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59화(617화)-왜억(孬憶)(4)
"에실러 별 일은 없었어?"
"어 별로 특이한 일은 없었어. 그나저나 이니프도 해결한 모양이네?"
"뭐 그렇지.."
벤하르트는 반대쪽의 복도를 바라보았다. 에실러와 이니프 외의 또 다른 한명의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아무래도 이 공간의 핵은 꼭대기에 있는 모양이야."
벤하르트는 높은 곳에서 살기를 느껴 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럼 올라가야 되는건가?"
"아니 걸리는게 있어서 말야. 너희들 외에 한명 더 이곳에 누군가가 있어. 나는 그 자를 구하고 나서 올라가려고 해."
벤하르트는 이니프와 에실러에게 따로 말해주었다.
'알지는 못하는 사람이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왜 거기까지.. 해야 하는거죠?"
"글세 내가 너를 지켰던 것처럼 생각하면 어떨까? 누군가가 '그런 곳'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 뿐이야. 결코 여유로운건 아니지만, 기회가 닿는 곳까지는 노력해봐야지."
"그렇군요. 어쩐지 벤하르트씨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지만, 어차피 벤하르트씨에게 도움을 받은 입장이니 이견은 없어요."
벤하르트는 에실러에게도 의견을 물었고, 에실러는 흔쾌히 수락했다. 셋은 마지막 남은 방으로 걸어갔다.
"읏.."
절망스러웠던 기억을 비추는 마지막 방의 경계는 삼엄하기 짝이 없었다.
'뭐지 저건..'
은빛의 갑옷을 두르고 있는 거체 들고 있는 것은 벤하르트정도 만큼 큰 순은의 창을 들고 있는 거병이 여럿 포진하고 있었다.
"벤하르트씨 이거 괜찮은 건가요? 굉장히 삼엄한데 말이죠. 이런 손해를 감수해가면서 갈 이유가 있는건가요?"
"반대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곳에는 '저정도로 삼엄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분명히 그럴수도 있겠지만,,"
"기다리고 있어."
벤하르트는 검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병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쿵]
벤하르트를 발견한 거병은 그대로 너나 할 것없이 벤하르트에게 돌격 했다.
"일섬.."
검이 그을리는 소리와 함께 벤하르트는 스치듯이 거병을 지나쳤다. 벤하르트가 검을 바로 잡자 전방에 있던 거병은 산산조각으로 분쇄되어 쓰러져 내렸다. 갑옷의 내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후우.. 오싹하구만,"
벤하르트는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취하고 그대로 남은 거병을 상대했다.
"후우.. 하아.."
거병을 전부 정리하고 벤하르트는 에실러와 이니프를 불렀다.
"이 방에,, 마지막 한 사람이 있다고요?"
"그래 누군지는 모르지만, 일단 둘 다 이곳에서 대기를 해줘. 아무래도 이 공간을 들어가는 것은 많아서 좋을게 없으니까, 특히 이니프.."
"알았다니까요."
"혹시라도 방금의 거병이 나오게 되면 뒷일은 분신에게 맡기고 몸을 숨겨줘."
벤하르트는 검을 휘둘러 분신을 만들어 냈다. 이니프는 벤하르트의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보며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어이 벤하르트 아는 사람도 아니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그래. 알았어. 여차하면 나오도록 할테니 너무 걱정 하지 마."
방문을 열고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크읏.. 뭐지 이건.."
들어오자마자 느끼는 것은 가슴이 시려서 고개를 들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감정이었다.
'무슨....'
그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뿐인 공간이었다.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고 그저 어둠만을 인지할 수 있는 공간.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벤하르트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독함을 느꼈다.
"으으.."
[외로워..]
어린 여자의 목소리에 벤하르트는 가슴을 움켜지고 몸을 일으켰다.
'여자아이?'
"크읏.. 으으."
뇌속을 후벼 파는듯 가슴을 손으로 쥐어 짜는듯 내장을 손으로 굴리는 듯 한도 끝도 없이 벤하르트의 감정은 죽어나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몇년이고 몇십년이고 몇백년이고,, 아니 수천 수만년을 헤아리는 시간동안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쓸쓸해..]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지표로 삼아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한걸음 내딛을때마다 수십년은 지나가는 듯한 감상.. 지금껏 느꼈던 감정중에서도 이처럼이나 괴로운 것은 없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가장 절망적인 기억 조차도 이것과는 비교활 수 없었다.
"하아.. 하아.. 찾았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 안 멀리 보이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벤하르트가 그녀를 확인하려고 하는 순간 빛나는 광채가 그를 덮어 버렸다.
"히히.. 잘 자라주려나.."
소녀는 아름다웠다. 아직 어린 나이 귀엽다라는 말을 들어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귀여움 보다도 너무도 조각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외모를 가진 어린 소녀는 웃으면서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소녀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려 굳어 버렸다. 물을 주던 꽃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어 버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붉은 기운이 소녀의 주변을 뒤덮는가 싶더니 그곳은 삽시간에 황폐한 땅이 되어 버렸다.
고독의 시간을 지나.. 소녀는 세상이라는 것의 모든 것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서 거부 당하는 존재였다.
소녀는 이곳 저곳을 헤메었다. 자신을 받아 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발이 오가는 대로 수년 수십년을 헤메이고 또 헤메였다. 자라면서 그녀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냈을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은 '공포'와 '배척'이었다.
소녀는 자라났다.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성장했다.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느끼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인간을 보게 되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아끼는 모습. 지금까지의 자신의 고독함을 비웃는것마냥 펼쳐지는 그 '당연한' 모습에 그녀는 분노마저 느낄 정도였다.
'.....'
하지만 그녀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보다 다른 쪽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만들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없다면 만들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것처럼 나는 애정을 가지고 연결 짓도록 하자. 그렇게 결심을 한 그녀는 자신의 수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수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시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반복했다. 완벽했던 것은 '그녀와 그 직계' 뿐이었다. 그녀의 밑으로는 더럽고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결점투성이의 '괴물'들뿐.. 하지만 그들 안에서 느끼기에 괴물은 자신들이 아닌 '그녀'였다.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오지 않듯이.. 그녀의 존재는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숨기고자 해도 숨길수 없었고, 그녀를 그대로 포용할 수 있는 존재는 그녀가 만든 굴레 안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출구를 향해 걷는 것처럼 그녀의 갈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째서..]
"죽어!!"
"죽여라!!"
증오로 가득한 시선을 상대로 여인은 주변을 바라 보았다. 냉소하는 그 미소는 너무도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하며 처참해 보였다.
"악마녀석!!"
"괴물년.."
"너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네가 만들어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라.."
"미안하지만 죽어주십시오. 주인.."
저마다 한마디씩 그녀에게 말을 건네며 그녀에게 검을 겨누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린걸까?]
서로를 의지한채 자신에게 검을 겨누는 자들 이제 그녀는 그들에게 분노외에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하... 아하하하하.. 좋겠지. 그렇게 말만으로 떠들 필요 없어. 불만이 있다면 와라.. 얼마든지 죽여줄테니까!!"
광소하며 그녀는 눈앞의 '적'과 맞서 싸웠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것은 세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력들이었다. 웃으면서 닥치는 대로 찢으며 싸우는 그녀는 웃고 있음에도 울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때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내 손은 이렇게 하라고 있는거야..'
피투성이의 벌판 아리따운 금발은 붉게 적셔 졌고 검붉은 손을 보며 그녀는 미소 지었다. 눈앞의 참상을 보며 그녀는 가슴이 시리는 것을 속이 시원하다고 느꼈다.
'후후.. 그래.. 이걸 위한 힘인거야..'
그녀는 땅에 손을 가져갔다. 삽시간에 말라 비틀어 진 땅을 보며 그녀는 냉소했다.
'나는 이 세계로부터 빼앗기 위해 태어난 존재.. 그렇다면, 원하는대로 날뛰어 주겠어. 세상따위 그 무엇이라 할 지라도 빼앗고 죽이고 전부 찢어 발겨 버려주겠어!"
그 광경을 끝으로 기억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보같은..."
[쓸쓸해..]
"어째서 어째서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은거지?"
벤하르트는 목소리를 향해 내달렸다. 숨막힐 것 같은 고독함과 고통따위는 이미 그에게 있어서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외로워..]
누구라도 좋았다. 자신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저 그녀는 바래온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을.. 비단 벤하르트가 아니라고 해도, 어떤 사람이든 좋았다. 어떤 마족이든 좋았다. 그저 그녀를 그녀로써 바라보고 마주할 수 있는 하나면 족한 것이었는데, 하지만 벤하르트는 알지 못했다.
소녀는 잠들어 있었다. 점점 더 벤하르트에게서 멀어지는 소녀를 향해 벤하르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리스!!"
벤하르트는 있는 힘껏 소리치며 소녀에게 뛰어들었다. 소녀는 눈을 껌벅이면서 벤하르트를 보았다.
"어? 오빠는 누구야? 여긴 나 하나밖에 없는데, 음 저기 나랑 놀아주면 안돼?"
"그래.. 얼마든지.."
"나 너무 쓸쓸했어.. 하지만 아무도 나와는 놀아주지 않아.."
울먹이는 얼굴로 소녀가 말했다.
"그래.. 이제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 줄테니까,"
벤하르트는 어린 금발의 소녀를 껴안았다. 리스는 벤하르트를 껴안고 좋아하며 말했다.
"아.. 따뜻해.. 그런데 오빠 아까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어?"
"리스? 라고?"
벤하르트의 말에 소녀는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아. 정말로 소중한 것이었는데, 정말로 소중한.."
"....."
이곳은 스스로의 생각을 자제할 수 없는 공간이다. 에실러가 이니프가 그러했듯이 숨겨왔던 생각이 서슴없이 공유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즉 자신의 본심을 숨길수 없는 장소인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어준 이름이었는데, 그런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나.'
"그래.. 정말로.. 소중한.. 이름.."
그녀는 눈을 감고 벤하르트에게 기대어 쓰러졌다.
- 작가의말
요즘은 댓글이 잘 달리지 않는데,
오글 거려서 그런 것일까요..? 뭐... 쓰는 저도 오글거리는 이상,,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긴 하네요.. 오그리 토그리..
하지만 쓰고 싶었던 부분이었습니다.(벤하르트나 리스편 같은 건 말이죠.) 잘 나오지는 못한 것 같기도 하지만요..
어쨋든 연참대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앞으로 2~3주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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