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10화-이물(異物)(5)
"제네스가 그런 말을 할수 있는 사나이가 되다니,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트레이야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말했다.
"정말로 죽여 줄까?"
트레이야는 반걸음을 뒷걸음질쳐 소년의 공격을 피했다. 사실상 소년처럼 생긴 그 기계인형들의 실력은 개개인의 실력만 해도 이미 트레이야가 쉽게 이길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아니었다. 도리어 방심했다가는 언제라도 목이 날아갈 판국이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위험해 질것은 명확했다.
이미 싸우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패배는 결정 되어 있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그들은 이 기계를 없앨수 없었다. 아마도 죽음을 각오 한다고 해도 두어체를 없앨수 있을까, 그리고 그에 걸어야 하는것은 확실한 자신들의 죽음이었다. 트레이야와 제네스는 라스펠의 그들이 말했던 것이 무엇인지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이런 실없는 농담을 하는것도 아마 지금 이 한때 뿐일 것이다.
"놀리는것 같이 들렸다면 미안해. 하지만 나는 정말 기쁘거든."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에 상처가 났다. 슬슬 말을 하게 되면 움직임을 피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성장했다. 실시간적으로 점점 성장해나가는 괴물들과의 격전속에서도 트레이야의 미소는 가실줄 몰랐다.
"나는 네 그런 모습이 보고 싶었어."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에게 그런 마음따위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아. 말.. 하지 마라."
제네스는 살짝 호흡이 흐트러졌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아름다운 검무를 보는것만 같았다. 목숨을 걸고 실낱 하나 만큼으로 어우러지는 살기섞인 모습은 모든것을 걸었기 때문일까, 광적인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었어. 나는 네가 그런 모습을 보이기를 바라고 또 바랬으니까, 내 잣대로만 생각했어."
"말하지 말라고!"
트레이야의 몸에 상처가 늘어가는것도 그 말을 듣는것도 제네스는 원하지 않았다.
"네가 내가 생각하는것 같은 사람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가정해서 생각했었어. 제네스 너는 어째서 복수를 하고 싶어했지?"
제네스는 번개같이 손을 놀려 소년병기의 검을 뺏어 들었다. 살아있는것도 죽어있는것도 아닌 순수한 기계 인형은 검을 빼앗기고도 전혀 표정변화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답이 오지 않아도 트레이야는 독촉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게 있다면 그런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살아만 있다면 말야."
트레이야는 거칠게 몸을 던져 소년병기를 걷어차고는 말했다.
"네 그런 모습을 많이 볼수 있겠지?"
"살아날수 있다고 생각하냐?"
"그럼 당연하지."
턱턱 숨이 죄어 오는것처럼 성장해서 공격해오는 괴물들을 앞에 두고도 트레이야는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벤이라면, 믿을수 있어. 그때까지 우리는 힘껏 발버둥 치면 되는거야."
"흥."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의 속도로 한참을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정도의 은백색 나선형의 계단을 넘어 그들은 심층부에 도착했다.
"이곳인가?"
"더 이상의 계단은 없는 것 같으니 이곳이 맞겠지? 그리고 분위기만 봐도 이곳이라고 말해주고 있지 않아?"
그곳은 거대한 사각의 방이었다. 형형색색이 빛이 모여 무언가의 화면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글세. 저걸 부숴야 되는건가?"
[침입자..]
"역시 그냥 넘어갈것 같지는 않았지만,"
[설마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공손한 하지만 인간적이지 않은 흡사 만들어진 목소리가 장소를 가득 메웠다.
"네가 제노스냐"
[그렇습니다. 저는 '제노스' 이 기계제국의 왕 입니다.]
"왕이라니 자기자신에게 너무 거창한 표현 아냐?"
레니아는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그렇지는 않겠지요. 저는 이미 이곳 라스펠을 거의 장악했습니다. 다음은 당신들이 살고 있는 하계의 세계일 테지요. 저는 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왕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해야 옳지 않을런지요?]
"흥 너까짓것은 그냥 고철덩어리면 충분해."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한거지? 이런 짓을 하는것에 무슨 의미라도 있나?"
[의미는 없습니다. 글세요 굳이 의미를 따지자면 '본능' 이라는것이겠군요. 제 본능이 이렇게 하라고 시키고 있다고 밖에는 말할수 없겠습니다.]
"네게 무슨 본능이 있다는거냐!"
[본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지요? 무엇으로 저를 판단하고 있는겁니까? 저라는게 무엇인지 나도 모르지만 고작해야 인간의 개체 하나인 당신이 저에대해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겁니까?]
"너는 쓰레기다."
[헛소리! 나는 쓰레기가 아냐! 네까짓게 뭘 알고 있다고 지껄이는 거냐! 인간 따위가 뭐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때 나는 하나만을 알수 있었다. '유일한 존재가 되어라.' 그것만이 나의 길이었다. 너희들은 나를 괴물로 보고 있겠지. 그래 이물. 나는 밖에서 온 괴물이라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떻지? 나는 뭐냐. 나는 혼자.. 주위의 모든것은 나에겐 적이다. 배제해야할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제노스의 점잖은 말투는 완전히 사라졌다.
[죽어버려!!]
"시간 끌려던것 아니었나?"
레니아가 묻자 제노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처음에는 그럴까도 생각했지만, 너희들은 그냥 죽어버려라. 내 힘 앞에서 인간따위는 벌레라는것을 보여주마!]
이미 그 웃음소리는 흡사 인간과도 같았다. 처음 있었던 '대화'로 대화 자체가 순간적으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좌측의 공간에서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서 상대했던 기계병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의 기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라 제노스라드 저 어리석은 인간들을 없애버려!]
제노스라드라고 불리운 기계병은 한쪽 팔을 벤하르트에게 겨냥했다. 그 손에서 뻗어 나오는것은 백색의 번개였다.
'백뢰!?'
벤하르트는 가까스로 몸을 굴려 그 공격을 피했지만, 놀란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지속할 틈도 없이 그는 검을 들어 제노스라드의 공격을 막아야만 했다.
'저 거구에 이 속도는 도대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어느샌가 도착한 제노스라드는 오른손의 일격으로 벤하르트를 날려 버렸다. 기로 확실하게 방어를 했음에도 정신이 날아갈정도의 위력과 빠르기였다. 막아도 멀리 퉁겨져 나갈 그런 공격이었다.
"벤!"
"레니아 조심해!"
벤하르트는 공중에서 한바퀴를 돌아 그대로 제노스라드에게로 검을 휘둘렀다. 제노스라드는 벤하르트의 검을 막았지만, 막은 손은 그대로 매끈하게 잘라져 버렸다. 그대로 벤하르트는 오른 다리를 잘라내었는데, 그 순간 그는 배를 꿰뚫렸다.
"으헉."
분명히 잘라낸 제노스라드의 왼쪽팔에서 광선이 그의 배를 뚫은 것이다. 레니아조차 벤하르트가 이겼다고 방심해 그 공격을 수습해 줄 겨를도 없었다. 잘랐던 한쪽 팔은 그대로 다시 붙어 마치 새것처럼 고쳐 졌다.
다시 원상복귀된 제노스라드를 앞에 두고 벤하르트는 검으로 배를 살짝 겨냥했다. 그것은 일전에 사용한적이 있었던 치유의 빛이었다. 본래의 효과는 거의 없었지만, 웬일인지 뚫렸던 배는 삽시간에 나아 버렸다.
[아직까지는 제노스라드보다 네녀석들쪽이 위인 모양이군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수 있을까?]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기계의 음성에 불과했던 제노스의 목소리는 이미 인간과 전혀 다를바가 없을정도로 감정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제노스는 생명이라는게 없었지만, 그것뿐이었다. 굳이 여왕이 그런식으로 표현한 이유를 그들은 그제야 알수 있었다.
"레니아 엄호해줘."
"벤."
"부탁해."
검을 원형으로 한번 회전하고 그는 제노스라드를 응시했다. 일렁이는 백색의 기는 고요하게 하지만 그 고요함이 무섭게 느껴질정도로 강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 작가의말
으음 양이 조금 이거 연참대전 양을 통과한건지 안한건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어쩔수강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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