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62화(620화)-
벤하르트는 지쳤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움직임으로 아젤의 사각을 노리고 공격했다. 아젤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빛이 벤하르트를 엄습했다.
'몸이..'
그 빛을 스쳤을 뿐인데도 벤하르트는 몸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아젤은 그런 벤하르트를 신경쓰지 않은채 바로 에실러가 있는 쪽으로 마법을 날렸다. 벤하르트는 순간 반응을 하지 못했지만, 마법이 쇄도하는 곳에는 검은 구멍이 생겼다.
"음?"
검은 구멍은 아젤의 마법을 삼켰는데, 그와 동시에 아젤의 근처에서 검은 구멍이 등장해 그 구멍을 통해 아젤의 마법이 아젤에게로 향하게 했다. 아젤은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을 없애고 옅은 미소를 띄우며 이니프를 바라보았다.
"호오.."
'설마 했는데, 진짜 였나. 생각지도 못했던 수확이로군.'
벤하르트는 아젤의 빈틈을 보고 그대로 검을 들고 아젤에게 돌진했다. 아젤은 마법을 사용할 틈도 없이 벤하르트의 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몇합을 겨루던 그는 지팡이를 휘둘러 자신의 몸을 숨겼다.
벤하르트는 그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대로 검을 들어 허공에 내리 찍었다.
"크읏.. 무슨."
공간을 통째로 베어 버리는 벤하르트의 검을 예상치 못했던 아젤은 어깨에 상처를 입고 물러섰다.
"....."
아젤에게 지금까지의 여유는 사라져 있었다.
"확실히 미네이너를 제압했을 정도의 실력자.. 내 실력으로는 조금 부족한가."
"알았다면 이 공간을 없애."
"그럴수는 없지. 저 원의 흡혈귀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그 말을 듣고 물러 설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야. 지금 완성된 이 힘을 버리기에는 너무 일이 커져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힘으로라도 부술뿐이다."
아젤은 지팡이를 들고 벤하르트에게 겨누었다. 벤하르트는 순간 몸이 무거워 짐을 느꼈다.
'이건..'
그것은 분명히 제네스의 기술이었다. 상대를 조율해 힘을 억제하는 조율의 기술. 하지만 그 위력은 제네스가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벤하르트는 그 주박을 받은 채로 아젤을 향해 돌격했다.
벤하르트의 검을 아젤은 지팡이를 들어 한 손으로 막아내었다. 자신이 약화 된 것 뿐만아니라, 아젤은 분명히 강해져 있었다.
'트레이야나 내.. 자기최면... 인가?'
아젤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검은 구체가 생겨났다. 아젤이 신호하자 벤하르트에게 검은 구체는 쇄도했다.
"벤!"
"오지마! 리스 괜찮아."
"사양해도 괜찮은건가?"
검은구체를 벤하르트는 종이 한장 차이로 피했다. 검은구체가 닿은 곳은 폭발과 함께 '소멸되었다.' 스치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마법이었지만, 그 속도는 에실러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렸다.
벤하르트는 유려의 움직임으로 하나하나 구체를 피해가며 아젤에게 접근했다.
'아젤은 싸우는데 계략을 부리는 자이다. 지금 이 공격도 다음의 공격도 그 뒤를 위한 포석이겠지.'
아젤은 그대로 벤하르트에게 돌격해 접근전을 맞붙었다. 아젤의 지팡이는 마법을 증폭시키는 도구였지만, 길이가 거의 창에 필적해 있었기 때문에 무기로 사용해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벤하르트는 지팡이와 몇번 더 부딪히고 나서야 그 지팡이가 연철장의 기술로 만들어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젤의 암시에 의해 벤하르트와 아젤의 능력의 차이는 아젤이 분명히 위였으나, 아젤은 쉽게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다. 도리어 그정도의 우위가 없었다면, 벤하르트에게 당해도 진작에 당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아젤은 초조했다. 그의 암시는 아직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 아젤의 초조함을 벤하르트가 놓칠리 없었다.
벤하르트의 예리한 섬격은 아젤을 놓치지 않았다. 아젤은 벤하르트의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마법을 사용해 순간이동 하여 벤하르트와 거리를 벌렸다.
"설마 주박을 걸어도 이정도로 실력의 차이가 날 줄이야.."
벤하르트는 아젤에게 대꾸도 하지 않은채 그대로 검기를 날리며 돌진했다. 아젤은 검은 구체를 소환해 낸 후에 벤하르트를 노골적으로 회피했다.
"도망만 쳐서는 이 공간을 지킬 수 없을텐데,"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지."
아젤은 지팡이를 치켜 들었다. 순간 벤하르트는 속이 울렁 거리는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어억.. 뭐.."
"드디어 발작했나? 벤하르트 너같은 고수는 제대로 제압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뭐 차근차근 망자로 만들어 줄테니까, 기대하라고,"
"망자.. 라고?"
"이곳에 들어 오기 전에 한번 상처를 입었지? 너희들이 '망자'라고 부르는 존재한테 말야."
이니프는 아젤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벤하르트가 만지고 있는 자신의 상처를 보고 벤하르트가 밀리는 이유가 자신을 지키려다가 생긴 상처때문임을 알았다.
"망자에게 상처를 입으면 망자가 된다. 그건 너한테도 예외는 아니야 벤하르트 하르크."
"그래 그런가.. 그래서 그렇게 시간을 끌었던 것이로군."
"알고 있었나?"
"너는 집요하게 이니프와 에실러를 노렸지만, 사실 목적은 이니프와 에실러가 아니었지. 목적이라고 한다면, 나를 최대한 지키게 혹은 시간을 벌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을 뿐이지.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니프와 에실러를 노리려 든다면, 어째서 내가 리스를 구하러 들어갔을때 노리지 않았을까 하고, 이유는 간단하게, 이니프와 에실러를 미끼로 삼아야만 최상층으로 향하는 나를 억제하기 편리하기 때문이지."
"정답.. 미네이너를 이긴 시점에서 내가 너를 당해낼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지만, 이미 들어둔 보험이 있으니까, 사실상 이쪽이 배는 유리한 게임이었다는 이야기지."
"과연.."
"벤!"
"리스 도망쳐.."
"도망치게 놔둘 것 같아? 그래 벤하르트 네가 저 원의 흡혈귀를 잡는 것도 재밌겟는걸? 이제 나의 꼭두각시가 될 테니까 말야."
아젤은 웃으면서 벤하르트를 향해 지팡이를 겨냥했다. 벤하르트는 고개를 숙이고 검을 들고 일어섰다.
"완벽하게 독이 전신을 뒤덮은 모양이군."
"너!!"
리스는 손톱을 세우고 금방이라도 아젤에게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의 흡혈귀 나를 그렇게 볼 틈이 있을까? 네가 좋아하는 벤하르트가 검을 들이 밀고 있다고?"
벤하르트는 검을 들고 아젤에게 향하려고 하는 리스를 막아 선 뒤 리스를 향해 한발 내딛는가 싶더니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젤이 벤하르트에게서 눈을 뗀 그 짧은 한 순간 벤하르트의 참격이 아젤을 베고 지나갔다.
"크헉.. 뭐!?"
"일섬.. 수."
그 뒤를 연이어 벤하르트는 아젤의 몸의 오체에 각각의 상처를 새겨 넣었다.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상처를 새겨 놓은 후에 그는 검을 집어넣었다.
"뭐 뭐.. 어떻게."
"미안하지만, 내게 '독'은 통하지 않아. 네 '명령'은 들어 왔지만, 독은 보시다시피다.."
벤하르트의 팔에 난 상처에는 검붉은 피가 맺혀 있었다.
'또 신세를 져버렸구나. 레니아.'
"자 이제 이곳을 없애 주실까?"
"크윽.. 성좌 후보인 내가.. 이런 곳에서,"
자신의 양팔과 다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아젤은 목숨은 부지 하고 있었지만, 일어서는 것 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이제 네게 승산은 없어."
"이야.. 고생 하고 있잖냐.. 아젤.."
"!?"
벤하르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검을 들었다. 아젤의 주변에 검은 기운이 감도는가 싶더니 한사람이 모습을 나타냈다.
"읏.. 카이후!?"
"이거야... 오랜만이잖냐.. 벤하르트 하르크.."
카이후에 그치지 않고 푸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또 다시 한 사람이 나타났다. 건장한 체구를 가진 남자였는데, 벤하르트는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또 한사람의 소녀가 나타났다. 레니아가 봉인 당하던 날 왔었던 대행자중 하나 였던 소녀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한사람이 나타남으로써 도합 넷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등장했다.
"대행자.."
"늦지는 않은 모양이지? 도련님?"
빈정거리는 카이후의 말에 아젤은 눈을 내리 깔았다.
"자 그럼 그때의 빚을 갚도록 해 볼까? 벤하르트 하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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