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29화(583화)-
"잠깐 동물을 해하지 않았기에 기회를 주었다고 했나?"
벤하르트가 말을 걸자 그녀는 활을 치켜 들고 말했다.
"허튼 수작 부리면 바로 쏘겠다."
"좀 차분하게 대화를 해보자고, 혹시라도 내가 하려는 일이 너희들에게 있어서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행동이라면 지금이라도 나가도록 하지."
벤하르트는 양 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표시했다.
"나는 별로 이곳의 마수들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은 아니다. 필요한게 있어서 구하러 왔을 뿐이지."
"헛소리 하지 마! 네놈들의 얄팍한 수작에는 이제 넘어가지 않는다!"
여인은 시위에 걸린 손을 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 먼저 벤하르트는 그녀의 화살을 잡아 활과 함께 낚아 챘다. 벤하르트의 항복의사 때문인지 그녀는 약간 마음을 놓고 있었고 그 틈을 놓칠만큼 벤하르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진정하라고, 아까도 말했었지? 내가 하려는 일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만 두겠다고, 거기에 누구와 자꾸 비교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혼자 이곳에 왔다."
여인은 입을 뻐끔 거리면서 거리를 벌려 단검을 뽑아 들었다. 녹색의 기운이 일렁이는 그녀의 검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여인은 방금 자신을 잡아도 몇번은 잡을 수 있었던 기회를 벤하르트가 던져 버렸음을 알고 있었다.
"너.. 정말 그녀석들과 한패가 아닌거냐!"
"그녀석들이고 뭐고, 나는 아무것도 몰라. 내가 원하는 물건만 얻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녀석들이라니 뭘 말하는거냐?"
여인은 눈에서 독기를 약간 없앴다. 여전히 경계는 늦추지 않았지만, 적의는 한결 누그러 들었다.
"정말 사냥꾼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사냥꾼? 아니 사냥꾼은 맞을지도,"
여인은 다시 급하게 반응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이 검을 바로 잡고 으르렁 거렸다.
"잠깐 진정하라고, 일단 차분하게 이야기나 하자고, 도대체 나를 왜 이리 싫어하는거지?"
"당신들 이방인들은 우리들의 터전을 침략하고 우리들의 숲을 사냥하고 있으니까,"
"'들'이라고 하지 마.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까, 어쨋든 이곳에 사냥 하러 온 사람들과 나를 착각했다 이것이군. 그런데 사냥을 하면 안되는건가!?"
"안돼! 이 숲의 것들은 모두 호루탈 숲의 것이니까, 마수도 우리도 숲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거다."
"너희도 사냥은 할 것 아냐? 육식은 하지 않는건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숲의 채식이라고 해도,,"
"그래 그건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사리사욕으로 사냥 하는게 아냐. 살기 위해서 사냥 하는 거다. 그리고 이 육신이 소멸하면 숲에 바치는 것으로 순환하게 되지. 모든 것은 숲의 의지로 행하는 거다."
그녀는 자부심을 가지고 이야기 했다.
"하기사 어디에나 문화라는건 있으니까, 어쨋든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필요한 물건만 구하면 된다고,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필요한 물건?"
"철편수의 이만 구하면 돼. 이를 구하는 것이니까, 딱히 죽일 필요도 없고 허락을 받을 수 있으면 받고 싶은데,"
여인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헛소리! 철편수는 죽이기 전에는 절대로 이를 빼낼수 없다."
"그때는 도망치도록 하지. 그런 조건으로 어때?"
"믿을 수 없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믿어 줄건데? 아 그래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자. 너희들은 지금 사냥꾼들 때문에 굉장히 곤욕을 치르고 있는 모양이니까, 내가 조금 도와주도록 하지. 너희들이 사냥꾼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내 조건을 들어주면, 나는 사냥꾼들이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손을 써주겠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면 너희들은 내게 철편수가 있는 곳만 알려줘. 철편수를 죽이지 않고 이만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면 이만 잘라서 나는 돌아가도록 할테니까,"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으면 어쩔거지? 이대로 공격이라도 할 건가? 확실히 너희 종족이 전부 나에게 달려든다면 나도 당해내기 어려울테지만, 솔직히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나를 이기는건 불가능하다. 괜히 시간낭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으!! 우롱하다니!"
여인은 방방 뛰다가 약간 불안한듯 벤하르트가 낚아 채간 활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벤하르트는 활을 한번 보고는 여인에게 호감을 조금이라도 사두기 위해 그녀에게 던져 주었다. 그녀는 활을 받고 살짝 안색을 펴고 즐거워하다가 이내 벤하르트를 보고 다시 으르렁 거렸다.
"어쨋든 교섭 하지 않을거면 나는 이대로 너희들을 무시한채 철편수의 이를 찾아 돌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지."
"으.. 헛소리.. 나는 속..지 않는다!"
"답답하구만,"
벤하르트는 바로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녀는 바로 활을 겨냥해 그에게 바로 쏘았다. 녹색의 기가 서린 화살은 벤하르트를 향해 쇄도했다. 벤하르트는 그 화살을 피해 낚아 잡았다. 숲의 가호를 받은 화살은 그의 기로도 쉽사리 잡을 수 있는게 아니어서 그의 손바닥은 찢어져 살짝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여인이 다음 화살을 준비하기도 전에 벤하르트는 발로 그녀의 활을 걷어 차려 들었다. 확실하게 사정범위 내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벤하르트의 발차기는 그녀의 활에 닿지 않았다.
'뭐지!?'
약간 당황하는 벤하르트에게 한껏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소용없어!"
여인은 한발로 풀쩍 뛰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쏘아내는 제2격에 벤하르트는 어쩔수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숲의 가호가 담긴 화살은 벤하르트로써도 쉽게 대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쉽지 않은데,'
벤하르트는 저 종족이 모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인만 해도 상당한 실력자였는데, 거기에 더 모이게 되면 더욱 곤란해 지는 것이다. 벤하르트는 '죽이지' 않는다. 때문에 저런 정예를 상대할 때 조차도 목숨은 살려 두는데,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셈이 되는 것이다.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을 노리는 '적'에 대한 전력이 감소되지 않는 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쩔수 없지.'
방심하지 않는 적은 정말로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그 '방심'을 유도해 내는 것이야 말로 벤하르트의 특기중의 특기였다. 그는 사뿐하게 여인을 향해 돌격했다. 여인은 벤하르트에게 화살 세개를 잡아 제3격의 화살을 겨냥했다.
벤하르트는 순간적으로 가속해서 그녀의 활을 노리고 들어왔지만, 이미 그녀는 벤하르트의 속도를 읽은 듯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음 조금 더 가게 되면 저 여자의 일행과 만나게 되는건가.'
벤하르트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쫓는 시늉을 했다.
"활을 돌려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그녀는 신나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숲의 가호로 자신에게 절대로 다다르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설사' 벤하르트가 방금까지 필사적인 움직임으로 따라 왔던 것의 세배정도로 다가올 수 있다고 해도 자신에게 다다를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실끝하나의 차이로 그녀는 벤하르트의 공격을 살짝 빗나가게 했다. 그 실끝만큼의 거리는 그녀에게 있어서 충분히 자신 있는 거리 였다. 실끝이지만, 걸음으로 수십보 정도의 거리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숲의 가호를 통한 '자신하는' 거리를 유지한채 활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찌 알았으랴. 그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거리야 말로 벤하르트가 그녀에게 요한 '방심'의 한 형태였다는 것을..
"일섬 백사(白蛇)."
이미 한보 밖으로 달아난 허공을 향해 그는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부터 쇄도하는 백색의 뱀들이 전광석화같은 움직임으로 그녀가 다른 한 발을 바닥에 내딛기 전에 전신을 묶어 버렸다. 숲의 가호조차도 그 뱀들을 튕겨낼 수는 없었다.
"으으읏!"
"자신보다 격이 높은 상대와 싸울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방심해서는 안되지. 잘 기억해둬."
벤하르트는 여유롭게 사로잡은 여인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이 치사한!"
벤하르트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봐라. 지금 나는 너를 사로 잡았지? 내가 네게 어떤 짓을 해도 너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이 숲을 망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너희 종족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이 숲에서 나갈 생각이다. 알아 들었지? 너는 내가 뭘 속이고 있는지 뭐니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그런건 하나 없어."
"으으으.."
그녀는 으르렁 거리며 금방이라도 벤하르트를 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으음."
"정말로. 아무런 속셈이 없는거냐!"
"그러게 없다니까, 애초에 있든 없든 이제 관계 없다고, 나는 내 갈길을 갈테니까 말이지."
"잠깐 풀어줘!"
"조용히 좀 해라. 네 종족이 오면 그때 풀어 달라고 하면 되잖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방인은 절대로 믿지 않지만, 나를 희생하겠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네가 정말로 나를 속이는게 아니라면 우리들의 본거지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
"본거지?"
벤하르트는 정말이지 영문을 몰라 물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냐?"
"너는 지금 나를 도와 주겠다고 했었잖아! 그렇다면 '나' 혼자서 안내해도 괜찮은 거냐고 묻고 있는거다."
"상관은 없다만,"
벤하르트는 그제야 이 여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을 놓아주는 척 하면서 더 큰 대어를 낚는다고 생각한 것 같군.'
"이방인 풀어줘."
"흐음."
벤하르트는 검을 휘저어 그녀를 구속하고 있는 백사를 없애 버렸다. 여인은 아직도 벤하르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듯 했다.
"뭘 얼마나 속았는지는 몰라도 의심하고 싶다면 의심해도 좋다. 나는 의심을 받아도 상관 없다. 결백한 사람을 의심하는 네 부담감만 커질 뿐이지. 어쨋든 좋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조금 보기나 해보자."
"너 이름이 뭐냐?"
"벤하르트 하르크."
"나는 캐뱃 우르하 다."
그녀는 숲에서의 자신의 움직임이라면 벤하르트도 따라 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벤하르트는 아주 능숙하고 여유롭게 그녀의 날렵한 움직임에 따라 붙었다.
"어이 잠깐만,"
캐뱃은 잠시 멈춰서 벤하르트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가야 되는거지?"
"하루 정도 걸어야 한다."
"농담 하지 마."
"농담 아니다!"
벤하르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후우 좀 더 빨리 갈 수는 없는거냐?"
캐뱃은 자신이 '숲'에서 상대에게 느리다는 것만큼은 인정하기 싫었기에 장담을 하면서 말했다.
"가능하다. 따라 올 수 있다면 따라와 보시지!"
그녀는 재빠르게 나무를 타서 그대로 달렸다. 벤하르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녀의 옆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분한 얼굴로 다리에 더 힘을 주어 달렸지만, 벤하르트를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전력질주로 인해 슬슬 힘에 부치기 시작하는 그녀에 비해 벤하르트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였다.
"후 헤 후 하."
'단순하구만,'
벤하르트는 백색의 기로 그녀를 묶고 풀쩍 들어올렸다.
"뭐하는 짓이냐!"
"안내나 해둬."
그는 광경이 시시각각 변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숲을 가로 질렀다.
'우아아!'
캐뱃은 나뭇가지에 맞을까싶어 눈을 감았지만, 벤하르트의 백색 끈은 오차도 없이 그녀를 피하게 했다.
'이녀석..'
그녀는 이정도의 '속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까전에 자신을 한참은 봐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녀는 숲의 가호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 벤하르트가 접근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이정도의 속도라면 분명 그 가호마저도 무시하고 접근 하는게 가능 했을 것이다.
'우리 종족의 최강인 호쉬르도 못이길지도..'
몇번이고 적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 순간 진심으로 벤하르트가 적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 작가의말
연참대전은 2분 남기고 쓰는게 제맛이죠..
간이 쪼물쪼물 하네요.
그래도 오늘은 6천자 가까히 썼네요. 약간 만족스럽습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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