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6화(560화)-백검사(7)
다음 날 아침 벤하르트는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 났다.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츠는 이미 일어나서 차를 끓이고 있었다.
"네 간만에 편히 잔 것 같습니다."
"그거 다행입니다. 헌데 일행 분은?"
"곧 내려 올겁니다."
"출발은 언제 하게 되시는지?"
"곧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벤하르트는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벤하르트에게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였다.
감당할 수 없다면 사귀지 말자는 것. 벤하르트가 타인과의 만남을 꺼려하는 것은 속죄 외에도 반성의 의미도 섞여 있었다.
그는 레니아나 리스라면 자신의 목숨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무츠나 호쿠스라면 어떨까?
그렇기에 그는 아는 사람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누가 되었든 그는 목숨을 걸어 사람을 지키지만, 그 행위에 대한 '후회'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레니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목숨을 걸면서 까지 지키고 싶지 않더라도 자신은 아는 사람이 위기에 처한다면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그를 지키려 들 것이다. 하지만 레니아를 구해야 할 자신이 정말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그는 '후회'할 것이 틀림 없었다. 벤하르트가 지키려는게 잘못된 게 아니고 당사자가 나쁜 것도 아니다. 누구도 나쁘지 않지만 후회할지도 모르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벤하르트는 원치 않았다.
모른채로 모르는 사람이 죽어나간다면 불쌍하다 외에는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테지만, '아는사람'일 경우라면 그것 하나 만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약하게 만든다. 벤하르트는 지킬 것이 있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지킬 것이 있기에 약해질수도 있는 것이다.
'후우..'
벤하르트는 자신의 그런 무딘 성격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은 그런 인물이다. 그 우유부단함이 자신을 편하게 만들어 주면서도 그것은 어느때고 '후회'를 가져 올 수 있는 성격인 것이다.
"자 한잔 하시지요."
"....."
벤하르트의 얼굴을 본 무츠는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변하지 않는 색이라는게 존재한다고 합니다. 검은색도 붉은색도 파란색도 있지요. 그것에 덧칠을 해나가며 사람을.. 스스로를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네. 누구든지 그 '본질'이라는게 있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는 참견쟁이 였다고 했었지요. 그 고유의 색은 아무리 덧칠하고 더렵혀지고 잊혀져도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츠는 은은하게 올라오는 차의 향기를 맡고 말했다.
"'결정적일 때' '중요할 때' '최후의 순간'에 잊히지 않고 그 깊은 곳에 참들어 있던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은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저는 많이도 변했습니다. 옛부터 참견하기를 좋아했었죠. 따지고 분석하고 말로써 설득 시키고, 어느사이엔가 자라면서 그런 것은 점점 사라졌었습니다. 뭐 사회생활이라는게 그렇듯이 말입니다."
벤하르트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런데 어제 최후의 순간에 제 본성이라는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게 죽음을 '각오'했기에 생긴것인지 아니면 될대로 되라고 생각했는지 저도 잘은 모릅니다. 그토록이나 무서워 했었던 두려워서 단 한번도 따지거나 대들지 못했던 나지마에게 어떤 용기가 나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지금에 와서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는건 역시 그게 바로 제 '색'이었다는 것이겠지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어제의 일과 벤하르트씨를 보고 떠올랐습니다."
"그렇군요."
"벤하르트씨도 가슴속에 묻어 둔 자신의 색은 있으시겠지요."
"제 색은 더할 나위 없이 탁한 색일 겁니다. 난잡하지요. 저는 어느쪽도 선택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이기주의자니까요."
"하하 그렇습니까?"
'변하지 않는 색.. 인가?'
"벤하르트씨에게 있어서 저는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이겠지만, 저는 벤하르트씨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벤하르트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가 속에 품고 있는건 '참견'이니까요."
"저로써는 되도록이면 잊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뭐 마음대로 생각해 주십시오."
"하나만 더 참견을 해도 된다면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
"어제 말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상 입니다만, 붕화 도시에 있는 조력자에 대한 이야깁니다. 만약 붕화도시에 있는 조력자가 종교에 빠지지 않았고, 혹시 위험한 상황이라면 강제로라도 지켜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어제도 말했지만 저는 선인 따위가 아닙니다. 따라서 부탁을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랬었지요. 지금 한 말은 잊어 주셔도 좋습니다. 큰 실례를 범해 버렸군요."
벤하르트는 방금 전 무츠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신의 색'을 잊지 말라는 그 말이 뇌리에서 벗어나지를 않았다. 언젠가 리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레니아가 마지막에 했던 말로 '벤하르트가 언제고 그 모습으로 있을 수 있기를' 리스가 종종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의 색,, 이라..'
그는 머리를 헝크러 트리고는 무츠에게 말했다.
"부탁은 들어 줄수 없지만, 진귀한 술이고 고기고 하룻밤 묵기까지 했으니, 그에 대한 빚을 졌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부탁은 그에 대한 지불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지요."
"그 그렇다면,"
"내키지는 않습니다만, 상황이 맞는다면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그 말은 벤하르트에게 있어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설사 무츠의 부탁을 들어 준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그라면 거절의 말을 했을 것이다. 어설픈 관계는 언제고 독이 될 수 있다. 무츠가 부탁하지 않아도 자신이라면 그 조력자를 지킬 것이다. 그러니 생색내듯 무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 벤하르트는 무츠의 정성을 '무시' 할 수는 없었다. 그 또한 자신의 본연의 색이라면 색이었을까?
벤하르트와 리스는 준비를 끝마치고 무츠와 호쿠스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의 문앞에 섰다.
"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 머무셨으면 좋았을텐데, 정말로 아쉽습니다."
호쿠스는 진심으로 아쉬웠는지 입술을 지근지근 깨물며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다.
"우리 마을을 도와 주신 것은 저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잊어 줬으면 좋겠습니다만, 하아.."
벤하르트는 구석구석에서 숨어서 자신을 지켜 보는 마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참 손해보는 짓을 했군.'
마을을 지켜준 것에 후회는 없었지만, 자신이 추구하던 여행에서는 많이도 멀어 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무츠가 있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면 나지마 형제에 대한 말은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리스."
"어? 오호.."
리스는 놀랍다는 듯이 벤하르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벤하르트는 허공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검을 휘둘렀다.
"일섬 백봉(白鳳)"
검이 가른 곳에는 백색의 거대한 새가 드리웠다. 벤하르트와 리스는 사뿐히 새에 올라 탔다. 마을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벤하르트를 바라 보았고 무츠도 놀란 눈으로 벤하르트를 보았으며 호쿠스는 그 모습을 보고 기절이라도 할 것 같이 자지러졌다.
백색의 거대한 새는 하늘로 날아 올라 순식간에 마을에서 멀어졌다.
"왠일이야? 그렇게 눈에 띄기 싫어하는 벤하르트께서?"
"글쎄. 단순한 변덕이라고 해두자."
멀어지는 마을을 보며 벤하르트는 그렇게 말하고 살짝 미소지었다.
- 작가의말
네 벤하르트의 신기술!! 에 대해서는 뭐 차차 이야기 할 것입니다만,
뭐 그냥 저냥 대청소를 하고 늦게 한시간을 남기고 부랴부랴 써서 올립니다.
좀더 벤하르트를 멋지게! 묘사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는 잘 안되는군요.
차차 보여줄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만 오탈자와 맞춤법등 제가 명백하게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망설일 것 없이 칼이 되어 도려내 주세요!
(국어쌤님 답글 아래 달아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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