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44화-엔도픽(3)
상당히 흥분 해서 좋아라 했던 벤하르트와는 다르게 레니아는 사실 벤하르트 만큼 이 마을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마수와 함께 한다는 이런 마을을 만든 것만 해도 엄청난 위업이 아니라 할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모두가 자고 있는 밤. 벤하르트가 자고 있는 것을 확인 하고 그녀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마력을 엷게 둘러 미리 시야를 확보해 조심스럽게 그녀는 발걸음을 놀렸다.
벤하르트는 감각적으로 위험을 알아차릴수 있지만, 그녀는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주의를 해서 미리 위험을 알지 않는한 근처에나 와야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녀는 한발 한발 이동했다.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그녀는 넓은 촌장의 저택의 모퉁이를 돈 곳에서 귀를 기울였다.
'역시.. 이 근처야.'
차가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 보던 차. 그녀는 누군가 나타났다는 것을 깨닫고 재빠르게 몸을 날렸지만,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읏!"
"레니아.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벤. 어떻게 일어난거야?"
"어떻게라니 네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천천히 뒤를 밟은 건데,"
'쓸데 없이 귀신 같은 실력이잖아. 아니 그보다도,'
"뭔가 몸이 힘들다거나 그런건 없었어?"
"아니 그런건 없었는데,"
레니아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아차 하고 혀를 찼다. 그 날 저녁 식사에 그녀는 강력한 수면제를 벤하르트의 식사에 몰래 넣었었기 때문에 벤하르트가 깨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게 있었다. 벤하르트는 그녀의 면역의 약을 이미 한번 먹었던 적이 있었다. 카이후의 독을 몰아낸 그 약은 어지간한 독에는 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면제 정도로는 벤하르트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실수다.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일어났으면 미리 말을 했었어야지. 왜 아무 말도 없이 따라 온거야?"
"아니 살금 살금 이동하길래 어딜 가나 했지."
레니아는 그렇게 주의를 했음에도 벤하르트에게 미행 당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벤하르트는 절대로 이곳에 데리고 올 생각이 없었던 터라 표정변화는 없었지만 그녀는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곳에는 왜 온거야? 화장실은 집 안에 있잖아."
"시덥잖은 농담은 하지 마. 하아.."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낮에 보여준 벤하르트의 순진하다 시피한 그 웃음을 일그러 뜨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따라온 이상 그렇게 자신의 생각대로만 풀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알았는데, 그래서 여기 온 진짜 이유는 뭐야?"
"집중해봐."
"아니 잠깐만 레니아 이리와."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끌어 구석진 곳에 몸을 숨겼다.
"뭐하는거야!"
벤하르트의 품안에 잠겨 레니아는 작은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사람이야."
"아.."
5분쯤 지났을까 한 사람이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방금까지 서 있었던 자리에 와서 무언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뭘 하는거지?"
벤하르트가 순수하게 그 행동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을때 레니아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녀는 웬만하면 벤하르트에게 하려는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저렇게 사람이 오게 되면 벤하르트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벤하르트에게 안겨 약간은 두근 거리는 마음에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곧 남자의 발 밑에 소리와 함께 하나의 입구가 등장했다.
"비밀 통로인가."
남자가 그 비밀 통로로 들어가고 나자 벤하르트는 레니아에게 물었다.
"저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거지?"
"그래. 없다고는 이야기 하지 않겠어. 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할게. 넌 이 일에 참견하지 마."
"어째서?"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네게 해가 되는 일을 하겠어? 사실은 너 몰래 나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단 말야. 네가 이곳에 나타난건 내게 있어서는 최악이란 말이지."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잠자코 방에 돌아가 있어. 누가 확인하러 오면 대답이라도 해주어야 될 것 아냐."
"그래도 난 갈 수 없어."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야."
"저곳은 위험하니까, 이 저택을 휘감고 있는 살기는 저곳에서 나오는 거잖아. 아까 입구를 열었을때 느낄수 있었어. 그런 곳에 너 혼자 보낼수는 없단 말이지."
레니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 상태가 된 벤하르트를 말리는건 보통의 노력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그럼 나도 가지 않을게."
"뭐?"
"가지 않는다고, 내가 위험에 빠지지 않으면 네가 저곳에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 사실 저 안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히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나는 들어가지 않을게. 그러니까 너도 들어갈 생각 하지 마."
"하지만,,"
"왜 그렇게 잔말이 많아. 사실은 보고 싶은거야?"
"뭐 그렇지."
벤하르트는 순순히 시인 했다.
"벤 한가지 말해두겠는데, 궁금한게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좋게 다가올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아. 십중 팔구 너는 안에 있는 것을 보면 기겁하게 될 걸? 아마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그정도까지 말하는건 이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다는 이야기야?"
"그래. 내가 들어가고자 했던 것은 내가 '예상했던 것'이 정말이었는가의 사실을 확인하러 가기 위함이었던 것 뿐이야. 그러니 내 경우에는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상관 없어. 널 들어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여기서는 들어가지 않을거야."
"으음."
보지 말라고 하면 더욱 보고 싶은게 인간의 마음이었다.
"벤. 정 그렇게 보고 싶다면 내 방해를 넘어서 가보시던가."
레니아는 자세를 취했다. 차가운 눈으로 그녀가 벤하르트를 응시하자 주변의 공기가 서늘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진심이야?"
"그래. 싸우고 싶지 않다면 얌전하게 돌아가자고,"
"그렇게 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은게 뭔데 그래?"
"그걸 알려 주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것 아냐."
레니아는 검은색 마력탄을 벤하르트의 발에 날렸다. 땅에 박힌 마력의 구체는 땅 자체를 좀먹고 들어가 점점 구덩이로 바뀌었다. 몸에 맞게 되면 몸 자체가 으스러지게 만드는 공격이라는 것을 벤하르트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진심이야."
"알았어 알았다고, 돌아가면 되잖아. 어째서 그렇게 정색을 하는거야."
벤하르트는 레니아와 정색을 하고 싸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뭐였던 걸까.'
그는 하루 종일 레니아가 그런 식으로까지 막으려 했던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레니아가 그정도까지 말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이유일리가 없었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짐작가는 것은 한가지 정도 밖에 없었다.
"나 때문 이겠지."
스스로에게 과잉적인 사고를 하는것이 아니라 벤하르트는 정말 그럴것이라고 확신했다. 애초에 레니아 본인은 그곳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자신은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했다는 것은 레니아 자신은 용인되어도 자신은 넘길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보고 후회를 하게 될 무언가 인가. 후회라고 한다면,'
"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어?"
"어? 아니 뭐."
"하아. 어제 일은 그냥 잊는게 좋아. 나를 위해서나 너를 위해서나 그게 낫다니까, 내 말을 들어서 후회한적은 그렇게 많지 않잖아."
"그렇기야 하지만 말이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호기심이라는 감정은 점점 증폭 되어만 갔다. 머리로는 레니아의 말대로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그는 그 통로의 문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레니아는 벤하르트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그가 이미 거의 예상을 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벤하르트는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상을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영리한 축에 속할 정도였다. 최근들어 레니아에게 생각하는 것을 떠넘겼기에 상대적으로 어리숙하게 보이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남을 의심하는 것과 그것으로 추론을 해 나갈수 있는 머리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어제 너무 실마리를 많이 줘버렸나.'
그정도의 증거가 있다면 필시 벤하르트라면 생각끝에 도달하게 될 것이 틀림 없었다.
"으음."
신음소리를 내면서 괴로운 표정을 지어 보인채 생각하며 벤하르트는 몸을 뒹굴 굴렀다.
'아직은 아닌가?'
하루가 지나고 벤하르트는 레니아가 자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레니아는 내가 그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테니까, 자고 있지 않겠지. 일단은 조금 더 밤이 깊을때 까지 기다려야 겠다.'
까딱 하면 그냥 잠들어 버릴수도 있을 것만 같은 밤이 되어 벤하르트는 유령처럼 아무 소리 없이 일어났다.
'일단 확인이나 해볼까.'
그는 레니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살짝 정신이 멍해졌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뭘로 알아볼까.'
일단 그는 수도로 그녀의 눈 바로 근처까지 휘둘러 보았다.
'이건 참 실례가 되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자는 사람이라는 것은 굉장히 무방비한거구나.'
새근새근 거리면서 자는 레니아의 모습을 보자 그는 마음이 확 여려 졌다.
'이렇게 움직여도 모를 정도면 역시 자고 있는 거겠지?'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그는 피하듯 방을 나섰다. 벤하르트는 사실 레니아가 자지 않을 것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자리에 차마 계속 있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약간은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는 주변을 둘렀다.
'좋아 일단 아무도 없고,'
벤하르트의 기술(氣術)은 레니아와는 비교를 할수 없는 경지였기 때문에 레니아와는 다르게 빠르게 위치를 파악할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어제의 그 장소로 향했다.
"이 근처였는데,"
그는 어제의 남자가 행동했던 곳을 뒤적이며 조사하다가 번개같이 몸을 숨겼다.
'근처였는데,'
"숨을것 없어 벤. 나니까 말야."
"레니아.."
"너란 녀석은.."
레니아는 벤하르트에게 날라차기를 하면서 말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결국은 이렇게 왔다 이거지?"
"미안해. 나도 네 말대로 안보는게 좋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할게. 궁금한 상태로 지나가고 싶지는 않아. 보아서 후회하게 된다고 했지만, 보지 않아도 후회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 어차피 후회한다면 보고나서 결정하고 싶어."
"이 꼴통아!"
레니아는 손을 들었지만, 금새 내리고 말했다.
"정말 고집불통이야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에 남생각은 전혀 안하고,"
"레니아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뭐라고?"
레니아는 찌릿 하고 벤하르트를 노려보았다.
"아니 그러니까,"
"말리지 마. 지금 마음 같아서는 정색 하고 싸워서라도 너를 말리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나중에라도 올녀석이니까 그럴 바에는 내가 있을때 보게 하는게 낫겠지."
"그러면,,"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보라고, 소중한 교훈이 되지 않겠어?"
레니아는 능숙하게 장치를 찾아서 비밀 통로를 열었다.
"언제 한번 와봤어?"
"그럴리가, 하루 종일 붙어있었잖아. 어제 그녀석이 했던 것을 봐뒀을 뿐이야."
"대단하구만,"
"그런 칭찬은 하나도 안기쁘다구."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살기를 피부로 느끼며 둘은 비밀 통로의 지하로 내려갔다.
- 작가의말
심생 종기님은 정말 무서운 속도로 댓글을 달아주시네요. 어제는 보고 깜짝 놀라며 감사했습니다.
요즘은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아서 약간 마음이 가라 앉고 있기에 하나라도 참 단비같이 느껴집니다. 구름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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