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23화-정보(5)
"세번째로 알아낸 것은 여왕의 정체야."
"정체라니 왜 그런걸 알고자 한거야?"
"나도 딱히 노리고 들어간건 아니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보가 라스펠에 닿았을 뿐이지. 라스펠에 닿고 나서는 여왕이라는게 궁금해졌고, 벤 너는 방금 여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
"뭐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고 할수 있지."
"조금 신기 하지 않아? 여왕은 이곳 라스펠을 만들었어. 대대로 왕비의 또다른 인격으로 존재하는 여왕이라는 존재.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들이고 있지만, 실제로 여왕의 존재는 보통의 사람들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이질적인 것이잖아?"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생각해보니 왜 궁금해 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일 정도로 기이하기는 하다."
"나도 라스펠에 정보가 닿지 않았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니까 어련 하겠어. 아마도 그런 기품이나 마법같은 그녀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겠지. 어쨋든 정신으로 존재하면서 육체에 기생한다고 할수 있는 그 여왕은 도대체 무엇인 걸까?"
"글세 유령 같은 건가?"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말할수도 있겠지. 정확하게는 다르지만, 네 말대로 유령으로 비유한다면 인간들이 말하는 지박령과도 비슷하다고 말할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래저래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시원하게 말해줘. 그래 여왕의 정체가 도대체 뭔데?"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말은 들은척도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여왕은 라스펠을 만들고 이 라스펠에 자신의 전부를 심어두었지. 자신이라는 존재 육체를 제외한 모든 정신을 라스펠에 쏟아 부었고, 대대로 왕비가 되는 여인들의 몸을 빌려 힘을 행사했어. 마법에 필요한 건 육체보다 정신쪽이 크기 때문에 왕비가 되는 여인들은 여왕과의 접합으로 막대한 양의 힘을 손에 넣을수 있게 되었지."
벤하르트는 그녀의 말을 잘 듣고 있다가 물었다.
"그런데 그 말만 따지면 그렇게 재밌는 이야기는 아닌것 같은데? 이미 이곳의 사람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별로 다를 것도 없잖아."
"그런데 말야. 여왕이 라스펠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그 시초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라스펠의 기원은 어디서 부터 시작된 것일까? 여왕이라고 해도 처음에는 정상적인 신체를 가졌던 인간이었을텐데,"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아냐? 그런건. 여왕이 생전 누구였는가? 라니 굉장히 쓸데 없는 정보라고 생각하는데,"
"아냐 그렇지 않아. 가령 트레이야나 제네스 같은경우는 네 말대로 중요하지 않겠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이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야. 왜냐하면 여왕은 우리가 아는 어떤 인물과 아주 중요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거든."
"우리가 아는 사람이라고?"
"그래. 이제 좀 흥미가 동하지?"
레니아의 말에 벤하르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는 사람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 그 이야기에는 어느정도 흥미가 동하기 마련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맞춰볼래?"
레니아는 그렇게 권유했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한번 떠올리지 못하면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지라 벤하르트는 세차례 정도 생각했던 이름을 부르고는 금새 포기해 버렸다.
"됐다 됐어. 뭐 아는 사람 이름을 전부 부를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뭔가 실마리라도 주어야 풀던지 말던지 하지."
레니아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럼 주지 뭐. 힌트는 우리들의 여행의 시발점이 된 사람이야."
"우리들 여행의 시발점?"
'아무리 그래도 시발점이라고 해서 두보엔일리는 없을테고, 엔쿠라스에 가기 위한 시발점이라, 시발점..'
그가 레니아와 이렇게 여행을 떠나게 된것은 엔쿠라스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이 처음으로 목표로 한 곳은 그의 기억속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에시오르 메리나?"
그가 대답한 것은 그의 젊었을적 기억 속에서 예지를 해주었던 지금은 가렌더 부크의 여황으로 군림하는 에시오르 메리나였다.
"정답. 이곳의 여왕은 에시오르 메리나와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어."
"밀접한 연관이라니?"
"그래 이곳의 정보가 거짓을 고하지 않은게 여왕이 의도 한것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정보 자체에는 거짓이 없는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나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모으면서 라스펠에 이르렀고 라스펠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볼수 있었어. 지금 말하는 내용은 그때의 정보를 바탕으로 말하는 이야기야."
"에시오르 메리나라니, 상상도 못했는데, 여왕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뜸들이지 말고 말해줘."
"그럴까? 그녀는 에시오르 메리나의 전생이야."
벤하르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레니아가 자신만만하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서 너저분한 이야기를 늘여 놓을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나 생각했는데, 지금의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롭다 못해 흥분될 정도의 이야기였다.
"전생이라고?"
"에시오르는 전생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는 여자라고 했었지?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이 라스펠의 여왕이야. 여왕은 말야. 에시오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에시오르와 같은 생각이라면, 영생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 가렌더 부크의 지배자인 에시오르 조차도 영생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가 오는 실낱같은 확률에 기도 했을 정도로 사실 영생이라는것은 굉장히 어려운거야. 나는 약신으로써 쉽게 행하고 있는것 같지만, 으흠. 흠.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쑥스럽지만, 기적의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지."
"확실히 나도 그 부분은 그저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이 부분이 중요한거야. 결국 여왕은 영생을 할수 있는 수단을 찾을수 없었던 거야. 그 많은 지식과 예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도 자신이 영생할수 있는 방도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예지 했겠지.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전생의 일원이 되어 갖히는 것을 원치 않았어. 에시오르처럼 말야. 그래서 그녀는 편법을 사용한거야. 스스로 나라를 만들고 그 자체가 자신이 되어 버려서 육신을 바쳐 라스펠을 만들고 그곳의 지배자가 되어 버리고 생을 버리고 대신 스스로의 모든 것을 남기지 않고 이곳에 옮긴 것이지. 그녀는 '죽지 않았지만' '죽은 것으로' 전생에서 벗어날수 있었던 거야."
"그거 확실한거야?"
"정보가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면 확실해. 그때 에시오르는 감탄하고 있었거든. 여왕이 행한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하는 용기에 대해서.. 이미 에시오르의 머리속에 있어야한 여왕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직접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레니아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자신은 여왕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겠다고 호언 장담을 하는거야. 아마 에시오르도 젊었을 적에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을거야."
"그럴것 같아. 내가 그녀를 처음 봤을때는 아무것도 없었던 소녀였는데, 지금은 가렌더 부크에서 여황을 하고 있으니,,"
"여왕과 여황이라, 과연 전생과 현생이라고 해야 하나? 어쨋든 지금 이 대화도 여왕의 귀에 들어가고 있을테니까, 내일이나 한번 여왕에게 직접 물어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아. 이로써 내가 얻은 정보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야. 벤 그나저나 몸 상태는 괜찮아?"
"그래. 네 말대로 정신적인 문제였던 것 같아."
그 정보의 기억을 떠올려도 벤하르트는 기분이 나빠지기는 했지만 전처럼 울컥 거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안정을 찾았기 때문인지 그는 그 광경을 떠올렸다. 궁금한 것은 그 기억의 자신은 무엇을 읊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벤! 괜찮아?"
레니아는 머리를 옆으로 고꾸라 뜨리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야?"
"아니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도 안 듣길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 정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 정보속의 나는 뭐라고 말하고 있었거든. 그게 뭔가 신경 쓰였거든."
레니아는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가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는 않는게 좋을 것 같아."
"그런가?"
그녀는 사람의 감정을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의미로는 차갑고 무감각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을만큼 그녀는 감정에 친숙하지 못했다. 스스로의 이성에는 한없이 강했지만, 감정에 솔직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서툴렀지만, 벤하르트의 그 정보를 통한 기억이 그에게 있어 분명히 안좋은 일이라는 것만은 느낄수 있었다. 비단 벤하르트의 반응 때문만은 아닌 불안한 느낌이 그녀의 전신에 감돌았다.
"생각해서 피를 볼 정도의 기억이 뭐 좋은 기억이겠어. 그런건 별로 생각하지 않는게 좋은 거라니까,"
'레니아 물론 네 말은 옳을지도 몰라.'
벤하르트는 레니아가 자신을 염려해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미래를 생각한다면 옳다고 말할수 있었지만, 벤하르트는 아직도 스스로의 과거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역시 레니아 네게는 거짓말하지 않는게 좋겠다."
"뭐?"
"사실은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했는데, 나는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과거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네 말대로 그냥 잊는게 정답일수도 있어. 모르는게 약이라고 알게되면 나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지만, 쓴 맛을 보게 될지 모른다고 해도 나는 알고 싶은 모양이야."
레니아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너는 쓸데 없는 것에 강하다니까,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게 없어. 쓸데 없는 것에 한없이 약하면서 왜 이런 일에는 그렇게 강한거야?"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는데,"
"욕쪽에 가깝게 들어. 나는 네가 그런 기억은 잊어 버렸으면 좋겠어. 하지만 굳이 네가 알고 싶다면 그걸 반대하고 싶지는 않아. 네가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할수 있듯이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야."
"고마워."
그 대답에 그녀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별로 그렇게 고마워 할 것 없어. 아마 다음에는 네가 반대의 경우를 겪게 될테니까 말야. 거기에 네 억지를 들은게 한두번이라야 말이지."
- 작가의말
후우 내일은 예비군 훈련이 있는 날이네요. 뒤풀이가 있을지 몰라서 저는 또 연이어 써둬야 할지 지금 고민중입니다.
역시 학교생활 하면서 '연참대전'하는건 시간때문에 아리까리 하네요. 그냥 소설 쓰는건 마음만 먹을수 있다면 할수 있겠는데 그 마음먹기가 힘들고 이래저래 문제로군요 ^^;
사족으로 요즘은 댓글 덕에 사소하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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