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49화-엔도픽(8)
나름대로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은 촌장의 지시에 따라 전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촌장과 이오로 그리고 마을에서도 손을 꼽는 사냥꾼들은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천천히 조여오고 있었다.
이 사냥꾼들이야말로 지금껏 수많은 마수들을 생포한 장본인들로 자연히 실력도 뛰어날수밖에 없었다.
"괜찮겠나?"
"뭐가 말야?"
레니아는 웃음을 띄우고 손을 휘둘렀다.
"으아아아."
한 남자는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른채 공중으로 떠올라 멀리 던져저 버렸다. 날아가던 남자는 이오로의 마수에 의해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한 가닥 하는 모양이네만, 지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쿠오오!"
벤하르트와 레니아의 뒤에서 거대한 외눈의 인간형의 마수가 달려 들었다. 그들은 가볍게 마수의 공격을 피했지만, 피한 자리의 땅은 거대한 구덩이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대단한 힘.'
레니아는 마법을 쏘았지만, 마수는 손쉽게 그 마력을 없애 버렸다.
"후후 그녀석은 마법을 먹어치우는 마수 그라갈. 마법따윈 통하지 않지. 인간의 수십배나 되는 힘과 마법이 통하지 않는 신체. 그녀석을 이길수 있는건.."
촌장은 더 말을 이을수 없었다. 마법을 먹어치우는 그라갈은 레니아의 마법에 의해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길수 있는건 뭐?"
"망설이지 말고 전력을 다해라. 이녀석들은 보통이 아니야."
촌장 치피의 신호에 수많은 마수와 사냥꾼들은 일제히 벤하르트와 레니아에게 덤벼 들었다. 자신보다 몇배는 더 거대한 마수를 상대로도 인간을 상대로도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이기는 것이 당연할 전투라고 그자리에 있는 모두는 생각했을 것이다. 다룰수 있는 마수와 자신들의 실력은 이미 하나의 도시와 싸워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기에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누구라도 벤하르트와 레니아와 이 마을의 승부는 마을이 이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인생은 생각과 예상을 가볍게 뒤집어 엎어 낸다.
신기할 정도로 공격을 전혀 맞지 않으면서 기묘한 백색의 빛으로 마수들과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남자 그리고 마법에 의해 범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여자의 일개 여행객인줄 알았던 둘은 전혀 밀림 없이 상대해 낸다.
"우악."
백색의 끈에 다리를 잡혀 한 남자가 던져 졌다. 상처가 도지지 않을 정도로 조율해서 내던진 공격들은 하나같이 미미한 경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더 일어날수가 없었다. 지금껏 벤하르트는 검을 뽑아들었지만, 단 한사람도 베지는 않았다.
"이 이렇게 된이상."
촌장은 당혹스러워 하면서 신호를 내렸다. 기묘한 소리와 함께 공중을 뒤덮는 거대한 마수가 등장했다. 그것은 하나의 마굴이었다. 거대한 새의 마수는 땅이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거대했고 그 위에는 수많은 마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단한걸?"
"저녀석들까지 부르게 될 줄은 몰랐거늘."
"아버지 무슨 일이십니까?"
마수의 위에는 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다. 앞머리를 길게 늘여뜨린 남자는 등뒤에 검을 지고 있었는데, 잡티 없는 웃음을 보이며 촌장에게 물었다.
"저들을 잡아라."
"앞뒤 사정 없이 말하는건 오랜만이군요."
거대한 마수는 상당히 높은 곳에 떠 있었지만, 그는 거침없이 땅으로 내려 왔다. 쿵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그는 아무 이상 없이 주변을 둘러 보았다.
"대단한데? 아버지 이 여자는 누굽니까?"
"이들은 꼭 사로잡아야 한다. 우리 마을에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초석이 되어 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니.."
"사로잡아야 된다는 말이지요? 그것 좋군요."
"뭐라는 거야? 그 많은 마수들과 사람들로 막지 못한 우리를 이녀석으로 막을 생각?"
레니아는 기가 찬다는 듯 말하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벤하르트는 그녀의 옷을 잡아 끌었다.
"꺄앗. 뭐하는 거야. 벤."
"조심해. 저녀석은 보통이 아냐."
그 많은 마물사냥꾼들과 마수들과 싸울때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벤하르트의 표정은 진중하게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 이녀석은 뭡니까? 혹시 죽여도 되는겁니까?"
"그녀석은 죽여도 상관 없다."
"하여간 본색을 들어내면 이렇다니까, 밑도 끝도 없어."
"흥 그렇지는 않네. 이쪽도 사실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지. 하지만,"
치프는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른 아들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눈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좋군요."
"해치워라 필린."
벤하르트는 고개를 젖혔다.
'보이지 않았어.'
몸에 깊숙히 배어 있는 유려의 움직임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목이 날아갔을 일격을 그는 감각만으로 피했다. 검을 뽑는 자세조차 취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필린이라고 불리운 남자는 검을 들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 거렸다.
"확실히 벨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리였나?"
"레니아 물러서 있어."
"뭐냐 그 진부한 대사는 너는 내가 지켜 줄게 뭐 이런거냐? 우와 살이 돋는 것 봐. 하지만 걱정 마라 저 여자는 죽이지 않을 거니까,"
벤하르트는 그가 하는 말은 믿지 않았다. 방금 레니아를 당기지 않았다면 필시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레니아는 기절하거나 중상을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 적개심을 드러내고 그러는거야? 네가 그렇게 노려 보는게 어떤 분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필린은 번개같은 몸놀림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엇 하는 사이에 그는 휘청 거렸다.
"뭐야 이건?"
그 휘청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벤하르트는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 쳤다. 기가 응축된 그 일격에 남자는 바닥에 얼굴이 파묻혔다.
"벤. 이건 너무.."
"아냐. 레니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만, 이정도로는.."
"푸하. 이렇게 다친건 또 처음이로군. 방금전에는 어떻게 된거지?"
필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일어서서는 예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금 전 벤하르트는 기를 숨기고 검을 이용해 줄을 만들어 필린의 다리를 걸었다. 그 사이 무너진 자세를 놓치지 않고 일격을 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짧은 틈에 필린은 자신의 머리에 기를 집중해서 벤하르트의 공격을 정확하게 막아 내었다.
얼얼한 손을 쥐고 벤하르트는 필린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얼굴을 이렇게 뭉갰으니까, 그 보답으로 네 목숨을 가져가 주마."
필린은 다시 벤하르트에게 달려 들었다. 사냥꾼들은 물론이고 촌장과 이오로 조차도 그 움직임에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을 정도였다.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속도였지만, 벤하르트는 자연스럽게 검을 흘리고 백광으로 그의 몸을 덮쳐 버렸다.
"우아아악."
백광을 정면에서 맞은 필린은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휘청 거리며 낄낄 거렸다.
"뭐야 도대체. 이런건 처음이야. 어떻게 그 공격을 받아낸거지?"
"어떻게라고 물어도,"
"벤 괜찮아 저녀석.."
레니아가 걱정스럽게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방금전에 보여준 필린의 움직임은 그녀가 보기에도 위험천만했다. 벤하르트가 반응하지 못했다면 그 즉시 목이 날아 갔을지도 모르는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마을사람들은 필린이 확실하게 이겼다고 생각했고 레니아 조차도 어떻게 벤하르트가 필린의 공격을 피하고 역공을 가한것인지 정확하게 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괜찮아. 하지만 레니아. 저녀석은 상관 없지만, 그 이후에 마을 사람들과 위에 있는 마수들이 공격하기 시작하면 정말로 위험해질지도 몰라. 도망갈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지 않을래?"
"그건 걱정 하지 마."
"걱정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읏."
필린의 장검이 벤하르트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내가 밀리는 사람이 있다니 믿을수가 없어... 으하하하."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의 움직임이었지만, 벤하르트는 귀신같은 솜씨로 하나하나 전부 막아 내었다. 그쯤 되니 레니아도 슬슬 필린의 공격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벤하르트가 괜찮다라고 한 이유조차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괴물 같은 녀석이지만,'
아마도 신체 능력만 따지면 벤하르트보다도 더 뛰어날지 모르는 괴물이었지만, 실제로 그의 움직임은 많이 미숙했다. 육체를 다루는 기술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단면적인 공격은 수준급이지만, 조금도 다방면적인 공격이 없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필린에게 그런 것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단면적인 공격은 아무리 빨라도 '일합' 첫번째 공격만이 위협적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공격에 당해줄리가 없는 벤하르트에게 있어 필린의 공격은 준비자세만으로도 어디를 노리는지 알수 있는 예측의 범주에 전부 들어가 버리게 된다.
때문에 레니아도 이후부터는 필린의 공격이 눈에 익었다.
'이 움직임은 역시.'
벤하르트는 필린의 다리를 걸고 검을 휘둘러 얕게 상처를 냈다.
"크윽. 크크하하.. 아버지 도대체 뭐야 이놈은?"
"말도안돼. 필린이 밀리고 있다니."
벤하르트는 필린의 움직임을 보고 필린이 사람들과 싸운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흡사 마수나 마족 이물 괴물등과 흡사했다.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 싸우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거기에 싸울수 있는 경험 조차도 없었다. 리스는 마구잡이식 싸움을 즐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벤하르트가 리스를 정공법으로 싸워서 싸워낼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대답할수 없는 일이다. 리스는 마구잡이로 싸우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들과 싸울수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공격이 단순하다고 해도 적의 공격에 맥없이 당해주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필린은 달랐다. 마치 순수한 인간이 움직이는 때리기에 때린다 차기에 찬다 휘두르기에 휘두른다. 마치 어원 그대로의 공격을 하고, 다른 쪽에도 무방비했던 것이다.
그러니 벤하르트가 필린을 상대로 질리가 없었다.
"쿠아.. 대단한데 정말, 도저히 못이기겠다."
"필린. 이자들은 꼭 잡아야 한다."
"당연하죠. 이대로 놓칠까봐요."
필린은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어서 불기 시작했다. 기묘한 소리와 함께 공중위에 있던 거대한 마수의 등에서 수많은 마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네들은 이제 달아날 수 없을 걸세."
촌장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뭐? 믿었던 녀석마저 저렇게 주저 앉은 마당에 무슨 소릴 하는거야?"
"물론 필린이 당할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네만, 방금전의 소리로 이미 자네들의 승산은 사라진걸세. 필린은 마을 제일의 사냥꾼이지. 위에 있는건 마을의 마수가 아닐세. 필린이 몸소 잡아온 '대마수' 무리들 하나하나의 실력은 필린 보다야 약하다지만 필린도 애를 먹었을 정도의 실력들을 가지고 있는 마수지."
'스스로가 잡은 마수라.. 그래서 그런 움직임이었나.'
마수는 인간과는 다르다. 공격 자체가 지극히 단순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필린은 그 타고난 신체능력으로 수많은 마수를 잡아 냈다. 자신의 실력에 버금갈만한 강력한 마수들을 잡아왔지만, 그 많은 전투는 그저 '본능'이 가리키는 대로 싸웠을 뿐. 거기에 생각이나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격하기에 막는다 공격하기에 피한다. 잡기 위해 공격한다. 이런 지극히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필린의 육체는 충분히 마수들을 잡아 낼수 있었다. 마수를 잡아내면서 그는 엄청난 반응속도와 일발의 공격을 익힐수 있었지만, 그 외의 다른 기술은 일절 익히지 못했다. 타고난 신체능력이 대단하면서도 그것을 활용할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에 이녀석이 인간의 공격 기술을 익혔다면, 정말 쉽지 않았겠군. 저정도의 마수라니'
공중에 떠 있는 마수들은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벤하르트라고 해도 전부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나저나.. 레니아!! 이제 정말 위험하잖아 지금 이 상황. 빨리 길을 뚫어줘. 달아나야 겠어"
"괜찮아 괜찮아. 길을 뚫을 필요는 없어. 탈출할 방법은 괜찮고도 괜찮으니까, 비유하자면 말야. 네가 필린과 싸울때 괜찮다고 했던것과 비슷할 정도로 괜찮아. 아까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지?"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이런 상황에 어떻게 걱정 하지 말라는거야?"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친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필린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벌떡 일어나 공격했다.
"무슨 잡담을 그렇게 하고 있는거냐!"
"후우."
벤하르트는 필린과 다시 한바탕 어우러졌다. 필린은 벤하르트의 기술에 감탄하면서 다시 몇개의 상처를 더 받고 물러 섰다.
"크큭 괴물 같은 녀석이로군."
그 말에 마을 사람 일동은 필린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고개를 저었다.
"레니아."
"됐어.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다고는 말해줄게."
"으.. 필린 서둘러라."
촌장은 레니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고 재촉했지만, 마수들이 덮치는것보다 레니아는 훨씬 빨랐다.
"어!? 뭐야 어디로 간거야. 아버지?"
"으으.."
촌장은 흙씹은 얼굴로 발을 구를 뿐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서 있었던 두명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 작가의말
슬슬 연참대전도 종료가 다가 오고 있군요. 이번 연참대전은 나름대로 뜻깊은? 연참대전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과연 생각한대로 이루어질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오늘은 정말 무더위 여서 그런지 참 힘들었지만, 소설은 줄줄 써지더군요. 댓글이 오랜만에 다섯개 이상 달려서 그런지 기분도 좋았고요. 약간 수정하고 살을 붙히고 싶기는 하지만 연참대전이니 그냥 달려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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