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53화(609화)-마굴(13)
벤하르트와 구도우는 다시 은거지로 돌아왔다.
"그래 어땠어? 가는 길은 괜찮을 것 같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점은 없을 것 같아."
"전력의 문제는 어때? 아마 '중심'을 지키고 있는 망자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할텐데,"
이니프는 흘끗 벤하르트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든 해봐야지. 그래서 말인데, 돌입은 이틀후에 하기로 결정했다."
"이틀 후?"
"이쪽도 조금 준비를 해둬야 할 게 있거든."
"우리가 뭔가 지원을 해줄 일은 있어?"
벤하르트는 주변을 메우고 있는 이들을 쭉 돌아보고는 말했다.
"아니 됐어. 나머지는 이쪽이 알아서 해보도록 하지. 여기서부터는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까, 구도우씨의 도움 정도면 충분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네가 그렇다면야 이쪽이야 상관 없기는 하지만,"
"아 그리고 망자들의 약점은 '어둠'이야. 구도우씨가 나중에 말해주겠지만, 그것들은 어둠에 있게 되면 살이 전부 타서 사라져 버리게 돼."
"망자가 어둠에 약하다라..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아냐?"
"글세. 어둠에 약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약점이라는 것은 확실하겠지. 그 점은 참고해둬."
벤하르트는 그 말을 끝으로 에실러가 머무는 방을 나섰다. 벤하르트가 나간 것을 확인한 후 에실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죽어달라고 하면 죽어 줄 수 있을까?"
"그것이 필요하다면야.."
"후우.. 어찌해야 좋을까?"
"오옷. 벤하르트씨 돌아오셨네요."
이니프는 환하게 웃으며 벤하르트를 맞이했다. 언제봐도 형식적인 미소였지만,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매혹될 법한 밝은 웃음이었다.
"그래."
"나가셔서 일은 잘 풀리셨어요?"
"뭐 대충 어떻게 해야할지 감은 잡고 왔지."
"그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데요?"
이니프의 물음에 벤하르트는 솔직하게 거짓 없이 말했다.
"이틀 후 지하도를 따라 '중심'의 근처에 도달해서 강제로 돌파할거야."
"흐음 괜찮으시겠어요?"
"괜찮고 말고 선택지가 있는 문제가 아니야. '하는 수 밖에' 없는 문제지."
"과연.."
"행여나 따라올 생각은 하지 마라."
벤하르트의 말에 이니프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어째서요?"
"나는 말야 내 몸 하나를 지키는 것에도 벅차. 너까지 지키면서 강행돌파를 할 자신은 없어."
"지켜달라고는 한마디도 안했는데요?"
"그래도 지킬수 밖에 없잖아."
"어째서?"
이니프는 진심으로 벤하르트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는 투명한 눈으로 벤하르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표정에 실실 거리면서 미소짓는 평소의 모습은 없었다. 차갑고도 차가운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어째서고 자시고, 그럴수 밖에 없는 걸 어찌하라는 거냐. 아는 사람이 죽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정도로 나는 냉혈한이 아니라고,"
"하지만 벤하르트씨는 저를 싫어하시잖아요?"
"좋아하지 않을뿐이야. 딱히 싫어하지는 않아."
"그렇다면 '아는 사람'이라는 거네요. 보통은 지키지 않는다구요?"
"보통은 지켜. 아는 사람이 죽는 것을 구경만 하는 사람은 없다고, 왜 그렇게 성격이 뒤틀려 있는거냐?"
"후후.. 벤하르트씨는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이니프는 명백하게 비웃음을 담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뭘 모른다는거지?"
"보통은 지킨다구요? 지킬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전이 보장 되었을때, 동정을 섞어 지켜주는 것 정도에 불과해요. 곧 자신이 죽을진대 타인을 구하려고 생각하는 사람 따위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죠. 그때에는 방치라는 아주 편한 길도 존재하고 또 '어쩔수 없었다'라는 변명 또한 할 수 있으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야. 너무 그런 식으로 답을 정해놓고 사는건 썩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래저래 말야."
"그러면 증명해주실래요? 벤하르트씨의 말이 맞는지 아니면 틀린지.."
"증명이고 뭐고 방법도 없잖아?"
"방법은 간단해요. 제가 따라가 보면 되지 않겠어요?"
"지금까지 뭘 들은거냐. 따라가면 위험하다고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거잖아."
"네. '위험하기에' 따라갈 가치가 있는 것이겠죠. 벤하르트씨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제 위험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일테니까요. 별로 저는 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벤하르트는 손바닥을 들어 이니프에게 들었다가 한숨을 내쉬며 그만두었다.
"넌 참 답답한 요정이구나.. 하기사 나도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듣곤 했었지."
그는 쓸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니프는 벤하르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의 과거가 궁금했지만, 따로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벤하르트가 지독하게 한심할 정도로 타인에 약해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니프는 지독하게도 자신을 아끼지 않고, 타인에게 무정한 점이 벤하르트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쪽이 옳다고 누가 정의할 수 있으랴.
어찌보면 둘은 상극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지 않지만, 그 근본은 명백하게 뒤틀려 있었다. 벤하르트는 상대방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는 것이고, 이니프는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서 자신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가치관의 차이는 어찌해도 그 벽을 허물기가 어렵다는 것을 벤하르트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네 멋대로 하도록 해."
"네 죄송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제 목숨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원망또한 하지 않겠어요."
"너란 녀석은 끝까지 밉상이구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중심'인지 어딘지에 갔다 오셨다면서요?"
"네 뭐."
스팅은 무언가를 열심히 만지고 있었다.
"K때만 해도 뭔가 미숙한 점이 느껴지곤 했었는데, 지금은 조금도 빈틈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그렇고 벤하르트씨 재밌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재밌는 것?"
스팅은 안에서 작은 네모난 물건을 가지고 와서 탁자위에 올려 두었다.
"어디 보자.. 아 여기에 있구만,"
그는 화면을 뛰우고 그 물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여깄군요."
"뭘 하시는 건지.."
"자 보기나 하십시오."
갑자기 화면이 바뀌면서 한 남자가 벤하르트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들고 벤하르트를 겨냥했다.
'읏 저건!'
총이라는 무기라는 것을 알고 벤하르트는 움찔 했지만, 스팅이 너무도 태연하게 앉아 있었기에 그는 본능 적으로 손이 올라가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화면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건.."
"아마 이 문명에서의 문화활동이었을 겁니다. 우리 세계에서는 연극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이미 이런 매체들도 가능했던 모양이지요. 놀랍지 않습니까?"
"확실히 놀랍군요."
스팅은 미소를 짓고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벤하르트씨 저희는 여기를 나갈 수 있겠지요?"
"글세요."
"저는 말입니다. 이곳에 온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전에도 말했듯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꼭 이곳을 나가고 싶습니다. 여기서 익히고 터득하고 습득한 지식들을 제가 사는 곳에 전파하고 싶습니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명을 우리 세계에도 전파하고 싶습니다."
"훌륭하시군요."
스팅은 십자 막대를 한손으로 능숙하게 돌리고는 말했다.
"뭐 나가야 가능한 일이지만요."
"꼭 그렇게 되실수 있을 겁니다. 제가 아니어도 청부자도 있으니 말이죠."
"그것 가져가고 싶다면 가져가도 좋습니다. 언어는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영상만으로도 어느정도 느껴지는게 있을 겁니다. 저나 레랄드도 꽤 재밌게 보았거든요. 추천하는 것은 이쪽정도로.. 트는 방법은 이렇게.."
"아.. 음.. 감사합니다."
"전력은 충분할 겁니다."
벤하르트는 열성적으로 방법을 가르쳐주는 스팅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마치 떠넘기듯 네모난 물건을 가지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 작가의말
원래는 이 뒷부분까지 쓰려고 했습니다만,
오늘 아는 형님을 만나 술을 먹게 되어 20분부터 부랴부랴 썼기에 어쩔수 없이 끊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10시쯤에 끝날줄 알았어니 11시가 되어서도 안끝나서 깜짝 놀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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