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13화-이물(異物)(7)
제노스를 없애는 방법은 시기를 놓치게 되면 극단적으로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 성장하기 전에 제거하거나, 혹은 성장을 하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이상적 이었다. 이미 이정도로 성장해 버린 이상, '실상' 벤하르트 일행이 제노스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 없었고, 그것은 곧 제노스의 자신감을 대변했다.
제노스를 없애기 위해서는 제노스의 이 거성을 통째로 없애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할 수 있었다. 상대가 벤하르트만 아니었다고 한다면, 누가 상대든지 필시 승리는 제노스의 것이었을 것이다.
벤하르트의 검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를 노리는거냐!]
제노스는 그가 자포자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검에 힘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의 움직임은 흡사 춤을 추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찌 알 수 있었으랴. 제노스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기계이고, 기계이면서 '병기'인 이상 벤하르트의 눈을 피할수는 없다는 것을..
금방 제노스는 자신의 몸의 이변을 알아 차릴수 있었다.
[정보가.. 뭐 뭐지..]
한창 레니아와 격전을 펼치던 제노스라드는 서서히 붕괴해 무너져 내려갔다.
"벤!"
[어 어째서..]
제노스는 벤하르트가 허공을 질렀다고 생각한 부근을 다시 확인했다. 아주 작게 제노스의 입장에서는 마치 긁힌것만 같은 작은 상처가 벽에 남겨져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인간의 당혹스러움을 여실히 머금고 있었다.
[그곳.. 내 약점조차.. 아니었는데,,]
벤하르트의 검이 가른 곳은 제노스의 본체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제노스는 자신의 본체만 숨긴다면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이 성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이라면, 모든 것은 자신의 약점이 될수 있다는 것도 그는 알았어야만 했다. 벤하르트가 가른 '참도'는 '제노스'본인마저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약점을 베어 넘긴 것이다.
[아아.. 아아아아!!!]
그동안 모아왔던 자신을 증명하는 지식 정보들이 사라져갔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스스로가 사라져 간다는 것을 느꼈다.
[사라져.. 사라져가..]
고독이 싫었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유일. 고독했다. 어째서 만들어졌는지, 수만번을 되뇌이고 그 배 이상으로 염원했다. 세계가 자신을 거부한다면, 자신이 그 주인이 되리라고, 하지만 지금 그의 소망은 산산히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이럴거면, 나는 어째서 태어난 것이지..? 어차피 이럴것이라면, 어차피 동화되지 못할거라면, 어.. 째서..]
생각을 생각으로 보존하지 못했다. 모든 생각하는 사항이 그대로 입 밖으로 전해진다.
"나는 너를 인정한다."
[뭐..]
이미 제노스의 머리에는 대다수의 정보가 소각되어 가고 있었다. 그 마지막 남은 촛불처럼 타오르는 정보의 한켠에는 벤하르트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너는 인간인 내 입장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을 해왔다. 그건 용서하지 않아. 하지만 그 행동이 네 자신에게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겠다."
제노스는 거울이다. 한쪽은 기계 한쪽은 인간. 서로 양립될 수 없는 존재였을까? 아니, 아마도 서로간에 너무 닮았기에 생겨날 수 있는 균열이 너무도 거대했기에 생겨난 운명이었을 것이다. 한쪽은 살아있고 한쪽은 죽어있다. 양쪽은 개체로서 살아온 개념과 논리가 다르다. 하지만 그 근간은 아마도 같다고 벤하르트는 생각했다.
벤하르트는 분노했다. 제노스가 사람을 죽인 것에 분노를 했지만, 막연한 화가 아니었다. 무언가 답답한 분노 그것은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던 인간의 뒷면을 제노스로부터 보았기 때문이었다. 제노스는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인간은 용납할수 있는것일까?
그는 그저 스스로에게는 면죄를, 상대에게는 죄를 부여하는 자신에게 화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그는 제노스를 인정했다. 세상은 무어라 해도 큰 틀은 약육강식으로 돌아갈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에게 느끼는 '잔혹함'은 과연 정말 잔혹한 것인가? 제노스가 느끼는 이론과 벤하르트가 느끼는 이론은 완벽하게 다르지만 그 근본은 같았기에, 결국은 살아남은 사람이 '정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양쪽 모두가 스스로에게는 정의이며 틀리지 않더라도 결국은 살아남은 쪽이 정의로서 나아가는것은 모순이면서 진리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전부 너를 잊더라도 나는 잊지 않겠다. 제노스라고 불리웠던 어느 '이물(異物)이라고 불리웠던 동류(同類)가 있었다고 나만은 기억하겠다."
[하... 하하.... 재..미... 있군.]
말로서 서로간에 마주앉아 설명하지 않더라도 단번에 이해할수 있다는게 있다면 아마도 그런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제노스는 이미 언어의 계층마저도 붕괴될 정도로 정보가 거의 소실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벤하르트가 말하는 그리고 말하지 않았던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좋.. 다. 그..렇다면, 패..자는 물..러 나도록 하..지.]
끊어지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어째서 '즐거움'인지 제노스는 알지 못했다. 이론적으로 몰라도 상관 없었다. 왜 기계인 자신이 그런 것을 느끼는지 모른다고 해도 상관 없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이 키워 두었던 모든 병기들을 소멸시켜 압축 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명..령..]
모든 명령을 끝마치고 스스로의 성마저도 그 명령에 따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붕괴한다면 자신이라는 존재는 남겨봐야 의미가 없다. 살아남아 이 세계를 제패하지 못했다면, 자신이라는 존재를 남길 필요는 없었다. 추잡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발악을 하는 모습을 자신을 인정한 '인간'에게 보일수는 없었다.
[가라.. 이곳은... 곧 붕괴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단어를 필사적으로 짜맞추어 그는 그렇게 말했다.
"벤!"
한번도 벤하르트는 제노스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지만, 그 순간 어째서인지 제노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타협할줄 모르는 고지식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그는 자리를 뒤로 했다.
[벤...하르트.. 이..상..한..인....간..]
이물의 성주는 그렇게 서서히 붕괴했다.
"하아 하아.."
소년 병기들과 어우러진지도 한참 트레이야와 제네스도 슬슬 위험성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오체 중 하나가 바로 잘려 나갈 정도로 강맹하고 예리하고 정확한 공격들이 연신 쇄도했다.
이미 자신들의 실력정도까지 성장해버린 무심한 병기들의 공격을 트레이야와 제네스는 서로간의 협력을 통해 겨우 목숨을 부지해나가고 있었다.
병기의 검이 제네스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제네스!"
"걱정 마라. 이쪽이니까,"
베인것은 벤하르트가 베어낸 팔쪽이었다.
'어쨋든 위험한것은 사실이다.'
몇분이나 더 버틸수 있을까 걱정을 하고 있을때 하나 둘씩 꼭두각시 인형의 줄이 풀어진 것처럼 기계는 무너져 내렸다.
"제네스! 벤이 해냈어."
"후우 늦어.."
"어? 그 말투 왠지 벤을 믿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아니. 그게 아니지. 이녀석들은 원래 성장하는 녀석들이니까,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더 빨리 해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그런 식의 말이다."
되도 않는 변명을 하면서 그는 불쾌하게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곧 계단을 오르는 소리와 함께 벤하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달려!"
"벤 무슨 일이야?"
"이곳이 곧 붕괴 된다고 하는데, 서둘러!"
벤하르트의 뒤에서 쩍쩍 거리는 금이 마치 그들을 쫓아 오는 듯 거미줄처럼 따라 붙고 있었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꽤 멋져 보일수도 있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절망의 손아귀와 같아서 그들은 더 말을 주고 받을 필요도 없이 전력을 다해 그곳을 빠져 나왔다.
자고왕과 그 부하 그리고 다른 구해놓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그들은 제노스의 은거지를 빠져 나왔다.
외부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은백색으로 칠해져 있던 차가운 기계의 도시는 하나 둘씩 접혀 서로간에 모여 한 덩어리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 라스펠의 전역을 덮었던 기계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도금을 벗겨 내고 있었다. 그 기계들은 살아있는것처럼 뷩기르에 마을로 모여들고 있었다.
"뭐지. 하나로 모여서 부활하는 건가?"
자고왕은 경각심을 가지고 말했지만 벤하르트는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물러.'
제네스는 벤하르트의 모습을 보고 그 기계와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같이 서 있다고는 하나 사실상 벤하르트에게 있어서나 스스로에게 있어 서로는 원수 사이였다.
'믿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제네스도 사실 지금의 상황은 벤하르트를 믿고 있었다. 아마 저 모이는 증상은 십중 팔구 '부활'은 아닐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벤하르트는 좋은 의미로든 안좋은 의미로든 너무 속이 무르다고 생각한다.
착한 행동을 하려고 하는 트레이야 조차도 칼을 뽑을 때는 확실하게 뽑는다. 레니아도 그가 보기에는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한다. 하지만 벤하르트에게는 그게 부족했다.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는만큼, 언제까지고 그것이 장점으로만 작용된다는 보장은 절대로 없었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은백색의 기계는 한점으로 집중 되었다. 그 천공의 도시를 뒤덮었던 기계의 도금들은 거짓말처럼 벗겨지고 아름다운 이전 라스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
자고와 마누어 그리츠외 라스펠의 사람들은 모두 환호하면서 기뻐했다. 그 순간만큼은 지난 날의 지옥같은 일들이 싹 잊혀질만큼 그들은 행복했다.
"이곳이 본래의 라스펠이구나. 정말 아름답다."
트레이야나 레니아 제네스 마저도 주변을 보면서 감탄을 내뱉었다. 벤하르트는 주변보다 먼저 눈에 띄는게 있었다.
"....."
하나의 작은 은백색 돌. 제노스의 시작이었을 그 돌을 벤하르트는 손가락으로 퉁겨 한손으로 잡아 그 돌을 보고 말했다.
"잘 가라."
- 작가의말
이번 연참대전에는 여기까지 올라왔군요. 꽤 뿌듯 합니다. 하나 하나 생각했던것을 써내려 나갈수 있다는것은 참 행복한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더 많이 돌아서 여기까지 온것이지만요 ^^;;
사실 여기까지 오는데 300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300화를 보니.. 음.. 후회는 없지만, 택도 없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돌아와서 더 즐거운것 같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저는 오늘도 또 밤새 레포트를.. ㅠㅠ;;
요즘 기가 허하군요...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