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83화-주마의숲(1)
벤하르트는 퀘이소무리와 프쿠타를 데리고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마누어 일행은 도착해 있었다.
"늦었군."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 녀석들은 누구지? 가는건 그때 있었던 녀석들뿐 아니었던가?"
"아 사정이 있어서 데리고 가게 된 일행들입니다. 라스펠에 가는건 아니고, 주마의 숲을 통과하는것 까지만 동행하는것이니 별 신경은 안쓰셔도 됩니다."
"어이. 퀘이소들은 그렇다 치고 나는 라스펠이 궁금해서 여기까지 따라온거라고, 주마의 숲을 들어가는거나 통과하는거나 나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단 말이다."
프쿠타의 말을 듣고 벤하르트는 마누어에게 말했다.
"저분은 라스펠에 관심이 있다고 하셔서, 가능하다면 데리고 갔으면 좋겠습니다만,"
"으음."
마누어는 꽤나 고민을 했다.
"뭐 문제라도?"
"아니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래뵈도 나는 라스펠의 시민이니까, 위험할지 아닐지도 모르는 자를 멋대로 안에 들이는 짓은 위험하거든. 하지만 어쩔수 없지."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한것은 벤하르트가 아닌 프쿠타였다. 평소의 그 털털한 말투는 어딜 갔는지, 진중한 어조로 그 짧은 감사의 인사 표시로써 그는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프쿠타는 마누어를 전부 이해할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마누어의 단편적인 심정은 이해할수 있었다. 프쿠타의 분신도 카도스에서 수비를 하고 있는 만큼 그도 그런것에는 나름대로 느끼는 바가 있었다. 물론 그의 경우는 장난이 반정도 섞인 단순한 실험 차원으로 카도스에 자신의 분신을 남겨둔 것이었지만, 그것으로도 마누어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수 있었다.
위험할지도 모르는것의 배제는 굉장히 중요한것이다. 특히나 마누어같이 한번은 '당했었던' 경험자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 한번 때문에 라스펠은 공중으로 향했던 것이 아닌가, 작은것 같지만, 사실상 그 작은 한번조차도 허용하지 않는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행동이라는것은 당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다. 이미 당해 보았던 마누어가 프쿠타 같은 정체불명의 남자를 허락해준것은 어떤 방식으로 보면 상당히 대단한 일인 것이다.
프쿠타의 그런 모습은 벤하르트나 레니아는 물론 상당히 오래 같이 있었던 트레이야나 제네스도 처음 보는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조금 놀라고 있었다.
"그럼 가지. 3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렸으니 그만큼 더 떠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로써는 썩 마음이 편하지 않아."
"그렇겠군요."
그들은 숲의 안쪽 마치 마계로 향하는 입구처럼 보이는 검은 마굴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 라프라."
류누는 조금 불안해 하는 얼굴로 라프라에게 말을 걸었다.
"왜요?"
"괜찮은거냐? 부족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곳은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될 곳이라고 했잖냐."
"괜찮아요."
"뭐가 괜찮냐? 지금만 해도 우리를 보고 있는 마수들이 벌써 수십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저녀석들은 산책하듯이 걷고나 있고, 역시 날아서 가는게 낫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가씨. 목까지 차오르는 이 오한은 너무 고통 스러워요."
"오한이라니 뭐가 말이에요?"
라프라는 거짓없는 편한 표정으로 류누와 스크루를 번갈아 보았다.
"괜찮으세요?"
"당연하죠."
"뭐가 그렇게 둔해 빠진거냐. 마수라면 적어도 마기(魔氣)를 읽는것 쯤은 해야 하는것 아니냐? 스크루 이녀석은 지금 우리들이 얼마나 위험에 빠졌는지도 알지 못하는것 같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에요? 그런건 다 알고 있어요."
"헛소리 하지마 그런데 그렇게 태연할수 있단 말이냐? 좋아 어디에서 기가 나오는지 맞춰봐라."
라프라는 조금 분한듯한 얼굴을 해보이더니 손가락으로 마기가 느껴지는 곳을 가리켰다.
"여기랑 저기 그리고 여기.."
연이어 방향을 맞추는 라프라를 보고 류누는 귀엽다는듯 약간은 비웃음을 슬쩍 띄우고는 말했다.
"라프라 분명히 네가 가리킨 이곳이나 저곳이나 이런곳들은 맞지만 가끔 틀리는게 있는걸?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럴리가 없을텐데요?"
"헛소리 하지 마라 네가 찍은곳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말야."
"아 저기.. 죄송합니다만, 일단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조금 앞에서 가고 있었던 벤하르트는 라프라와 류누의 소리가 조금 커지자 주의를 주었다.
"아 오빠. 류누가 하는 말좀 들어보세요. 자꾸 제가 틀렸다고 하잖아요."
"뭐가 말야?"
"그러니까, 류누와 저는 마수들이 어디서 보고 있나 맞추는 내기를 했는데요. 제가 말한게 틀렸다고 하잖아요."
"틀리니까 틀렸다고 말하지."
"그럼 제가 심판이 되도록 하죠."
"무슨 소릴 하는거냐? 마기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녀석이. 네 강함은 인정하지만, 마수들을 읽는건 우리 마수들의 전공분야란 말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만, 일단 심판은 제가 보겠습니다. 저도 그런쪽으로는 별로 진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인간이 마기를 알아채고 심판을 본다니 말이 안되잖아. 옳고 그름을 따질수 있는 판단 정도는 할수 있어야 이런 것의 심판을 볼수 있을텐데?"
벤하르트는 손으로 류누를 밀었다. 그와 동시에 라프라와 스크루의 어깨를 잡고 몸을 수그리게 만들었다.
"뭐하는거야!"
대답대신에 들려온것은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하나의 새였는데, 그 부리에는 마치 톱날같은 이가 달려 있었다. 눈을 새하얗게 뜨고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류누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방금의 마수는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천적과도 같았다. 날아 다니는 무언가를 포획하고 사냥하는것에 특화 되어 있는 마수. 아마도 수년에 한두번씩은 저녀석에 의해 동포가 사냥되었던 적도 있었다. 류누가 그것을 본것은 지금으로 부터 몇년전의 일이었다.
"괜찮습니까?"
벤하르트는 류누를 일으켜 주었다. 조금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수습되자 그제서야 그는 생각할수 있었다. 방금전 자신은 그 마수가 다가오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물론 집중했다면 파악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저 마수의 속도는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자신이 시야를 느낄수 있는 범위에서 이곳까지 이르는데도 1초정도면 충분할정도로 비정상적일정도로 빠른 마수. 그것을 방금의 인간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모르고 그렇게 행동한다는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만약 이전부터 모르고 있는다고 한다면 자신을 수비하는데에도 급급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수를 눈치챈게 자신보다 더 느렸다면, 그 변화에 대한 반응밖에는 할수 없었을 것이지만, 벤하르트의 경우 자신을 치고 라프라와 스크루를 눕히고 나서야 마수를 처리했다. 이미 자신이 파악하기도 전에 진즉부터 알지 않고서는 그렇게 행동할수는 없는 것이다.
"대단하군."
"그렇죠?"
대답한것은 뿌듯한 얼굴을 한 라프라였다.
"꾸우.."
"이녀석 아직도 살아 있는데?"
"일부러 살려 둔것이니 그냥 가죠. 저희가 통과할때까지는 일어나지 못할겁니다."
벤하르트를 따라 걸으면서 류누가 물었다.
"왜 살려둔거지?"
"이유는 별로 없는데, 굳이 따지자면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이곳에 들어온 이상 불청객은 저 마수가 아니라, 마수의 입장에서의 저희가 될테니까 말입니다."
'이녀석 인간주제에.'
정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눈앞의 남자는 류누가 지금껏 보아 왔던 인간상과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른 녀석인 것이다. 류누도 인간이 전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당장 바로 며칠전까지만 해도 크래치의 손에서 못볼꼴 다 보지 않았던가, 그때의 사무치는 증오를 잊은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다만,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을 구해주기는 했지만, 그는 같은 인간인 이상 벤하르트도 그렇게 보고 있었다. 이해타산으로, 라프라와 아는 사이니까, 자신을 구해준것이라고,, 하지만 방금전의 일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뭐 보다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네 그 실력은 잘 알았다. 그러면 라프라와 나의 심판을 봐줘."
"그럴까요?"
"일단 내가 느껴지는건 이렇게 이지."
"저는 이렇게 에요."
"으음."
벤하르트는 둘이 가리키는 장소를 보고는 말했다.
"라프라 승."
"뭐? 이런 편파적인.."
"별로 편파적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라프라쪽이 더 잘 맞췄을 뿐. 그러니까 이런겁니다. 류누씨는 거기에 있는 시선이 느껴지는 거죠? 하지만 라프라는 그것은 '전부 맞췄습니다.' 그렇죠?"
"뭐.. 그렇지."
"그 외에도 찍었던 건 그쪽에 실제로 있기 때문입니다. 라프라의 시선을 따지면 대충 100기아 정도의 범위를 느끼는것 같네요."
"그럼 나는?"
"70.. 아니 80 정도인가? 그러니 20기아 정도 범위에 있는 시선을 라프라가 더 느껴 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니 라프라는 류누씨보다 더 많은 수의 마수를 찍어 내게 된 것입니다."
"라프라 너 언제.. 아니 그보다 이런 마수들을 전부 느끼면서도 두려움을 안느낀다는거냐?"
류누는 놀란 얼굴로 라프라를 보았다.
"네."
라프라는 이미 이정도 마수에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그녀가 겪었던 지금까지의 일들은 이런 마수따위는 그저 애들처럼 느껴질 정도의 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정말 이런 마수에게 압도 당하지 않는것은 리스의 '존재'를 봤기 때문이었다. 퀘이소들은 보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변할수 있다. 벤하르트나 레니아라고 해도 보기만 하면 변할수 있다. 하지만 벤하르트로 변했다고해서 벤하르트의 능력을 쓸수 있는것은 아니다. 신체능력조차 벤하르트에 비하면 굉장히 떨어지게 된다. 그것은 라프라가 벤하르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퀘이소 종족은 싸울때에는 마수로 변신한다. 마수라면 퀘이소 정도의 마수들에게는 지극히 단순한 개체이기 때문에, 공격이나 수비나 방어나 어떤것도 그들은 본능에 의지해 싸우게 되고 얼마간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퀘이소들은 그 움직임을 대부분 복사할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인간 그중에서도 벤하르트 같은 사람들은 복사를 한다고 해도 그 특징을 사용할수 없는 것이다. 벤하르트의 경우는 기를 레니아의 경우는 마법을 카이후 같은 경우는 독을 각각 '보았다고 해도' 그 사람 객체의 능력을 강화하는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리스의 '존재'를 보았다. 만약 여타 다른 위험일때의 상황이라면 리스를 봤다는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그때의 상황은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죽기 직전의 위기에 놓였던 상황. 리스는 퀘이소들의 특징을 이용해 자신이 가진 그 존재를 보여 주었다. 자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어떤 식으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보여준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신보다 더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흡혈귀의 힘을 완전하지는 않다고 해도 다룰수 있었다. 잠재적으로 라프라는 지금 퀘이소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퀘이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것과 동시에 그녀 본인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전 세상에서 유일하게 리스의 약점을 알고 있는 소녀이기도 했다.
라프라는 리스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마수들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있을수 있는것은 사실은 다른 요인 이었다. 바로 눈앞에 벤하르트가 있다는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공포가 사라질 정도의 위안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라프라를 보고 벤하르트는 살짝 웃어 보였고, 라프라도 그에 밝게 웃었다.
"어.. 잠깐만,"
류누는 당황해했다.
"왜그래?"
"아니 당신 뒤나 보란 말야."
"뒤? 어! 어? 말도 안돼!"
잠시 라프라에게 딴청을 부리고 뒤를 돌아본 벤하르트는 깜짝 놀랐다.
"어째서?"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바로 앞에 일행들은 가고 있었다. 물론 그런 것을 벤하르트도 느끼고 있었다.
'파악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있다는게 느껴졌는데, 그 직전까지도 분명히 있었었는데, 류누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자 마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건 도대체..'
벤하르트와 라프라 류누 스크루를 빼고 나머지 일행은 사라져 있었다.
"정말 오싹하군. 주마의 숲이란 것은."
- 작가의말
엔쿠라스와 더불어 요번 방학때는 소설 하나를 같이 써볼까 했는데, 이놈의 지긋지긋한 야간알바는 몸과 정신을 전부 피폐하게 만드는군요. 게임도 안하고 있는데 시간도 남지 않는 이 상황은 정말이지,,,
일하고 -> 자고 -> 먹고 -> 소설쓰고 -> 일하고의 무한 반복!
하지만 소설은 쓰면 남아서 기분이 좋아요 ^^;;
제 다른 소설이 써지면 읽어주실 분들이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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