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1화(554화)-백검사(1)
대륙 어니스의 반대쪽에 위치한 또 하나의 대륙 가우스 그 변두리 마을의 술집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후우.."
검은 수염을 곱상하게 기른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웬 한숨을 내쉬고 그러나? 좋아하는 술을 앞에 두고서,"
그 맞은 편에는 희끗희끗함이 감도는 갈색 수염을 둥글게 기르고 있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갈색 수염의 남자의 물음에 검은 수염의 남자가 답했다.
"최근에는 뒤숭숭한 일들뿐인지라."
그 말을 들은 남자도 친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짐작하고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렇네만, '그게' 하루 이틀일도 아니지 않나."
"그거? 아 그렇군. 자네는 이 마을에서만 일을 하니 모르고 있나보군. 물론 그 일도 문제는 문제다만, 그보다 더 큰일이 생겼네."
당연히 자신이 예상하고 있던 문제 때문에 한숨을 내쉬었다고 지레짐작했던 갈색수염의 남자는 놀라며 되물었다.
"더 큰일이라니 무엇을 말인가?"
"지금 이 마을 바깥은 난리도 아닐세. 붕화 도시는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이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데다 대도시로 유명한 곳을 아무리 이런 촌구석 마을에 박혀 사는 나라고 해도 모를리가.. 헌데 그 도시는 자네가 교역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래 그렇지. 지금 붕화 도시는 대대적인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네."
"그게 무슨 소린가!? 반란이라니!"
친구의 뜬금없는 말에 갈색 수염의 남자는 깜짝 놀랐다.
"교역을 하고 있는데 요 근래 들어서 도시 안의 분위기가 너무 바뀌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네만, 우연히 반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말았네. 그것도 내가 교역하던 상인들에게서 말일세. 사실 수 년 전에 그 붕화도시에는 어떤 '종교'가 자리 잡았었네. 그 종교는 엄청난 호응과 함께 도시를 사로 잡아 버렸지."
이야기를 듣던 갈색 수염의 남자는 미간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나오는건가. 내가 복잡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겠지?"
"이게 이야기의 시작이니 잘 듣기나 하게. 이야기로 넘어가서 사실 그 종교는 처음에는
별것 아닌 종교라고 생각했었다네. 그 종교에 한번 심취한 사람들은 아주 열렬하게 그 종교에 빠져 들었네. 옆에서 종교와 관련이 없는 내가 보기에 무섭다고 여겨질 정도로 사람들은 그 종교에 빠져들었지."
"종교에 심취하는게 어째서 무서운 일인가?"
"그 종교는 정상이 아니었어. 뭐라 딱 잡아 말하기는 뭣하지만, 그건 어딘지 위험해 보였네. 하나 묻도록 하지. 자네는 종교를 위해 한쪽 팔을 버릴수 있나?"
"그런 짓을 할리가 있겠는가? 무신론자긴 하지만 종교를 위해 팔 하나라니, 그게 말이나 될 일인가? 애시당초에 종교에서 사람의 팔 같은건 요구해 뭘 한단 말인가?"
"그렇지. 자네같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종교를 신을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팔을 내놓는 일은 없지. 하지만 그 종교는 그런것을 '요구하고' '내놓는'다네."
"그 그런걸 나라에서 가만둘리가 없잖은가.."
검은 수염의 남자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미 이 나라는 썩을대로 썩었네. 나같은 일개 상인 나부랭이가 무엇을 알겠느냐만은 윗사람들도 돈에 매수 되었는지 무엇이든지 이미 눈을 감아주고 있는 상황인 듯 보이네. 여기서부터는 내 추측이네만 생각해보게. 자신의 팔을 내어 줄수 있는 사람들이 돈을 바치지 못하겠는가? 그 자금으로 이 썩어빠진 나라의 입을 막고 눈을 가리는 일 쯤이야 쉬운 일이지."
썩어빠진이라는 말을 듣고 갈색수염의 남자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하지만 그러면 자네도 위험하지 않은가? 그런 도시가 되어 버렸다면,"
갈색 수염의 남자는 걱정 스러운 눈으로 검은 수염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 도시의 일부 상인들을 제외하고는 일절 교류를 끊었다네. 일부 상인들에게도 그간의 친분을 생각해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이야기 했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무너져 내릴것 같았다네."
"정신이 무너지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 종교는 지금 생각한다 해도 이상한 논리들 뿐이었지만, 이상하게 뇌리에 박혀 사라질줄 모르게 되네. 이 마을에 있을때는 한결 누그러 지지만, 그 도시에 있을 때는 매번 "그 종교를 믿지 않으면 안돼" 라고 몇번이고 생각하는 자신을 자각할 수 있었지. 머리로 그리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인지 믿으면 행복해져오는 듯한 기분이 되었었지."
"돈벌레라고 불리우던 자네에게서 그런 비이성적인 이야기가 나오다니 답지 않구먼,"
"어쨋든 그렇게 교역 일을 해나가고 있었네만, 점점 상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군. 그도 그럴 것이 도시에 있을 때 나는 거리를 두고 종교와 연관되지 않으려 노력했거든. 헌데 어느새 주변을 둘러보니 그 도시에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네. 사실상 나를 제외하고 모든 도시 사람들이 그 종교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일세."
"저 정말인가? 내가 촌놈이라고 놀리는것 아닌가?"
당황해하는 친구를 앞에두고 검은 수염의 남자는 들고 있던 술을 들이켰다.
"그럴리 있겠나? 뭣하러 그런짓을 하겠나. 한숨까지 쉬어 가면서 내가 연기라도 한다는 건가? 어쨋든 그렇게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이번에도 갔다 오는 도중 거래하는 상인들에게서 무언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는 반란에 대한 이야기였네. 자그마치 이 나라에 대한 반란의 이야기가 붕화도시에서는 대대적으로 튀어 나오고 있었던 게야.
지금까지도 이상하긴 했다마는 나는 그제서야 이 종교가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네. 이미 내가 장사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게야. 다행히 그들은 나를 눈치채지 못했기에 다음날 바로 마을로 출발했지. 괜히 일에 휘말리게 되면 나마저도 반란군에 가담하거나 혹은 반란군에 가담 하지 않게 되서 죽어 버리지 않겠나?"
"그렇겠구먼,"
"아마도 그 도시가 뭔가 이상한것은 틀림이 없어.. 이제 다시 가지 못할것 같네."
갈색 수염의 남자는 탄성을 내지르며 말했다.
"아.. 그렇다는건.."
"그래 지금 나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네.. '이번에는' 넘어갈수 있겠지만, 다음번에는 어떻게 될런지.."
"차분히 생각하도록 하게. 내 다음달 까지는 자네가 '낼수 있도록' 빌려주도록 하겠네. 그때까지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준비해보게나."
"고맙네만, 이미 평생을 교역을 하며 지내온 내가 다른 일을 어떻게 하겠나. 다음 달에도 나는 교역을 해야만 하네. 긴 여행길이 되겠지."
"이사람아 붕화도시가 아니라면 교역이 가능한 곳 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하는지 아는가?"
"그런 경우도 생각해 보고는 있네. 정 안되면 붕화도시에라도 다시 가야만 하겠지."
묘한 침묵이 흐르고 갈색수염의 남자는 술잔을 들어 한잔 들이키며 말했다.
"거 참 복잡하구만 복잡해. 일단 이번 달과 다음 달의 '비용'은 부담할테니 그 이야기는 잠시 뒷전으로 하고 이 침체된 분위기를 걷기 위해 내 일전에 이 술집에서 들었던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줌세."
"재밌는 이야기?"
"자네 '백검사'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들어본적 없네만, 그게 무엇인가?"
"어떤 인물을 칭하는 말이라고 하네. 일전에 한 이야기꾼을 통해 들었는데, 이 백검사라는 인간이 행한 무용담을 말해주는게 아닌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아주 대단하더군."
"뭐가 그리도 대단한가."
검은 수염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묻자 기다렸다는 듯 갈색 수염의 남자가 대답했다.
"단신으로 불라단 군대를 와해시키고 서쪽에서는 수크라라고 불리우는 대요마를 잡아 내고 그 외에도 수많은 이로운 일을 이야기꾼을 통해 들었는데, 마치 영웅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지."
"그런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띄워지기 마련이네. 내 교역을 하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날 기회를 우연히 가지게 되었네. 헌데 나도 이길 수 있을 법한 그저 힘없는 노인네일 뿐이더군."
"에이 그러지 말고 한번 들어보게나. 이야기꾼이 어찌나 재밌게 이야기를 해주던지 내가 그 이야기를 싹 다 외워 버릴 정도였다네."
갈색 수염의 남자는 자신의 영웅담이라도 이야기 하듯 신나게 검은 수염의 남자에게 열변을 토로했다.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만, 그 말에는 전혀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는군. 애초에 자네는 무신론자면서 그런 이야기에는 왜 그리도 팔랑귀인건가."
"무신론이기에 더더욱 인간의 전설을 믿고 싶은 것 아니겠나? 신은 없지만 영웅은 존재한다네."
"애초에 그 남자는 도대체 왜 백검사라고 불리우는 건가?"
"아 그것은.. 그 남자가 지나는 곳에 백색의 빛이 드리우기에 그렇게 말하는것 같더군. 옷차림은 걸레짝처럼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고 하는것 같네만,"
"역시나 허무맹랑한 이야기구만,"
"아니 아니라니까,,"
둘은 약간 기분이 풀어졌는지 티격거리며 이야기 하다 말을 멈추었다. 그 둘 뿐 아니라 그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일절 멈추었다.
"하 하 뭣들 하는건가?"
경박한 웃음소리와 함께 두건을 쓴 한 남자가 술집에 들어왔다.
"술집이라면 자고로 왁자지껄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분위기가 아주 칙칙 하구만,"
"나무라님 어쩐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요?"
술집 주인이 실실 웃으며 그 남자를 맞이하자 남자는 주인의 볼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술집에 술을 마시러 왔지 뭘 하러 왔겠냐? 최고로 비싼 술 한잔 내보거라."
"예..."
"어이 너희들도 뭣들 하는거냐? 아까처럼 떠들어라."
그 말에 사람들은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한 남자가 더 들어왔다. 거대한 체구를 가진 남자는 한 손으로 가장 가까히에 있던 사람의 얼굴을 붙잡아 내리 깔았다. 바닥에 얼굴을 내리꽃인 사람은 꿈틀거리다가 이내 기절해버렸다.
"시끄럽다. 이곳은 술을 마시는 공간이지. 수다를 떨라고 있는 공간은 아니다."
"어 나지마형 왔어? 술은 이미 준비해 뒀다고,"
"나무라 수금건은 어떻게 되었나?"
"이제 몇집 안남았지. 거의 다 끝냈다고,"
"얼마나 모였지?"
"50마크닐 정도? 붕화 도시에서는 놀수 없지만, 다른 도시에서 보름 정도는 놀수 있겠지."
"50마크닐이면 평범한 가족이라고 한다면 10년은 더 살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런 금액을 보름만에 써버린다고 조잘대는 말을 듣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분노하고 조용히 그 분노를 삭혔다.
"이번에는 적군. 있는 녀석들에게는 조금 더 받아 둬라."
"알았어. 형. 그나저나 이거 한잔 어때? 미리 마셔 봤는데 맛이 제법인것 같아. 다 마셔 버린줄 알았더니 주인장 아직 좋은 술을 가지고 있었잖아?"
술집 주인은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으나, 겉으로 내색할수는 없어 실실 웃을수 밖에 없었다.
이들 둘은 나마 형제라고 불리우는 산적이었다. 서쪽에서 넘어온 이 형제는 서쪽에서는 일각에서는 매우 유명했던 악당들이었다. 그들이 악행으로 배운 것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장소에 터를 잡는 것이었다.
이 형제는 두명이서 일천명이나 되는 사람의 수급을 베어 넘겼을 정도로 무용이 뛰어나 두명이 뭉쳐 있을 때는 싸움을 걸지 말라고 할 정도로 유명했지만, 그들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얼마 뒤에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외부와 적당히 격리되고 전력이 약하고 영향력도 없는 마을은 그들에게 있어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마을을 없애 버릴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이 두 악당이 마을을 파괴하지 않는 조건은 마을사람들의 수입의 3할을 걷어 내는 것이었다. 사실 3할이라는 돈은 적은 양은 아니지만, '못 낼 수준'은 아니다. 이 부분이 참으로 교묘했는데, '마을을 일느니 어떻게든 참으면 된다' 라는 생각을 마을사람들에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돈을 가져가 버리고 먹고 살지도 못할 정도의 돈을 가져가 버리면 자연히 마을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 하게 되겠지만, 어느정도 개개인이 감당 할 수 있을만한 돈이라면, 사람들은 그게 아무리 불합리적인 일이라 해도 무리를 하는 것보다 현실에 안주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마을 사람들도 저항을 안해본것은 아니었다. 어느정도 크기가 있는 도시에 말을 하고 병사들의 지원도 받아 보았지만, 그때마다 형제를 잡을수는 없었다. 애초에 형제의 무력은 이미 변방의 마을에서 수습할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마을 자체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고 지원조차 여의치 않게 되자, 마을 사람들에게는 두가지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싸울 것이냐.' '타협할 것이냐.' 그 선택은 마을사람들에게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어렵지만 참으면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다.' 라는 악마의 속삭임은 마을 사람들을 한없이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마을에 대한 형제들의 횡포가 시작되었다.
때문에 검은수염의 남자의 '돈을 벌지 못한다'라는 사실은 뼈아플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지 못하는 자들은 형제의 노리개로 전락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형제가 술을 마시며 점점 분위기를 띄울때 그들을 보던 검은 수염의 남자가 말했다.
"자네는 틀렸어."
"뭐가 말인가?"
"자네는 그렇게 열변을 토로했지만, 그런 남자 따위가 있을리가 없지. 저런 녀석들을 없애는게 영웅의 역할이 아닌가?"
"자네 너무 취한듯 싶네."
"그렇잖은가.. 저녀석들은.. 으으."
"어이.."
삽시간에 나름대로 달아오르고 있었던 술집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으읏!'
그제야 검은 수염의 남자는 술에서 확 깨어났다.
"너 나에게 불만이 있는가 본데,,"
"그 그럴리가요.."
"그럼 방금 한 말은 뭐지? '저녀석들은' 이라고 우릴 지칭했던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그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
"내 귀가 그렇게 헛개비로 보이냐?"
검은 수염의 남자는 나지마를 잘 알고 있었다. 이 남자는 작은 것 하나에도 크게 벌하는 남자였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폭발하지 않으면 그는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런고로 사실 검은수염의 남자가 형제의 흉을 보았든 보지 않았든 그 진실은 상관이 없었다. 나지마의 눈 밖에 난 그 순간에 검은 수염의 남자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 제가 잘 아는데 이녀석이 지칭한 사람은 나지마님이 아니시고,"
"닥쳐라."
"예.. 예.."
친구인 갈색수염의 남자도 더 이상 말을 섞지 못했다.
"자.. 무엇이라고 말하려 했던건지 뒷 말을 들어보겠다. 아까 하던데로 그대로 말해봐라."
한순간의 정적이 주변을 휘감았다. 빠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수염의 남자는 나지마를 노려 보았다. 이미 나지마의 눈에서 그는 약자를 괴롭히고자 하는 눈초리를 읽을수 있었다. 수 년 간의 경험을 통해 쌓아온 사람의 심리를 읽는 능력으로 그는 이대로 눈앞의 남자에게 실컷 유린당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순간 검은수염의 남자는 울컥하고 화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붕화도시의 사태로 자신은 지금 일을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입에 거미줄을 칠 것을 각오 하며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는데, 눈 앞에는 자신들의 고혈을 빨아 먹는 쓰레기가 자신을 놀리고 있는 상황. 술기운에 공포는 둔해지고 분노는 솓구친다.
"저녀석... 아니 너희들은 거머리 같은 놈들이라고 말하려 했다!"
"아니 자네 무슨 소리를!"
서둘러 말리는 갈색수염의 남자를 옆으로 밀치며 검은 수염의 남자가 말했다.
"우리들은 네녀석들에게 빼앗기기 위해 일을 한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 지금껏 노력해 왔는데, 너희들은.."
"후후.. 어때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나?"
술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지마가 물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아 주인장 자네는 어떤가? 이 술이 아까웠나?"
"아닙니다. 나지마님이 마실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그렇다는군. 자 그렇다면 옆의 친구에게 물을까? 어떤가? 나에게 돈을 주는게 그렇게 분하고 억울하며 잘못된 일인가?"
갈색수염의 남자는 검은 수염의 남자를 보고 부슬부슬 떨다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술집 이 마을에서 불순분자는 누구인가? 응?"
"그래 그렇게 나오는 건가..."
검은수염의 남자는 너무도 분해서 눈물을 떨구었다. 인생은 난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어째서 그놈의 종교에 의해 자신의 일터가 반란의 조짐을 보이게 되었는가? 어째서 이녀석들은 하고 많은 마을중에 자신들의 마을에 온 것인가... 술기운에 감당치 못할 말은 어째서 했는가. 그게 왜 하필이면 나지마의 귀에 들어갔는가..
수많은 망념이 그의 머릿속을 휘집고 지나갔다.
'하지만 마지막 말에 후회는 없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똑바로 나지마를 노려보았다. 그런 반항적인 모습이 생소했는지 나지마는 비틀린 웃음을 지어보인다.
"자 그러면 이단아인 네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줄까. 일단은 사지를 조금 만져서 골절을 일으키고 이번 수금은 전부를 받도록 해볼까?"
"그 말은 이상하군."
"음?"
나지마는 목소리가 이전에는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은 무언가를 내려다 보았다. 낡은 천으로 몸을 가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째서? 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만, 일단 물겠는데..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돈을 주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지?"
초췌한 남자가 묻는다.
"뭘 묻는건지 모르겠군. 어째서? 그야 우리 형제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지. 외적으로 부터 보호해주는 일종의 자리세를 걷는다고 생각해도 좋다. 물론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내적이 되어줄테니 이녀석들에게 선택권은 없다고 할 수 있지. 그래 그게 이유다. 우리는 강하고 이녀석들은 약하다는 것."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턱에 손을 가져가 생각하는듯 하다 말했다.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는건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네녀석들의 돈을 받아 가도록 할까. 수금 한돈이 50마크닐이라고 했었나? 양심상 1크닐 정도는 남겨주마. 나머지 돈을 지금 당장 다 가져오겠나?"
"이자식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나무라는 발끈하며 단검을 손에 낚아 들고 한바퀴 돌리면서 남자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무라의 몸은 공중에서 한바퀴 회전해 내동댕이 쳐졌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 나무라는 낙법조차 하지 못하고 내던져졌다.
"어때? 줄 마음은 생겼나?"
"이자식.. 뭐 하는 녀석이냐."
"지나가던.. 검.. 대.. 그냥 모험가다."
다시 남자는 나지마에게 말한다.
"자 그럼 돈을 가져 오실까?"
"헛소리 하지 마라. 아 그래 한가닥 한다 이거지? 알량한 정의감에 취한 머저리새끼 네녀석 혼자 우리 형제를 당해낼수 있을것 같으냐! 우리 둘은 천명이라는 대군을 상대로도 지지 않았단 말이다."
"그렇겠지. 하지만 천명이 되었든 만명이 되었든 '내'가 '너'보다 강한 이상 너는 내게 돈을 주어야 되는 것 아닌가? 네 알량한 그 논리에 의하면 말이다."
"이 자식이!"
거대한 손으로 금방이라도 내려 찍을 것 같았지만,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엄청난 고수였다. 그렇기에 눈앞의 남자의 자신감과 더불어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논리를 가지고 있는건 좋다만,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때는 스스로가 그 논리에 먹히지 않을 정도의 생각은 해두는게 좋지. 만약 너보다 강한 사람이 있다면 너는 무엇이라도 내놓을수 있다는건가?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그 말은 비단 나지마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었다. 나지마는 본능을 이성으로 억누르며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아니야.. 착각일거다. 나는 나보다 강한 녀석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어떤 고수도 내가 상대하지 못할 정도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녀석도... 그저 허세 뿐일 것이다. 할수 있을 거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저 머리통을 부수어 버린다면,'
"하아아!"
나지마가 공격을 가하는 그 한순간 남자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백색의 섬광이 주변을 덮쳤고 함께 눈치 챘을때 남자의 몸은 나지마의 뒤로 돌아가 있었다. 나지마의 온 몸에 엉성하지만 투박하게 끼워 입었던 철로 만들어진 장신구들은 산산조각으로 갈라졌고 나지마는 죽은듯이 멈추어 있었다.
"으아아.."
갈색 수염의 남자는 나지마를 보고 기겁을 하며 놀랐다. 나지마는 흰눈자위를 드러낸채 기절해 있었다. 나지마의 몸은 백색의 끈으로 칭칭 감겨 있었다.
"배 백색의 섬광.. 남루한 차림새.. 서 설마..?"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색향입니다.
엔쿠라스 2부를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일단 형식적인 멘트를...
1부 완결에 여러가지 댓글이 달렸는데요 하나하나가 너무 주옥같아서 그간 너무 행복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저는 '여기까지 읽어 오면서 정말 즐거웠다.' 라는 분위기의 장문의 댓글을 아주아주아주아주*100 좋아하는것 같습니다. 그런 댓글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어째서?) 지는것 같아요.
그런고로 1부 완결때의 댓글들은 제 눈시울을 적시는.. 그런 댓글들이었죠. 이 길고 루즈해진 글을 이토록이나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실 글은 언제 쓸까 망설였는데 바로 오늘 잡고 쓰게 된 이유는 감상란에 추천의 형태로 忘痛님이 올려주신 글 덕분입니다.
그런 추천을 받고 가만히 있을수는 없지요. 사실 저는 출판한 글도 아니고 감상란에 제 소설이 언급이 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터라,, 처음에는 선작 변동이 왜 일어났는지도 몰랐었죠...
여하튼 이자리를 빌어 忘痛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른 분들께도 추천을 떠나 이 긴글을 여기까지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기대에 부응할수 있게 열심히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2부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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