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45화-엔도픽(4)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외길이었다. 혹여 올라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 꼼짝없이 들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조금 서둘러서 내려갔다. 계단이 끝나고 지하의 통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굉장히 넓었다. 계단을 전부 내려 가니 거대한 통로가 나왔는데, 그 높이만 해도 4기아는 족히 넘어 보였다.
"크다."
놀라는 벤하르트에 비해 레니아는 별로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그녀의 예상 범주 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상상했던게 맞아 떨어지기 위해서는 이것은 도리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길이 여러 갈래가 있는데 어느쪽으로 가야 되지?"
"이쪽이야."
"뭐? 레니아 그런걸 어떻게 아는거야? 애시당초에 이곳을 찾은 것도 그렇고,"
"뭐야 벤. 너는 모르는데 내가 아는게 있으면 그렇게 이상해? 나는 아무것도 못 느끼겠는데, 내가 느끼는건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네?"
"왜 그렇게 삐뚤어진 대답을 하는거냐. 그야 궁금할만 하잖아. 너나 나나 무언가를 찾아내는 능력은 비슷한데도, 나는 짐작도 못하고 있으니까 말야."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실 레니아가 말했던 것은 나름대로 정답이었기 때문에 그 예리한 지적에 그는 가슴이 철렁 거렸다.
조금 더 걸어가던 레니아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작은 감옥이 있었다.
"이건.."
"보시다시피 마수야."
감옥의 안에는 개 정도의 크기를 가진 마수가 웅크린채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보고 있었다. 레니아는 감옥의 안으로 손을 넣었다.
"레니아!"
마수의 모습은 사납게 느껴졌고, 군데군데 으르렁 거리는 살기도 보이고 있어서 벤하르트는 급하게 그녀를 말리려 들었지만, 그 뒤 마수가 행동한 것은 레니아의 손을 핥는 것이었다.
"괜찮아. 이녀석의 이빨은 이미 부러졌으니까,"
"그나저나 이건.."
감옥의 수는 한두개가 아니었다. 사방을 메운 다양한 크기의 감옥에는 여러 마수가 갇혀 있었다. 형형 색색의 눈들은 어둠속에서 벤하르트와 레니아에게서 시선을 못 떼고 있었다. 레니아는 자신의 손을 핥는 마수와 한동안 마주보다가 일어났다.
"흐음. 그런가. 벤 가자."
"어디를?"
"이왕에 보러 오겠다고 했으니까, 이대로 돌아가서야 수지가 맞지 않잖아?"
"저기 혹시 화났어?"
벤하르트의 질문에 그녀는 차갑게 그를 노려 보고는 말했다.
"별로."
'별로가 아니잖아.'
"여긴 길이 막혔는데 어디로 가야 되는 건데?"
"일단 처음으로 돌아가야 겠지."
그들은 처음의 갈림길로 나와 다시 레니아를 따라 그들은 깊은 통로로 들어갔다.
"여긴 마수들을 기르는 곳인가?"
벤하르트는 레니아에게 순종하던 마수들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예상했다.
"쿡.."
레니아는 짧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야. 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때 고작해야 그런 양심적인 일이었다면 내가 너를 이곳에 데리고 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이라도 했겠어?"
레니아의 말은 그녀가 벤하르트를 데리고 오지 않은 근본적인 뼈대를 말한 것이었지만, 그렇기에 벤하르트는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해서 답을 구하는 것이 두려웠기에 생각하기를 그만둔 것이다.
"이곳부터는 지옥의 심연이야.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는데 어떻게 할래?"
레니아로써는 마지막 권유였지만, 벤하르트가 여기까지 와서 포기한다는 선택지를 택할리가 없었다.
"물은 내가 바보였나."
레니아가 다시 택한 통로는 아까보다 더욱 더 깊었고, 들어갈때마다 마수의 종류도 많아졌다.
'살기가..'
점차 들어 갈때마다 살기는 짙어 졌다. 그것이야 말로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촌장의 저택에 들어갈때 느꼈던 그 살기 였다. 레니아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무어라 말했다.
"레니아 뭐라고 했어?"
"별로."
꽤나 들어 오자 발자국 소리에 맞추어 시뻘건 시퍼런 눈을 떠 으르렁 거려 보통 사람들이라면 오금을 저리게 할 살기가 주변을 둘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살기만으로도 구토증을 일으킬정도로 농후한 살기였다.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벤. 마수라는 놈들이 인간과 그렇게 친해지기 쉬운 동물들이었나?"
"...."
"그나마 지적인 마수들이라면 괜찮겠지. 퀘이소 같은 마수가 더 없으라는 보장은 없어. 하지만 반대로 그런 마수가 그렇게 딱딱 맞추어 있을리도 없지. 되려 대부분의 마수는 인간을 먹이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데, 이곳 사람들은 수많은 종류의 마수와 친구라는 명목하에 살아가고 있었지.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지금껏 여행을 하면서 그런게 가능할 마수를 몇이나 만났지?"
"여긴.."
"마수를 교육 하는 장소야. 수없이 많은 날을 고통에 떨면서 마수들은 자신이 본래 부터 가지고 있던 이빨을 잃어가게 되지. 자신들을 이렇게 만들었지만, 인간이나 마수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똑같아. '이젠 어쩔수 없어. 살기위해서는 따를 수 밖에,'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때, 인간을 따르게 되면 의외로 굉장히 편안한 삶이 존재해. 그러면 그것에 도취 되어 버리게 되지. 그렇게 강제적으로 길들여 지는 거야."
레니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벤하르트는 점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약간은 시큼하게 저려오는 그 냄새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던 냄새..
'피 냄새.'
"생각은 점점 변화하게 되지. 마치 세뇌를 당하듯이 말야. 본래의 본능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라면 마수들은 이곳에 갖힌 시점에서 더더욱 인간을 물어 찢어 버리지 않으면 안돼. 그것이야 말로 대부분의 마수의 본능이지. 하지만 그것은 점차 엷어져 가는거야. '내가 이 창살을 벗어날수만 있다면 죽여 버리겠다. 들어오면 물어 뜯어 버리겠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말에 자신을 깍아 내리면 그것으로 끝이야.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점점 마음은 나약해지지. 마음이 약해짐에 따라 말을 잘들었을 경우에 생기는 '달콤함'이 더욱더 마수들의 본능을 바꾸어 나가게 되는거야."
벤하르트의 표정도 슬슬 일그러졌다.
"지옥과 천국의 차이는 종이 한장의 차이라는 것을 가장 부각하는 거야. 마수도 인간도 희망이 있다면 달리는 것은 어찌 되었든 희망을 향해 달리겠지. 하지만 그 행동은 결국은 스스로를 버리고 종이 되는 것이야."
"하지만 그것은,"
레니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녀는 슬쩍 뒤돌아 보면서 말했다.
"이 안의 마수가 뭐라고 하는줄 알아? 말하는 것은 한가지 '죽여 버리겠다' 뿐이야."
"레니아 너 설마.."
"그래 마수의 말을 할수 있어. 벤 네가 찾지 못한 이곳을 찾은 것도 네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기 때문이야."
"언제부터? 마수의 말을 할 수 있게 된거야?
"라프라에게 마법을 가르쳐 불때, 수강료로 마수의 언어에 대해 받았지. 꽤나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어째서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거야?"
레니아는 정색 하면서 말했다.
"말 할수 있을리가 없잖아. 내가 마수의 언어를 아는 것을 안다고 하면, 너는 '마수'조차도 '인간'의 범주로 생각하게 될 것 아냐. 죽어가는 마수를 똑바로 보면서 죽일 수 있어?"
장담은 할 수 없었다. 마수는 무지하다. 라는 고약한 생각을 머릿속에 담았기에 벤하르트는 마수를 스스로가 잡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마수가 살려 달라고 해도 그것을 직시하며 죽일 수 있어. 그건 생명에 있어서 당연한 현상이니까, 하지만 벤 너는 달라. 생명으로써 당연한 것을 이성적으로 막고 있지.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이것도 밝히고 싶지는 않았어."
"그렇군. 확실히 레니아 말대로네."
"이 안 들어갈거야?"
"그래."
레니아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본래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레니아 스스로도 자신의 확신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지만, 그 참상은 보고 싶지 않았다. 여기 저기 널려 있는 마수의 팔과 다리 시체 핏덩이로 얼룩진 웅덩이 그리고 마수들의 괴성..
레니아는 말이 없었다. 아무 감정도 없이 그저 마수들을 바라 볼 뿐이었다. 거대한 마수들은 제각각 충혈된 눈으로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노려 보았다.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죽일수 있다면 몇번이고 죽었을것이다. 라는게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두려운 시선이었다.
벤하르트의 안색은 창백해져 있었다.
"괜찮아?"
"그래.. 괜찮아.."
문득 그의 머리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지난 날 라스펠에서 보았던 그 환상의 기억이었다. 속이 울렁 거렸지만, 가까스로 그는 정신을 차렸다. 산처럼 쌓아둔 붉은 덩어리들이 마수의 시체라는 것을 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본래 무엇이었는지 형체도 남기지 않고, 형편없게 토막나 쌓여 있는 시체를 보며 그는 절로 고개를 저었다.
"벤. 알겠어? 네가 그렇게나 칭찬했던 이 마을은 본래는 이런 거야.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나는 이 마을이 잘못 되었다고도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아. 가치관이란 어딜가나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 하지만, 과연 그건 마수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었을까? 수족을 자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인다. 강제적으로 세뇌해서 그들은 마수에게 '자신들의 명령을 듣는 것'을 강요 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래..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아름다운 일은 결코 아니었던 거구나."
"그건 악행이라고는 부를 수 없을지 몰라. 하지만 결코 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것'이라고 단정은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거야. 마수를 먹기위해 살기위해 '죽인다'와 마수를 부리기 위해 아니 기르기 위해라고 해도 '죽인다' 어느쪽이 옳다고 정의를 내릴수 있는 존재는 없어."
"....."
벤하르트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좋아라 했던 자신을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 아름답다고 여겼던 뒷면은 이처럼이나 참혹한 지옥같은 곳이었으니까,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는 이야기. 수없이 많은 고통은 행복을 떠올리게 하는거야. 서서히 자신들의 자유를 구속했던 분노를 잊고 이녀석들은 인간을 주인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 그 방법은 정말로 놀라워.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마수들을 세뇌한다는건 쉬운일이 아니거든."
그녀는 마수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담처럼 이야기했다.
"레니아. 이녀석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말했지..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고, 아니 죽기 직전까지 '따르도록' 만드는 거야. 성격이 좋아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지. '거짓'으로 인간에게 아양을 떠는 '척'이라는 것은 불가능해. 아까도 이야기 했었지? 그 '처음'은 곧 '마지막' 그정도로 능수능란해. 한번을 굽히게 되면 더이상 감미로움에서 벗어날수가 없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이빨은 인간에게 뽑히고 온순한 종자만이 남게 되는 거야. 그게 불행이라고 까지 단정 짓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서 행복이라고는 생각할수는 없지. 한번이라도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게 되면 인간이 탄 그 독을 견뎌낼수가 없어. 긴 시간동안 천천히 바뀌게 되어 버리지.. 하지만 인간에게 숙이지 않게되면, 이 마수들에게 남는 것은 '고통'과 '죽음'뿐.."
레니아는 담담하게 현실을 이야기 했다. 그렇기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본능 만으로 그 절묘한 세뇌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기간이었다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이 뒤에도 수년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당근'과 '채찍'이기에, 그것을 본능으로만 '복수'라는 것만을 생각하려 하면 그것은 정신이 붕괴 될 것 같은 정신적 고통인 것이다. 그렇기에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인간에게 순종하자고,,' 그렇게 해서 얻는 행복은 고통에 비해 너무도 달콤 하기에,,
하지만 그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 마치 스스로를 없애는 행위 자아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마수를 인격체로 비유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가정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카오오오!!"
거칠게 묶어둔 쇠사슬에 가로막혀 마수는 울부 짖었다. 본래 네개였던 팔중 두개는 잘라져 있었고, 온몸에는 아마 치명상일 터인 상처로 떡이 되어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자존심이 높은 녀석이군.'
레니아는 마수와 무언가 이야기 했다.
"그래.."
"레니아!"
"응?"
벤하르트의 신호에 레니아는 끌리듯 동굴의 귀퉁이에 몸을 숨겼다.
"누가 오고 있는거야?"
레니아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작가의말
오랜만에 댓글이 많아서 행복하네요. ^^;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