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39화-
상당히 오랜만에 와보는 도시의 분위기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대륙이 나타났었기 때문이었다. 전설으로만 전해지던 이야기는 다시 들끓어 올라 모든 도시의 사람들의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그들의 틈에서 괜시리 우쭐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한껏 들떠 있는 도시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그들은 나름대로 즐거웠지만, 부르달 도시에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다음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벤하르트는 다른 도시에 대한 정보를 수습하고자 거리를 돌았다.
"그러니까, 그 대륙으로 가겠다는 녀석들이 늘고 있더군."
"정말인가? 하지만 그 대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마의 숲이 있지않나."
"이곳에는 크래치때문에 많은 실력자들이 모여 있으니 말이지. 너도 나도 전설에 편승하려 하는 모양이더군."
라스펠의 소문은 시도때도 없이 들려 왔다.
'그나저나 크래치가 라스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면 골치아픈데,'
크래치가 라스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자연히 그 아래에서 부족을 이루고 있는 퀘이소의 무리도 위험에 처하게 될것이 틀림 없었다. 더 부르달 도시와 관여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퀘이소가 걸린 일이었기에 그는 잡담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어엇? 아이구 깜작이야! 뭔가 자네는."
두명의 남자중 한명이 놀라 물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까 꽤나 깐깐하게 생긴 남자였다. 벤하르트는 남자가 크래치에 대해서 경어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기억해내고 물었다.
"아 방금 크래치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크래치가 라스펠에 관심을 가진답디까?"
"에이 자네 여기 온지 얼마 안되었나? 크래치는 지금 상당히 재산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네."
벤하르트는 깜짝 놀라 물었다.
"재산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니,"
"지난번에 있었던 마수 도난 사건이후 크래치는 고용했던 용병들에게 상당히 구박을 많이 준 모양이네. 용병이란 것들은 돈을 받으면 여러가지로 일처리를 잘 하지만, 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종잡을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거든. 지금까지는 당근과 채찍이 절묘했지만, 그 도난 이후로 크래치는 그들을 적당히 조율해내지 못하게 되었지."
"그렇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강경파들은 상당히 많았는데, 크래치는 마수를 잡기 위해 끌어 들였던 용병들에 의해 도리어 피해를 받게 된걸세. 강경파들의 수가 워낙 많아서 직속과 다급하게 고용한 용병들과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결국 강경파쪽이 승리를 가져가게 되었고, 크래치의 재산을 강탈 당한 모양이더군. 그래봐야 빙산의 일각이라고 아직도 수없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거의 거지 신세로 지내야 할 것 같다는 소문일세."
"그럼 그 용병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미 자취를 감췄지. 몇몇은 유명했던 용병들에 이미 얼굴이 팔려 현상수배가 달리게 되었는데 그 현상수배는 듣기로 아마 자신들이 훔쳐간 돈보다 더한 금액이 목에 걸렸다던 모양이더군. 고거 참 웃긴 노릇이지. 용병이란 것들은 시끄럽고 투박스럽기 짝이 없는데다가 제멋대로라 싫었는데, 그렇게라도 반수가 넘게 사라져 버리니 속은 시원하더군."
도시 시민은 끌끌 거리면서 통쾌한듯이 웃었다.
"그런데 자네는 그런건 왜 묻는 건가?"
"크래치라는 사람이 워낙에 부자라길래 소문을 듣고 이 도시에 찾아온 것이었기에, 한번 찾아가 보려다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듣고 소문이나 들어볼까 했습니다만,"
"보아하니 자네도 용병인것 같은데 으음. 조금 순하게 생겨서 내 한마디 하겠는데, 괜찮겠나?"
갑작스러운 중년 남자의 말에 벤하르트는 약간 당황해 하며 대답했다.
"음? 아.. 네."
"그 허리에 찬 검으로 나를 베는건 아니겠지?"
"안 그럽니다."
"그래 그래. 자네도 용병이라면 말이지. 남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 원래 싸우는 사람들은 그렇게 다혈질인건가?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질 않나.."
남자는 궁시렁 궁시렁 불평을 늘여 놓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쌓인게 많았는지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했다. 정말 주책스럽다고 느꼈지만, 남자는 그런 것을 알지도 못하는지 신나서 속사포처럼 벤하르트에게 불만을 퍼부어 냈다.
"그러니까,"
"아 저기 더 들어 드리고 싶지만 제가 볼일이 있어서,"
"아 그런가?"
참다 못한 그의 친구가 옆에서 벤하르트의 말을 거들었다.
"그래 자네 정말 주책이었다고, 하여간 그런 불평은 내 앞에서나 할 것이지.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 놓고 뭘 하는 짓인가."
벤하르트는 그 친구분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냥 갈까 하다가 노파심에 그들을 잡고 이야기 했다.
"저도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용병이 아니고, 진짜 용병에 다혈질 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앞으로는 말조심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야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흠 흠.. 알겠네."
"그럼 저는 이만, 실례 하겠습니다."
"잘가게."
벤하르트는 진땀을 닦아 내고 뒷 골목으로 향했다.
"일단은 이쪽으로 가볼까."
벤하르트가 찾은 곳은 일전에도 들렸던 술집이었다. 문을 열고 지나가려는데 건장한 체격의 사내와 몸을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이쪽이야 말로,, 어? 너는?"
사내는 벤하르트를 보고 꽤나 놀란 눈을 했지만, 벤하르트는 그가 누군지 영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저번에 라스펠에 대해 물었던 그 사람이군."
"어.. 음.. 엇!"
그제야 벤하르트는 희미하게 남아있던 윤곽으로 그가 일전에 자신에게 절규했던 그 남자였음을 알수 있었다. 그때는 살이 쪄서 완전히 폐인 같은 상태였는데, 지금의 모습은 그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떡 벌어진 체격과 근육은 위압적이었고, 퉁퉁 불어 있었던 것만 같은 살은 어디로 갔느니 보이지 않았다. 외모도 상당히 훤칠하고 잘 생겨서 동일 인물이 맞나 착각이 될 정도였다.
"오랜만입니다."
"아.. 그때는 술을 얻어 먹었었지. 이번에는 이쪽에서 쏘도록 할까. 한잔 하겠나?"
남자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권유했다.
"그러죠."
라스펠에 대해서 그토록이나 갈구했던 사내에 대해 조금 신경이 쓰였던 터라 벤하르트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 요사이 소문은 들리고 있었지?"
"라스펠에 대한 소문 말입니까?"
"그래. 자네도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겠지? 이런 곳까지 온것을 보면 그때처럼 정보를 원해서 온 것 아닌가?"
벤하르트는 슬쩍 웃어 제꼈다.
"그런데 라스펠은 어떻게 된 일이랍니까?"
"이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왔었지. 그렇기 때문에 이 현상 공중에 뜬 거대한 대륙에 대한 일은 그렇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어. 내가 놀랐던건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었지."
"얼마전에 있었던 일? 그게 뭡니까?"
벤하르트가 묻자 그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폐인 같은 삶을 살고 있었지. 하지만 그랬으면서도 아직도 라스펠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쓰러져간 동료들의 비원은 내가 이루고 싶었지. 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지. 그 가슴속에 쌓여 있었던 후회때문인지 나는 종종 하늘을 보곤 했었는데, 얼마전에 북쪽 주마의 숲을 넘은 곳 쪽에서 거대한 흰색의 빛이 이는게 보였던 것이야. 그것은 정말로 대단했다. 한결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순백의 기둥처럼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갔었더랬지."
"아.."
"자네도 봤나?"
"저도 본 것 같습니다."
둘러대듯 말한 것이엇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래 예상외로 그 빛을 본 사람은 많지는 않았던 모양인데, 그 빛이 일고 나서 실시간적으로 거대한 대륙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거지. 라스펠을 드러나게 한 그 빛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흐음. 무엇이었을까요. 정말 신기했었죠.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듯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벤하르트는 자랑을 하거나 하는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타인이 자신에 대해서 이렇듯 '모른채' 칭찬하는 것은 즐기는 편이었다. 굳이 감각적으로 표현하자면 간질간질한 기쁨이었다.
"그럼 자네도 이제 라스펠을 찾으러 가는 건가?"
"저는 가지 않습니다. 이미 얻고자 했던 것은 전부 얻었거든요."
"얻고자 했던 것을 얻었다니, 라스펠에 가고 싶었던게 아니었나?"
"제가 라스펠에 가고자 했던 것은 라스펠에 제가 원하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원하던 것을 이루었으니 더 갈 필요는 없게 되었지요."
"아 그런가? 으음?"
사내는 약간 의아해하며 미묘한 표정으로 벤하르트를 바라 보았다.
"그나저나 몸이 굉장히 좋아 지셨네요."
"뭐 다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정도로는 아직도 멀었네. 주마의 숲을 넘기 위해서는 이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하지만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라스펠에는 꼭 도달해 보이고 말걸세,"
벤하르트는 슬쩍 그를 보고 말했다.
"해내실수 있을 겁니다. 그 의지만 있다면 언제고 가능할 겁니다. 라스펠은 가고 싶은 사람에게 길을 열어 줄테니까요."
"음? 그런데 자네 혹시.."
"아 이제 가봐야 겠군요. 이건 제몫입니다."
"잠깐 기다리.."
벤하르트를 따라 나서려 했지만 문 밖을 나서자 마자 사내는 그를 자취를 전혀 찾을수 없었다. 대화를 통해서 느낀 의혹 '혹시 저자는 라스펠에 갔었던게 아니었을까?'에 대한 사실은 그가 라스펠에 올라갔을때 풀리게 될 숙제로 남게 되었다.
- 작가의말
모두 더위를 조십하세요. 정말 푹푹 찌고 축축 늘어지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네요.
그나저나 소설을 쓰는건 조금 애매합니다만, 상당한 노동이 들어가는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쓰다보면 허리가 아픈지 모르겠네요.
예전 한담에도 나온적이 있었는데,
상상하면 그 생각을 써주는 그런 편리한 '무언가?' 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문득문득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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