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14화(568화)-마신(魔神)(8)
다음날 벤하르트는 공방에서 검을 들고 자리를 나섰다. 그는 신전으로가 우선 크로세트를 찾았다.
"왔는가."
크로세트는 기대와 비틀림이 뒤섞인 웃음을 지으며 벤하르트를 맞이했다. 그 옆에는 교주가 무심한 표정으로 벤하르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물건은?"
크로세트는 벤하르트가 오자 마자 제물부터 찾았다. 그 짧은 말은 벤하르트에게 물건 이외의 가치는 없다고 결정 지어 놓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에 있습니다."
벤하르트는 검을 내밀어 크로세트에게 전해주었다. 크로세트는 검을 쥐자 마자 미친듯이 낄낄 대며 광소하기 시작했다. 순간 교주조차도 놀라 한걸음 정도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후후하하하.. 대단하구나. 이런 검을 만들수 있는건가! 네녀석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냐? 상상 이상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전해져 오고 있었다.
"크로세트님?"
"이 검은 네녀석의 말대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제물이다. 모태 따위가 필요 없다고 했던 네녀석의 말도 아주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구나."
벤하르트는 마른 웃음을 뿌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했잖습니까. 그나저나 약속은 지켜 주시겠지요?"
"약속? 아 그렇군."
크로세트는 검을 들어 한바퀴 돌리는가 싶더니 바로 눈앞의 교주의 심장을 찔러버렸다. 벤하르트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순간 움찔 거릴수밖에 없었다. 교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검을 찌른 크로세트를 바라 보았다.
"크허어.. 크로세트님.."
"안심해라. 무르하 너는 내 살이 되어 살아 가게 되는 것이니.."
"아아.. 크으어.."
크로세트는 검에 묻은 피를 보며 흡족해 하며 말했다.
"자.. 이로써 네가 원하는대로 권력은 전부 네 것이다. 만족하나?"
벤하르트는 억지 웃음을 띄우고는 말했다.
"네. 하지만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교주가 없다면 이 신도들은.."
"그런건 관계 없다. 이 신전은 내 신앙을 모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 나의 힘 앞에 모여 기도 해서 멋대로 행복을 원하고 쟁취한 뒤에 나를 숭상하게 만들기 위한 덫이지.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써 끝이다. 내가 부활하게 되면 그딴 신앙심 따위는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니까, 오히려 거추장 스럽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 권력은.."
"이 종교에 대한 권력도 가지고 싶었나? 그러면 네가 교주를 하면 되겠군. 내가 부활하면 그정도는 쉽게 가능할테니, 나의 대변인이라도 될 생각이냐? 아니면. 이곳의 왕이라도 시켜주도록 할까?"
여유롭게 크로세트는 웃음을 그치지 않고 말했다.
"그것을 네가 정말로 원한다면 말이지만,"
순간 크로세트는 벤하르트와 시선을 맞추며 가늘고 서늘하게 말했다.
'이녀석...'
"자 그러면 가보도록 할까?"
벤하르트는 크로세트와 함께 신전의 최하층으로 향했다. 최하층으로 향하면서도 벤하르트는 크로세트가 마지막에 말한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벤하르트에게 있어 이미 크로세트가 자신에 대해 알았든 알지 않았든 그것은 아무런 상관 없는 일이었다. 나머지는 준비한 그대로 계획한 것을 실행할 뿐이다.
"자네는 말야. 나와 참 비슷해."
"무슨 말씀이신지.."
"도망칠 길을 만들어 놓는 점이라고 해야 되나? 뭐 그런 점이 말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타인을 믿지 않는 다는 점이지. 믿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말야. 나와 거래를 할때도 그렇고 지금 이자리에서도 그렇고,"
"그렇군요.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자기 자신 뿐이기에, 스스로가 도망칠수 있도록 언제든지 퇴로를 준비한다. 혼자여도 좋을 정도의 책략을 구비해 놓는다. 아니면 이런 비유는 어떨까. 내 등뒤는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는다. 라거나.."
벤하르트는 크로세트의 말에 고개를 숙여 긍정하는 시늉을 보였다.
"내가 이렇게 봉인에 그칠수 있었던 것도 그런 점 때문이지. 그래.. '누구도 믿지 않는 것' '나만을 믿는 것'이야 말로 나를 이루게 했던 근본적인 힘인 것이다."
"봉인에 그칠 수 있었다는 것이라니,, 그건 무슨 뜻입니까?"
"내가 반신(半身)을 따로 봉인 당한 이야기는 들었겠지."
"예. 들었습니다."
"그건 봉인 당한게 아니다. 사실은 봉인을 나에게 내 스스로가 건 것이지."
벤하르트는 놀라며 물었다.
"그런 짓을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있고 말고, 나로써는 도저히 그 여자를 당해낼수 없었다. 이길수 있다는 자만감에 빠져 정신을 차렸을때는 도망칠 기회 마저도 잃고 말았다. 마치 마르지 않는 힘을 상대하는 듯한 느낌 실로 유한으로 무한을 상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을 봉인한 것이다. '그녀석'이라고 해도 나를 죽일수 없도록 스스로를 봉인 한 것이다."
벤하르트는 '그녀석'이 리스를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리스는 자신이 봉인을 했다고 이야기 했는데,'
"흡혈귀가 크로세트님을 봉인한게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렇게 '보이도록' 했지. 그곳은 봉인구역이었으니까, 마치 그 여자가 나에게 봉인을 걸었다고 생각하게 만들도록 할 수 있었지. 애초에 그곳을 결전의 장소로 잡은 이유가 그것이었지만,"
'이녀석의 말이 맞다면, 리스가 봉인한게 아니라, 이녀석이 스스로를 봉인 했다고 하는 것인가? 그렇다는건 이렇게 시간이 지나 '스스로' 부활의 계기를 만든 것도 설명이 된다.'
크로세트는 분명 봉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부서지는 육신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것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크로세트가 '봉인'을 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리스가 봉인을 했다면 수천년 뒤에는 부활하도록 만들었을리가 없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임 신전의 최하층까지 이르게 되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고 있나?"
크로세트의 말에 벤하르트는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도 그렇지?"
크로세트는 문을 열기 직전 광기어린 붉은 눈으로 벤하르트를 돌아 보며 말했다.
"확실히.. 저도 크로세트님을 믿는다고 장담은 하지 못하겠군요."
"좋아. 확실히 '닮은 꼴' 이로군. 자 수천년만의 육신이다. 부활을 하러 가보도록 할까?"
'누구도 믿지 않는다'라는 말에 '아니다' 라고 확실하게 부정하지 못하는 자신이 있다. 레니아와 다닐때의 누구든 믿었던 것은 무엇이었냐고 반문하는 자신이 있다. 그것에 그 이전의 자신은 무엇이었냐고 되묻는 자신이 있다.
어느쪽이 진실이며 어느쪽이 자신인가? 그런 것에 혼란하는 자신은 이미 옛적에 사라져 있었다. 모호하다면 모호한대로 좋은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대로 자연스럽게, 그것이 타인을 믿는 것이든 믿지 않는 것이든 상관 없었다. 레니아가 봉인 당하고 난 뒤 벤하르트는 망설임을 버렸다.
'어찌되든 좋은 거다. 어느쪽도 자신인 것이다.' 라고 자신에게 되뇌인다.
믿지 않는 것도 믿는 것도 자신. 믿지 않는 연기를 하는것도 믿는 연기를 하는것도 어느쪽도 벤하르트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오가는대로 행동을 할 뿐이다. 믿고 싶을때는 믿고 믿고 싶지 않을때는 믿지 않는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인 것이다.
"자.. 이제 부활의 의식을 시행할까 하는데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라도 있나?"
"축하드립니다."
"더 말할 것은 없나?"
크로세트는 명백하게 이미 벤하르트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자는 타인을 믿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 언제고 자신의 생각을 실어두는 것. 아마도 그 점은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게 없겠지.'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한마디 더,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말해 두도록 할까?"
황량한 땅 불길의 소용돌이 속에서 벤하르트는 은백으로 빛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 작가의말
음 시험기간이므로 짧지만 이렇게 올리고 갑니다.
약간 글을 정리 하지 못해서 짜증나긴 하지만, 너무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쩔수가 없네요. 시험 끝내고 생각나면 뜯어 고치던지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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