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43화(597화)-마굴(1)
"하아.. 하아.. 어? 벤하르트씨 여기서 뭐하세요?"
벤하르트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달렸고, 이니프는 그를 놓칠까 싶어 잠시도 틈을 내지 않고 바로바로 공간이동으로 그에게 따라 붙었다. 하지만 체력에 자신이 있는 벤하르트와는 다르게 이니프의 공간이동은 그 효율은 좋았지만, 연이어서 벤하르트를 쫓는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벤하르트는 멀직이 떨어지면 그녀를 조금씩 기다려 주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제멋대로인 그녀의 버릇을 조금 고쳐놓을까 싶어 거리를 유지해 따라올수는 있도록 하되 그녀에게 여유를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이니프는 벤하르트를 따라 잡고 의아해 하며 물었던 것이다.
"길이.. 막혀 있어."
벤하르트는 손을 내밀어 투명한 벽을 만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만 걸쳐놓은것 같았지만, 확실히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있었다.
"결계.. 인가?"
"결계.. 네요."
벤하르트는 날아올라 그대로 벽이 어디까지 솟아 있는지 확인했다. 백붕을 타고 높게 올라갔지만, 결계는 그 끝을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어."
"네."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것이 다분히 형식적인 미소라는 것을 벤하르트는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을 숨긴 형식상의 미소에는 순수하게 대꾸를 해주기 어려웠다. 그는 그 자리를 뒤로 하고 결계를 따라 달려 보았다. 한참을 뛰어도 끝이 나지 않는 결계를 확인하고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때요? 결계는?"
"굉장히 길어. 아무래도 더 가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돌아오긴 했는데, 으음.."
이니프는 갑자기 벤하르트를 끌어안았다.
"뭐하는거야!"
"자 자.. 놀라지 마시고,"
그대로 그녀는 공간을 열어 벤하르트를 끌어 들였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벤하르트와 이니프는 그대로 퉁겨졌다.
"으읏.."
"아야.. 공간으로도 이동할수 없을 줄은,,"
"막무가내로구만, 그래 네 공간이동으로도 저 안으로는 이동할 수 없다는 거야?"
"네. 본래 공간이동은 이런 결계에 구애를 받거나 하지 않는데, 엄청나게 대단한 결계인 모양이에요."
"대단한 결계.. 라고?"
벤하르트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흐음."
그는 검을 꺼내 들어 살짝 결계에 가져갔다. 결계는 어찌나 단단한지 벤하르트의 검을 가볍게 튕겨냈다. 이니프는 순간 벤하르트의 모습에 호흡이 멎을 것만 같았다. 바짝바짝 저리는 몸으로 그녀는 벤하르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집중하고 벤하르트는 검을 휘둘러 결계를 베었다.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결계에는 작은 균열이 벌어졌다. 이니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벤하르트에게 다가가 말했다.
"왜 부수지 않는거죠?"
그녀는 벤하르트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벤하르트는 그 사실을 이니프가 알고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말해주었다.
"이정도의 결계를 누가 만들었다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니까, 좋은 의미로든 혹은 나쁜의미로든,, 일단은 확인을 해두는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흐음 그런건가요."
이니프는 납득했다는듯 주변의 바위에 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 한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벤하르트는 공중을 바라 보았다. 거대한 용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중에서 한명의 그림자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 졌음에도 사뿐하게 착지한 것은 한명의 남자였다.
"음.. 정말이군."
남자는 벤하르트는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균열이 일어난 결계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 균열을 만든게 당신인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 길을 통과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서 조금 거친 수를 써버렸군요."
벤하르트와 남자는 서로 상대의 기량에 놀랐다. 싸워 보기전에는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실력을 잘 갈무리 해놓은 서로의 실력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벤하르트가 말했다.
"그 결계를 친것은 그쪽입니까?"
그렇게 말하며 벤하르트는 찬찬히 남자를 살폈다. 외관상 특이한 부분은 없었다. 잘생긴 외모에 균형 잡힌 체구 백색의 망토를 두르고 한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없다는 것은 마계에서는 꽤 중요한 일이었다. 특징이 없다는 것은 소거법에 의해서 마계에서 어떤 종족인지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마족이거나 혹은 인간이거나, 혹은 의태를 한 다른 종족이라고 해도 대충 다섯을 넘어갈리는 없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나는 아니지만, '우리'가 친 것은 맞다고 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이 길을 지나가고 싶다고 했나? 그건 무리겠는데,"
"무리라니 어째서 입니까?"
"지금 여기는 봉인지역이 되어 버렸거든. 이정도의 결계를 친 것도 그것 때문이지."
"봉인구역?"
"혹시 최근에 각지에서 출몰한 마굴에 대해서 알고 있나?"
'에시오르가 말했던 그일이군.'
벤하르트는 자신이 맡아야 했던 추가임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그가 에시오르에게 임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보았던 지도에 표시된 그 장소에 근접한 위치였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고는 있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최근 마굴의 영역이 늘어나고 여러 종족들이 강제적으로 그 마굴에 흡수되는 사건이 발생 되었지. 얼마 전 마기가 급격하게 지독해졌지. 그리고 마을 몇개가 먹혀 버렸다."
"마을..?"
"그래. 하나의 마굴에 불과했었지만, 지금은 몇개의 마을을 집어 먹고 산처럼 커져 버렸지. 그리고 주변의 종족에게마저도 피해가 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꽤나 강한 종족들도 있었음에도 아직까지도 살아 돌아왔다는 기록이 없는걸 보면 전대미문의 사태라고 할 수 있을거다."
'.....'
"그래서 서둘러 결계를 치고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있는 중이었지. 어디를 가는 도중이라고 했었나? 그렇다면 돌아가는게 좋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목숨을 잃는 것 보다는 낫겠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벤하르트를 가로 막았다.
"혹시 결계를 부수러 온 것이라면 상대할 수 밖에 없겠지만 말이지."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다만?"
"그 사태를 해결하는 것에는 관심이 있군요."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장난이라고 생각하는건가?"
"별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건 아닙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제가 해야할 일을 한다.' 정도의 의미려나.. 그쪽에게는 피해가 갈 일은 아닐테니 상관 없지 않겠습니까?"
"피해가 가지 않는다? 후후.. 웃기는군."
남자는 벤하르트를 비웃었다.
"저 마굴은 '흡수'를 하고 있다."
"흡수?"
벤하르트가 남자의 말에 반문할 때 멀리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로지닌! 어떻게 되었어? 범인은 잡았어?"
'로지닌!? 이 남자가..'
"이름은 부르는 것을 삼가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여전히 입이 경박해 마르티나."
"뭐 상관 없잖아. 부른다고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 남자가 내 정체를 알아 버렸다. 이정도면 충분히 패를 잃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 남자...? 어 너는!"
"아.."
벤하르트도 마르티나라고 불리운 여인을 알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과거 가렌더 부크로 향하기 위해 수마행의 탑을 올랐을때, 6층의 주인으로 만났었던 여인이었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인건가?"
"아는사이고 뭐고, 로지닌 이녀석이 벤하르트 하르크야."
"뭐.. 벤하르트! 과연.."
로지닌은 순간 눈에 이채가 돌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벤하르트를 위 아래로 흘겨보았다.
"소문에는 원의 흡혈귀와 다닌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로군."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따로 행동 중입니다. 그나저나 그쪽이 마계에서도 유명한 검성 로지닌이었다니, 정말로 놀랐네요."
"그런 누구나 딸 수 있는 명함 따위에는 관심은 없어. 그보다도 나는 네쪽이 더 신경 쓰이는데, 백검사.. 아마 네가 대전에 나왔다면 백검성이라는 호칭을 받았을지도,"
"그정도는 아닙니다."
"아니 겸손해 할 필요는 없어. 네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여러 위업을 생각한다면, 그런 호칭이 더 손색이 있을 정도니까 말야."
약간 빈정대는 것 같은 로지닌의 말에 벤하르트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이 한 사람이 더 나타났다. 로지닌이나 마르티나를 보았을때와는 다르게 벤하르트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그 사람을 반겼다.
"인!"
"어!? 아 벤하르트! 어째서 여기에 있는거야?"
"그래.. 그렇군. 이 결계는 로엔이나 네가 쳤던 거였어."
"친 것은 스승님이야. 나는 어디까지나 고치는 역할을 맡고 있지. 현재는 로지닌과 같이 다니고 있는 중이야. 광룡의 사건이 수습된지 얼마 안되서,, 당장에 이 마굴에 손을 쓸 수는 없지만 말이지."
"광룡?"
벤하르트의 물음에 마르티나가 답했다.
"북쪽 경계 89지역에서 광룡이 반란을 일으켰거든 그 수장인 브리티노나를 제거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건을 알게 되어서 수습을 하게 된거야."
"주절주절 타인에게 말하는건 그만 둬."
"별로 타인이라고 할 건 없지 않아?"
"그래요. 벤하르트는 타인은 아니잖아요?"
"타인이잖아? 실제로 벤하르트와 우리들은 그저 이름만 알고 있었던 사이에 불과해. 면식조차도 없던 관계에 타인이 아닐건 또 뭔데?"
"흐음. 이쪽으로서는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이 일은 제가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후우 그러니까 그 점이 마음에 안든다는거야."
로지닌은 한숨을 쉬며 벤하르트를 노려보았다.
"로지닌 왜그래."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겠지? 일전 제9지역에서 있었던 일. 기억나나? 벤하르트."
"제 9지역이라면,,"
일전 벤하르트는 임무외적인 일로 마수들의 광란을 막았던 일이 있었다. 작은 마을이 마수들에게 습격 당하기 전에 마수들을 격퇴하고 제압함으로써 마을을 구한 사례였다.
"네가 구한 그 작은 마을은 지금 지도상에 없다."
"뭐!?"
"너.. 그 마수들을 어떻게 했지?"
"....."
"죽이지 않았지? 무슨 생각으로 그것들을 살려 둔건가?"
"....."
"그 일은 본래 우리들에게 돌아간 일이었다. 네가 멋대로 해결한것에 그들은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마을의 전멸 그뿐이었다. 나조차도 뒤늦게 소문을 들어 대처조차도 하지 못했지. 일을 뺏겨서 화내고 있는게 아냐. 듣자하니 네 일은 대부분 그런 식이더군."
'그때는,,, 아직 패배의 언약을 익히지 않았을 무렵... 이었던가.'
"그런 일처리는 언제고 화를 부르게 된다. 네녀석에게 이 일을 맡길수는 없어."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닥쳐!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별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거냐? 그렇지 않아. 그녀석들은 전부 살아 있었다. 네녀석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 순간을 기뻐하고 있었다고! 작던 많던 네가 한 일의 책임을 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 그렇겠군."
"벤하르트.."
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벤하르트를 바라 보았다.
"듣자 하니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네요."
이니프는 바위에서 일어나 로지닌에게 다가갔다.
"이상한 논리?"
"로지닌 이라고 했었던가요? 당신은 벤하르트씨에게 무엇을 화내고 있는거죠?"
"몰라서 묻는건가?"
"일의 경과를 살펴 보도록 하죠. 벤하르트씨는 마을이 당하고 있기에 마을을 구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에 좋아했다. 하지만 이후에 마수들에게 마을은 전멸하고 말았다. 그런거죠?"
"그래."
"거기에 어디 벤하르트씨의 잘못이 있다는거죠?"
"이니프 그만둬. 분명히 잘못한 것은 나다."
"아뇨. 짚고 넘어갈 것은 확실하게 짚어야죠. 그렇게 참고만 살면 얻을 것도 못 얻는다구요. 벤하르트씨는 아마도 그 마을 사람들을 순수하게 구할 마음으로 구했을 거에요. 하지만 뒤처리는 확실하게 하지 못했다, 맞죠?"
그녀는 로지닌에게 물었다.
"그래."
"그것이 벤하르트씨가 마을을 '망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까요?"
"....."
"없었을테죠. 그정도는 알고 있으실테고, 그렇다면 벤하르트씨의 '실수' 라고 치도록 하죠. 실수라고 해도 잘못은 잘못이겠지만, 그것을 '잘못'이라고 치부하는 순간 그쪽도 큰 죄를 범한게 아닌가요?"
"뭐!?"
"아까 말했었죠? 그 일은 우리가 맡고 있었다고, 그렇다는건 뒤늦게 도착했다고 해도 아마 그 마을에는 도착 했다는 이야기겠죠. 하지만 일은 이미 정리 되었다. 그렇죠?"
반박할 것은 전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로지닌에게 이니프가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때 확실하게 벤하르트씨의 일을 확인하고 수정하지 않으신 건가요? 아마 그정도는 할 수 있었을텐데요? 미처 생각을 못했나요? 아니면 벤하르트씨를 믿었나요? 그것도 아니면 화라도 나셨으려나? 어느쪽이든 그것을 어째서 간과하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마을사람들을 위하시는 분이라면 그정도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 그래서 지금은.."
"이쪽의 벤하르트씨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런 '빈틈' 따위는 없어요. 그때는 그때의 실수였죠. 분명 실수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죄'로 치부되어야 한다면, 마찬가지입니다. 벤하르트씨에게도 당신을 경멸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지겠지요?"
"이니프 그만해."
"일을 처리하려고 했더니, 먼저 처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자신을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들의 앞에서 그 사람을 칭송했다. 하지만 이후에 그 마을 사람들은 그 칭송한 사람의 미흡한 대처에 의해 전멸 당하고 말았다. 꼴통이다. 벤하르트라는 사람은 그정도 밖에 안돼. 뭐 그런 식이었으려나?"
"이니프!"
"아 이건 단순히 제 가정이었을 뿐이니 너무 화내지는 마세요."
"일단 죄송합니다. 이녀석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로지닌은 얼굴을 내리 깔았다.
"아니 그 여자의 말은 정확하다고는 못해도 틀리지는 않았을지도,,"
- 작가의말
1분의 미학은 개뿔 ㅠㅠ..
음.. 역시 나이가 차니 소설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군요.. 집안에서 번뜩이는 눈초리가 너무도 신경이 쓰이는 나날입니다... OTL..
문득 소설을 쓰다가 생각난 것이지만,
여우같은 레니아 늑대같은 리스 뱀 같은 이니프... 라고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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