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4화(558화)-백검사(5)
"그런데 두분은 어째서 이런 변두리 마을 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까. 제가 보기에 이런 마을과는 인연이 없다고 보여 집니다만,"
"인연이나 운명 같은 것을 예시로 든다면 이런 마을 까지 오게 되는데에는 어떤 이유나 명분도 필요 없겠죠. 이 마을이 저희가 못 올 장소 같은건 아니니까요."
"아 그것도 그렇군요. 이거 참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본것 같습니다."
무츠는 벤하르트와 그의 옆에서 발그레 하게 얼굴을 붉게 하고 반쯤 뜬 눈으로 사랑스럽게 술을 홀짝이는 리스를 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마을에는 어울리지 않아.'
벤하르트는 흘끗 눈앞에 놓여진 술을 보았다. 리스와는 겨우 합의를 보았고, 사실 술에 대해서 본인도 맛만 보면 족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호쿠스의 술의 마성은 대단했다. 금욕에 관해서는 상당한 자신이 있는 벤하르트로써도 자꾸 시선이 갈 정도로 술의 맛이 기가 막혔다.
술이라기 보다는 마치 음료라고 봐도 무방했다. 마치 자신이 가장 맛이 좋다고 생각하느 맛을 골라서 만들어 낸 것처럼 좋아서 한잔을 마시고 벤하르트조차도 순간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릴 정도의 술이었다.
리스가 흔드는 찰랑이는 술병을 보고 벤하르트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3분의 1쯤 남은건가?'
한잔 밖에 마시지 못한게 너무 미묘했기에 그는 리스가 놓아둔 술병을 향해 한잔 더 마시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귀신 아니 그 이상의 존재인 리스는 귀신같이 벤하르트의 움직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빤하니 그를 바라 보았다. 리스는 벤하르트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그 기운 만은 독특하게 내뿜고 있어서 벤하르트는 굳이 돌아 보지 않더라도 그녀가 그를 빤하니 쳐다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의미하고자 하는건 뻔한 것이었다. 처음에 극구 예의인지 뭔지 '거절'을 했었던 벤하르트가 염치도 없이 또 한잔을 따르는가 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보고 있는것을 '일부러' 그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내가 이렇게 보고 있는데도 그 잘난 입으로 떠들었던 고리타분한 예의를 깰거야?'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의외로 그런쪽으로의 벤하르트는 쓸데 없이 자존심이 레니아 못지 않게 강했기 때문에 차마 더 마시고자 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궤도를 벗어난 능력을 그들은 다분히 쓰잘데기 없는 일에 사용하며 견제하며 벤하르트는 시시각각 떨어지는 술을 보며 약간 안달 복달 하기를 잠시 정적을 끊은것은 술병을 들고 다음잔을 마시려는 리스의 한마디였다.
"자.."
리스는 쿡쿡 거리며 싱긋 웃더니 벤하르트에게 물 흐르듯이 유연하며 우아하게 술을 한 잔 따라 주었다. 한잔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벤하르트는 한방 맞았다는 얼굴로 실소를 머금었다. 이런 쥐락 펴락하는 모습은 이전의 레니아와 별반 차이가 없어서 벤하르트는 왠지 모를 정겨움을 느끼며 미소 짓고 잔을 받아 들였다.
"그나저나 아까 이야기 했던 것 말입니다만,"
"아까 이야기라면?"
"제가 마을에 들린 이유 말입니다. 그것에 대답 하자면, 물론 이 마을을 목표로 온 것은 아닙니다. 사실 가고자 했던 장소는 다른 곳이었지요."
"다른 곳이라,,"
"붕화 도시 입니다."
무츠는 흠칫 하고 놀랐다.
"붕화도시라.. 그렇군요. 흐음."
"사실은 아까 전 술집에서 붕화 도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만,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주실수 있으시겠습니까?"
"자세하게라 해도 사실 저로써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을의 은인에게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이녀석이 술과 고기를 가져 왔다면 저는 정보라도 드려야 겠지요."
"아니 은인이라고 까지 생각하실 건 없습니다."
무츠는 눈 앞에 있는 벤하르트라는 사람이 어지간히도 꽉 막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은인이라고 생각하는건 제 자유겠지요? 저는 은인으로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 예.."
그렇게 무츠가 선을 딱 그러놓고 강경하게 나서자 벤하르트도 더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럼 어쭙잖게나마 제가 아는 정보를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붕화도시는 현재 어떤 종교에 의해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종교는 지금으로부터 약 4년전에 붕화 도시에 들어왔었죠. 처음에는 무슨 전파를 하는가 싶더니 몇달 사이에 엄청난 신도들이 생겨 나더군요."
벤하르트는 손 깍지를 끼고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따금씩 홀짝 거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조용한 분위기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이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라 하면 무언가 '희망'을 얻고자 해서 사람들이 믿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뭔가 밝은 생각을 연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 종교는 어딘지 달랐습니다. 어둠을 숭상하고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점점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 갔습니다. 예를들어 꽃다운 미녀가 그 종교에 빠지고 나서 지금은 마치 중년의 노파 처럼 변해 버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런 곳이었습니다. 자신의 살을 바치고 스스로를 바쳐 파멸하는 행위에도 거리낌이 없는 종교. 벗어나 생각해보면 누구나 불행이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그 종교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 파멸적 행동에 행복해 하는 기이함. 저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만, 종교를 믿는다고 한다면 앞서 말했듯 희망을 얻고자 믿는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그런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희망이라, 하지만 희망이 언제나 밝기만 한 것은 아니겠죠."
약간 쓴웃음 지으며 벤하르트가 말했다.
"무츠씨는 운이 좋으시군요. 그곳에 더 머물러 있었다가는 무츠씨도 그들의 일원이 되었을 겁니다."
"무언가 알고 계시는 겁니까?"
"안다고 단언 할수는 없겠지만, 성가신 일에 끼어 들었다는 것 정도는 알겠군요. 아마 그곳에서 시행 되어 지고 있는 것은 상식으로는 잡을수 없는 의식일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공공연하게는 퍼져 있지 않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어도 존재하는 것이 여럿 있지요. 제가 다루는 기라거나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이라거나 도사들이 부리는 주술이라거나, 믿기는 어렵지만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러 보여도 사실은 가까히에 존재하고 있는 법이지요."
"으음."
"단순한 예시일 뿐입니다만, 저는 아까 그 형제에게 주박을 걸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대대적인 술법 같은 것도 존재할 수 있겠지요."
"그럼 붕화도시에는 그런 주술을 부리는 자들이 있다는 이야기이십니까?"
"그렇기에 단순한 예시인 겁니다. 자세한 것은 가봐야 알겠지요. 하지만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겁니다. 그나저나 그러면 도시 사람들은 거의 그 종교에 빠져 있는 겁니까?"
무츠는 눈을 굴리며 생각해보고는 말했다.
"아마도 도시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 종교에 빠져 있을 겁니다. 헌데 벤하르트씨는 그 도시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 마을에 들리게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도시는 상상 이상으로 위험합니다. 특히나 벤하르트씨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위험 하겠지요."
"음? 그건 무슨 뜻인지."
"이제 부터 이야기 하는 것은 제가 벤하르트씨를 떠보거나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대답해 주십시오. 아까 벤하르트씨는 나지마 형제에게 자신은 '착하지 않다'라고 하고 나무라의 팔도 산산조각으로 으깼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때 나무라의 팔을 부순 것은 나무라에게 주박을 걸기 위해서 였습니까? 아니면 정말 팔을 빼앗기 위해서 였습니까."
벤하르트는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무츠를 노려 보았다.
"어이 무츠 백검사님이 노려 보시잖냐.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는거야!"
"아니 네가 말하는 백검사라면 더더욱 물어 두어야 할 일이다."
"후우.. 사실 나무라라는 사람을 그렇게 둘 생각은 없었습니다. 만약 끝까지 오기를 부린다면 사지에 힘은 안 들어가게 만들어 둘 생각은 있었지만, 그렇게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마 벤하르트씨는 상당한 실력자이시겠지요. 나지마 나무라 형제는 일개 군대로도 견적을 낼수 없었을 정도로 무서운 실력을 가진 녀석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별 어려움도 없이 그렇게 만든 실력이라 하면 자신을 가질만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 벤하르트씨는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무슨 주박이 있으셔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본래의 감성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죽일 정도의' 독함이 없다면 도시는 매우 위험한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가지 묻겠습니다만, 만약에 벤하르트씨를 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무 죄도 없는 일반인이며, 그 일반인들이 죽으려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벤하르트는 눈을 꿈틀 거렸다. 이미 그 사실을 물어 본다는 것으로 무츠는 벤하르트의 성격을 어느정도 읽은 듯 보였다.
"그런게 가능한 종교입니다. 이미 자신을 종교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도시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곳에서 벤하르트씨는 스스로를 '가장한 채' 나지마와 나무라를 속여 넘겼지만, 만약에라도 지금 이 사실을 들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아무리 그 종교가 사악해 보여도 대놓고 인간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미 인간을 물건처럼 사용하는 종교가 위기에 몰리면 무슨짓을 할지는 뻔하고도 뻔할 노릇이겠지요. 벤하르트씨는 뛰어난 실력자 이십니다만, 그 이상으로 제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그 부분은 분명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아 들었습니다."
무츠의 충고는 그야말로 벤하르트의 심중을 그대로 꿰뚫는 것이어서 내심 그는 상당히 놀랐다. 고작해야 이 짧은 시간에 자신을 이만큼이나 알아내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마 레니아였다고 해도 불가능 했을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무츠가 벤하르트를 믿는다는 거대한 전제조건이 깔려 있었다. 무츠가 특별하다기 보다는 사실은 벤하르트가 이 마을에서 '실수'를 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씁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도시에 가고자 한다면,"
무츠는 잠시 필기구를 들고와 무엇인가를 적었다.
"붕화도시 안에 이 주소로 찾아가 이 서신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이 주소에 머물고 있는 사람 마저도 종교에 심취되었다면 아마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종교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종교에 빠지지 않았다면, 벤하르트씨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여러 모로 감사합니다만, 이 사람은..?"
"한때는 이 마을에서 살았던 녀석이었죠. 큰 곳이 좋다면서 붕화도시에서 살고 있기는 한데, 뭐 그녀석이라면 그런 종교에 빠지지 않고 잘 살고 있을 겁니다. 벤하르트씨는 스스로가 기니 마법이니 신비스러움을 주장했지만, 눈치채지 못하셨던 모양이군요. 나지마나 나무라에게 벤하르트씨가 그런 위용을 보여 주었음에도 마을 사람들은 놀랄 지언정 신기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을요."
'그러고보니,,'
싸움은 둘째 치더라도 주박을 건 것 마저도 의혹이나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은 사실상 아무리 나지마의 태도를 보았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신비스러움을 이상하게 의심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이전에도 그정도의 신비를 이 마을에서 겪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마을에서는 그닥 놀랄 것도 없겠죠. 제 나이 또래일때는 한 녀석이 심심찮게 보여주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벤하르트씨의 능력은 사실상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단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지요.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라고 부르면서 배척 했습니다만,"
왠지 무츠는 쓸쓸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자네.."
호쿠스는 측은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무츠는 호쿠스를 쏘아 보고는 냅다 엉덩이를 걷어 찼다.
"뭐 하는 짓인가!"
"주책없게 굴지 말라는 걸세. 하여간 자네는 예전부터 눈치가 없단 말야. 혹시 아직도 종교에 먹히지 않았다면 전해 줄수 있겠습니까?"
그는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찾아 들고 벤하르트에게 내밀었다. 그가 가져온 것은 하나의 팬던트였다.
"별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종교에 먹히든 먹히지 않든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 참을수가 없어 지는군요."
"알겠습니다."
술과 고기가 다 떨어지고 이야깃 거리도 대충 정리된 듯 싶자 무츠가 말했다.
"이야기가 많이 도움이 되었었다면 좋겠습니다"
"충분할 정도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밤이 깊었으니 오늘 하루는 저희 집에서 하루 묵고 가시는게 어떻겠습니까?"
벤하르트는 살짝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하루 신세를 지겠습니다."
"실례일리가 있겠습니까. 그 전설적인 백검사를 모시게 되었으니 되려 제가 가문의 영광으로 알아야 겠지요."
"아니 그런건.."
마지막에 보인 중년 남자의 심술궃게 놀리는 듯한 중후한 미소에 벤하르트는 무츠의 성격의 단편을 조금 맛볼 수 있었다.
- 작가의말
2부는 1부만큼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집니다만,
어느정도가 될지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사실 1부 완결도 저는 300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2부는 아마 1부 보다는 적을 것이라고 봅니다만, 음..
리뉴얼이 되고 난 뒤에 생각한 것은 그냥 2부 란을 따로 만들까 했던 겁니다.
독자님들의 편의를 위해서 이어서 쓰긴 했지만 리뉴얼 된 서재를 보니 구태어 2부를 나눌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최대한 짧게 만들고자 노력해 보겠습니다.
사실 원하신다면 한없이 길게 만드는것도 가능하긴 합니다만, ^^
그나저나 113화 까지 정리는 해뒀습니다만, 550화까지는 어떻게 정리할지 막막 하네요.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