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30화(584화)-
"너희들이 말하는 숲의 가호라는 것으로 그 이방인을 몰아내는건 무리인거냐?"
"무리다. 그 이방인들은 우리에 대한 대책도 세우고 있다. 할 수 있는것은 최소한의 저항 뿐이다."
"그래 그녀석들이 하는 일이 뭔데 그래?"
"우리 숲을 사냥했다. 마수도 동물도 식물도 우리 종족까지도,"
캐뱃은 분개하며 말했다.
"그렇군.."
'이정도로 분개하면서도 제대로 몰아 내지 못했다는 것은 상대의 실력이 쉬에프 종족 이상이라는 건가,, 귀찮구만,'
하지만 벤하르트는 캐뱃의 마음또한 이해 할 수 있었다. 사실 벤하르트에게 있어 숲이 사냥을 당하든 말든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구태어 따지고 들자면, 사냥에 분개하는 쉬에프 종족의 문화가 독특하구나 정도의 생각만을 가질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종족'이 사냥을 당한다는 말은 그대로 넘길수 없었다. 그것은 쉬에프 종족을 잡아 '노예'로 만든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쉬에프 종족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은 명백한 '적'일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자신을 착각하고 죽이려 드는 것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갔다. 물론 쉬에프 종족에게 당하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후우.."
"힘든거냐?"
벤하르트가 한숨을 쉬자 자신을 쥐고 달리는 그가 살짝 걱정된 듯 캐뱃이 물었다.
"별로. 그나저나 아직도 먼 건가?"
"이제 곧.."
벤하르트는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캐뱃을 풀숲에 숨기고 자신도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찾았군."
아직도 숲의 근방이었지만, 그는 멀리 누군가가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벤하르트의 시야에는 들어왔지만, 캐뱃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있는거냐?"
"그래. 꽤 먼 곳이지만, 그나저나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것이 있다."
"그게 뭐지?"
"내가 하려는건 네가 말하는 이방인을 제거 하는게 아냐. 너희 종족과 이방인을 중재하려는게 내 목적이다."
"그런건 불가능하다!"
"불가능 하지 않아. 결론적으로 네가 원하는건 숲을 훼손하지 않는 것 이잖아? 그렇다면 내가 숲을 훼손하지 않도록 손을 써주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방인을 전부 죽이려 하거나 그런 짓은 생각하지도 마라."
"약속을 어기다니!"
그녀는 활을 집으려 하다가 벤하르트의 실력에 지레 겁을 집어 먹고 그만두었다. 자신이 날고 기어봐야 벤하르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속은 지켜. 너희 종족은 원래 그렇게 생각이 가벼운거냐? 분명히 말했지? 저 이방인들을 돌려 보내겠다고, 다만 '죽이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거다."
"헛소리! 죽이지 않고 어떻게 우리 숲을 지킬수 있다는거냐!"
"너희들은 숲을 지킨다고 했지만, 저들은 그래 너희들에게 있어서는 확실히 적이겠지만, 그건 일반론일 뿐이다. 저정도의 규모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딸려온 자들 정도는 있겠지. 그런 녀석들에게 선택권은 없어.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녀석마저도 죽이는게 숲이 바라는 일일까?"
"우린.. 숲을 지켜야 된다! 그런 녀석들따위.."
"숲은 지켜주마. 죽이는 것과 숲을 지키는 것은 동의(同意)가 아니야. 애초에 나는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하지만 네 말대로 해결은 도와주도록 하지."
캐뱃은 벤하르트를 못미더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벤하르트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의 기를 사방으로 늘려 얇은 막처럼 만들어 규모를 파악했다.
"어이!"
"왜?"
"그래서 어떻게 적을 설득할 생각이지?'
"설득은 아냐. 하지만 방법에 대해 말하지는 않겠다."
"역시 네놈은 우릴 속이려고!"
"이전부터 궁금 했다만, 왜 그렇게 의심을 많이 하는거지?"
벤하르트의 물음에 캐뱃은 고개를 떨구었다.
"우린 너희들에게 속았어."
"너희들이라니 나와 저녀석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야. 나는 애초에 마계인도 아니라고, 나 원.."
캐뱃은 약간 놀란 눈으로 벤하르트를 보고 이내 차가운 눈을 하고 말했다.
"이방인들은 처음에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우리들의 물건들과 교환을 하면서 우리들과 교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잠깐 그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숲'의 것은 '숲'의 것이라면서, 그렇게 마음대로 교류해도 되는거냐?"
"그 일 때문에 쉬에프 종족에서는 말이 많았다. '숲의 것'으로 '다른 문물'과 교환하여 '다른 문물'또한 우리 숲의 것이 되게 하는 것. 과 '숲의 것'은 '숲의 것'이라고 했던 무리들이 대립했다.
'정말 자신들의 편할 대로의 논리로군'
"우리는 숲의 의지에 따라 행동했다. 숲은 어느쪽도 상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결정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충고해 주었다.
캐뱃은 입술을 깨물고 그때의 일을 상상하는듯 했다.
"우리는 이방인들과 싸우는게 싫었다. '평화'를 위해 우리는 숲에서 나는 물건과 이방인의 문물을 교환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잘못이었어! 우리는 그때 숲의 가호로 지켰어야만 했다."
"....."
"처음에는 우리 숲으로 멋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래'를 위해,, 하지만 그 이후에 그들은 점점 숲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숲에서 나오는 그들에게 있어서 진귀한 물건들을 전부 '약탈'해갔다. 교류가 아냐. 우리는 권고했다. 그들은 듣는 것 같이 행동하면서도 약삭빠른 녀석들이었다. 숲은 점점 이방인에게 서서히 좀먹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때에는 이미 몰아내기는 늦었다는건가.."
벤하르트도 멀리 이방인무리를 보니 이해 할 수 있었다. 이미 이방인들은 완벽하게 '방어' 태세를 굳히고 있었다. 아마 숲으로 들어오는 이방인을 차단하는 것만이었다면, 쉬에프 종족으로도 충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숲에 요새를 설치하게 되면 어떤가? 쉬에프 종족으로서는 손 쓸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전면전을 하게 되면 종족이 멸족에 가까운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고, 그대로 두면 숲은 이방인에게 약탈 당한다. 쉬에프 종족은 너무 늦게 이방인들의 생각을 눈치챈 것이다.
이방인들도 처음부터 그런 요새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냥을 하면서도 살살 쉬에프 종족을 달래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전진기지'의 완성이 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며 쉬에프 종족을 유린했을 것이다. 전진기지에 대해 물으면, '교류'를 위한 터전이라고 변명을 늘였다. 그렇게 '요새'가 완성되고 나자 그들은 본격적인 '약탈'에 돌입한 것이다. 깨달았을때는 이미 늦었다.
이방인쪽이 약삭빠른 것일까? 이녀석들이 무사태평이었던 것일까, 아마도 양쪽 모두였을 것이다.
"어쩔수 없구만, 그럼 일단 기다리고 있어봐라."
"뭘 어쩌려는거냐?"
"일단은 정찰이라도 해봐야 겠어. '이정도 거리'에서는 정확하게 파악을 할 수가 없으니까,"
"너.. 나를 속이려는건 아니겠지?"
"의심은 이해 하겠지만, 쓸데 없는 걱정이다. 예를들어 여기서 너를 기절해서 저녀석들에게 가져가면 그것으로 끝 아닌가? 그런 기회는 한참 전부터 있었다고, 네가 방심하면서 내게 접근했을때부터 지금까지 쭉 말야. 그런 의심을 할 거면 처음부터 잔뜩 긴장을 했었어야지. '그런식이니까' 저녀석들에게 당한거다."
'그런식이니까 저녀석들에게 당한거다' 그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캐뱃의 심장을 꿰뚫는듯 싶었다.
"잘 기억해둬. 너무 과해도 안좋지만, 의심이란 끊임없어야 하는것이다. 내가 백년을 살아오면서 느낀건 그거야. 자신을 의심해라 타인을 의심해라. 자신에게 '자신'하지 마라. 자신이 특별하다면 타인은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고 가정해버려라. 그래야만이 진실로 네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거야. 자신을 '믿고' 타인을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알고 있나? 너의 그 과한 의심은 그런 속담과 꼭 닮았다."
"하지만, 어쩌라는거냐!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이방인들은 어떤 말이든 행동이든 '거짓'투성이라고!"
"그 과거에 대한 후회는 '내가' 고쳐주겠어. 그래 의심하는건 좋아. 하지만 이미 넌 '의심'이 맞은 순간 사지에 덩그러니 놓여진 것 아니냐. 그러니까 한심할 정도의 믿음을 보여주었던 지난 날처럼 마지막으로 나를 믿어라. 한번 호되게 데여서 의심하는것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그 일을 내가 되돌려 주겠다. 그리고 되돌리는 김에, 네게 보여주지. 이방인이라고 꼭 못 믿을 사람만 있는건 아니라는 것을 말야."
'너무 자신하는건 좋지 않은데,'
스스로에게 자신하는 것은 벤하르트가 가장 싫어하는 것중 하나였다. 티온때도 그랬지만, 그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말해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입 밖에 내어 버린 것은 '망설임'도 '후회'도 없이 신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레니아를 잃고 다시 여행을 재개했을때 결심했던 것이다.
"후우 그럼 가볼까. 일단은 기다리고 있어."
한숨을 내쉬고 그는 '요새'를 향하여 걸어갔다.
- 작가의말
가끔 글을 쓰다보면 생각하지도 않았던 소재들이 그냥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요걸 써야지~ 했다가 쓰다보니 음 이 이야기를 이렇게 붙히는 것도 괜찮군.. 이라고, 생각하고 쓰게 될 때가 많은데,
엔쿠라스가 긴 호흡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물론 대놓고 복선을 노리는 것도 있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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