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31화-
"그러니까 이제 슬슬 볼일도 다 봤으면 라스펠에서 내려가도 되지 않을까?
"네 입에서 먼저 가자는 말이 나오다니 의외인걸?"
"사실 나도 느긋하게 영웅이 된 기분을 만끽 하고 싶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걸 어떻게 하냔 말이지. 그 책은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중요한 고서 같아 보였다고."
"그럼 파손하면 안되는 거잖아."
"하지만 말야. 그건 정말로 위험한 거였단 말야. 잘못 손대면 이 세계가 멸망 직전 까지 몰릴 지도 모르는 최종병기 같은 비술서따윈 있으면 안돼. 인간인 이상 살아있기에 싸울수는 있어. 하지만 저건 설사 어떤 이유에서라도 건드려서는 안될 금서였다고, 어찌 이야기한다고 해도 내 잘못은 변하지 않지만, 솔직히 후회는 없어.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곳에 눌러 앉아 있고 싶은 마음도 없지."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실 나도 검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부했으니까, 떠날 적절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떠난다고 해도 여왕에게 그 사실은 말할 참이야. 어차피 알고 있겠지만, 그 사실에 못이겨 도망치듯 떠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
그들은 트레이야에게 떠난다는 의사를 전했다.
"뭐 떠난다고?"
"그렇게 됐어."
"그 큰일을 처리한지 몇일 지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떠난다는거야? 아깝잖아. 이렇게 어렵게 올라와서는, 나도 고생했지만, 특히나 벤 네 고생은 나와는 비할것도 없을 정도로 심하잖아."
"우린 이미 목적한 바를 이루었으니까, 라스펠은 나중에라도 언제든 오면 되겠고, 트레이야 너희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우린 한동안 라스펠에서 더 지낼 생각이야. 라스펠은 이래뵈도 굉장히 넓거든. 물론 우리 대륙만큼 거대한건 아니지만, 한 소대륙이 떠 있는 것 같이 도시 라스펠을 중심으로 여러 문물이 있나봐. 그래서 라스펠을 한번 돌고 갈까 생각중이야. 이렇게 어렵게 올라왔는데 아쉽잖아.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주어 질지 알수도 없고,"
"그건 그렇지."
"그런데 왜 그렇게 급히 떠나려 하는거지? 말투로 보면 당장에라도 떠날 것처럼 들리는데,"
제네스는 잠자코 있다가 날카롭게 물었다.
"뭐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 굳이 말해줘야 직성이 풀리겠다면 말해주겠지만,"
"말해줘."
트레이야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레니아는 한숨을 쉬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게 그렇게 큰 일이야?"
"령을 잃은 것 만큼 큰일은 아닐지 몰라도, 상당히 큰 일이기는 할거야. 그 마도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엄청난 보물이었으니까, 후대의 후대로 가서 '잃어버린 그 한 페이지'가 어떤식으로 생각될지는 알수 없지. 나는 희대의 악인으로 기록될지도.."
"그렇다면 빨리 내려가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내려가고 싶다면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내려갈 생각이 없다면, 네가 외우고 있는 그 부분을 써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건 안돼."
트레이야는 그거 좋겠다 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레니아는 시퍼렇게 날이 선 말투로 말했다. 설득의 시도조차도 불허할 정도의 확답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건 있어서는 안될 마법이야. 나 자신도 익힐 마음은 추호도 없어. 해독을 시도 하지도 않을거고 애초에 더 어렵게 내 머릿속에서 꼬아내서 누구도 익히지 못하도록 할거야."
"웃기는 군. 네 머리라면 결론적으로 '너 하나만큼은' 풀수 있는 그런 암호를 시도해봐야 레니아 너만 좋은게 아닌가? 너 혼자 독점하기 위해서 파손시킨게 아니냐?"
"적당히 해둬 제네스. 원한다면 적어주지. 너희들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이걸 지킬수 있다면 몇장이라도 절대 사용하지 않도록 절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수 없도록 할수 있다면, 얼마든지 적어 주겠어. 하지만 그런 각오가 없다면 그런 도발은 자제해둬."
"내가 말하는 건 라스펠이 느낄 심정을 대변해 준 것이다. 너희들이 어떻게 말하든 라스펠이 네 행동에 느끼는건 결과적으로 너 하나만 독점하기 위한 수단처럼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 네 말은 옳아. 하지만 그건 라스펠이 따질 일이지 네가 따질일은 아니지 않겠어?"
"그건 그렇군."
트레이야는 제네스가 보지 못하도록 입을 가려 말했다.
"조언한거야 조언."
"그런거야?"
그녀는 솔직하지 않은 점만 따지면 의외로 제네스와 자신은 비슷한 성격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트레이야. 다음 여행의 목적지는 정했어?"
"아니 발 닿는데로 여행을 하고 있으니까, 사실 목적지 같은 건 상관 없지만,"
"그럼 말야. 이전에 너는 당도 하지 못한 곳에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는 당도하지 못한 곳?"
"너는 우리와 함께 카도스에서 제네스를 처단하고."
순간 제네스는 움찔 하면서 짜증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구석으로 들어가 벽을 등지고 서서 눈을 감았다.
"거기서 너희와 우리는 헤어 졌었잖아. 우리가 간 곳은 가렌더 부크라는 곳이었는데, 이곳이 정말 가관이거든. 가보면 대단함을 알겠지만, 세계의 연결로 같은 곳이야."
"그렇게 좋아?"
"좋다기 보다는 재밌다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어. 한번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그곳에서는 이래저래 다른 곳으로 갈수 있는 통로도 많으니까, 발 닿는 데로 돌아다니는 너희들에게는 딱 알맞는 곳이 아닐까 싶어서, 혹시 갈 곳이 정해진게 아니라면 가보는걸 권해보고 싶었지."
"제네스 어때?"
"아무려면 어떠냐. 우린 발 닿는 데로 가는 것이었잖아? 마음가는데로 해. 내 의견을 물어서 수용 된 적도 없었잖아."
트레이야는 싱긋 웃으며 레니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게 그렇게 쉽지많은 않을거야. 그곳에 가면 여황에게 안부나 전해줘."
"여황?"
"아마 이곳의 여왕을 말하면 꽤나 죽이 잘 맞을지 모르지. 그건 그때의 재미로 남겨두는게 좋아. 어쨋든 트레이야 너희들은 이곳에서 좀 더 있다가 갈 생각이라는 거지?"
"그래."
"알았어. 그럼 편히 쉬어."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다음날 아침 여왕의 거처로 향했다. 여왕에게는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지만, 벤하르트는 우직하게 나서서 말했다.
"여왕님 저희는 이제 내려가 보겠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당장에 내려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루 이틀정도는 더 있을줄 알았거늘."
"왜 내려가는지는 알고 있잖아? 나는 그 고서의 금기시 되는 주문을 파손 시켰어."
"확실하게도 이야기해주는군 레니아. 하지만 말야. 너희들이 이곳 라스펠을 구해준 것에 비하면 그런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애초에 그 일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니까,"
"고맙다고?"
"그 금기는 익히면 안되는 주문이다. 멸절의 주문이라고 불리우는 그건 사실 나도 사용하지 못하지. 하지만 이런 나라도 그것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 쯤은 숙지하고 있다. 레니아 너도 그 부분까지는 읽었겠지?"
"그래."
"그건 독이다. 그것도 감미로운 독. 쓰면 쓸수록 스스로를 좀먹고 들어가 주체할수 없게 만드는 독이다. 종국에는 스스로를 먹어버릴 극독이지. 하지만 한번이라도 사용했다면, 누구도 손을 쓸수가 없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벤하르트의 물음에 레니아가 답했다.
"벤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이 있지? 악행이나 살인은 중독이 된다고, 그것을 '독' 이라고 말하잖아."
벤하르트는 이전 자신이 여왕에게 비슷한 내용을 말했던 것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주문은 말야. 그 이상으로 직접적이야. 아까 이야기했던 인간의 마음의 독은 스스로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하는 식이지만, 이 멸절의 주문은 사용하는데 엄청난 물리적인 쾌락을 준다고 되어 있어."
"쾌락?"
"그래. 기분이 좋다고,, 뇌가 문드러 질 정도의 쾌락. 인간에게 있어서 이 이상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쾌락. 한번이라도 사용하면 그 쾌락을 잊을수가 없게 되어 버리는거야. 처음에는 죽이는데에 망설임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이윽고 웃으면서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한명 한명 소멸시켜 나가게 돼. 그리고 종국에는... 연쇄로 자기 자신마저도 파멸에 이르게 하면서 세계를 부수어 버리는 금단의 주문이야."
"그럼 왜 이런 주문을 만든거지? 결국 사용한 사람을 멸망하게 만드는 그런 마법을."
"몰라. 무엇인가 목적이 있겠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건 존재해서는 안되는 마법이라는 거야."
"바로 그것이다. 레니아. 나는 그 주문을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그건 잘된 일이야. 만약 내가 그 주문을 사용해 기계에게서 라스펠의 위기를 모면했다면, 라스펠은 언제고 멸망하게 될 폭탄을 쥐게 되는 셈이었을 테니까, 익혔다면 나는 아마도 진작에 사용했을 것이다. 익히지 않았기에 너희들을 만났고 라스펠은 구원받을수 있었다. 내용만으로 보면 이렇게 이상적인 이야기는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할수 있지."
"하지만 그래도 그 고서는 중요한 것이었을텐데,"
여왕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하지. 나는 너처럼 머리가 좋지 않아. 그 고서를 본다고 해도 해독할 능력은 되지 않지. 나는 마법을 스승에게서 배웠다."
"그럼 그 스승이라는 작자가 이 책을 쓴건가?"
"아니 스승도 몇대를 건너서 배운 마법사 였다. 이 고서의 마법을 익히는 마법사였지. 레니아 너도 그 마도서를 보았지? 굳이 멸절의마법이 아니라고 해도 그 마법은 세계의 모든 마법의 이치가 담겨 있는 마도서다. 많은 사람들에게 넘어가도 좋을 그런 물건이 아니지. 그 마도서는 원전으로만 존재하며 대를 거쳐서 그 마도서를 수호해야할 사람들이 전승되는 것이다."
"일인전승이라는 건가?"
"그런 이유로 나는 스승에게 직접 마법을 배웠지. 스승도 고서를 해독할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대로 전해져 오면서 소실된 부분까지 포함해 나는 스승으로부터 마법을 배웠지. 그것만으로도 이정도다. 그리고 나는 그와 동시에 고서를 지켜야만 하는 숙명을 받게 된 것이다. 이건 저주중 하나로 나는 스스로 고서를 없앨수 없었지. 하지만 나는 멸절의 마법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혹하며 후일. 라스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해독할수도 없고 없앨수도 없지만, '누군가가' 해독할수 있다면, 그 마법을 배워 버린다면, 라스펠은 어느순간 멸망하게 될 테니까,"
라스펠에 있는 고서를 해독할수 있는 사람이 멸절의 마법을 해독해 배운다는 것은 곧 '라스펠과도' 연관이 지어지는 인간이라는 것이며, 한번이라도 멸절의 마법에 손을 댄다면 종국에는 '라스펠'마저도 멸망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군."
"그런 애물단지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에게 라스펠을 점거 당했을때는 '왜 그 주문을 모르는 걸까? 하고 절망했었지. 하지만 그랬는데도 지금은 몰라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는걸 보면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
"한때 예언자를 했던 사람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힘든데,"
"어쨋든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면 그렇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그걸 없애준 것은 이쪽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감사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단 레니아 네가 그 마법을 기억하고 있다는게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다만, 물론 너는 사용하지 않겠지. 하지만 레니아 '만약' 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가령 벤하르트가 죽기 직전이라고 해도 너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을텐가? 암호를 풀어 '개인'적인 마법으로 적을 소멸 시키거나 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종말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걸 사용하고 싶어."
- 작가의말
오늘은 술자리가 있는 관계로 모든 것을 캔슬하고 집으로 달려와 1시간만에 소설을 쓰고 바로 나가야 되네요.
이것이 대학생의 연참대전의 참가라는 건가 봅니다. 하루에 써서 하루에 끝내는 이 데스로드.... (ㅠㅠ)
내일도 연달아 술을 마시게 될듯한데 그냥 오늘 취해버리고 내일은 쫑쳤으면 하는 생각도 OTL..
비축분 따위는 머릿속에나 존재하는법!
그나저나 술마시고 레포트는 또 어떻게 쓸지 걱정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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