의 물음에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정말이지 어려운것들만 골라서 행동하는구나. 우리도 그 전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이곳에 왔는데, 아는사람은 손을 꼽았어. 거기에 위험하기는 정말 대단하지. 그중에서도 그 보리스는 그 전설에 가장 가까운 사람중 하나였어."
"보리스?"
"네게 라스펠에 대해서 말하던 그 사람 말야. 우리도 한동안 그 이야기를 들었더랬지."
"아.. 그때 들었던 건가. 그나저나 대단한데, 그렇게 가까히에 있었는데도 나한테 기척을 읽히지 않다니, 영락없는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트레이야는 키득 거리면서 웃어 제끼며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조금 강해진것 같기는 하지만, 우리가 마음만 먹었으면 지금쯤 너는 내 발밑에 깔려 허우적이고 있었을걸?"
"무슨 예시야 그건!? 뭔가 이상하잖아."
그는 살짝 등골에 소름이 돛았다.
"그정도로 너는 방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야. 당장에 지금만 해도 사용할만한 기가 없지? 기를 그정도까지 사용하게 된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트레이야 너도 기를?"
"전문적은 아니지만, 그 무법마을에서 살아온 나니까, 어느정도의 지식과 사용하는 법도 알고는 있었지. 내 전문은 어디까지나 자기 세뇌니까 너희에게는 그 방법을 일러 주었건만, 전혀 사용하지 않은것 같은데,"
"하하.. 기와는 별로 안맞아서."
"안맞지 않아! 그건 단순히 네가 불편하기 때문에 피한것 뿐이라고,"
불만 스럽게 뚱한 표정으로 트레이야는 벤하르트를 쳐다보았다.
"어쨋든 대단한데, 룬델도 아니고 이런 에린델의 외지에서 너를 만나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어 어엇. 읏.. 이건."
벤하르트는 순간 머리가 시큰 거렸다. 표정이 달라진것을 보고 트레이야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건.. 레니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것 같아."
"뭐? 아.. 지금 레니아에 대해 물으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생겼다고?"
제네스는 벤하르트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머리다. 미세하게 엮여진 마력의 끈이 있군."
제네스는 벤하르트의 머리의 마법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벤하르트도 집중하지 않으면 잘 보기 힘들정도로 가는 실이었는데, 그것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알아차리다니 벤하르트는 제네스의 주의력에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그건 뭐야?"
"레니아가 만들어 놓은 마법중 하나야. 서로에게 위기가 닥치면 알려주게 되어 있지."
"편리한데?"
"어쨋든 서둘러서 가야만 해. 트레이야 밀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트레이야는 이해할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당연히 같이 가야지."
"뭐?"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그녀는 한심하다는듯 말했다.
"뭐? 라니 정말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벤 너는 앞뒤 안가리는 면이 좋기는 하지만, 지금은 적당히 해두는게 좋아. 우리 둘은 어느정도 장난 삼아 공격한 것이었지만, 네가 정색을 하는 바람에 너는 지금 기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구."
그 말대로 벤하르트는 실제로 기를 제대로 운용할수 없었다.
"으.."
"그 꼴로 레니아를 위기로 빠트린 사람들을 잡겠다는거야? 말도 안되지. 되려 당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려고 그래? 여긴 우리 둘에게 맡겨."
"나는 내키지 않은데,"
트레이야는 말없이 제네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 가자."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은 그 둘의 모습에 벤하르트는 맘 편히 즐겁게 웃을수만은 없었다.
"왜 내가 기를 사용할수 없는거지?"
트레이야는 슬쩍 제네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건.. 제네스 네가 이야기 할래?"
"헛소리. 트레이야 너는 이미 잊었는지 몰라도, 내 팔을 잘라낸건 바로 저녀석이다. 말따위 섞을까보냐."
"치졸하기는."
"큭.."
뒤에 제네스는 무어라 중얼 거렸다. 자세히 들어보면 '내 입장에 되어 보기는 했냐는' '팔이 없으면 이래저래 불편하며,,'등의 자기 불평적인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만들어준 장본인인 벤하르트는 속이 굉장히 편치 않았다.
"그럼 내가 이야기 해줄게. 처음에 벤 너는 상당히 경계를 하지 않았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들 정도라면 얼마든지 이길수 있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겉보기에 우리의 기는 굉장히 약했으니까, 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네 입장으로 봤을때 상당한 격차가 난다고 생각했을거야."
셋은 일반인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움직임으로 달리며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반대야. 우리는 네 방심을 고의적으로 유도 한거야. 기를 보면 어느정도 상대의 능력을 알수 있다. 그 이야기는 어느정도는 정론에 가깝지만, 우리는 그것과 다른 이능력을 가지고 있지. 자신의 뇌를 속이는 상대의 뇌를 다루는 무의식 즉 잠재적세뇌를 다룰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야. 방금것은 아무래도 조금 응용을 했기에 네가 내 강함을 잘못 헤아린 것이었지만, 본래의 내가 사용할수 있는 기는 이정도지."
앗하는 깜짝할 사이에 트레이야는 상당한 양의 기를 발산했다. 그 당장에 사용할수 있는 총량이 벤하르트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운용 정도에 따라 충분히 벤하르트와도 상대할수 있을만큼의 기 였다. 되려 트레이야는 세뇌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만큼 그 강함은 눈에 보이는것보다 더 대단하다고 할수 있었다. 고로 트레이야 홀로 벤하르트와 싸웠다고 해도 벤하르트는 완벽한 승리를 장담하기는 힘든 것이었다.
'그러고보면 K도 트레이야는 상당히 경계 했었지. 그 무렵만 해도 확실히 트레이야는 강했어.'
사실 트레이야는 당시에 기를 다루는것은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 없었다. 그녀가 기를 조금 심화하여 익히게 된것은 제네스와 만난 이후의 일이었지만, 벤하르트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잠재의식을 조정해 총량을 마치 적은것처럼 속인거야. 스스로를 속일수 정도니 타인인 벤 너는 말할것도 없겠지? 그래서 마음대로 상대의 강함을 측정한 너는 방심을 했고, 사실상 그것을 알고 있는 나는 역으로 이용한것이지. 네가 지금 기를 다룰수 없는건 제네스의 기술이야. 제네스의 세뇌는 알고 있지. 타인의 뇌에 강제 세뇌하는 방식이지. 네가 제네스에게 결정타를 먹이려고 할때, 제네스는 세뇌를 발동했고, 나는 너를 막았지. 그때 예상치도 못했던 이변에 너는 기를 더 활용하려 했지만, 이미 그때는 제네스의 기술(氣術)에 당한 후였던거야."
"기술이라니..?"
"말해도 돼?"
트레이야는 제네스에게 넌지시 물었다.
"물어 뭣하겠냐."
무뚝뚝하게 제네스가 말했다. 트레이야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제네스는 타인에게 강제적인 잠재세뇌를 걸수 있지. 우리와는 정반대의 역(逆)인 세뇌. 우리의 세뇌가 자신을 강화하고 제한하거나 하는 자신을 기반으로 한다면 제네스는 타인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역세뇌하는 거야. 아까 네가 당한것은 움직임에 대한 명령을 응축시켜 둔하게 만든것인데, 설마 그 상황에서도 움직일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보통은 당하는것만으로도 몇분은 움직이지 못하거든."
"하지만 그건 단순히 한시적인것 아닌가?"
"그래. 거기에 두번째 세뇌와는 다른 기술(氣術)이 있지. 세뇌에 걸린적에 한하여 기를 사용하면 상대의 기를 봉하는것도 가능해. 원래는 한창 전투중에 할만한 기술이 아니었지만, 네가 워낙에 방심을 하고 있어서 말야. 보기좋게 성공한거지. 그때 가만히 있었으면 해주(解呪) 할수 있었을텐데, 네가 급하게 전력을 다해 풀어 버려서 기를 전부 사용해버린거지. 이래도 기와 세뇌가 관련이 없다고 할거야?"
"그랬구나.. 내 기를 전부 사용했음에도 그때 주술은 풀리지 않았었던 건가?"
"이런 기술은 사실상 걸기가 매우 까다로운 부류에 속하지만, 걸고 나면 1의 힘으로 10의 효과를 내는것도 가능하니까, 이미 제네스는 그 주박을 풀어 주었어. 하지만 네게 남은 기는 얼마 없잖아? 그런 상태로 누군가와 싸운다는건 어지간하게 약하지 않은한은 위험하지 않겠어?"
벤하르트의 기본적인 신체능력은 꽤나 좋은 축에 속했지만, 지금 달리는것 만으로도 사실상 조금 지치고 있었다. 단순하게 달리는 행동으로 지치는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정도의 적은 기로도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다니 놀랐어."
"아 그건 세뇌로 자신을 속이고 적을 속였지만, 그렇다고 사용할수 없는건 아니니까, 순간적으로는 내가 사용할수 있는 기와 세뇌의 효과를 내서 더 좋은 움직임을 낼수 있는거야."
"대단한걸."
"그 대단한 기술을 왜 안 사용하고 있는건데?"
트레이야는 세뇌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확실하게 기초부터 다시 가르칠테니까 각오해둬."
도시의 밖까지 나와 실의 끝이 멀지 않았을때 문득 상황에 대한 경우의 수를 떠올린 벤하르트가 말했다.
"혹시 레니아의 상황이 조금 심각하다 하면 너희들은 도망쳐."
"그건 무슨 소리야?"
트레이야의 물음에 벤하르트가 답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조직에 쫓기고 있는 중이거든. 아 트레이야 너도 한번 본적 있지? 그 K가 속해있는 조직인데, 그녀석들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뒤를 보지 말도 달아나도록 해."
"아오이스를 말하는거야?"
"어떻게 알고 있어?"
벤하르트는 그녀가 아오이스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물었다.
"알수밖에 없지. 음유시인이자 방랑자인 우리... 는 아니고 사실 제네스는 우리 아버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너희 아버지라면, 브레인 말이야?"
벤하르트는 카도스에서 만났던 브레인을 떠올렸다.
"그래 우리 아버지는 아오이스의 대행자중 한명이셨던것 같아. 어쨋든 아오이스가 걸려 있다고 한다면, 위험한데,"
"아오이스가 걸려 있다고 한다면 나는 손을 뗄거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제네스는 그렇게 말했다.
"어쩔수 없지. 제네스 당신에게 거기까지는 바랄수 없을테니까, 하지만 나는 가겠어."
그녀의 그 말에 제네스의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벤하르트가 트레이야의 말에 따지고 들자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난 이미 한번은 마음이 죽어 있었어. 그것을 도와준건 다름아닌 너야. 벤. 이전에도 이야기 했지? 나는 너를 먼저 만났기 때문에 제네스의 의견에 공감할수 없었다고, 나에게 있어서 너는 우상이나 다름 없어. 그러니까, 너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할 뿐이야. 결론은 이거지."
"억지 부리지 마."
"싫네요. 내가 억지를 부리는건 너를 닮았다고 생각해. 고집불통 벤."
"어이 제네스라고 했었지? 트레이야를 이대로 둬도 괜찮은거냐?"
벤하르트는 자신이 아무리 이야기한다 해도 트레이야가 들을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에, 제네스를 향해 말했다.
"흥. 내 알바 아니지. 이녀석은 한번 마음 먹은것은 기필코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내가 몇번이나 당했는지.... '어딘가의 누구'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받은것 같더군."
차가우면서도 이글거리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어버릴것 같은 눈으로 제네스는 벤하르트를 노려보자 벤하르트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등뒤가 오싹하게 저려오는것을 참으면서 그는 다시 트레이야에게 말했다.
"어쨋든 아오이스를 알고 있다면 더더욱 허락할수 없어."
"아 괜찮아. 일단은 가보기나 하자. 그렇게 이야기했다는건 아오이스가 아닐경우도 상정했다는 거지? 뭔가 짐작 가는게 있다는 이야기일테니까,"
'아오이스라고 하면 기절을 시켜서라도 돕는것을 막아야겠어. 최악의 경우 카이후같은 인격파탄자가 온다면 목숨을 장담할수도 없고,'
'아오이스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꼭 돕고야 말겠어.'
'아오이스라고 해도 트레이야 녀석은 달아날 생각을 안하겠지. 이거 각오를 해두어야 하나. 젠장. 원수를 눈앞에두고 원수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니, 말도 안되지만, 트레이야를 죽게 둘수는 없는 노릇이고, 대행자급만 나오지 않기를 비는수밖에 없겠군.'
서로간에 동상이몽을 하며 그들은 실을 따라 레니아가 있는곳으로 내달렸다.
- 작가의말
네 정체는 트레이야 였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jeuskan님. 벌써 300화나 이전의 일인데,,, 이것을 위해 내가 벌서 300화나 썼단 말인가.. 아아..(사실 앞으로의 떡밥도 많지만서도, 괜히 일만 크게 벌리는 바보같은 저.. ㅠㅠ 하지만 가겠습니다. 바보같지만 뭐 이런 바보 한둘쯤은 있어도 되겠죠.)
참고로 제네스와 트레이야의 세뇌는 이미 전에 설명을 해두었지만, 트레이야는 주로 자기 강화와 자기 관리(이부분이 기를 철저하게 숨길수 있는 부분이었고)
제네스는 양쪽을 전부 사용할수 있습니다만, 전문 분야는 타인의 잠재적인 능력(주로 약화)을 특기로 삼고 있지요.
뭐 그렇습니다.
이걸 올리면 이제 저는 하루를 쉬게 되겠군요. 그나저나 요즘은 썰렁 하네요 ㅠㅠ; 자업자득이긴 합니다만은,
저는 근래에 들어 최악의 감기를 맞이 했는데, 여러분들은 조심하시길 빕니다. 그럼 하루 건너 뵙도록 하죠.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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