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48화-
예리하게 후벼드는 공격은 벤하르트의 급소 요소요소를 파고든다. 그 예리함은 벤하르트에게 어김없이 격침 당했다.
'상대할 수 있다.'
그렇게 벤하르트가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벤하르트는 전혀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이전에 보았던 K의 움직임에 반응 할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하게 되면 K를 이길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K의 속도에는 변함이 없다. 마치 그것이 한계라는 듯이 최대의 속도가 그것이라는 듯이 일정 수준의 움직임을 넘지 못했다. 그것을 확인하고 벤하르트는 한차례 속도를 높혔다.
그리고 벤하르트는 K와 눈이 마주쳤다. 카드를 들고 여유롭게 웃으며 자신을 보는 그 얼굴에 그는 단번에 알아 차렸다. '상대할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착각. 적은 아직도 이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여유있다고 해서 상대가 전력일지도 모른다는 안이한 생각은 지금 여기서 전혀 필요치 않았다.
'내가 어디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여기는 범의 소굴 녀석들의 영역이다. K만을 상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방심따위를 하다니,'
"칭찬해주지."
"으읏"
평소와 전혀 다름 없는 움직임이었다고 느꼈는데 벤하르트는 세발자국이나 물러서 있었다.
"이정도다. 아마 네가 나를 감당해서 승리 할수 있다고 한다면 고작해야 이정도 실력에 불과하겠지."
벤하르트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정도로만 상대해주지. 이 실력 넘을 수 있다면 네 승리로 인정해주마."
손에 감기는 카드는 셀수 없을 정도의 숫자 수십장의 카드는 그의 주변에서 멤돌아 손에 잡혔다. 날아오는 것은 여섯장의 카드 각각 순식간에 벤하르트의 여섯군데를 노리고 쇄도했다.
집중은 최고조 아무리 그렇게 빠르게 쇄도하는 카드라고 할지라도 벤하르트에게 이를수 있을리 없었다. 그 카드를 쳐내는 것은 벤하르트가 K를 상대하기 위한 기본중의 기본 성립할 수 없다면 이미 이전에 수십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크읏.."
벤하르트는 팔이 시큰 하게 저리는 것을 느꼈다. 베인 상처와 흐르는 피를 보고 그는 그제야 상처의 정체를 알아내었다.
'그랬었지..'
K는 자신의 기를 이용해서 물체를 투명화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전의 일을 떠올리고 벤하르트는 심호흡을 했다. 방금전 여섯장의 카드 안에는 한장의 보이지 않는 카드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백뢰."
허공을 향해 휘두른 검으로 부터 쇄도하는 백색의 번개는 그대로 K에게 쇄도했다.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번개의 궤적은 지금까지 날렸던 어떤 백뢰보다도 빠르고 강력했지만, 그 백뢰가 떨어진 곳에 이미 K는 없었다.
거리는 10보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한순간에 그 틈을 메워 둘은 맞붙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K는 빠르다. 정상적인 범주 내에서 생각해본다면 분명히 K는 고수라고 할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였다. 하지만 대행자의 실력이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자신도 손쉽게 따라올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 물론 그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K의 움직임은 느리지 않지만, 벤하르트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보인다.'
기를 눈에 집중하면 K의 그 투명으로 만들어둔 카드 조차도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정도의 정보만 있다면 벤하르트가 카드에 당하는 일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어서 빨리 K를 쓰러뜨리고 레니아를 구해야..'
감각은 한없이 응축되어 마치 K가 아닌 누구라고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자신감을 그 정신을 부술수 있기에 비로소 대행자의 실력을 갖추었다고 말할수 있는 것.
"어?"
벤하르트는 무언가에 걸려 자세를 무너뜨렸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카드는 목을 노리고 들어온다.
"크윽."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완벽하게 피했다고 생각했던 그 움직임 조차도 따라잡아 그는 목에 상처를 입었다. 이해 할수 없는 것은 K는 벤하르트와 싸우고 나서 한번도 속도를 높힌적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 보여준 최고의 속도를 그대로 벤하르트라면 그정도는 쉽게 막아낼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상대하는 데도 벤하르트는 쉽사리 당해내지 못했다.
'어떻게 된거지?'
"내 '공격'에만 집중을 하면 안되지. 나의 능력은 자유자재 그 범용성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는 않지."
K는 보란듯이 손을 들어 자신의 기를 떨어 뜨렸다. 떨어지는 기의 방울은 땅에 스며 들어 투명화 시켰다. 투명하게 변한 것은 그의 발치에 있었던 바위였다. 벤하르트가 인식하기도 전에 주변은 이미 K의 영역으로 변모해 있었다.
"역시 대단하군요."
벤하르트는 검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그런 잡담을 할 수 있는 것은 K가 죽일 듯이 그에게 덤비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유흥이라는 느낌으로 K는 빈틈을 만들고 자신과 어울리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빈틈을 찔러 주마.'
하지만 벤하르트가 어찌 알 수 있을까. 그 빈틈을 찌른다는 마음가짐이야 말로 K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 사이에 강해지는군 재미있어.. 어디까지 성장해 주려나?'
"쳇. K녀석 저런 실력 밖에는 되지 않았던건가. 아오이스의 대행자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실력이면서 허풍을 떨다니,"
카이후는 불만 가득한 눈으로 K와 벤하르트의 일전을 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K는 자신의 사냥감을 약탈한 도둑에 지나지 않았다. 실력이라도 확실하다면 모를까 그의 눈에 K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어리숙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기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K의 움직임은 카이후와는 비교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정교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점이 카이후의 눈에 들어 올리 없었다. 카이후에게는 '저정도라면'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죽이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 아쉬움은 불만을 가속화 시키고 불만은 힘에 의해 표출 되어 졌다.
"뭘 하는 거지? 카이후."
지러스는 검에 올라간 상태에서 눈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카이후에게 물었다.
"벤하르트를 노릴 생각이다만? 뭔가 불만이라도 있나?"
"K가 상관 하지 말라는 말을 못들었나? 방해 한다면 죽인다고 했을텐데,"
"웃기는군 저런 실력 열명이 온다고 해도 나를 당해낼수 있을것 같나? 죽이려고 한다니, 도리어 잘 되었군 이쪽으로썬 정당방위가 될테니 역으로 죽여 버려도 상관 없는게 되어 버리겠지?"
"무지랭이 녀석. 하긴 네녀석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테지. 어떠냐 루켈 너도 마찬가지겠지?"
루켈은 대답하지 못했다. 지러스가 저렇게 묻는 다는 것은 '사실은' K의 실력이 저런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대답하는 것을 거부했다.
"흥 K녀석 따위가 숨은 실력이라도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들리지만, 그럴리는 없겠지. 실력을 숨기고 저런 녀석을 상대로 애를 먹다니 그런 '의미 없는 행동'을 해서 무엇을 얻을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확인해 보면 어떤가?"
"그러려고 한다만, 이 일로 질책을 받거나 하지는 않을테지?"
"걱정 마라. 설사 K를 죽인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상관 하지 않을테니,"
카이후는 지러스에게서 언질을 받아내고 주변을 보았다. 제온이야 타인의 일에 관여하거나 해서 헐뜯는 일은 없는 대행자로 유명했고 남은 하나 투안의 루네로 불리우는 대행자 또한 과묵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여자였다.
"좋아.. 그러면,,"
카이후는 지난날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며 벤하르트에게로 달려 들었다. 벤하르트는 그의 독에 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독으로 무장된 손에 한번이라도 정확하게 맞는다면 살을 썩힐수 있기에 필살의 공격이라 할 수 있었다. 벤하르트는 K와의 교전때문에 그 공격에는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순간 일어난 일을 이해 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카이후는 절명 직전의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목을 손가락으로 물려 조금만 힘을 주면 목뼈째로 으스러 지게 될 상태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못하고 그는 정신조차 유지 하지 못하고 죽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어지간히도 손버릇이 나쁜 녀석이로군."
K는 혀를 내밀고 처참하게 기절해 있는 카이후를 보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났다. 방금전의 움직임 바로 앞에서 보고 있엇던 벤하르트조차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느끼지 못했다.
"자 방해꾼은 사라졌다."
그제야 벤하르트는 처음 K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마 네가 나를 감당해서 승리 할수 있다고 한다면 고작해야 이정도 실력에 불과하겠지.' 라고 말했던 것.
"왜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를 끝내지 않는 겁니까."
실력의 차이는 명백하다. 유려의 움직임을 전력으로 이끌어 낸다고 해도 필시 '버티는 것' 조차도 힘에 겨울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극한에 이르러 있었다.
"유희이며 여흥이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이겨서 무엇이 기쁘지? 나는 질수밖에 없는 그런 싸움을 원하고 있다. 그래.. 그런 싸움을 이기는 것이야 말로 궁극의 쾌락 목숨을 걸고 승리하는 것이야 말로 지고의 감각이다. 내가 네게 준 것은 나를 이길수 있는 '가능성' 내가 네게서 요구하는 것은 나의 생명을 위협할만한 '힘'이다. 보여줘라. 벤하르트 하르크 이제껏 기대해왔던 나의 기다림을 배신하지 마라."
목숨을 걸지 않으면 그 쾌락을 느낄수 없다. 이기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내용을 중시하는 것. 아마도 K의 행동은 그것의 극한이라 할 수 있었다. 싸움에서 낙을 그것도 목숨을 걸어서 생기는 즐거움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뛰게 만드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전력으로도 당해낼 수 없는 난적(難敵)을 원했다. 본래라면 지금의 벤하르트 정도로는 그에게 싸울 만한 가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인정해 이렇게 싸우는 것은 그가 벤하르트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남자라면 언제고 나에게 패배를 예감케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난적을 요구하고 극적인 싸움을 추구한다. 그것이야 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전부였다. 짧은 생으로 만족따윈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오이스에 존재했다. 머무는 것으로 '불노'를 약속받아 명령에 따르며 자신의 상대를 물색한다. 자신이 죽기전에는 끝나지 않는 무한의 싸움. 그리고 그것은 K는 그'목숨을 걸어왔던 승부'에서 '평생 무패' 였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자.. 벤하르트 여기서 꺽이면 레니아는 구할 수 없다."
"읏.."
"말했지? 내가 사용하는 것은 아까까지 보여왔던 힘. 그 이상을 사용할 생각은 없다. '죽는다고 해도' 나는 그 힘으로만 '전력을 다해' 싸운다. 이언(二言)따위는 하지 않는다."
"....."
"망설일 틈따위는 없다. 이러는 순간에도 레니아는 계속해서 위험해질 뿐이니까, 나는 그저 네게 기회를 주고 있을 뿐이다. 너는 그것을 이용해 나에게 그 검을 박아 넣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방금까지 벤하르트가 생각했던 것이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길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그 빈틈을 찌르려고 생각했던 것, 가능성을 느꼈던 것, 그 전부는 K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불리하게 되면 본래의 실력을.."
"그래서 싸우지 않겠다는 건가? 어차피 네게 선택지는 없다. 나를 믿던 믿지 않던 네게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나를 죽이고 레니아를 구하기 위해 일보라도 앞으로 더 걸어 가는 것 뿐. 그 시도 조차 불가능할리는 없겠지?"
타인의 능력을 꿰뚫어 보는 K에게 있어 벤하르트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이미 손에 잡힐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벤하르트는 곱게 숨을 내쉬고 K를 노려보았다. 프쿠타가 말했던 '자신의 전력'을 생각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K는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저 정도 실력의 K는 이길 수 있을지도,,'
"좋다. 역시 너는 내가 인정할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다."
미소를 머금고 그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카드를 둘렀다.
K가 보여주는 움직임은 지극히 단순했다. 해야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실력은 벤하르트 조차도 제압할 수 있을정도로 미약한 것이었다. 카이후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벤하르트가 이길수 있다고 착각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행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해 보이는 신체 능력이었지만, 그런 힘만으로도 K는 지금까지 벤하르트에게 단 한개의 상처 조차 얻지 않고 있었다. K가 딱히 유려의 움직임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벤하르트는 K를 도무지 제압해낼수가 없었다.
투명하지 않은 공격들로 자신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투명한 공격으로 요소요소 자신의 공격을 끊어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공존하기에 더욱 더 상대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차라리 완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나을정도로 벤하르트는 정신적으로 힘든 싸움을 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속에 품은 칼이 위협이 되기 위해서는 K의 모든 공격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야 한다는 것에 있다. 단 한번 벤하르트는 기회를 만들수 있다.
'제발 몸아.. 부탁한다. 내가 저 K를 전력을 다해 '죽일' 일격을 날릴 수 있기를..'
그정도가 되지 않으면 기회는 그저 기회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K는 자신이 본래의 실력은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지만, 벤하르트에게 있어서 그런 말따위는 믿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결국 뭐가 되었든 그는 K의 전력을 생각해가며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 한번 이번에 K를 전투불능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에게 승산은 없다.
K의 카드가 그의 살거죽을 찢어 낸다. 자신보다 느린 몸으로 '유려의 움직임'마저 사용하고 있는 자신의 사각을 노리고 들어온다. 아무리 벤하르트가 유려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볼수 없는' 정확한 공격을 연달아 완벽하게 막는 것은 쉽지 않았다.
벤하르트는 잘 알고 있다. '필승의수단'이나 스스로만의 '필살기' 등을 믿고 있는 적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노릴수 있는 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대가 '투명'을 사용한다면 그 투명이야 말로 상대에게 있어서는 찔러 넣을 수 있는 빈틈이라는 것이다.
남은 것은 스스로를 건 연기를 행할 뿐이다.
벤하르트의 몸이 흔들린다. K가 진작에 만들어 놓은 '투명바위'에 균형을 잃은 것이다.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을 무의식중에 밟게 된 그 당황의 상태를 K가 놓칠리 없다. 그는 자신의 힘을 한없이 절제 하기에 그 절제한 힘으로 '전력'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변할리 없는 철칙이다. 피할 수 없을 공격.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벤하르트가 노리는 비장의 한 수 였다.
실로 무념에 이르는 듯 벤하르트의 공격은 그야 말로 흡사 K가 카이후를 뒤엎었을때와 같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봐주거나 할 여력 따위는 없었다. 노린다면 목 심장 등의 절명할 급소 였다. 그정도가 되지 않으면, K는 상처조차 줄 수 없다는 것을 벤하르트는 잘 알고 있었다.
"쿠욱.. 대단하군 그래 그것을 노림수로 잡았다는 건가?"
K는 벤하르트의 검에 배가 뚫려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K는 스스로의 몸을 밀어 넣어 심장에 닿을 공격을 배로 바꾸어 자신을 '꿰뚫렸다.' 꿰뚫린 검에서 벗어나 그는 피를 있는대로 흘리며 광소했다.
"크하하하.. 하하하하하!! 재밌어. 그래 설마 했지만, 정말로 이정도였나. 아아.. 아쉽다 너무나도 아쉽구나.."
심장을 빗겼다고는 해도 중상임에는 틀림이 없는데도 그는 자신의 상처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벤하르트는 그렇게 미친듯 웃고 있는 그를 보고 놀란 얼굴을 멈출수 없었다. 분명 K는 자신의 회심의 일격에 반응했다. 심장에 이를 공격을 배로 바꾸었음에도 그 죽음과 맞닿은 순간에 조차 K는 자신의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본 실력을 드러내었다면 그 일격은 허투로 끝났을 것임이 틀림 없었는데도,, 사용하지 않아 그 '부족한 속도'의 분량 만큼의 상처를 얻게 된 것이다.
"이제.. 내가 이긴거지?"
"이겨? 벤하르트 농담하지 마라.. 승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딱 좋은 상태잖아? 배가 꿰뚫려 있고 신체 능력은 열세인 이 상황이야 말로 죽음에 가장 근접해 있다. 이런 상황을 놓칠수는 없지."
"그 몸으로 싸우시겠다는 건가!"
"당연하지. 이런 기회 놓칠까보냐!"
피는 줄줄 쉴새 없이 흘러 나왔다. K가 달릴때마다 마치 붉은 안개처럼 방울져 내려오는 핏덩이에 벤하르트는 검을 휘둘러 받아 쳤다.
"어째서 본 실력을 사용하지 않은거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텐데,"
"어지간히도 믿지 않았나 보군. 말했을터다. 나는 이정도의 힘으로만 싸운다고, 그 말을 번복할 생각따위 추호도 없었다. 나는 이정도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거다. '이정도의 위기'가 올수 있으려면 '이정도의 힘'으로 전력을 다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겠지. 이 난관이야 말로 내가 바라던 바.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야 말로 나의 삶이다."
"그런 상처..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거다."
"흥 그건 네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너와 나는 뭐라 할지라도 적이 아니었나? 누가 죽든 관계 따윈 전혀 없는 것이다. 자.. 슬슬 눈이 가물가물해지니, 잡담은 이정도로 해둘까. 이 순간을 말 따위로 희석할수는 없잖나?"
카드가 딸려 온다. 거짓말 같이 다시 긴 손톱처럼 손가락의 사이에 낀 카드를 들고 K가 달려든다. 상처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공격이지만, 속도는 이미 아까의 배 이상으로 떨어져 있었다. 전력을 다할수 있을텐데도 철저하게 K는 자신의 전력을 발하지 않는다.
"읏."
벤하르트의 빈틈을 K가 놓칠리 없었다. 그 몸으로도 순식간에 깊은 상처를 두군데나 만들어 내며 K는 재미없다는 듯 중얼 거렸다.
"독기따위 빠지지 마라. 상처를 입으면 입을수록 이후의 대행자는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지? 레니아 따위는 어떻게 되도 좋다는 거냐? 참고로 말해주지. 나는 이런 몸이어도 '네게 이길 자신이 있다.'"
"헛소리.."
벤하르트가 달려 들자 K는 카드를 쉴새 없이 날려 댔다. 하지만 속도도 힘도 이전과는 비할수도 없을 정도로 약해졌기에 벤하르트가 맞아 줄리 만무 했다. 투명한 카드 조차도 전부 쳐내면서 벤하르트는 K에게 달려 들었다.
'기절을 시키면 저런 말도 싸움도 할수 없겠지. 분하지만 K의 말은 맞다. 저 검사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루켈에 지러스 형까지.. 설사 K와 카이후가 없다고 해도 내게 승산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진대 여기서 이렇게 체력을 낭비할 수는 없어!'
K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한손을 휘저었다. 7장의 카드가 벤하르트에게 쇄도했다. 그 안에는 4장의 투명화한 카드도 있었지만 벤하르트는 그 11일격을 전부 쳐내고 K와 맞붙었다. 벤하르트의 맹공에도 K는 당하지 않았다. 신체능력만 따지고 보면 4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데도 결정타는 날리지 못한채 벤하르트는 K와의 교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후후 레니아 그정도인가."
"하아.. 하아.. 이정도일리가 없잖아? 아니면 이정도일수도 있고,"
"흥 질렸다. 그렇게 흔들면서 불의의 습격이라도 다시 노릴 참인가? 그것 외에는 아무런 작전도 없나보군."
두보엔은 손바닥을 펼쳐 흔들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암운에서 떨어지는 검은 번개는 너나 할것 없이 레니아를 향해 떨어졌다.
"하크엘보!"
레니아는 양손을 쭉 펼쳐 막을 만들었는데 검은 번개는 그대로 반사되어 두보엔을 향해 날아 적중했다.
"그런 공격 어둠의신인 내게 어둠 자체의 마법이 통할리가 없지."
"글세. 그런건가?"
"흥 그정도로 무지해졌나?"
"그럴리가 없잖아 바보녀석아!"
레니아는 양 주먹을 맞닿으며 소리쳤다.
"터져라!"
두보엔의 몸에 적중했다 검은 번개는 백색의 빛이 되어 두보엔의 신체를 태워 버리고 있었다. 레니아는 해냈다 라는 표정 변화도 없이 한숨을 쉬며 무릎을 꿇고 힘들어 했다.
"과연... 이런 것인가."
'역시나 저걸로도 안되는건가.'
"그 저급한 몸으로 나에게 이정도의 상처를 입힌것은 칭찬해 주도록 하지. 하지만 그정도다. 네녀석의 존재 따위로 나를 없애는 것은 평생 불가능한 것이다."
"제멋대로 지껄이지마. 너따위는 3년이면 이길수 있었어. 뭐 지금이어도 못이길건 없지만,"
"그 얼굴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두보엔은 검은 구체를 레니아에게 날렸다.
"크읏!"
검은 구체는 폭발하며 굉음을 만들어 냈다.
"음?"
"저쪽도 요란한 모양이로군."
K의 몰골은 처참했다. 이미 전신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얼굴도 창백하기 그지 없었다. 벤하르트가 더 공격할 의사가 생기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흡사 죽기 일보 직전처럼 보였다.
"손이 멈출 틈이 있나? 저쪽의 상황은 레니아가 밀리고 있는데,"
"길을 터줘."
"음?"
"너는 네 전력을 써도 타인에게 질만한 그런 상황을 원한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내가 언제고 반드시 그 영역에 달해 주겠어. 네 욕망은 무조건 들어 주겠다. 그러니 제발 내가 레니아를 지키러 가게 해줘."
벤하르트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K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광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말에 목숨을 걸수 있는 남자를 벤하르트는 작정하고 미워 할수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더더욱 비킬수 없다. 그 마음가짐이라면 네 '전력'을 나에게 다할수 있을터, 나는 '절대로' 비키지 않아. 네가 선택할수 있는건 아까의 '전력'으로 나를 죽이고 레니아를 도우러 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너도 각성할수 있겠지? 위기가 아니면 서로 달아 오르지 못하잖나."
"....."
"거기에 언제고 반드시 그 영역에 다다른다고 했지만, 그건 무리다."
K는 냉랭하게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그 '다음'은 오지 않아. 저 신검 제온이 있는 한 네녀석들의 여행에 내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제 제온이라고?"
빈틈이 없었던 남자 한자루의 검을 허리에 찬 은빛 머리의 남자. 이미 여행을 하면서 여러번 들었던 그 이름을 듣고 벤하르트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저녀석이 나선 이상. 너는 내손으로 노린다. 저녀석이 나선 이상 '이후' 따위는 존재할리가 없지. 그렇다면 너를 끝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자신이다."
"....."
멀리 레니아의 신음 소리가 들려와 벤하르트는 마음을 바로 잡았다.
"그렇다면 어쩔수 없겠군."
"서로간에 말따위는 이제와 필요 없겠지."
쓰러뜨린다. 쓰러뜨린다. 쓰러뜨린다.. 수십번을 되뇌이고 그것 하나만을 위해 검을 휘두른다. K는 황소고집처럼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도 않고 약삭빠르게 카드를 날리면서 벤하르트와 직접적인 교전을 피하고 있었지만, 이미 K의 한계는 명확하게 느껴졌다.
'쓰러져! 쓰러져라!'
하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K의 눈은 계속해서 '죽일 각오로 오지 않으면 쓰러뜨릴수 없다'고 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게 벤하르트였다.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레니아가 위험하다. 목숨마저도 위험할 정도를 자신의 나약함으로 망칠수는 없었다. 죽일 마음만 먹는다면 그 뒤는 간단하게 자신의 승리로 끝맺을 터..
그렇게 생각했었다. 벤하르트가 이기적인것은 자신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할나위 없이 중요한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상대를 죽이는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프쿠타와 싸웠을때처럼 가능하다.
벤하르트는 독기를 품은 눈으로 검을 들고 K에게 달려 들었다.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겨우 먹었을때 그는 분명히 들었다.
"늦었다 벤하르트."
'무엇이?'
그의 공격은 K에게 손쉽게 막혔다.
'빨라졌어?'
그게 아니라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의 최고의 일격이었던 이 일격은 K에게 도달하지 못했는가?
'늦었다?'
무엇인가의 이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느끼고 그는 검을 휘둘렀다. 어김없이 K는 카드를 휘둘러 그 공격을 쉽게 막아낸다.
'K가 빨라진게 아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몸이 느려졌음을 깨달았다. 몸이 둔하다 생각한대로 움직여 지지 않는다. 그리고 벤하르트 자신의 손에는 물컹이는 무언가의 느낌이 있었다.
"이겼다고 생각했었나?"
냉랭한 목소리 그것은 마치 벤하르트를 질타 하는것만 같았다. '고작해야 그정도였나?' 하고 빈정대는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섵부르게 승리를 보기에 '같은 수단'에 걸리게 되는것이지. 뭐 승리를 보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을 볼 수는 없었겠지만,"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내가 어떻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눈에 핏물이 씌인것 같이 화상이 붉어졌다.
"아.."
"그 상태로는 납득 하지 못하나.."
딱 하고 손가락을 부디끼는 소리를 내자 벤하르트는 자신의 몰골을 알아 차렸다. 전신에 박혀있는 카드의 갯수는 수십장을 넘었다. 흐르고 있는 피는 K보다 극심 하나하나가 치명상에 가까운 깊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그럼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울컥 하고 벤하르트는 핏덩이를 토해냈다.
"쿠허.."
마치 내장이 전신을 한바퀴 도는 것을 몇번이나 반복하는 것처럼 속은 뒤틀려 정상이 아니었다.
"내 능력은 익히 알고 있었겠지. 물체의 투명화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 위의 능력 또한 존재한다. 투명이 아닌 '인식'조차 할수 없는 존재감을 없애는 능력이지. 물론 존재는 한다. 존재는 하지만 '인식'은 할수 없어. 보는 것도 소리도 나지 않지 때문에 느끼는 것도 불가능하며 맞아도 아프다는 '감각'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 가.."
"돌이킬수 없는 상처를 입었는데도 본인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지. 벤하르트 나에게 치명상을 입혔을때 분명히 너는 나를 이길 기회가 있었다. 그 기회를 값싸게 취급한 것은 다름아닌 네 실수인 것이다."
"그.. 어.."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완패.. 상대는 자신보다 강세인 신체로 몇수나 접어 '강제로' 열세로 만들어 싸웠다. 그 열세 속에서도 '이길 생각'을 강구했다. 쉽게 이긴것 같아도 K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싸움을 그는 무시한 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당한 것은 필연 우연도 아니며 사기도 아니다. 분명 K는 말했다. 그 신체능력으로 '전력'을 다한다고, 그는 자신이 한 말은 철저하게 지켜왔다. 벤하르트가 정말로 레니아를 지키고자 했다면, 처음부터 전력 유리했다면 확실하게 승리를 거머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의 탓. 자신에게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벤하르트는 자신보다 '약했던' 사람에게 완패를 당한 것이었으니까,
"아.. 벤!"
"어딜 보는거지!?"
"비켜!"
레니아는 전 방위에서 광탄을 쏘아 두보엔을 향해 쏴내렸지만, 두보엔은 그것을 곧이 곧대로 맞아가며 레니아의 앞길을 막았다. 피의 웅덩이에서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광경 그리고 메마른 눈으로 카드를 들어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 하는 K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레니아는 발버둥 쳤지만 도저히 그런 급한 마음으로는 두보엔을 상대로 이점을 챙겨 나갈수가 없었다. 그녀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 대다가 소리쳤다.
"리스!! 거기 있으면 제발 나와서 도와줘!"
그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듯 금색의 공주는 모습을 드러냈다.
- 작가의말
실버클로버님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댓글을 오래 달아 주셨던 분들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제 소설에 댓글이 자주 달리는 편도 아니라서 장기적으로 달아 주셨던 분들을 잊을리가 없지요. 달리지 않거나 할때는 하차 하셨나 보다 하고 슬쩍 암울해질때도 없는것은 아닙니다만,
그런고로(?) 전역을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그나저나 저번 화는 왠지 댓글도 많이 달려서 기뻤는데 선작이 무려 10개나 떨어졌네요. 이유를 모르겠지만, 뭔가 별로 였는지,,,
이번화는 너무 긴것 같기도 해서 반으로 쪼개서 올릴까 하다가 그냥 확 올려 봤습니다. 나름 야심차게 쓰고 있었던 지라 재미가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이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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