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33화(587화)-
케멘트는 벤하르트의 실력을 이전 베스를 잡았을때의 모습으로 가정했다. '그정도라면' 자신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한방이라도 맞춘다면 자신의 승리 '가게스트'가 벤하르트의 몸을 파고 들 것이다. 벤하르트에게 달리면서 그는 몇가지 승부수를 생각했다.
한쪽 팔을 내어주고 그것으로 방패삼아 벤하르트에게 일격을 먹이는 것. 시간을 끌면서 베스가 캐뱃을 잡는 것. 그것도 아니면 정정당당한 한방 승부. 찰나의 순간에 생각한 것 치고는 여러 가짓수를 생각했지만, 전부가 소용 없는 것이었다.
"뭐.."
짧은 신음성 벤하르트의 움직임은 그의 상상도를 훨씬 뛰어 넘고 있었다.
'막을 수 있다. 내 검이라고 한다면,'
가게스트를 들고 그는 벤하르트의 검격을 막았다.
'막았다 막았어!'
그는 다시 벤하르트의 움직임을 '기억'했다.
'설마 그 윗줄 마저 있었을 줄이야. 조심해야겠군.'
그는 벤하르트의 실력이 '속도'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그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만든 벤하르트가 무섭다면 무서운 것이었다. 벤하르트는 도공. 검사라면 벤하르트와 싸울때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벤하르트의 속도에 신경을 써서 벤하르트의 본질을 보는 것을 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는 꼴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자 얼마든지 와봐라. 내 가게스트에 한방이라도 스친다면 네녀석도 끝이다.'
케멘트는 스스로가 자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그정도가 되면 자만이었다. 분명 베스도 케멘트도 마계에서는 수준이 높은 실력자들이었지만, '그정도'로는 벤하르트에게는 택도 없었다. 실력이라기 보다 그 생각부터가 곪아 있는 것이다.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벤하르트는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보인다. 다음은 어깻죽지를 향하는 일격. 좋아 반응 할 수 있다.'
분명히 막았다. 막는 느낌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의 손끝으로 느껴지는것은 소름끼치는 감각이었다. 그게 무슨 느낌인지 깨닫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애검 가게스트와 함께 벤하르트의 검에 베어 넘겨졌다.
"뭐 뭐!"
실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벤하르트가 케멘트를 쓰러트린 시간은 고작해야 4초. 캐뱃을 압도 하고 있었던 베스는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는 곧장 캐뱃을 사로잡아 그녀의 목에 검을 들이 밀었다.
5초째 벤하르트는 이미 베스의 근처까지 도착했다.
"오지마 죽인다!"
베스는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그의 그 말을 듣고도 전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스는 검으로 캐뱃의 머리를 잘라 버렸다.
'네가 잘못한거다 네가..'
베스는 벤하르트를 보고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베스는 거리낄게 없는 마족이었기 때문에, 누구를 상대한다고 해도 겁을 먹은 적이 없었지만, 그 순간 만큼은 분명 벤하르트의 기백에 눌려 있었다. 그의 정신이 날아가기 전에 본 것은 더할나위 없이 차가운 벤하르트의 시선이었다.
"후우."
벤하르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생각했다.
'정말로 죽일줄이야.'
그는 정말 베스와는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자가 마왕의 아들로 있는 나라란 어떻게 굴러갈지 참으로 의문이었다.
"어! 어었? 뭐지?"
캐뱃은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자신의 목을 만져보았다. 분명히 베스에게 잘렸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 자신의 목은 분명히 붙어 있었고 상처도 아픔도 없었다. 그녀의 목이 날아간 순간 벤하르트는 한손으로는 베스의 머리를 강타해 기절시켰고 다른 한손으로 검을 휘둘러 캐뱃의 목을 바로 붙힌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잘렸다는 사실 조차 없었던 것처럼 그의 행동은 물 흐르듯 거침 없이 이루어졌다.
"무슨 짓을 한거냐!"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는 목을 계속 주무르며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건 이제부터지."
벤하르트는 기절해 있는 베스와 케멘트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베스님에게서 물러서라!"
컨푸르의 지휘하에 어느샌가 벤하르트를 에워싼 병사들이 창을 겨누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병사들을 물려줄수 없겠나?"
"웃기지 마라! 베스님에게 문제라도 생긴다면 우리 나라는 끝장이다!"
"위해는 가하지 않아. 이 몸 그대로 다시 나라로 돌려 보낼 것을 약속하지. 이렇게 말했는데도 창을 거두지 않겠다면 좋다. 어디한번 빼앗아가 봐라."
컨푸르는 선뜻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병사는 약 천명 하지만 과연 베스와 케멘트를 그렇게 쉽게 사로잡아 버린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도리어 이 호루탈 숲을 침공하기 위해 얻은 병사 천명만 날아간다 해도 자신은 나라로 돌아갈 면목이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컨푸르님.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저녀석을 없애 버리겠습니다."
"닥쳐라. 지금 저녀석은 베스님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상 컨푸르는 망설이고 있었다. 공격을 해도 당할까 두려웠고, 하지 않아도 면목이 서지 않았다.
"그렇게 망설인다면 내가 선택을 도와주지."
벤하르트는 그렇게 말하고 한걸음에 컨푸르 앞에 다가왔다.
"히익!"
컨푸르는 벤하르트를 보자마자 달아나려고 했고 그 앞을 병사들이 가로막았다.
"이놈!"
"지금입니다. 지금이라면! 베스님에게서 떨어져서..."
병사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잠깐의 순간 컨푸르를 지키던 호위 병사 둘이 쓰러져 버린 것이다.
'정말 괴물 같은 놈이구나.. 도저히 상대가 안된다! 베스고 뭐고의 문제가 아니다!'
컨푸르는 달아나며 외쳤다.
"어서 이놈을 막아라 어서!"
하지만 병사들이 접근 하는 것보다도 먼저 벤하르트는 컨푸르를 사로 잡고 말았다.
"으허어.."
벤하르트는 베스와 케멘트 처럼 백색의 기를 이용해 만들어낸 끈으로 단단하게 컨푸르를 메어 잡아 왔다. 적진 안에서 적장을 비롯해 우두머리가 다 잡혀 버린 이상 병사들은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어 어쩔셈이냐?"
"내 말만 잘 듣는다면 별 일은 없을테니 안심해라. 그나저나 저 병사들의 창 이제는 거둬도 되지 않겠나? 나도 조금 두려워서 검이 어디를 향할지 모르겠는데,"
벤하르트의 은백색 검이 컨푸르의 앞을 왔다 갔다 하자 컨푸르는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병사들을 물렀다. 이미 그 장소의 선택권은 벤하르트에게 완벽하게 넘어가 있었다.
"벤하르트! 이녀석들을 내가 죽이게 해줘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 일전에도 말했을텐데? 이녀석들을 죽이는건 간단하다. 네가 정 원하면 죽이도록 해주지. 하지만 그 이후에 오는 것은 제2의 도적이고 제3의 도적일거다. 지금의 고작해야 천명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고, 네가 화가나는건 이해한다만, 그 행동으로 인해 숲은 더 살아남을 수 없을거다."
"으읏. 하지만 이녀석들은 주동자다! 죽이지 않으면 언제고 또.."
"그걸 방지하기 위해 내가 이 자리에 있는거라고, 점잖게 기다려."
벤하르트는 베스와 케멘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으읏.."
한참이 지나고 베스가 정신을 차렸다.
"윽! 네놈! 아니 저 야만족은 어떻게!?"
벤하르트는 냉랭하게 그를 걷어 차며 말했다.
"말조심해라."
벤하르트의 은빛 검이 눈앞에서 번뜩이자 아무리 베스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 더 건방진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나의 '요새'안에서 내가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니,'
자신의 호위무사인 케멘트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그 옆에는 컨푸르마저도 잡혀 있었다. 단신으로 요새가 함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를 어쩔셈이냐!"
"일단 네 수하가 일어나고 나면 이야기를 해주마."
벤하르트가 검을 휘두르자 케멘트는 정신을 차리고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음 으음."
"자 이제 이 요새의 실질적인 지휘자인 세명이 전부 있으니 이야기 하도록 하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모두 동의하면 상처 하나 없이 놓아 주도록 하마."
컨푸르와 케멘트는 베스의 눈치를 살폈다. 베스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너희들은 나에게 '졌지?'"
"보면 모를까!"
벤하르트는 시선을 옮기며 하나 하나 확실하게 '대답'을 받았다.
"자 여기에 있는 이 여인은 쉬에프 종족의 일원이다. 너희들은 자연히 뭔가 생각 나는게 있을거다. 그래 그간 잡아간 쉬에프 종족들은 어떻게 되었지?"
"노예상에 팔아 넘겼다."
"되찾아올 방법은?"
"....."
"사실대로 말하는게 좋을거다. 베스 나는 가렌더 부크가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가렌더 부크는 내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일 뿐. 딱히 가렌더 부크의 일원으로 사는게 아니야. 네 아비인 루그벨트가 와서 전력으로 가렌더 부크를 친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고? 가렌더 부크가 고작해야 환마왕 하나에 밀릴정도로 약한 도시가 아니기 때문이지. 가렌더 부크는 살아만 있어도 나에게는 충분한거다. 피해를 보든 말든 나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지. 내가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베스는 목이 시린 것을 느꼈다. 대답한번에 목숨이 날아갈수 있다는 것이 그런 기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판 가격의 10배의 가격을 주고 다시 사온다면,,"
"좋다. 그렇다면 그 일은 네가 책임지고 완수해서 이곳으로 돌려 보내라. 마왕의 아들이라면 그정도는 쉽게 할 수 있겠지? 10배라고 해도 말야."
"크윽.."
"자 그 다음은 이 요새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지. 딱 이틀 주마 당장 철거해서 나라로 돌아가라. 그리고 거기 너."
컨푸르는 베스가 저자세로 나오는 것을 보고 높혀 대답했다.
"네 네.."
"너는 이 베스의 직속 수하가 아니겠지? 뭘 하고 있는 자냐?"
"제 4지역의 가신으로 이름은 컨푸르이며, 베스님의 의견에 의해 이곳 숲의 자원을 얻으러 왔습니다."
"제 4지역의 나라는 뭐지?"
"가이론 왕국입니다. 제 4지역의 이곳 호루탈 숲을 제외한 전역을 다스리고 있으며 베스님의 제국의 속국입니다."
"그렇군. 그래서 이런 것을 지원하면서까지 호루탈 숲을 점령하려 한건가? 뭐 어쨋든 그건 상관 없지. 어쨋든 제 4지역 호루탈 숲은 가이론 왕국이 아니면 들어오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는 다는 점이 중요하겠군."
"네?"
"너는 돌아가 왕에게 권해라. 이곳 호루탈 숲은 '숲의 가호' 때문에 절대로 침공할 수 없는 곳이며, 자원을 탈취한다는 것은 이룰수 없는 것이었다고 뭐든지 가져다 붙혀서 이곳을 절대로 타인이 침략할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라."
"하지만.."
"네 독단으로 이곳에 왔다면 더욱 좋겠고, 이것이 왕의 명령까지 미친 것이라면 아주 부단하게 노력해야 할거다."
벤하르트의 말을 들으며 컨푸르는 속으로 콧방귀를 끼며 생각했다.
'이 위기만 넘긴다면 네까짓 말을 뉘 듣겠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컨푸르 뿐만이 아니었다. 베스도 케멘트도 이 위기만 끝낸다면 이런 구두의 약속따위는 지킬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벤하르트의 족쇄가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숲에 위해를 가하는 일은 무엇 하나도 해서는 안되고, 숲의 위해를 가하는 '외부의' 것들도 너희의 손에서 차단해야 한다. 이것에 불만은 없겠지?"
"네."
"불만 없습니다."
"불만 없다."
차마 벤하르트에게 경어를 사용할 수 없었던 베스는 겨우겨우 목구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베스 너는 쉬에프 종족의 노예를 되찾아서 풀어주는 것까지 행해야 한다. 기한은 그래.. 5년 주마. 할 수 있겠지?"
"그래 알았다."
'귀찮게도 묻는군. 이따위 약속을 지킬거라고 생각하는건가!'
"너희들이 생각하는대로 이따위 구두 약속을 지킬거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너희들은 지킬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말했던 것을 지키지 않으면 너희들은 죽게되거든. 그런 '주술'을 걸어두었다."
"뭐!!"
셋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랐다.
"뭣하면 시험이라도 해볼테냐? 그 대가는 '죽음'일테지만,"
벤하르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 작가의말
가끔 뒤돌아가서 읽어 볼때가 있곤 하는데, (저도 중요한 부분을 제외하면 하도 오래 써서 이름 같은건 찾아 봐야 하기 때문에..)
약간 멋쩍긴 해도 나름대로 저는 재밌더라구요. 그래 쓴 사람이라도 재밌어야지 그것조차도 없으면 이 소설을 왜 쓰랴..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긴 호흡에, 가끔 제가 야심차게 썼던 부분을 보면 가다듬을 부분은 많아도 재밌습니다. 네 그렇게 혼자 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긴 소설 아직까지 따라오시면서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좀더 많은 분들이 보실수 있도록 힘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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