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93화-퀘이소(2)
"그런데 아버지가 저렇게 인간들과 같이 하는건 처음 보는것 같아요."
"왜? 퀘이소는 인간과 어울리는 종족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부족장정도가 되면 싫다고 해도 인간과 마주할수밖에 없을텐데,"
"그런 공적인 자리에서는 어울리기는 하셨지만, 평상시에는 인간들과 마주하기를 굉장히 꺼려 하시거든요. 사실 저는 여행도 여행이지만, 아버지를 만나는게 두려웠어요."
"어째서?"
"제 어머니는 인간들의 손에 죽었거든요. 그 이후로 아버지는 인간을 내심 증오하게 되었던것 같아요."
라프라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인간을 보면 반기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건 아니었나봐요."
"그만큼 너를 생각하시는 거겠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슬픔이나 분노 조차도 너에게는 미치지 못했던 걸거야."
벤하르트는 라프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라프라는 눈을 감고 그의 마지막이 될 손을 받아 들이며 말했다.
"네."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라프라는 곧 잠이 들었다. 그간 힘든 여행을 해왔다고는 하나 아직 어린 소녀였기 때문에 언제나 긴 여행을 하고 나면 깊은 잠에 빠지기 일수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꾸벅꾸벅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졸음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고 벤하르트는 귀엽다고 생각했다. 결국 잠이든 라프라를 데리고 그는 고리츠에게 다가갔다.
"라프라가 잠이 들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자네가 라프라를 구해준 그 사람이로군."
"네."
고리츠의 눈은 노려보는것 같기도 했고, 분노를 머금고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미묘한 눈빛을 풍기며 고리츠가 말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그 말이 얼마만큼이나 어렵게 이야기 한것인지 사실 벤하르트가 알 도리는 없었다. 그런 감정을 동질화 할수 있을 정도의 사례를 겪어본적이 없는 벤하르트에게 있어서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알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로도 막연하게나마 가볍게 말한게 아니라는것쯤은 느낄수 있었다. 아직도 고마움과 증오가 섞여 있음에도 고마움쪽을 택한것은 부족장으로써 고리츠가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뜻하고 있었다.
"제 쪽이야 말로 감사합니다."
그 의미를 고리츠는 알수 없었지만, 구태어 더 묻지는 않았다. 둘에게는 신뢰 관계 같은건 없었다. 그저 처음 만났을 뿐이었고,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그는 벤하르트에 대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들일수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벤하르트는 자리를 뒤로 했다.
레니아는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왠지 고고한듯 하면서도 귀족같기도 아주 예쁜 시골처녀 같기도 한 모습에 벤하르트는 멀뚱히 레니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라프라는 데려다 주고 왔어?"
"그래. 곤히도 자더라."
"피곤 했겠지. 너와 주마의 숲에서 있었을 정도면 얼마나 고생 했을지 눈에 훤하거든. 아마도 살아 돌아온게 기적이었을 그런 경험이었겠지. 너에 한정했다고 해도 말야."
'굉장히 정확하게 집어내시는구려..'
"아 그러냐. 그런데 그쪽은 주마의 숲에서 어땠는데?"
"무난 했어. 마수가 오면 쳐내리고 그런식이었지. 좀 화려해야지 말야. 트레이야에 제네스에 프쿠타만으로도 절대 당할리가 없잖아. 거기에 나와 그 라스펠의 두명도 있었으니까,"
"하기사.."
"프쿠타의 능력은 자기 자신에게 사용하는것도 뛰어나지만, 타인을 보조하는것에는 더 뛰어나거든. 그녀석이 있을 경우에는 질이 몇배로 향상하게 되어 버리는 거라서, 몸은 편하게 갔지. 마음은 엄청나게 불안했지만, 다행이잖아. 이틀만에 돌아올수 있어서, 만약 조금 더 지났다면 벤 네가 나를 싫어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을 했을지도 모를텐데,"
"하하.."
벤하르트는 억지웃음소리를 내었다. 말투는 가벼워 보였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레니아의 시선이 바늘마냥 따끔따끔 거렸기 때문이었다.
"별로 웃으라고 한 이야기는 아닌데,"
"알고있습니다. 본의는 아니지만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죠."
"알면 됐어. 그나저나 조금 생각해 봤는데 말야."
"뭘?"
"뭐겠어. 주마의 숲의 일 말이지."
"아 그래서, 뭘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벤 너를 겨냥한것 같단 말이지."
"나를 겨냥해? 조건상 맞는것을 데려간게 아니고?"
"그러니까 확신은 할수 없지만, 벤 네가 말했지? 주마의 숲이 조종 당했었다고, 본래가 주마의 숲이 위험한것은 사실이었지만, 프쿠타와 트레이야들의 반응에서 보면 미로는 그정도까지 심한게 아니었어. 그것을 굳이 미로화 시켜서 마수들을 들이 부을정도까지 한 인간을 죽이고 싶을수가 있을까?"
"어?"
"어디선가 같은 식이 있었지?"
벤하르트도 감이 잡히는게 있었다.
"한명이 아니라고 그저 조종인지 뭔지를 당해 폭주를 당한것이라고 가정하면 모를까, 네가 목적이었을 경우는 우리들까지 묶어서는 곤란하게 되어 버리잖아? 네가 말한 일정한 규칙이 있다면, 사람이 많게 되면 그만큼 서로를 양분할수 있게 되는 칸도 줄어 들게 되어 버리고 실제로 우리들마저 묶어버리게 될 경우 벤 너를 잡는것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되어 버리지. 구멍 가정이긴 하지만 말야."
"그렇긴 하네. 하지만 역시 그냥 흘겨서 넘길 일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지? 조종을 당해서 '인간' 혹은 '주마의 숲의 외적요인' 을 제외한다는 그런 폭주였다면 그런 반응이 나올수는 없어. 우리들조차도 묶여 버려서 못나가도록 했어야 정상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가령 벤 너만이 목적이었다던가, 거듭 말하지만 이건 이 시점에서는 구멍 논리지만 말이지."
"아니 레니아 너는 머리 뿐만 아니라 감도 좋은 편이니까,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나를 노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건 없다고 실제로도."
'그때 마수를 조종하고 있었던 검은 물체,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쓰러질때 어떤 분위기가, 낯익었었는데,'
어디선가 본적이 있었다. 그 검은 물체는 떠오르지 않을뿐 어디선가..
'어디선가 본적이.. 어디선가.. 어디선가...'
"벤 뭐하는거야?"
"어 잠시 딴 생각을 조금."
"무슨 딴 생각을 5분씩이나 하는거야. 하도 무시하길래 발로 한번 차줄까 했다고,"
"5분? 5분이라고?"
'이상하잖아..'
벤하르트의 체감상 방금 생각은 10초도 지나지 않았다. 헌데 5분이나 지났다는 레니아의 말에 그는 의심적은 생각을 버릴수가 없었다.
'그 검은물체는 뭐였던 걸까..'
"어이.. 왜 또 그러고 있는건데,"
"으악 쿠헉 뭐야 이거."
"아니 또 잠자고 있길래, 숨이나 막아 볼까 해서, 옛날 생각나지 않아?"
레니아는 손가락으로 벤하르트의 코를 막고 머리칼을 마스크처럼 빙글빙글 돌려 두었다.
"머리카락 상할라.."
"하긴 침이라도 닿았다가는."
"나는 그렇게 더럽지는 않다고. 거기에 그런건 머리 한번 감으면 해결이잖아. 거기에 나는 결정적으로 침을 흘리지 않았어! 어?"
"봐라? 재밌지?"
레니아의 머리카락은 흐물흐물 거리면서 이동했다.
"뭐야 그건."
"머릿결 펀치!"
한 덩어리로 뭉쳐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벤하르트를 공격했지만, 워낙에 느린 공격에 그는 여유롭게 피했다.
"재밌긴 한데, 너무 머리를 함부로 사용하는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깝기도 하고,"
레니아는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걱정이야? 아까운거야?"
순간 적당한 답을 생각하지 못한 벤하르트는 약간 멋쩍어 하면서 말했다.
"둘다. 그런데 레니아 이전부터 그 머리를 계속 하고 있네?"
레니아의 머리는 하나로 묶어 둔 채였다. 그녀는 머리를 찰랑찰랑 거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 이동하기 편하잖아. 물론 이 마법이 제대로 숙련 되면 생으로도 상관 없긴 하겠지만, 왜 이 머리는 싫어?"
"아니 사실 좋은데,"
"그래?"
레니아는 내심 살짝 쑥쓰러워 했다.
"사실 곧 생머리로 돌아갈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물어본거야."
"한동안은 이렇게 살거야 마법이 익숙해지면 이래저래 사용해봐야지. 짠 머리카락 벨트."
레니아가 머리카락으로 장난을 치는것은 약간은 못마땅하게 봤지만, 왠지 그 모습이 벤하르트는 귀엽다고 생각했다.
'알아채게는 생각하지 않을거지만,'
[머리카락을 좋아하는구나 너는]
'아니야!'
확실하게 소리 치고 있었지만, 그는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강한 부정은 긍정과도 같다고,, 하잖아? 뭐 그런 예상이 아니어도,,]
'그만둬줘.. 어?'
반쯤 포기했지만, 사정하던 벤하르트는 멀리서 빠른 속도로 누군가가 접근 하는것을 느꼈다.
"잠깐 누가 오고 있는데?"
"누가?"
"그것까지는 모르지. 빨라 세명이고,"
"그거야 당연히 그녀석들이겠지. 마누어 잖아? 수적으로도 맞고 시기상으로도 이 시기에 마수 세마리가 이곳으로 쳐들어 올리가 없으니까,"
"확실히 그런것 같긴 하지만, 왜 이렇게 다급해 보이지?"
'걸음걸이에 다급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다. 엄청나게 당황하고 있는것 같아.'
곧 그 셋은 마을에 도착했다.
"큰일 났다."
마누어는 척 보기에도 수척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뭐가 말입니까?"
"라스펠.. 라스펠과의 연락이 닿질 않아.. 전이 마법을 사용할수가 없다."
"설마.."
"이미 외적으로 마법이 닿지 않는곳까지 떠올라 버린것 같다.. 아아아..."
마누어는 그렇게 말하고 절규하면서 쓰러졌다.
- 작가의말
드디어 여긴가,, 한창 쓸때는 저저번 연참대전에 여기까지 오자고 다짐 했었는데, 하아,, 이상과 현실은 이런것이라는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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